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설계자들

김건우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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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나라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건국된' 나라로 좁히려는 세력의 시도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1919년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라는 게 다수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 3?1 정신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이야기에 정면으로 친일 문제가 걸려 있고, 또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았을 때 모두가 바라던 국가의 설계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그리고 이후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만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그들의 설계는 주로 어디에서 연유했으며, 또 얼마만큼 현실에서 실현되었을까. 이 책의 기본적인 질문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 현대사의 근대적 전환기를 이룩한 196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헌들과 연구들을 참조해 가면서, 이 시기에 정부 정책을 주도한 이들과 민주화 진영에서 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들이 바로 '친일을 하지 않은 우익', 즉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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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장 해방된 청년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는 누구인가│‘세대’의 문제│‘남쪽’을 선택한 사람들 1 학병세대가 서 있던 자리 새 국가 건설의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장준하와 김준엽, 일본군을 탈출하다│광복군의 적통, 우익 민족주의의 적자 2 장준하, 우익 반공주의에서 통일 지상주의로 임시정부 청사 난입 사건│우익 반공 국가주의의 선봉에 서다│반공에서 통일 지상주의로 이동하다 3 서북 지역주의와 도산 안창호 차별과 착취의 땅 서북에서 새로운 국가상이 싹트다│서북파와 기호파의 갈등│개인의 정신 개조를 통한 사회 변혁 4 월남 지식인들, 《사상계》를 만들다 장준하와 서영훈, 《사상》을 만들다│《사상》의 폐간과 백낙준의 후원│서영훈, 장준하를 떠나 적십자사로 5 《사상계》 그룹, 근대화의 모델을 제시하다 《사상계》 그룹, 서북 출신에 편중되다│《사상계》가 꿈꾼 근대화│미국의 지원과 유도 6 제2공화국과 국토건설본부의 구상 《사상계》, 현실로 뛰어들다│경제개발계획과 국토건설본부│5·16 이후의 경제개발계획은 독자적인 것인가 7 《사상계》 그룹의 와해와 대학의 변화 사상계 그룹, 미국과 군정의 중재를 시도하다│《사상계》 그룹의 와해│대학에 뿌리내린 국가의 감독과 통제 8 선우휘, 반공 국가주의와 지역주의 사이에서 작가이자 기자이자 군인│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은 지역주의자│“나는 형이고 너는 동생이다” 9 정권 참여 지식인들과 정치 참여의 논리 “무조건 반대냐, 건설적 협력이냐”│임방현의 근대화 인텔리겐차론│이데올로그가 된 지식인들 10 김교신과 무교회주의 기독교 일본 기독교의 지성, 우치무라 간조│《성서조선》과 무교회주의 신앙│노동자들의 아버지가 되다 11 류달영의 재건국민운동본부와 덴마크 모델 최용신 전기 집필과 우치무라 간조의 ‘덴마크 이야기’│‘동양의 덴마크’를 꿈꾸다│재건국민운동본부 해체, 그 이후 12 오산학교의 무교회주의자와 지역공동체 함석헌, 오산학교에 무교회주의 신앙의 씨를 뿌리다│오산의 학병세대, 역사학자 이기백│이찬갑, 주옥로의 ‘위대한 평민’│공동체의 기반, ‘조합주의’ 13 국가주의 철학에 맞선 류영모와 함석헌 류영모.함석헌의 독특한 계보│김범부와 박종홍의 국가주의 철학│노장 사상에 입각한 국민 윤리 비판 14 한신(韓神)을 만든 김재준과 제자들 함경도와 북간도에 뿌리 내린 진보적 기독교│김재준, 기독교적 건국이념을 제시하다│용정 은진중학교의 제자들, 강원용, 안병무, 문익환 15 통합의 중재자 강원용 세계교회협의회의 거물이 되다│크리스찬아카데미의 ‘중간 집단 교육’│해방기부터 비롯된 중도 지향의 삶 16 가톨릭의 학병세대, 김수환과 지학순 가톨릭의 혁명, 제2차 바티칸 공의회│추기경 김수환, 한국 가톨릭을 바꾸다│지학순, 원주를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만들다 17 마지막 지사형 언론인 천관우 자유 언론의 전통을 세우다│천재적 역사학자의 면모│쓸쓸한 말년의 삶 18 지식인들, 민족주의로 이동하다 국학계의 한국사 시대 구분 논의│‘한국적인 것’을 찾아서│민족주의, 아군과 적의 경계를 흩트리다 19 조지훈 대 김수영, 한국 인문 정신의 두 원형 조선 선비, 전통적 인문주의자 조지훈│보수주의자의 현실 정치 비판│급진적 자유주의자 김수영│한국 인문 정신의 두 원형 20 한국 우익의 기원 한국의 정통 우익, 김준엽│친일로부터 자유로운, 그러나 제국이 키운 세대│새 나라의 설계, 일본에서 미국으로│종교인들, 이념의 숨통을 틔우다 주석 인명 찾아보기 저자 후기

Description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지성의 대향연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건국된’ 나라로 좁히려는 세력의 시도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1919년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라는 게 다수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 3?1 정신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이야기에 정면으로 친일 문제가 걸려 있고, 또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았을 때 모두가 바라던 국가의 설계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그리고 이후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만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그들의 설계는 주로 어디에서 연유했으며, 또 얼마만큼 현실에서 실현되었을까. 이 책의 기본적인 질문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말하려면, 간과하기 쉽지만, 당연한 전제 조건이 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를 자부하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시기에 남북 분단이라는 예기치 못한 불행을 엄연한 현실로 맞닥뜨린 만큼, 하나는 일제에 부역한 사실이 없거나 그 사실을 철저히 참회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북한과도 일정 정도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친일을 하지 않은 우익’이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의 조건이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는 남북 대결의 와중에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친일 세력이 우파의 정체성을 실질적으로 독점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우파가 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들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계획하고 실행한 실질적 주체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 현대사의 근대적 전환기를 이룩한 196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헌들과 연구들을 참조해 가면서, 이 시기에 정부 정책을 주도한 이들과 민주화 진영에서 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들이 바로 ‘친일을 하지 않은 우익’, 즉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었던 것이다. 