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go Jay4.5워낙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찰리 파커이기에 극영화로서 흥미로운 소재가 충분히 되었지만, 포레스트 휘태커가 마치 환생한 '버드'와 같이 연기와 연주를 했다. (1988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잘 알려진 재즈 매니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음악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1940-50년대 뉴욕과 LA의 재즈 씬 그리고 비밥 전성기의 음악을 큰 스크린에서 다시 맛보고 싶다! * 'Bird' Revisited http://blog.naver.com/cooljay7/220794440769Like13Comment0
별빠4.0비밥 전성기의 야드, 자유로운 혼의 버드, 이심전심 은막의 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멋진 소리의 한계를 아는 새의 울음, 날개를 달고 날아도, 떨어질 때가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어둠, 재즈는 살아있고, 명반은 남는다, 영화도 변하고, 명작도 때를 탄다.Like12Comment0
JE4.0전기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조가 복잡하다. 플래시백 속에서 다시 플래시백으로 이어지고, 별다른 표식도 없이 넘나드는 통에 시간대가 마구 섞이는 듯하다. 혼란하면서도 분방한 이런 구성이 마치 즉흥적인 재즈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을까. 재즈를 모르다 보니 그보다는, 영화가 찰리의 삶을 그린다거나 따라간다기보다 흡사 과거로 점철된 시간 속에서만 찰리를 새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찰리 파커라는 거대한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영광의 서사를 좀체 누리기가 어려운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찰리 파커의 연주다. 내내 어둡고 어두운 와중에 단 하나 빛나는 요소, 찰리 파커의 연주, 색소폰 선율. <버드>는 확실히 다른 무엇보다도 찰리 파커의 음악을 위한 (이스트우드의 덕질)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찰리 파커에 대해서도, 재즈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입장으로선, 연주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이미지들이 있다. 비오는 어두운 밤과 찰리 파커의 땀과 눈물. 영화 대부분이 밤 장면인데다, 오프닝에서도 엔딩에서도 창밖엔 비가 내리고 찰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극단적인 어둠이 깔린 영화의 숱한 순간에서 찰리는 땀을 흘리거나 눈물을 흘린다. 음악에 대한 열정, 마약 중독으로 인한 고통, 후회, 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삶의 회한 등 순간의 이유야 저마다겠지만, 결국 찰리를 화려한 예술가보단 처절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더 부각한다. 이에 <버드>를 어떤 밤의 영화이자 눈물과 땀의 영화라 부르고 싶을 정도인데, 거센 비와 찰리가 쥔 술, 또 이리저리 넘나드는 시간의 흐름, 예술가-중독자 찰리에 대한 양가적인 기운, 재즈의 즉흥성, bird라는 별명이 주는 자유로운 비행의 인상 따위를 모조리 더해 아예 유동성의 영화라고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장면도 비슷한 감상의 연장이다. 챈과 찰리가 처음 만난 날 함께 어두운 밤 거리를 걸으며 재즈 이야기를 하던 장면. 애증의 갈등을 겪게 되는 챈과의 풋풋한 만남이기도 하지만, 렌즈 플레어로 인해 (여전히 밤 장면이지만) 해가 환히 비치는 듯한 느낌이 일순 조성되며 찰리의 환한 미소까지 화면에 남는다. 영화의 무드를 물리치는 빛과 웃음이자, 찰리에 대한 유동적인 평가마저 뒤로 물리는 숏 같았다. 딱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실존적인 흔들림 없이 굳건한 아름다움이 머무른다. 사실 <버드>를 보면서 찰리 파커의 삶이 어떻게 피었다가 졌는지를 온전히 감상하는 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언뜻 (거의 30년은 뒤에나 나온) <제이. 에드가>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나, <버드>는 찰리(와 챈)에 대한 경의가 좀 더 느껴지긴 한다. 전기 영화가 어때야 한다는 건 없을 테지만, 만약 <버드>를 훌륭한 전기 영화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영화의 태도 덕택일 것 같다. 단순히 찰리 파커의 굴곡이나 이야기를 담기보단 아름다운 연주와 위태로운 실존처럼 양가적이지만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그 자체로 감각케 하려는 태도. 재즈를 잘은 모르지만, 이해보다 감각이라는 듯한 태도야말로 재즈의 삶을 살아온 찰리 파커에게 어울리지 않을까.Like10Comment0
상맹3.5어떤 예술가들은 하루하루를 몇년처럼 보내고 일찍 가버리는 것 같다. 그렇기에 시대에 앞선 걸 도전하고 이룬 것이겠지. 이젠 대단한 것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삶도 나름 불행하고 나름대로 값어치도 행복도 있는 것 같다.Like7Comment0
ㅂ승규/동도
3.5
오선지로 그려낸 전설의 주마등 완벽한 재즈 연주가 무색하듯 불협화음처럼 불안정했던 그의 영혼
Indigo Jay
4.5
워낙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찰리 파커이기에 극영화로서 흥미로운 소재가 충분히 되었지만, 포레스트 휘태커가 마치 환생한 '버드'와 같이 연기와 연주를 했다. (1988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잘 알려진 재즈 매니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음악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1940-50년대 뉴욕과 LA의 재즈 씬 그리고 비밥 전성기의 음악을 큰 스크린에서 다시 맛보고 싶다! * 'Bird' Revisited http://blog.naver.com/cooljay7/220794440769
별빠
4.0
비밥 전성기의 야드, 자유로운 혼의 버드, 이심전심 은막의 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멋진 소리의 한계를 아는 새의 울음, 날개를 달고 날아도, 떨어질 때가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어둠, 재즈는 살아있고, 명반은 남는다, 영화도 변하고, 명작도 때를 탄다.
