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7년 차 젊은 기자의 눈으로
색다르게 조명하는 그때 그 사람들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 본관에서 더운 여름을 보낼 때의 대학 캠퍼스, 국회가 탄핵안을 표결에 부칠 때의 국회 앞 대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의 광화문광장,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 선고를 할 때의 안국역사거리,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사법당국과 국민들의 눈을 피해 덴마크 올보르에 숨어 있을 때의 은신처 앞, 세월호가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왔을 때의 목포신항. 지난여름부터 올여름까지 저는 이 현장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말하는 곳을 저는 일 때문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현장에서의 모든 것이 기자 생활뿐만 아니라 제 삶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그날, 그곳, 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_<들어가며> 중에서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 대한민국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정유라-최순실-박근혜-삼성으로 이어지는 소위 ‘슈퍼 갑’들의 결탁과 촛불의 힘으로 이뤄낸 탄핵, 그리고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까지. 쉴 새 없이 뉴스를 봐야 할 이유가 가득했던 그때, 현장에서 늘 발 빠른 보도를 했던 이가 있다. JTBC 이가혁 기자다. 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 도피 중이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독일에서 덴마크까지 추적해 신고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가 신간 《그날 그곳 사람들》을 자음과모음에서 출간했다. 법조팀, 경찰팀 등 사회부에서 주로 일해온 저자는 2016년 겨울, 정유라를 찾아 23일 동안 독일과 덴마크에서 체류하고, 귀국 후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으로 출근했던 이야기, 2017년 봄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후 목포신항에서 83일 동안 머물며 취재했던 내용 등을 들려준다. 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부분은 역시나 정유라 추적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정유라를 찾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을 겪었고, 어떤 판단으로 덴마크 올보르의 확실한 은신처로 추정된 곳 앞에서 덴마크 경찰에게 신고해야 했는지를 마치 소설 같은 전개로 보여준다.
책은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사건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 이가혁은 1986년생으로 이제 7년 차에 접어든 기자다.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체험과 기억 중에서 어쩌면 가장 강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그는 동시대 수많은 젊은이와 함께 겪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책 곳곳에 보인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는 한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각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정확한 상황 판단 지침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아니라 벗
온기 있는 저널리즘을 만나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이가혁 기자의 별명은 “가혁벗”이다. 2016년 여름, 이대 평생교육 단과대학(일명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시위를 취재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JTBC 보도담당 사장 손석희는 추천사를 통해 “부럽다. 절박한 누군가의 벗이 된다는 것… 거기에 우리가 때로는 답을 못 구해 허우적대는 ‘저널리즘’의 본질이 있지 않을까”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날 그곳 사람들》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지점은 바로 이런 ‘공감의 저널리즘’이다. 여전히 일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은 가운데, 그는 공정하게 쌍방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덕분에 숱한 현장에서‘선의의 제보자’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역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소재가 된다. 저자 이가혁 기자는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진실에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유라를 찾아 독일 교민들을 취재하던 중 받은 제보로 그의 거처를 유추해 국경을 넘어 덴마크로 향한 것, 이대 체육과학부 소속의 정유라가 수업에 참여하지도 않고 학점을 이수한 정황을 고발해준 재학생과 학과 사무실 직원, 세월호 참사 천 일 만에 복원된 피해 학생의 스마트폰 속 마지막 수학여행 사진을 기꺼이 제공하고 보도까지 허락해주었던 유가족 아버지 등이 그러하다. 바로잡히길 바라고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제보해준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세상의 반이 엉망일지라도 세상의 반은 바르게 돌아가는 이치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저자 역시 서문을 통해 제보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밝히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화여대에도 광화문광장에도 목포신항에도 모습만 다를 뿐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늘 나타났습니다. 저는 점처럼 흩어진 그 선한 마음을 선으로 이어보는 사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뉴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1장 <정유라를 찾아서>에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덴마크 올보르까지의 여정을 통한 정유라 추격기를 담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독일에 도착해 관광객들 틈에 섞여 교민들과 한식당 취재를 하던 그는 우연한 제보로 인해 덴마크로 가 정유라의 거처를 확인하고 그곳에서 소위 뻗치기를 하게 된다. 기다림은 무려 이틀 동안 계속되고 저자는 길가에 세워둔 차 안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안에서 버티는 자와 밖에서 기다리는 자의 소리 없는 대치가 이어지던 중 철수를 했다가는 도주 우려가 염려된 저자는 2017년 1월 1월 덴마크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게 된다. 이후 덴마크 경찰이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온 정유라와의 만남, 법정에서의 인터뷰, 비몽사몽 중 속보로 전했던 뉴스와 덴마크와 인근 국가의 교민들이 올보르에서 연 촛불집회까지, 23일 동안의 정유라 추격기를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2장 <기자에서 벗이 되기까지>는 이대 평생교육 단과대학 반대 농성을 취재하며 ‘가혁벗’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과정을 떠올린다. 풍자로 가득 찬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센스와 용기, 승리를 현장감 있게 정리하는 한편 정유라의 특혜에 대해서도 정보를 준 재학생과 학내 관계자와의 이야기를 그렸다.
3장 <소중한 것들 잊지 않도록>에서는 세월호가 끌어올려진 진도 팽목항과 목포신항에 83일 동안 머물렀던 저자가 ‘한국형 참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3년 넘게 무관심 속에서 버텨온 미수습자 가족의 애환,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린 배의 이모저모와 가슴 따듯한 자원봉사자 명봉 씨 이야기, 의경과 취재진을 가족처럼 살뜰하게 챙겨주던 유가족, 아이들의 시신과 유류품이 건져올려지던 날들의 풍경,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드는 세태에 대한 서운함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날을 말한다.
4장 에서는 독일·덴마크 출장 기간을 제외하고 저자가 매주 광화문광장으로 출근해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최종 결정할 때까지 거리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광장에 모인 이 시대의 진짜 주인공들을 모임참가형, 1인미디어형, 은폐엄폐형, 온가족형으로 분류해 특징을 살펴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