대전대학교 김건우 교수는 스무 해 가까운 연구를 통해 친일에 물들지 않았으면서 북한 공산주의 정권과도 거리가 있는 ‘양심적’ 우익의 실체를 추적하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에서 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탐구해 왔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한국 현대 지성사와 문학사에 관련하여 꾸준히 축적해 온 그동안의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 저작으로, 이 저작을 통해서 우리는 이른바 ‘학병세대’를 가운데에 놓고 치열하게 전개된 한국 현대사의 뚜렷한 줄기가 한국 우익의 진짜 기원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학병세대’는 왜 중요한가. ‘학병세대’는 주로 1920년 전후 다섯 해 정도에 출생한 이들로, 실제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라고 할 만하다. 이름만 들어봐도 쟁쟁하다.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백낙준,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의 사상적 선배로는 이들 ‘진짜 우익’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류영모, 함석헌, 김재준 등이 있고, 그 후배들로는 천관우, 이기백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선배 세대인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과 달리 친일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웠고, 또한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주로 이북 출신으로 남쪽을 택한 사람들이기에 반공 문제에서도 의혹이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정치, 언론, 교육, 종교, 학술, 사상 각계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이들이기도 했다. 해방기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주체를 세울 때, ‘친일’ 여부 문제는 대단히 중요했다. ‘민족에 반역하고 친일을 했던 이들에게는 새 나라의 주체가 될 자격이 없다’는 공감대가 당시에 있었다. 다만, 현실적 문제가 있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했기에 나라 만들기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몸을 더럽히지 않은’ 이들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학병세대’가 시대의 중심에 등장했다. 일제 말 전쟁에 동원되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터로 끌려갔던 사람들, 제국 최고의 고등교육을 이수했지만 친일 전력이 없는 이들이 새로운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제국 일본의 교육을 정점까지 받은 엘리트 집단이어서 정치경제적 근대화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한국 현대사에서 불변의 상수에 해당하는 미국 정부와도 사이가 아주 좋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구 지향의 세계주의자였고,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있었다. 4?19혁명과 5?16 쿠데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이들은 때때로 정치 현실에 참여하여 박정희 주도 세력과 뜻을 같이하기도 했지만, 그 친일적 뿌리에 대해서는 생래적 반감과 꾸준한 의혹을 품었다. 아울러 이들은 ‘제헌 헌법’에 구현되어 있는 상해 임시정부의 중도적 이념에 동감을 표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그려 낸 산업화의 밑그림을 박정희 정권에 제공했으며, 한국적 특수성을 내세워 정치사회적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들 ‘진보 우익’이야말로 정통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었다. 《사상계》의 장준하와 《동아일보》의 천관우와 《조선일보》의 선우휘가 모두 여기에 속했고, 보수적 지사 조지훈과 자유의 화신 김수영이 이 그룹에서는 하나였다. 연세대학교의 백낙준이 이들을 후원했으며, 탈출한 학병이자 《사상계》의 주필을 역임한 고려대학교의 김준엽은 이들의 화신과 같았다. 학병세대는 극우적 국가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자신들과 입장이 같지 않으면 모두 용공좌파로 내모는 ‘우익의 사칭자들’과는 그 뿌리가 달랐고, 근대 국가에 대한 그림도 달랐다. 이들은 산업만의 근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총체적 근대화를 꿈꾸었다. 정치적 근대화로서의 민주화, 경제적 근대화로서의 산업화, 문화적 근대화로서의 새 문화 창조가 이들의 구상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도달한 지점을 보면, 이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향해 대한민국이 분명히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차 자료를 뒤지면서 오랜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 설계자를 밝혀낸 이 책의 소중함은 여기에 있다. 아래는 각 장의 내용을 주요 인물별로 요약한 것이다. 장준하(1918년생)와 김준엽(1920년생), 평생의 동지였던 두 사람 모두 1944년에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일본군으로부터 탈출해 충칭 임시정부로 건너가 광복군으로 편성되었다. 광복군 제2지대 소속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국내 진입작전을 계획 중이었던 이들이야말로 광복군의 적통이자 공산주의자들과 대립했던 임시정부 우익 민족주의의 적자였다. 이들은 해방 후 자신들이 해야 할 건국 사업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 군사에 걸친 제반 건설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따로 떼어놓지 않았다. (1장 학병세대가 서 있던 자리) 해방 전후의 장준하는 전형적 ‘기독교 반공 우익’에 ‘국가주의자’의 면모까지 가지고 있었다. 장준하를 백범의 계보를 잇는 존재로 흔히 평가하지만, 해방과 귀국 당시의 장준하는 이범석계가 분명했다. 1946년, 이범석이 귀국해서 조선 민족청년단(족청)을 조직하자 장준하는 김구의 비서직을 떠나 즉시 족청에 가담했다. 장준하는 족청의 핵심 기관인 중앙 훈련소의 중심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47년 장준하는 족청 내 좌익분자들에 대한 처리 문제로 이범석과 의견이 맞지 않아 족청을 떠나게 된다. 이후 장준하와 김준엽 모두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찬성했다. 장준하가 우익 반공주의 이념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장준하는 분명한 중도 통일 노선을 표명했다. 한반도 모든 모순의 근원이 분단에 있으며, 따라서 분단 체제의 모든 가치와 논리를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2장 장준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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