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Oh4.0결국 기존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거를 잇는다. 그 속에서 나만큼은 똑바로 보고 있을 것이라며 오만하진 않았는지, 실망감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 "You wouldn't understand."Like24Comment0
Eun Hye Choo4.0젊은 날의 적당히 치기어린 허영과 냉소를 통해 보는 세상의 단편, 그 부분을 전체라고 믿어버린 날들에 대해. 부분적 세계에 대한 파편적 이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인했던 것들에 대한 오해. 그리고 아버지. 최초의 독자이자 최후의 독자가 될 단 한 사람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에 대한 사무치는 후회. 존재하지 않는 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곳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파내려가는 우물의 깊이.Like10Comment0
오세일4.0<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를 기점으로, 누리 빌게 제일란의 필모그래피는 줄곧 문학의 형상을 띠어왔다. 섬세하고 표현주의적인 기법으로 서술된 듯한 풍경의 미장센, 거칠게 엮인 인과관계의 올무, 끊이지 않는 대사로 점철된 서사까지. 심지어 <야생 배나무>의 주인공 시난은, (대놓고) 작가를 희망하는 청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의 존재는, 자유롭지 못해 괴로운 예술가의 고난을 표방한다. 시난은 자신의 삶과 예술에서 고향이란 지역성을 분리하는 작업을 재차 행한다. 혹여나 타자가 자신을 이 지역(고향)의 사람으로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이면, 강하게 부정하며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지칭하고는 한다. 그는 고향 사람들이 옹졸하고 편협하다며 힐난하는 와중에, 정작 자신 또한 그 고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우기에 바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가장의 무게를 실추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삶을 조소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그런 집안이 지겨워 집 밖으로 도주를 시도해 보지만, 아무래도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똑같아 보이기만 한다. 온갖 변명을 달고 사는 이웃들, 이루고 싶다는 꿈이 고작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것이라는 고등학교 동창을 보며, 그는 점점 고향에 대한 혐오감을 쌓아 올린다. 그래서 시난은 글을 쓴다. 내면의 응어리를 토해내지 못해 나뭇가지에 밧줄을 묶고 목을 매달까 봐, 그는 밧줄 대신 펜을 잡는다. 하지만 문학과 현실은 결집되지 않는다. 시난은 문학으로 통찰을 연기하지만, 머리로 깨닫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개념은ㅡ마치 문학과 현실의 간극처럼ㅡ다르다. 문학과 현실의 간극에 대한 압박을 받을수록, 시난의 말(변명)들은 공중에 흩뿌려질 뿐인 장광설로 귀결된다. 어머니는 시난과 다르게,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알고 있다. 현재의 남편과 그 시절의 남편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옆에서 남편의 노력을 짓밟는 세상의 냉담함을, 그런 세상의 한계에 순응하고 도박장을 전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고 또 이해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편의 모습은, 한심하다기보단 짠할 뿐이다. 죽은 나무 밑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는 아버지. 나뭇가지에는 밧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아버지는 마치 '자살에 실패한' 인간의 초라한 실태를 현현하는 듯하다. 물론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었고 잠시 낮잠에 든 것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상 그 모습은 주체적인 삶의 실패를 경유한 늙은이의 내면적 자살을 의미한다.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혐오와 모순으로 완성된 시난의 작품, '야생 배나무'. 그의 문학은 적어도 진실의 측면에선 실패한 예술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세계에서 '야생 배나무'는 존재 가치를 증명받는다. 아버지와 '야생 배나무'의 작가는 너무나도 똑 닮은 존재(들)이기에. 제일란은 본인이 쓴 '야생 배나무'를 통해, 예술의 공유와 확장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Like6Comment0
Alistair Minjae Lee4.0Anadolu insanı Ahlat ağacına benzer. Kendisi şekilsiz, meyvesi buruk. 아나돌루 사람은 돌배나무와 닮았다. 형태가 없고, 열매는 떫다.Like5Comment0
샌드3.5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이나 건조하다고 느껴지는 화면이 인상적입니다. 고요하게 흘러가는 듯 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진하게 다가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논픽션>과 함께 수없이 논의할 수 있을 예술, 특히 저술에 관한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다만 영화가 던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설득하진 못해 늘어지는 면이 있어 길어야 하는 의의가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물가가 주는 이미지와 장소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져서, 바다와 바람처럼 자연을 잘 활용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Like4Comment0
임창주4.5After winter sleep , son understood father’s life like wild pea n started to dig father’s well.20200405, 160/100.Like2Comment0
Jay Oh
4.0
결국 기존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거를 잇는다. 그 속에서 나만큼은 똑바로 보고 있을 것이라며 오만하진 않았는지, 실망감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 "You wouldn't understand."
