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류학분야 최고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말리노브스키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한글 완역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인류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했을 때,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번역본 출간은 어찌 보면 한국인류학계가 풀어야할 숙제와도 같았다. 그동안 이 책의 번역에 쉽게 착수하지 못한 이유는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난삽한 전문용어와 원주민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등이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인류학계도 인류학분야에서 손꼽히는 고전들을 번역하여 인류학 전공자 뿐 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연구자나 일반 독자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자료를 가지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어느 학문이던지 기초가 튼튼해야하고, 그 기초는 고전을 읽는데서 출발한다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많은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현대의 자본주의적 삶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I. 출간의 의의
20세기 인류학분야 최고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말리노브스키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한글 완역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인류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했을 때,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번역본 출간은 어찌 보면 한국인류학계가 풀어야할 숙제와도 같았다. 그동안 이 책의 번역에 쉽게 착수하지 못한 이유는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난삽한 전문용어와 원주민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등이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인류학계도 인류학분야에서 손꼽히는 고전들을 번역하여 인류학 전공자 뿐 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연구자나 일반 독자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자료를 가지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어느 학문이던지 기초가 튼튼해야하고, 그 기초는 고전을 읽는데서 출발한다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II. 저서의 개요
1922년에 처음 영국학계에 소개되었던 이 저술은 인류학의 방법론과 이론 양 측면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역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번역본이 여러 나라에서 다투어 출간되었다. 무엇보다도『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지금은 인류학조사연구의 전범이 된, 참여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을 통한 장기간의 현지조사에 기초하여 쓰인 최초의 인류학 민족지 (ethnography)로서 민족학적 현지조사(ethnological fieldwork)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 저술에서 언급된 폭넓은 자료의 분석틀은 기능주의적 문화이론의 모태가 되었으며, 종교, 신화, 사회조직, 교역체계, 언어, 기술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론적 논의들을 불러 일으켜, 인류학 뿐 아니라 사회학, 종교학, 언어학, 심리학, 법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말리노브스키는 파푸아뉴기니의 동쪽 끝에서 북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트로브리안드섬에서 실시한 2년여에 걸친 집중적 현지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1922년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을 펴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Edmund R. Leach)에 의해 “(영국의) 사회인류학은 1914년 트로브리안드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트로브리안드섬에서 말리노브스키가 수집한 자료는 오늘날까지 인류학 문헌 중 가장 풍부하고 자세한 민족지학적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트로브리안드원주민들은 말리노브스키로 인하여 인류학에서 끊임없는 논의와 분석, 논쟁의 중심에 서왔다. 즉 인류학에서의 거의 모든 중요한 이론적 주제들, 예컨대 가족의 본질, 성적 개방과 사춘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뿌리, 친족호칭의 의미, 주술의 논리, 법과 질서의 근원, 신화의 해석, 의례의 기능, 경제적 활동의 사회적 의미 등과 관련된 쟁점들이 말리노브스키의 민족지학적 자료와 결부되어 논의되어져왔던 것이다. 특히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는 쿨라(Kula)로 알려진 의례적 교환체계, 그리고 그에 관련된 주술체계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쿨라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단순히 개개인의 물질적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트로브리안드에서 말리노브스키가 관찰한 인간의 경제행위는 물질적인 교환과 소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해주는 하나의 매개수단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말리노브스키는 당대의 학자들이 미개인을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경제법칙에 따라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실행하려하는 합리주의적인 존재로 개념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인류학설사적으로 보면 쿨라 고리(Kula ring)의 원거리 교환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맥락에 관한 자료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증여론'에 영향을 주었고, 그 훨씬 뒤 경제인류학에서 형식론자와 실재론자 사이에 진행된 긴 논쟁의 한 축을 형성했다. 그리고 주술과 과학의 성격에 대한 말리노브스키의 통찰력은 인지인류학의 발달에 자극제가 되었다. 그 외에 생태인류학의 형성에도 말리노프스키의 트로브리안드에서의 연구가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말리노브스키는 민족지학의 목표(goal of ethnography)를 원주민이 갖는 사고방식 및 그것의 생활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들 세계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으로 삼았다. 따라서 다른 사회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의 삶의 방식에 몰입해야만 하며, 적합하고 가능한 것에는 무엇이든지 참여하고 또한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과 행동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이 최초로 완벽하게 반영된 저술이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말리노브스키의 이러한 현지조사 기록은 그 치밀함과 풍부함에 있어서 전무후무하다 할 정도로 탁월하다는 점이다. 실로 ‘참여관찰’이 인류학 연구의 중심적 방법이 된 것은 말리노프스키의 덕택이 아닐 수 없다.
III. 쟁점, 해석, 토론의 주제들
말리노브스키가 트로브리안드섬에서 발견한 원주민의 사회는 사회조직, 경제활동, 신앙생활 등 모든 면에서 서구사회와 크게 달랐다. 즉 트로브리안드사회는 모계사회이고, 경제활동의 중심에는 쿨라(Kula)라고 불리는 의례적 교환체계가 있었으며, 주술과 신화체계가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는 다양한 이론적 논의들이 등장하지만, 말리노브스키는 특히 트로브리안드 원주민들의 노동과 분배, 그리고 쿨라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원시경제와 현대경제의 비교를 시도했다.
1. 노동과 분배
트로브리안드섬의 원주민은 매우 복잡한 사회적·전통적 성격의 동기에 이끌려 일(work)을 한다. 그는 현재의 욕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또는 눈앞의 이익추구에만 급급하거나, 실용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작업은 최소노력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불필요한 노력에 허비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일과 노력은 단순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트로브리안드에서 좋은 농경민은 그가 할 수 있는 노동량과 그가 경작하는 밭의 크기로부터 특권을 획득한다. 훌륭하고 유능한 경작자를 의미하는 토콰이바구라(tokwaybagula)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며, 그 칭호에는 긍지가 포함되어 있다. 토콰이바구라로서 명성을 얻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만큼 장시간 일하며, 얼마나 많은 땅을 경작하는가를 자랑하며, 그들의 노력을 유능하지 못한(비능률적인) 사람들의 그것과 늘 비교한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그의 노동을 통해 얻은 수확물의 거의 전부, 혹은 더욱 노력한 대가로 획득한 잉여분을 노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