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당신을 닮은 시를 읽을 시간입니다 “당신”을 발음하면 입에서 번진 파문이 몸으로 옮겨온다. 저 동그랗거나(‘ㅇ’) 그릇 같은(‘ㄴ’) 소리가 당신을 받아 안아서 내게로 건네주기 때문. 사람은 당신의 윤곽이고 사랑은 당신의 형식이며 삶은 당신에게 난 길이니 시는 마침내 당신이 된다. 당신에게 나지 않은 길이 어디에 있던가, 그 길을 우리는 행(行)이라 부르며 당신을 향하지 않은 도약이 어디 있던가, 그 도약을 우리는 연(聯)이라 부른다. 여기 66개의 징검돌을 건너 당신에게로 간다. 시는 멀고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닮은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랑’과 ‘삶’으로부터 언어의 몸을 입고 한 편 한 편의 ‘시’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권혁웅 시인이 이렇게 태어난 아름다운 시들 가운데서도 특히 빛나는 66편의 시들을 골라 엮고, 또 한 편의 시와 같은 해설을 붙인 『당신을 읽는 시간』이 출간되었다. 한국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고른 66편의 시들은, 대부분 2000년 이후에 발표된 시들로 우리 시가 현재 도달해 있는 언어감각과 시적 감수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허만하, 황동규, 마종기 시인부터 유희경, 서효인, 오은 등 1980년대생 시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시 세계를 소개한다. 시 한 편과 그에 붙인 재치 있는 해설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시’임을, 그렇기에 시를 읽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 사랑, 삶, 그리고 시… 오래전부터 ‘사람’과 ‘사랑’과 ‘삶’이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자음 하나 잘못 쓰면 ‘사람’이 ‘사랑’이 되고, 모음 하나 빠뜨리면 ‘사람’이 삶이 되니까요. 사람은 늘 뭔가를 잘못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게 살아가는 혹은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영어로 ‘그리워하다’(miss)는 ‘실수하다’라는 뜻이기도 하죠. ? 길에 들어야 우리는 사랑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한 길이 다른 길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삶이고 사랑이죠. 이 책의 소제목을 ‘사람’, ‘사랑’, ‘삶’으로 정한 이유입니다. ―책을 펴내며 <1부 사람―아직도 네게로 뻗고 싶은>에는 신해욱 시인의 「축, 생일」을 비롯한 22편이 실려 있다. ‘사람’의 모습, ‘사람’의 마음, ‘사람’의 풍경…… 온통 ‘사람’으로 그득한 시들이다. <2부 사랑―어느 날 너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에서는 이홍섭 시인의 「서귀포」로 문을 열어 18편의 시를 소개한다. 뜨겁고, 아프고, 때때로 잔인한, ‘사랑’들이 배어 있는 시들을 만나게 된다. <3부 삶―우리의 남은 생애가 생애 너머로 흔들린다>에서는 문인수 시인의 「이것이 날개다」를 비롯한 19편의 시로 ‘삶’을 비추어본다. 일분일초, 한해두해를 숨 쉬는 나와 당신의 ‘삶’들이 어떻게 시로 태어나 현현하는지를, 어떻게 삶이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어 순환하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4부 그리고 시―우리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에서는 이성복 시인의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를 포함한 7편의 시를 통해, ‘시’의 비밀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