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힌두교의 사원 건축과 예술을 압축적으로 정리
인도의 힌두교는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종교적.사회적.정치적인 면에서 2천년 이상 지배해왔다. 힌두 문화권의 아시아는 인도아대륙과 히말라야 계곡 주변 일대, 동남아시아 본토의 주요 지역, 그리고 인도네시아 군도를 포함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도와 네팔, 그리고 발리만이 힌두 문화권에 해당한다.
힌두 문화권의 아시아 전역에는 힌두교의 특징을 가장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힌두교도들에게 사회적.정신적 삶의 구심점을 제공하는 힌두 사원이 여러 다른 시기에 걸쳐 세워졌고, 여전히 힌두 국가들은 사원을 계속 건립하고 있다. 또한 힌두 사원은 건축과 조각과 회화 등 예술을 진흥시켰다는 점에서 인도 문명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힌두 사원은 힌두 문화권의 아시아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이다. 하지만 인도를 즐겨 여행하고 같은 아시아권에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미미한 편이다.
이 책 <<힌두 사원>>은 그런 우리를 힌두교의 사상과 철학을 예술적으로 담아낸 사원의 세계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이 책은 유럽을 비롯한 외국 대학의 동양건축사 입문 과정에서도 스텔라 크람리쉬가 쓴 동명의 책과 더불어 가장 널리 채택되는 개론서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전반부는 힌두교가 보여주는 지속적인 특성들에 대해 기술했고, 후반부는 변화의 요소들, 특히 힌두교의 사원 건축과 예술이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서 다뤘다. 1부 ‘사원의 의미’에서는 특정 장소나 시대를 배제한 2천년에 걸친 힌두 세계 대부분에 적용되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특히 힌두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종교와 신화, 철학 등으로 대표되는 힌두 문화의 특징들을 서술했다. 2부 ‘사원의 형태’에서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구분된 사원들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사원 건축의 기술과 양식상의 특징들과 힌두 사원의 발전 과정을 세세하게 다뤘다. 그리고 특히 이 책에는 인도건축사를 다룬 다른 책에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 사원 건축을 이루어냈던 기술자들의 조직 체계나 사원 경제 같은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해서도 설명해놓고 있다.
2천년 동안의 힌두 건축사를 매우 압축적이며 균형 있게 요약해놓은 이 책은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적 탐험을 즐기는 일반인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정보를 제공해준다. 대중을 고려한 서술 형태도 일반 독자나 여행자들에게 힌두교의 건축 예술에 대한 기본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나 힌두 사원 유적지를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어디를 찾아가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이끌어주는 안내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풍부한 창의성을 보여주는 힌두 사원의 양식적 발전상
힌두 사원은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로서 성스러운 힌두 신들이 미혹한 현실세계가 지닌 무상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인간을 만나러 내려오는 신들의 집이다. 그래서 힌두 사원 예술 전체는 신들이 사는 천상의 세계를 재구현해낸다. 힌두 사원의 평면은 정교한 상징으로 짜여져 있고, 각 부분마다 신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신의 주처인 산을 상징하여 건물은 높이 솟아올라 있고, 신과 정령들을 새긴 정교한 조각이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건물 내부의 성소에는 어둠 속에 시바의 링가 혹은 비슈누의 상이 신의 현현을 암시하며 참배자를 맞아들인다.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양식상의 변화를 일으키며 발전해온 힌두 사원은 종교 건축의 구성이나 장식적인 면에서 풍부한 창의성을 보여준다.
특히 기원후 6세기부터 인도 문명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잡은 힌두교도들이 인도 전역에 대규모 석조 사원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수백년 동안 힌두 사원 건축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태양신의 수레를 본뜬 꼬나락의 거대한 수리야 사원, 에로틱한 조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의 정교한 락슈만 사원, 남인도 일대의 교역을 장악한 쫄라 제국이 딴조르에 세운 웅장한 브리하데슈바라 사원 등은 인도의 힌두교 문명을 대표하는 찬란한 유산이다. 그리고 건축적 얼개 속에 신화의 세계를 형상화하여 창조적인 구상력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앙코르의 거대한 사원군도 힌두 사원 건축사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유산이다.
흔히 힌두 사원의 양식적 발전은 시대 구분의 느낌을 주는 고전적?중세적이라는 단어를 빌려서 설명한다. 초기 힌두 사원은 기본적인 건축 공법이나 장식 모티프를 다루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한 변형 양식을 보여준다. ‘고전기’라고 부르는 7~8세기에는 형태적인 단순함 속에 주목할 만한 기교가 결합되는 특징을 보이고, 건축적 요소와 장식을 복잡하게 덧붙이면서 건물 규모를 대형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중세기’라고 부르는 12~13세기에는 대규모 건축 사업 속에서 종파들이 의례를 강화하면서 예술적 기교도 규격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 이유는 사원 건립자들의 세속적인 야심 때문이었다. 또한 왕조의 통치자에 의해 집단 전체를 사원 건립에 집중하도록 단결시켰던 종교 부흥 운동도 사원 건축의 지역 양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편 인도에서 가장 야심 참게 사원 건축을 추진했던 시기는 북인도에서는 11세기와 12세기이고, 남인도에서는 15세기와 16세기 무렵이다. 이 이후에는 옛것을 따르고자 하는 인도 문화 예술의 보수적인 특성에 따라 정형화된 건축 형태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이 책은 힌두 사원들에 대한 역사적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힌두 사원 건축가들이 힌두 사원의 평면과 외관 및 내부 공간을 어떤 건축적 형태와 건축적 요소와 장식으로 구현해냈는지 시대와 지역을 가로지르며 자상하게 설명해놓고 있다. 그래서 힌두 예술의 결정체인 힌두 사원의 발전 과정을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다.
힌두교에서 성상들은 결코 인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세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진리란 현상적인 세계의 저편에 가로누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성상들이 항상 인간적 감각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힌두 예술은 방대한 힌두 신화와 전설 속에 생생하게 묘사된 다양한 신들의 모습들을 원천으로 삼는다.
쉬바와 비슈누와 여신은 광범위한 신적 권능과 풍부한 양면적 인격성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빚어진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힌두인들은 중심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쉬바와 비슈누와 여신 가운데 한 신을 선택한다.
힌두교의 인체 예술은 근육 조직과 같은 구체적인 인체 구조를 표현하는 데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호흡은 생명의 본질과 동일시되며, 호흡 조절은 종교적인 수행의 목적이다. 힌두 예술에 나타난 대부분의 신들의 모습은 마치 신체 내에 어떤 기운이 가득 찬 것처럼 팽팽한 몸으로 표현되고 있다.
힌두 예술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여러 신의 신체가 하나로 조합되어 통합적인 신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신상에 대한 숭배는 여러 신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힌두 예술은 신들을 가족 집단의 형태로 표현하기를 좋아해서 신들의 배우자, 자식들, 수행원들, 동물이나 새가 끄는 탈것 등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과 조각과 회화를 진흥시켰다는 점에서 사원은 인도 문명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녔다.
P. 109 힌두 예술 전체는 신들이 사는 천상의 세계를 다시 구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힌두 사원은 무상함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즉 미망의 현실 세계로부터 눈을 돌려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예배 의례를 위해서 사원과 사원 예술이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단지 순간에서 영원으로 향하는 긴 여저의 찰나적 단계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신화는 우주의 숨겨진 역학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상대적인 시간들이 반복과 우주적 시대를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