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이다희 · Poem
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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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지만 슬프고, 단정하지만 발칙한 언어를 구사하며 독보적인 시 세계를 선보여온 이다희의 두번째 시집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03번으로 출간되었다. “언어의 재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삶을 끝없는 재현 속에 위치시키”(신용목)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첫번째 시집 『시 창작 스터디』 이후 4년간 꾸준히 쓰고 다듬은 시 42편을 4부로 나누어 묶었다. 이번 시집에서 이다희는 조금쯤 엇나간 현실의 틈새를 시적 장면으로 변모시키며 한 발짝 더 멀리 나아간다. 지난 시집에서 발랄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꿰맞추던 화자들이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충돌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 되는 것처럼 사뭇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감각함으로써 이 세계의 예외적 존재들에게 반짝이는 왕관을 씌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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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1부 입춘(立春) | 충청도 |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 무화과나무 여름 바구니 이름 | 겨울병 | 종과 횡과 사선으로 | 우리 사이 꽃 | 나날들 | 선악을 초월한 다리 위에서 2부 렌드로 카이프테 | 청소부 천사 | 현대시 | 하이쿠 | 모든 것과 그 밖의 다른 것 | 방 안의 집 | 오일 페인팅 | 홍시와 홍시 | 미인이 하는 게임 | 미인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3부 우회전하면 영화제 | 시티 커피 | 121분 | 입 모양을 읽었거든 | 일기 | 시선을 내려놓고 | 샌드위치 시스템 |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 낯선 거품과 맥주잔 | 우유 전구 | 열대어 4부 유령의 집 | 적산가옥(敵産家屋) | 지팡이 | 소파 오페라 | 사라진 대표님 | 모르는 엉덩이 | 손을 들어서 | 오렌지 절벽 | 설탕물 | 놀이터 | 주공아파트 | 하루보다 긴 일기 해설 어른의 성장통·김영임

Description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현실의 틈새를 오가는 경쾌한 발걸음 어긋나는 일상을 포착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경쾌하지만 슬프고, 단정하지만 발칙한 언어를 구사하며 독보적인 시 세계를 선보여온 이다희의 두번째 시집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03번으로 출간되었다. “언어의 재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삶을 끝없는 재현 속에 위치시키”(신용목)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첫번째 시집 『시 창작 스터디』 이후 4년간 꾸준히 쓰고 다듬은 시 42편을 4부로 나누어 묶었다. 이번 시집에서 이다희는 조금쯤 엇나간 현실의 틈새를 시적 장면으로 변모시키며 한 발짝 더 멀리 나아간다. 지난 시집에서 발랄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꿰맞추던 화자들이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충돌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 되는 것처럼 사뭇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감각함으로써 이 세계의 예외적 존재들에게 반짝이는 왕관을 씌워준다. “우린 결코 같은 편이 아니지. 그렇지만 난 그저 네 편이야.” 무심하고 비장하게 세상과 대면하는 존재들 이번 시집의 첫머리에 놓인 「입춘(立春)」은 봄의 기운이 약동하는 이 계절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시다. 갑작스레 발효된 대설주의보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거리의 속도와 질감을 바꾼다.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사람보다 차가 더 천천히 간다”. 그러나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녹기 마련이고, 폭설이 지난 후에는 “눈이 아닌 무엇인가가 인간을 사로잡는다”. 분명 무언가 일어났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러가는 세상에 묘한 괴리를 느껴본 적 있다면, “지나온 길에 꺾인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얼음꽃”으로 만들어 기억하려는 시인에게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이다희의 화자들은 세상의 인과관계를 납득하지 못하고, 그 규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샌드위치 시스템」의 화자는 “주먹 쥔 손등 위로 돋은 핏줄은 파란색인데 피는 왜 파란색이 아”닌지 고민한다. “피는 왜 파란색이 아닐까 눈은 왜 붉게 충혈되는가 붉은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어째서 투명한가” 하는 물음이 이어진다. “요 며칠 먹은 것이 별로 없는데 거울 속 뺨은 붉고 건강하니 참 이상한 일”(「미인이 하는 게임」)이라 생각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눈물이 나게 웃”(「입 모양을 읽었거든」)는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세상의 질서와 어긋나지만 “이런 기분을 품고 그냥 사는 일에도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고 “이렇게 살지 않는 일에도 각오가 필요하다”(「사라진 대표님」)는 점에서 일치를 이룬다. 실은 모두가 저마다의 비장함으로 세상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양 아래서 나는 네 편이야. 너는 무심하게 내 마음을 밟고 지나가. 행성들을 모아 모래성을 지어줄게. 난 널 안타까워하지 않아. 우린 결코 같은 편이 아니지. 그렇지만 난 그저 네 편이야. ―「하루보다 긴 일기」 부분 “앞뒤 다 잘린 단어가 우리를 절벽 위에 세워두지” 왕관을 쓰고 어디로든 나아가는 소녀들 발코니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제는 담배를 태우지 않지만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이 큰 나사못 네 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도 운동장이라면 어떤 초록이 가능할까 나는 건물의 소략한 설계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 나는 조용한 흑백영화 같은 건반을 들여다본다 피아노는 풍금이 아니지만 발에 제대로 힘을 준다면 연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고 호흡을 정리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오고 손을 따라 시선이 올라가면 주인은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도와달라며 울먹인다 나는 발코니로 뛰어나간다 ―「적산가옥(敵産家屋)」 부분 이 시의 화자는 카페로 개조된 적산가옥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과 한때 이 집을 거쳐 갔을 이들을 떠올린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화자의 회상 또는 상상은 발코니에서 피어오르는 탄내로 인해 급작스레 막을 내린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영임은 시 중반부에서 “발코니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인 화자의 행위를 예상치 못한 결말과 연결 지으며, 시가 끝나고도 이어지는 시적 시공간의 연장을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독자는 시의 장면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잡혀 있게 된다”. 이처럼 남은 서사를 독자에게 맡기는 시적 전략은 불안과 외로움을 겪어내고 있는 이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빈칸을 채우게 한다. “앞뒤 다 잘린 단어가 우리를 절벽에 세워”둘 때, 왕관을 쓴 “퀸은 종과 횡과 사선으로 움직일 수 있”(「종과 횡과 사선으로」)는 자유를 얻는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을 읽는 일은 이해에서 상상으로, 다시 믿음으로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해와 상상과 믿음은 다르지만 서로를 서로에게 덮어씌우면서 소녀는 성장한다”(「121분」). 이 절벽에서 기꺼이 뛰어내려 “눈을 뜨면 항상 맞춤인 내가 있”(뒤표지 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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