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 동성결혼 합법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과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결혼 혼인신고 소송에 맞붙어 더욱 노골화된 동성애 혐오 시위! 대한민국은 여전히 혐오와 싸우고 있다.”
이 책은…
우리는 성적 지향이라는 분야에서 서로 대단히 다른 두 종류의 정치가
교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 김조광수 감독 추천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이유에서든 소수자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세 차례에 걸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보수주의 기독교계의 격렬한 반대 운동에 따라 현재 여전히 국회 법사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보수주의 기독교계에서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안에 ‘성적 지향’이란 대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 목회자가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동성애자들의 교회 사용을 거부했을 경우 법적 제재를 당할 수 있다.
법이 도덕적 논쟁에서 발을 빼는 것은 과연 옳은 방식인가? 이에 대해 저자 마사 C. 누스바움은 법률 및 사회가 동성애를 대할 때에 갖는 ‘혐오’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혐오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이 책은 헌법과 법률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대할 때 갖는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훌륭한 사회과학적 분석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성혼에 관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그의 파트너 김승환은 2014년 5월 21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청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전에도 동성 간에 혼인 신고를 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여론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고, 당연히 동성혼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정면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도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2015년 6월 26일 동성결혼 합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이 있기까지의 역사와 평등권에 관하여 새로이 개척해나가고 있는 법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탁월한 책이다.
세계적인 석학 마사 C. 누스바움의 ‘성적 지향과 헌법’에 대한 명쾌한 해석
시카고 대학교의 걸출한 법학.철학.신학 교수인 마사 C. 누스바움은 이 책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동성애자들의 평등권에 반대하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원천, 즉 혐오의 정치에 포화를 쏟아붓는다.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2004)이라는 책에서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서 혐오가 어떤 식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성적 지향과 헌법’을 다룬 이 책에서는 앞서 소개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최근의 차별 사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소도미 법을 무효화시킨 ‘로렌스 대 텍사스 판결’ 및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차별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무효화시킨 ‘로머 대 에반스 판결’ 모두에서 활용되었던 “적의”라는 법적 개념을 ‘혐오’라고 간주한 자신의 이론을 판결 및 판결에 이르는 추론과정을 통해 심층적으로 입증했다.
예술을 통해, 종교의 내적 개혁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이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들의 존엄성을 표명하는 커밍아웃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커다란 움직임을 조명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법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은 법이 만인의 평등과 정의를 구현하리라고 기대한다. 이 높은 기준을 법이 항상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적 지향이라는 분야에서 몇몇 국가가 법적 정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혐오의 정치에서 인류애의 정치로”
너무 오랫동안 혐오는 때로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레즈비언과 게이들의 인권에 대한 헌법적 사유를 형성해왔다.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이라는 획기적인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시각이 인류애를 중심에 둔 시각으로 바뀌어갔음을 시사하며, 누스바움의 강력한 주장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명분을 더욱 진전시킬 것이다.
누스바움은 혐오의 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혐오의 정치는 법 앞에서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혐오의 정치 대신 누스바움은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인류애의 정치”가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지지한다.
‘인류애의 정치’는 나와 다른 신념을 갖는 사람도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혐오’라는 감정을 갖는 순간 성소수자는 나와 동등한 인간이 아닌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다. 저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이와 같은 ‘혐오’에서 ‘인류애’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와 관련된 법의 지형은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다수의 ‘부정적 태도’, ‘두려움’, ‘도덕적 기준’, ‘적의’ 등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선언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동성애 성행위에 대해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는 듯하게 설시하였다. 여전히 국가가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고민이나, ‘혐오’라는 주관적인 감정이 타인의 평등한 자유를 제한하는 정당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빈약한 고민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동성 간 성행위를 동등한 존엄을 갖는 인간의 행복추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인식에 이르지 못한 채, 이를 ‘혐오스러운’ 또는 ‘변태적인’ 행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한 법률이 합헌이라고 한, 무려 30년 전의 ‘바워스 대 하드윅’ 판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처럼 성소수자의 성행위를 동등한 인간으로서 마찬가지의 행복을 추구하는 내밀한 영역에서의 결정이라고 전제한다면, 대한민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위와 같은 빈약한 법적 추론은 그 정당성을 잃고 만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접근방법을 통해 성소수자의 성행위는 기본권의 성질을 획득하게 되고, 이로써 이에 대한 제약은 “기본권 제한의 합헌성의 범위와 한계”라는 대단히 풍부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고 당당하게 기술하고,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로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제 시대의 변화에 답해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오버게펠 대 호지스’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권리인 만큼 미국의 모든 주에서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혐오에서 인류애로』의 원서가 2010년 출간되었기 때문에 저자 마사 C. 누스바움은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여 새로이 한국어판 서문을 써주었으며, 특히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에서 제공한 연구논문과 최근의 보도자료를 참조하여 집필하는 수고를 감내해주었다. 또한 법원 국제인권법학회에서 번역 원고의 감수를 맡아주었으며, 미국연방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을 접하고 이를 소개하고자 모인 법조계 및 법학전문대학원에 있는 게이들의 단체인 게이법조회에서 해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