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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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관계가 불러일으킨 파멸의 서사, 아름답고도 잔인한 비밀의 끝 한국 문단의 차세대 기대주, 전아리 장편소설 불온하고 매혹적인 꽃의 드라마! 《앤》 “껍질을 깨고 나와 프로페셔널한 작가의 길로 나아가려는 위험하고 의미심장한 시도” - 박범신(소설가) 탁월한 문장력과 날렵한 감성 한국 문단이 총애하는 젊은 작가, 전아리 제2회 세계청소년문학상과 제3회 디지털작가상 대상 수상으로 차세대 한국 문단을 이끌 기대주로 주목받아온 작가 전아리가 본격 문학을 선언하고 새 작품을 내놓았다. 장편소설 《앤》(은행나무刊)은 등단 이후 한국 문단의 ‘천재’로 불렸던 그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호흡을 고르며 그간 준비했던 역량을 쏟아 부은 작품이다. 젊은 작가만의 패기와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흔적을 소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청소년 작가가 아니라고 선언이라도 하듯이 성숙한 문체와 잘 다듬어진 문학적 표현에서는 세련미가 넘친다. 작가는 각종 언론과 문단에서 탁월한 문장력, 날렵한 감성, 흥미로운 서사, 세대를 초월하는 문제의식이 집결된 작품을 쓴다는 평을 받아왔다. 언제나 독자를 의식하며 글을 쓰는 작가의 이번 작품은 독을 품은 꽃을 언어로 형상화한 것처럼 매력적인 동시에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우리는 그 애를 이름 대신 ‘앤’이라 불렀다” 그날 ‘비밀의 화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불운한 사고 때문에 ‘앤’이라는 이름에 묶여 있는 다섯 남자. 그리고 이 가운데 한 여자가 있다. 어느 눈이 쏟아지는 겨울날 저녁, 막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여배우 신주홍과 다섯 명의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바닷가 마을의 고등학교 동창인 그들은 과거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던 사건을 기억한다. 앤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고 수감되었다가 돌아온 기완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싹을 틔우지 못하고 얼어버린 씨앗처럼 박혀 있던 사건은 기완의 출소 이후 서서히 녹아 구겨진 이파리를 틔운다. 무언의 약속 뒤에 은폐되었던 사건의 진상이 자칫 세상에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절친했던 친구들에 대한 믿음은 불안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던 기완은 의문의 죽음을 맞고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였던 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비밀의 폭로를 막기 위해 서로 파괴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나’인 해영은 기완이 죽은 이후에도 주홍을 위협하는 그림자를 감지하고, 자신의 보호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홍을 지키기 위해 비밀이 새어나오는 틈을 찾기 시작한다. 사건들의 배후를 뒤쫓을수록 이야기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이 소설은 ‘치명적 관계’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질적 욕망보다도 강렬한 집착으로 관계가 얼룩져 있다. 작가는 집착에서 발화점이 당겨진 사랑이 자신과 주변 인물들에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으며, 상처 입은 인간의 내면은 세월의 더께에 의해 가려질 뿐 절대 낫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앤’은 바닷가 마을의 아름다운 소녀로 남자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이들은 앤에게 투영한 욕망이 실패하자, 결국 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야 만다. 허상에 가까운 이미지에 대한 매혹과 집착은 계속 이어지고, 나중에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멸의 길을 걷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준, 삶의 어떤 한 지점을 폭로하는 문제의식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 심리에 대한 치밀하고 풍부한 은유가 깃든 표현들에서 이번 작품에서 또 다른 문학적인 출구를 열고 싶어 하는 작가의 강렬한 의도가 엿보인다. 사람의 욕망에는 바닥이 없다. 그것은 대부분 무섭도록 적막한 심연으로 이어져 있다. 어느 생명체 하나 숨 쉬고 있지 않은 검은 빛의 공간. 무엇 때문에, 라고 묻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욕망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욕망이다. 두 개의 거울이 마주 보고 있을 때 그 속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같은 것. 어느 개 한 마리가 그 안으로 뛰어들어 더러운 침을 흘리고 있는 냄새가 났다. - 본문 133?134쪽 소설가 박범신은 “《앤》은 투신하고 싶은 지점을 찾아 헤매는 아픈 과정에서, 그가 찾아낸 일차적인, 불온한 단서로 읽힌다”고 평하는 동시에, 작가 전아리의 문학적 모험에 대한 강렬한 추구가 이번 작품에 녹아 있음을 지적하며 그의 “비밀스러운 앞날”에 주목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불온한 매혹과 서늘한 뒷맛을 안기는 이야기가 교차하여 빛을 발할 때다. 비밀의 화원에서 시작한 은밀하고 위험한 사랑은 이국(異國)의 화려한 꽃처럼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가지치기한 문장들은 매끄럽게 내달리고, 가시처럼 박힌 은유의 언어들은 가슴에 파고든다. 작가가 능수능란한 필치로 그려내는 감정선, 즉 친구였던 이들의 배신과 파멸의 서사에서는 짓밟힌 꽃잎의 독한 향기가 뿜어져 나와 읽는 이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나는 여러 차례 같은 꿈을 꿨다. 눈부시도록 울창한 화원. 머리 위 나뭇가지 한 개가 툭 꺾이고, 그 끝에 매달려 있던 농익은 열매가 돌계단 위로 낙하했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는 신경질적으로 터졌다. 뭉개진 열매에서 눈, 코, 입이 흘러나왔다. 나는 새하얀 운동화에 묻은 검붉은 열매즙을 씻어내려고 찬물에 운동화를 벅벅 문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나는 잠들지 않았을 때에도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본문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