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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기의 기묘함 : 내가 형사이자 범인이다
지난 50년간 야생동물 개체군의 73%가 사라졌다고 한다.(한겨레, 2024.10.10.) 2024년의 폭염과 긴 여름은 한국 사회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이 행성과 인류를 덮쳤다. 다양한 분석과 대안이 제출되는 가운데 많은 과학자와 논평가가 화석연료 산업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런데 매일같이 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 우리가 있다. 티머시 모턴은 『어두운 생태학』의 여정을 이 일상의 사례에서 시작한다. 예년 같지 않은 폭염을 겪고 난 우리에게 시동 걸기 같은 행위는 예전 같지 않다. 시동을 걸 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26쪽) 모턴에 따르면 시동을 걸고 있는 ‘나’라는 개인이, 대량으로 분산된 어떤 사물의 구성원이고, 이 사물이 종이라고 불린다는 것, 그리고 인간종에게 기후재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이 기묘한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차에 시동을 걸 때, 혹은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교통수단에 오를 때, 나는 45억 년의 지구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없다. ‘지구’에 해를 끼치고 이미 73%가 사라져버린 야생동물 개체군을 더 살해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다. 게다가 내 차 한 대의 시동 걸기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하지 않은가? 온갖 생각을 더해 보지만, 한 수준 위로 올라가면 매우 낯선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하루에 이 행성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수십억 번의 시동 걸기와 수십억 번의 석탄 삽질을 합산하면 내가 시동을 걸 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지구’에 해악을 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종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인류세에 대해 책임이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지구 온난화를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형식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범죄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과학 수사를 통해 이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모턴은 이 사태가 누아르 소설과도 같다고 말한다. 내가 형사이자 범죄자이다! 나는 하나의 인격체이면서 이제는 행성 규모의 지구물리학적 힘이 된 한 존재자의 부분이다. 모턴은 “생태적 알아차림은 서술자가 자신이 비극적 범인임을 알아내게 되는 순간”(27쪽)이라고 말한다.
농업로지스틱스라는 1만 2천 년이 된 기계
내가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며” 기운을 내뿜는 이 숨은 기계의 이름은 무엇일까? 화석연료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8세기의 ‘산업혁명’일까? 15~18세기에 수십 만 명의 여성을 마녀로 몰아 학살하며 태동한 ‘자본주의’일까? 모턴에 따르면 “증기와 기름의 시대보다 더 거대하게 떠도는 이 구조”는 “농업 그 자체인 기계, 산업 시대의 기계보다 앞선 기계”(83쪽)이다. 그는 이것을 농업로지스틱스라고 부른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초승달 지대에서 발생하여 여전히 앞을 향해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업의 특정한 로지스틱스”이다. 물류나 병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로지스틱스’를 모턴이 사용하는 이유는 농업로지스틱스가 “만들어진 공간에 대한 기술적이고 계획적이며 완벽하게 논리적인 접근법”이기 때문이고, “물러서서 논리를 재고함이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농업로지스틱스는 “너무도 성공적이어서 이제는 행성 규모로 농업 기술을 지배하는 농업 프로그램”이며 “전 지구적 농업”이라는 초객체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83쪽) (모턴의 개념인 ‘초객체’는 시간과 공간에 걸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물을 뜻한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모턴은 ‘어두운 달콤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단계로서 농업로지스틱스의 논리와 귀결들을 세밀하게 탐구한다. 모턴에 따르면 농업로지스틱스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 사이에 경계를 그었고 현존을 순전한 양으로 환원했다. 브뤼노 라투르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문제로 삼고 있는 자연-문화 분열은 그보다 앞선 자연-농업 분열의 결과라고 모턴은 본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사회적이고 물리적이고 존재론적인 두려움, 불안, 모순을 제거할 것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유독한 방식이었다. 농업로지스틱스는 가부장제, 빈곤, 엄격한 사회적 계층구조, 전염병 같은 인간-비인간 상호작용의 피드백 고리로 빠르게 이어졌다.(87쪽)
우울증 내부에서 찾는 장난감과 놀이의 길
우울증은 『어두운 생태학』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모턴은 『어두운 생태학』의 한국어판을 위해 작성한 서문에서, 웰렉 강의를 준비하던 2013년에 자신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밝힌다. 나아가 모턴은 현재 우리가 객관화된 우울증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모턴은 “우울증의 가장 어려운 점은 시야를 매우 작은 관으로 좁혀서 선택지들을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272쪽)이라는 신경학자 애덤 캐플린의 글을 인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행성적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는 약 1만 2천 년간 지속되어온 농업로지스틱스를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농업로지스틱스는 바로 그러한 장기간의 시간을 사고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짧은 시간 터널을 확산시키는 기계라고 말한다. 즉 지금의 세계는 사람들의 시간 창을 아주 짧은 기간으로 좁히려고 한다. 모턴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경험한 우울증의 가장 끔찍한 점 중 하나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시간 창은 직전 5분과 직후 5분으로까지 축소될 수 있다. 이렇게 한 존재가 사고할 수 있는 시간 폭이 축소되면 그 존재는 생존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농업로지스틱스는 인간들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생존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위험한 지름으로 그들의 시간성을 압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목에서 모턴은 매년 34,000명이 자살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통계를 인용한다.
무력감에 휩싸이기 좋은 상황인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턴은 “행복한 허무주의에서 어두운 허무주의로” 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우울증과 싸우기보다는 우울증 내부에서 달콤함을 찾자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위로의 ‘초월’ 대신에 아래로 내려가는 ‘저월’의 방법론이 제시된다. 이것은 모턴이 공저자 도미닉 보이어와 함께 『저주체』라는 책에서 탐구한 방법론이다. “터널을 뚫어 내려갈 길을 찾읍시다. 사물이 전적으로 스스로 반짝이는 방식을 볼 수 있는 길을 찾읍시다. 사물들이 의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하는 방식을 찾읍시다.”(209쪽)
우리에게는 웃음, 놀이, 심지어 어리석음을 포함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모턴은 말한다. 예를 들면 아이슬란드에서 <최고당>이 실험했듯이, 정치 체계들을 장난감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억압적인 정치 형태들과 경제 구조들, 심지어 신자유주의마저도 장난감으로 여길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책을 닫는 글인 「시작 전에 끝내기」에서 모턴은 자신의 장난감 사유를 플루토늄 보관이라는 난제에 적용해보는 듯하다. 자동차 시동 걸기가 인간종으로서의 나의 연루를 기묘하게 환기하듯이 “인간이 플루토늄을 만들었고, 인간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285쪽) 이 위험한 물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턴은 방사능이 새지 않게 만드는 물체에 작은 플루토늄 조각들을 넣어서 모든 마을 광장의 한복판에 놓고, 그것을 위한 순례를 개시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혹은 플루토늄 조각을 뉴욕시 현대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공포와 우울증은 슬픔과 즐거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플루토늄적으로 곤두섭니다. 혹은 우리는 플루토늄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혹은 우리는 플루토늄적으로 웁니다. 혹은 우리는 심지어 플루토늄적으로 춤춥니다. ... 거기에는 언제나 이미 비인간과의 어떤 관계가 있습니다.”(285쪽)
책의 구성 : 운명의 실타래
이 책은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끝난 이후에 시작하기」, 세 개의 본문 장, 「시작 전에 끝내기」,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턴은 세 개의 장을 세 개의 실(thread)로 구상했다. 책이 진행되면서 이 실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