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 망가, 아니메를 낳은 일본 문화의 원형
일본 근대소설의 선구자 아쿠카다와 류노스케(介川龍之介)는 소설 『갓파』를 썼고,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은 ‘너구리와 원령’의 전설을 영화로 만들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 최고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들을 불멸의 예술가로 탄생시킨 원동력은 바로 일본적 상상력의 원천인 ‘민간 전설’이었다.
이 책은 일본 전국의 47개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민간 전설을 화려한 풍속화 우키요에와 좀처럼 보기 힘든 각종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막힘없이 이야기해 주는 모로 미야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마치 우리 귓가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일본을 대표하는 47개의 민간 전설은 여러분을 또 다른 일본 속으로 안내할 것이다.
일본의 민간 전설은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배출한 일본적 상상력의 화수분이다!
대만과 중국, 중화권에서 일본 문화 이야기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로 미야(茂呂美耶). 그녀의 신작 『전설 일본』을 읽으면 “일본 문화, 특히 일본 서민 문화의 근원과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15p)
이 책에서 모로 미야는 “일본의 1도(一道 : 홋카이도北海道), 1도(一都 : 도쿄도東京都), 2부(二府 : 도쿄부東京府·오사카부大阪府)와 43현(縣)을 합친 47개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각 지방의 전설을 균등하게 배분(15p)”해서 담았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도쿄, 교토, 오사카와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일본 속으로 들어가 각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전설과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의 전설을 총망라한 ‘일본 전설 대백과’ 격인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 갓파, 덴구, 요쓰야 괴담, 접시를 세는 여자귀신 오기쿠, 나베시마 고양이, 백귀야행, 센다이 시로, 가부키의 창시자 이즈모 오쿠니 등 일본의 전설은 노가쿠, 가부키, 우키요에, 괴담, 망가(만화),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되어 온 일본 문화의 원류와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일본판 전설 따라 삼천리’인 셈이다.
‘쓰루노온가에시(鶴の恩返し: 은혜를 갚은 두루미)’, ‘모모타로(桃太?)’, ‘유키오나(雪女)’, ‘잇슨보시(一寸法師)’와 같은 옛날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이미 익숙할 뿐만 아니라 소개하는 책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전래동화일 뿐이므로, 이 책 『전설 일본』은 우리나라에 일본의 민간 전설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최초의 인문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의 전설을 맨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인문 교양서
인물, 지명, 연대, 이야기 등을 고증할 수 있는 전설은 논픽션!
일본에서는 20세기 초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 1857년~1962년 : 일본의 저명한 민속학자)를 중심으로 ‘일본 민속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민속학과 향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구전문예는 다시 무카시바나시(昔話 : 옛날이야기), 전설, 속담(諺), 동요, 민요 등으로 분류되었다. ‘무카시바나시’는 민간 고사(故事)로서 ‘옛날 옛적에’로 서두를 시작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가능한 한 실제 인명이나 지명 혹은 시대와 같은 고유명사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꾼이나 편찬자는 이야기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 추궁을 회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전설(일본어로는 덴세쓰傳說てんせつ)은 내용에 있어서는 무카시바나시와 유사하지만, 고유명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서 전설은 보통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거나 그 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지명과 연대 또한 명확하게 밝힌다. 게다가 문장의 고정된 형식도 없기 때문에 일본의 작가들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으로 개작할 때 일반적으로 무카시바나시보다 전설을 선택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현대문학의 분류법으로 구분하자면 전설은 ‘전기(傳記 : Non-fiction)’이고, 무카시바나시는 ‘창작(創作 : Fiction)’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른바 동화는 아동문학으로서 무카시바나시, 전설, 속담 등을 모두 포함한다.”(13p) -「글머리에」중에서
“일본의 대문호 모리 오가이(森鷗外)는 1915년에 니가타현(新潟縣)의 ‘안주(安壽)와 즈시오(廚子王) 전설’을 개작해 소설 『산소다이유(山椒大夫)』를 썼고,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감독은 이것을 영화로 찍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92p)
일본 근대소설의 선구자 아쿠다카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소설 「갓파」를 썼고, “하라 게이이치(본명 : 原惠一)는 2007년에 아동문학가 고구레 마사오의 『갓파 대소동』을 원작으로 한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河童のクゥと夏休み)」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 상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282p)
갓파는 원래 에이메현(愛媛縣)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 “3백만 부 이상 팔린 초특급 밀리언셀러 소설 『소년 H』로 유명한 무대 미술가인 세노 갓파(妹尾河童)의 본명은 ‘하지메(肇)’이고, 전설에서 따온 ‘갓파’를 필명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훗날 필명이 본명보다 더 많이 알려지자 아예 1970년에 개명하여 호적상의 이름을 ‘갓파’로 바꿨다. 이때부터 ‘세노 갓파’는 필명이 아닌 본명이 되었다.”(288p)
모리 오가이, 미조구치 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세노 갓파, 미야자키 하야오… 그들을 불멸의 예술가로 탄생시킨 일본적 상상력의 근원이자 영감인 ‘전설 일본’
도쿠시마현(德島縣)에 전해져 오는 너구리들의 전쟁을 “일본의 현대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는 장편소설 『하라쓰즈미키(腹鼓記)』로 썼고, 쇼와 14년(1939년)에는 가마치 마사노리(浦池正紀) 감독이 영화 『아와타누키 갓센』을 촬영해 선풍을 일으키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던 영화사를 기사회생시켰다. 최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平成狸合戰ぱんぽこ)』를 만들었다.”(278p)
애니메이션 영화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너구리와 원령의 전설을 소재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세계 최고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에도 시대 풍속화인 우키요에의 대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와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는 전설을 소재로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이처럼 그들을 불멸의 예술가로 탄생시킨 원동력은 바로 일본적 상상력의 원점인 ‘민간 전설’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모시던 주인댁 아가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임신한 여인의 배를 덜컥 가르지만 나중에 그 여인이 자신의 친딸임을 알게 된 후 그 충격으로 인해 인육을 먹는 살인귀로 변해버리는 ?아다치가하라?의 귀신할멈, 인어고기를 먹은 탓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어딘지 모를 동굴 속에서 아직도 슬픈 불사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팔백 비구니, 백전불패의 에미시족 대추장 아테루이, 양물이 30센티미터인 복신 센다이 시로, 백제인이 목숨을 바쳐 완성한 원숭이다리, 여우가 낳은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 상어에게 살가죽이 벗겨진 토끼 이나바 시로우사기, 불가촉천민 이누가미, 일본의 오디세우스 유리와카 대신, 요상스런 칼 무라마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로 미야는 마치 눈이 오는 겨울날 화톳불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듯이 친근하고도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한 문체로 일본의 전설을 구수하게 들려준다. 일본 전국의 47개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민간 전설을 화려한 풍속화 우키요에와 좀처럼 보기 힘든 각종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막힘없이 이야기해 주는 모로 미야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마치 우리 귓가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