JE
4.0
전기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조가 복잡하다. 플래시백 속에서 다시 플래시백으로 이어지고, 별다른 표식도 없이 넘나드는 통에 시간대가 마구 섞이는 듯하다. 혼란하면서도 분방한 이런 구성이 마치 즉흥적인 재즈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을까. 재즈를 모르다 보니 그보다는, 영화가 찰리의 삶을 그린다거나 따라간다기보다 흡사 과거로 점철된 시간 속에서만 찰리를 새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찰리 파커라는 거대한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영광의 서사를 좀체 누리기가 어려운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찰리 파커의 연주다. 내내 어둡고 어두운 와중에 단 하나 빛나는 요소, 찰리 파커의 연주, 색소폰 선율. <버드>는 확실히 다른 무엇보다도 찰리 파커의 음악을 위한 (이스트우드의 덕질)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찰리 파커에 대해서도, 재즈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입장으로선, 연주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이미지들이 있다. 비오는 어두운 밤과 찰리 파커의 땀과 눈물. 영화 대부분이 밤 장면인데다, 오프닝에서도 엔딩에서도 창밖엔 비가 내리고 찰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극단적인 어둠이 깔린 영화의 숱한 순간에서 찰리는 땀을 흘리거나 눈물을 흘린다. 음악에 대한 열정, 마약 중독으로 인한 고통, 후회, 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삶의 회한 등 순간의 이유야 저마다겠지만, 결국 찰리를 화려한 예술가보단 처절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더 부각한다. 이에 <버드>를 어떤 밤의 영화이자 눈물과 땀의 영화라 부르고 싶을 정도인데, 거센 비와 찰리가 쥔 술, 또 이리저리 넘나드는 시간의 흐름, 예술가-중독자 찰리에 대한 양가적인 기운, 재즈의 즉흥성, bird라는 별명이 주는 자유로운 비행의 인상 따위를 모조리 더해 아예 유동성의 영화라고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장면도 비슷한 감상의 연장이다. 챈과 찰리가 처음 만난 날 함께 어두운 밤 거리를 걸으며 재즈 이야기를 하던 장면. 애증의 갈등을 겪게 되는 챈과의 풋풋한 만남이기도 하지만, 렌즈 플레어로 인해 (여전히 밤 장면이지만) 해가 환히 비치는 듯한 느낌이 일순 조성되며 찰리의 환한 미소까지 화면에 남는다. 영화의 무드를 물리치는 빛과 웃음이자, 찰리에 대한 유동적인 평가마저 뒤로 물리는 숏 같았다. 딱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실존적인 흔들림 없이 굳건한 아름다움이 머무른다. 사실 <버드>를 보면서 찰리 파커의 삶이 어떻게 피었다가 졌는지를 온전히 감상하는 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언뜻 (거의 30년은 뒤에나 나온) <제이. 에드가>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나, <버드>는 찰리(와 챈)에 대한 경의가 좀 더 느껴지긴 한다. 전기 영화가 어때야 한다는 건 없을 테지만, 만약 <버드>를 훌륭한 전기 영화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영화의 태도 덕택일 것 같다. 단순히 찰리 파커의 굴곡이나 이야기를 담기보단 아름다운 연주와 위태로운 실존처럼 양가적이지만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그 자체로 감각케 하려는 태도. 재즈를 잘은 모르지만, 이해보다 감각이라는 듯한 태도야말로 재즈의 삶을 살아온 찰리 파커에게 어울리지 않을까.
김우철
4.5
재즈에 대해서 좀 더 알고싶어졌다
상맹
3.5
어떤 예술가들은 하루하루를 몇년처럼 보내고 일찍 가버리는 것 같다. 그렇기에 시대에 앞선 걸 도전하고 이룬 것이겠지. 이젠 대단한 것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삶도 나름 불행하고 나름대로 값어치도 행복도 있는 것 같다.
김민철
4.0
커다란 배우. 포레스트 휘테커
지화자 어절씨구
4.0
찰리파커를 아는 재즈 매니아라면 꼭 한 번 봐줘야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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