Eun Hye Choo
4.0
젊은 날의 적당히 치기어린 허영과 냉소를 통해 보는 세상의 단편, 그 부분을 전체라고 믿어버린 날들에 대해. 부분적 세계에 대한 파편적 이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인했던 것들에 대한 오해. 그리고 아버지. 최초의 독자이자 최후의 독자가 될 단 한 사람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에 대한 사무치는 후회. 존재하지 않는 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곳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파내려가는 우물의 깊이.
오세일
4.0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를 기점으로, 누리 빌게 제일란의 필모그래피는 줄곧 문학의 형상을 띠어왔다. 섬세하고 표현주의적인 기법으로 서술된 듯한 풍경의 미장센, 거칠게 엮인 인과관계의 올무, 끊이지 않는 대사로 점철된 서사까지. 심지어 <야생 배나무>의 주인공 시난은, (대놓고) 작가를 희망하는 청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의 존재는, 자유롭지 못해 괴로운 예술가의 고난을 표방한다. 시난은 자신의 삶과 예술에서 고향이란 지역성을 분리하는 작업을 재차 행한다. 혹여나 타자가 자신을 이 지역(고향)의 사람으로서 인식하는 태도를 보이면, 강하게 부정하며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지칭하고는 한다. 그는 고향 사람들이 옹졸하고 편협하다며 힐난하는 와중에, 정작 자신 또한 그 고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우기에 바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가장의 무게를 실추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삶을 조소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그런 집안이 지겨워 집 밖으로 도주를 시도해 보지만, 아무래도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똑같아 보이기만 한다. 온갖 변명을 달고 사는 이웃들, 이루고 싶다는 꿈이 고작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것이라는 고등학교 동창을 보며, 그는 점점 고향에 대한 혐오감을 쌓아 올린다. 그래서 시난은 글을 쓴다. 내면의 응어리를 토해내지 못해 나뭇가지에 밧줄을 묶고 목을 매달까 봐, 그는 밧줄 대신 펜을 잡는다. 하지만 문학과 현실은 결집되지 않는다. 시난은 문학으로 통찰을 연기하지만, 머리로 깨닫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개념은ㅡ마치 문학과 현실의 간극처럼ㅡ다르다. 문학과 현실의 간극에 대한 압박을 받을수록, 시난의 말(변명)들은 공중에 흩뿌려질 뿐인 장광설로 귀결된다. 어머니는 시난과 다르게,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알고 있다. 현재의 남편과 그 시절의 남편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옆에서 남편의 노력을 짓밟는 세상의 냉담함을, 그런 세상의 한계에 순응하고 도박장을 전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고 또 이해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편의 모습은, 한심하다기보단 짠할 뿐이다. 죽은 나무 밑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는 아버지. 나뭇가지에는 밧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아버지는 마치 '자살에 실패한' 인간의 초라한 실태를 현현하는 듯하다. 물론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었고 잠시 낮잠에 든 것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상 그 모습은 주체적인 삶의 실패를 경유한 늙은이의 내면적 자살을 의미한다.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혐오와 모순으로 완성된 시난의 작품, '야생 배나무'. 그의 문학은 적어도 진실의 측면에선 실패한 예술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세계에서 '야생 배나무'는 존재 가치를 증명받는다. 아버지와 '야생 배나무'의 작가는 너무나도 똑 닮은 존재(들)이기에. 제일란은 본인이 쓴 '야생 배나무'를 통해, 예술의 공유와 확장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Alistair Minjae Lee
4.0
Anadolu insanı Ahlat ağacına benzer. Kendisi şekilsiz, meyvesi buruk. 아나돌루 사람은 돌배나무와 닮았다. 형태가 없고, 열매는 떫다.
샌드
3.5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이나 건조하다고 느껴지는 화면이 인상적입니다. 고요하게 흘러가는 듯 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진하게 다가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논픽션>과 함께 수없이 논의할 수 있을 예술, 특히 저술에 관한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다만 영화가 던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설득하진 못해 늘어지는 면이 있어 길어야 하는 의의가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물가가 주는 이미지와 장소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져서, 바다와 바람처럼 자연을 잘 활용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창주
4.5
After winter sleep , son understood father’s life like wild pea n started to dig father’s well.20200405, 160/100.
오태영
4.5
자기 자신의 성에서 밖으로 나서다.
Jack Yoon
3.5
'윈터 슬립'에서 느껴진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이지만 몇몇 장면들의 이미지나 결말부의 탁월함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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