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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p Interlude

End Credits Suite

End Credits Suite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 Laudate Dominum, K. 339

The Middle of the World

End Credits Suite




이동진 평론가
4.5
잔물결 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헨리 데이빗 소로)
JE
4.0
This may contain spoiler!!
김도훈 평론가
4.5
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이 영화가 가져간다면 그건 그저 정치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뒷골목 흑인 게이의 성장기를 세 편의 시처럼 직조해낸, 놀랄만큼 아름다운 시네마.
석유진
4.5
[보이후드]가 따스한 햇살이라면 [문라이트]는 어둠 속의 달빛. 시적인 리얼리즘으로 소외되어 있는 미국 사회의 얼굴을 조명한다.
원쵸이
4.5
사회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야하는 고통속에서도 결국 갈망하는건 나 하나 제대로 알아줄 사람을 만나는 것. 어둠속의 은은한 달빛처럼 꿈결같지만 지독하게 서글픈 성장 이야기.
nice_shinjuuu
4.0
세번이나 배우가 바뀌었음에도 상처받은 그 눈빛은 여전히 똑같이 슬프고 애처로웠다. 포스터가 마치 한사람인 것처럼 보이듯.. 영상과 음악이 의외의 조합
Dilettante
4.0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의 흥미로운 점에 대한 해석 : 샤이론의 성장기를 세 파트로 나눈 구성과 같이, 영화의 포스터 역시 샤이론의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기의 모습을 각각의 파트로 하여 구성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특정 ‘명칭’이나 ‘색(色)’은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못잖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유년기에 샤이론이 살았던 곳의 명칭, ‘Liberty City.’ 한글로는 ‘자유의 도시’ 쯤 되겠다. 그러나 그곳에 살면서 경험했던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이나 친구들의 따돌림은 자유의 도시라는 이름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샤이론에게 전혀 ‘자유’를 주지 않았다. 그 언어적 아이러니(verbal irony)는 유년기 ‘리틀’의 고통을 더욱 부각시킨다. 둘째로 후안의 여자 친구였던 ‘테레사.’ 그녀는 자유롭지 못했던 샤이론에게 있어 오랜 시간 동안 훌륭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친모가 아닐지라도 그에 못지않은, 아니, 심지어는 더 큰 사랑을 주는 사람. 그녀의 이름에서 ‘마더 테레사’가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셋째로 샤이론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블랙.’ 물론 이 별명은 케빈의 가벼운 호칭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샤이론의 성인기를 보여 주는 영화의 마지막 파트의 명칭은 다름 아닌 ‘블랙’이다. 이 블랙이라는 요소는 ‘명칭’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색(色)’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가장 크지 않나 싶다. 우선 흑인이라는 샤이론의 인종 자체가 블랙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어 불리고 있으며, 성인이 된 그가 몸담고 있는 ‘어두운’ 일이나 그에 걸맞은 그의 강렬한 외모 역시 ‘블랙’이라는 색을 쉽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블랙이라는 명칭이 가장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샤이론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케빈이 지어준 것이라는 점에 있다. 케빈이 수차례 불러 줬던 블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샤이론은 실제로 어두운 삶을 살고 있다. 때문에 샤이론을 오랜만에 만나 케빈이 건넨 얘기, “네 마음속은 ‘블랙’이 아냐”는 역시 아이러니 하다. 자신이 지어준 이름인 ‘블랙’으로 살아가고 있는 샤이론에게 “넌 블랙이 아냐.”라고 하는 상황이라니. 물론 진짜 샤이론의 내면을 알아준다는 점으로 보자면 딱히 비난할 노릇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샤이론’이란 과연 누구인가? 샤이론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난 후에까지 ‘자기 자신’으로서 오롯이 살아오지 못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불행한 이야기이기도, 또 한편으로는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 그의 삶에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영화의 포스터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유년기의 샤이론에게 힘이 돼 주었던 후안의 또 다른 이름 “블루.” 특히나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깊었던, 또 ‘사랑’이 찾아오기도 했던 청소년기의 “레드.” 마지막으로 성인기의 샤이론의 어두운 행보, 그리고 케빈의 잔재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상태임을 드러내는 “블랙.” 그 색(色)들이 포스터에 각 시기별로 칠해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다. 포스터의 색들이 엄밀히는 완전한 블루, 레드, 블랙이 아니라는 것. 그 의문에 대한 열쇠는 바로 영화의 제목에 있다. ‘문라이트,’ 그것은 새벽의 빛이자 푸른 색이다. 그리고 그 ‘푸르스름함’이 블루, 레드, 블랙에 각기 스며들어 결국 포스터의 색들은 에메랄드에 가까운 블루, 레드와 블루가 섞여 생겨나는 보라, 그리고 푸르스름한 블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샤이론의 모든 삶에 블루로 대변되는 푸르스름한 문라이트가 깃들어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그의 삶에 있어 어머니나 연인과의 사랑 같은 것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후안이고, 후안을 대변하는 색이 바로 그의 별명이었기도 한 ‘블루’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라이트와 관련된 일화 역시 후안이 들려준 것이며, 자신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즉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을 남긴 것도 후안이기에 샤이론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후안이자 ‘블루’이다. 그를 말하기라도 하듯,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후안과 함께했던 샤이론의 유년기를 비추며 바닷가에서 푸르스름한 ‘달빛(moonlight)’을 받은 그를 보여준다. 유년기의 모습을 다시 불러온 그 장면은, 후안의 교훈대로 살아오지 못했던 샤이론이 성인이 되어서야 케빈을 다시 만나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위안을 받았으며, 앞으로는 어린 시절의 그 교훈대로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샤이론의 미래, 달빛을 쫓아가는 그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김혜리 평론가 봇
5.0
개인의 탄생. 스크린의 월광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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