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Murder
三度目の殺人
2017 · Crime/Drama/Mystery/Thriller · Japan
2h 5m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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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Theme (From “The Third Murder” / Remastered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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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Theme (From “The Third Murder” / Remastered 2020)
이동진 평론가
4.0
생각하는 카메라의 힘.
메뚜리언
4.0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나 (영화 보러갔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준 숙제하나 생겼다) # 당신의 세 번째 살인은 무엇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작품을 두고서 열린 결말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세상에 나온 창작품은 '창작자의 창작 의도' 와 '대중이 받아 들이는 의미'가 동시에 공존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창작자의 의도는 완성되고, 작품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또 한가지의 의미가 생긴다는 점을 말한다. 둘은 따로 또 같이 존재하며 모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작품의 감독이 열린 결말이라 말함은 이 영화를 본 관객 모두의 세 번째 살인과 감독 의도의 세 번째 살인이 동시에 존재 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나의 세 번째 살인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살해 장면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살인사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오픈하고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관객은 살인 사건의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 미스미와 그의 변호인 시게모리가 접견을 시작하면서부터 사건의 진실은 점점 늪으로 빠져든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살인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여느 법정 영화들이 그랬듯이 사건의 진실을 종착점으로 정하고 그 종착점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길이 명확하지가 않다. 관객들은 영화가 진실의 종착점을 향하는 동안 '어? 어? 이거뭐지? 이 길이 맞는거야?'란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영화는 종착역에 이르러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확 돌려버린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핵심 의미와 결말에 대해서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답을 관객에게 전가해버린다. 그럼 세 번째 살인은 무얼 얘기하는 걸까? 첫 번째로 부조리한 사법체계의 비판이 아닐까 한다. 즉 세 번째 살인은 사법 구조에 의한 살인이라 볼 수 있다.이 점은 애매모호한 영화 속 화법들과는 달리 꽤 명확하게 그려진다. 영화가 그리는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보단 각자의 이해관계가 우선인 장소이다. 공정하고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법의 구역조차 비인간적이고 경제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미스미가 무죄 주장을 한 뒤 판사, 변호인, 검사측의 회의 장면일 것이다. 입장만 다를 뿐 같은 배를 모두 탔다던 동료 변호사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정리해준다. 두 번째로는 미스미의 자신에 대한 심판, 즉 자살에 가까운 살인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은 라이브톡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미스미는 사람은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스미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죽어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말한다. 미스미는 영화내내 증언을 번복 하는데 이는 정교하게 자신을 사형으로 옭아매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사형 확률이 높은 절도에 의한 살인도 사형을 받기위한 정교한 작업 중에 하나였다. 이러한 점을 들어 미스미가 저지른 두 번의 살인 이후에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마지막 세 번째 살인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살인'은 '세 번째 진실'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연유로 이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 관객의 진실을 또 다른 세 번째 살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이런저런 이유로 진범을 추측하고 이를 심판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법정 스릴러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이라 본다. 허나 개인적인 생각에 이 영화는 법정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인간에 대한 시선과 판단(심판)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진실은 항상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사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진실을 매번 마주할 수 없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진실이라 추측하는 것들을 믿고 행동하게 된다. 이때의 행동이 진실에 다가간다면 문제가 없지만 간혹 믿음은 마음을 넘어 진실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진실과 믿음 이에 의한 판단은 인간을 매순간 고뇌의 순간으로 불러들인다. 그렇다 우리는 실제 생활과도 같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매순간 판단하고 심판하고자 했다. 하지만 감독은 끝끝내 진실을 전해주지 않았고 다시금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의 진실은 무엇인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감독이 물음을 던짐으로써, 진실은 묻혔고 우리의 판단만이 남았다. 우리가 내린 답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상황에 따른 결론이 진실에 가까울거라는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믿음은 각자의 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난 세 번째 살인은 이 영화를 본 개개인 각자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마동석 '시게모리, 미스미, 사에키 셋 진실의 방으로' 시게모리 '나는 왜?' 마동석 '작성자가 멍청해서 그래, 넌 빠져'
손정빈 기자
4.0
"진실을 노려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55) 감독의 새 영화 '세 번째 살인'은 고레에다스럽다. 최근작들과 비교하면 장르가 바뀌고 시선이 달라져서 이 변화를 당황스러워 할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환상의 빛'(1995) '아무도 모른다'(2005) '걸어도 걸어도'(2009)를 본 관객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고레에다 영화는 어떤 작품보다 현실적이고 냉정했다. 그는 한가하게 긍정적인 말을 늘어놓거나 쉽게 희망을 언급하지 않았다. 고레에다는 때로 냉소적이기까지 했는데, '세 번째 살인'에는 그의 그런 섬뜩한 얼굴이 있다. 고레에다의 첫 번째 스릴러 영화로 알려졌지만, 이 작품은 사건이 점차 해결돼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장르 특유의 쾌감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관객의 혼란은 가중한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는커녕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마냥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의 실체는 주장과 추측에 가려져만 간다. 구분과 판단을 무색하게 하는 이야기를 다 본 뒤에 밀려오는 감정은 일종의 좌절감이다. 그리고나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인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진실이란 무엇인지.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강도·살인 사건의 가해자 미스미(야쿠쇼 코지)의 변호를 맡는다. 미스미는 과거 같은 범죄를 저질러 30년형을 산 전과가 있어 이번에는 사형 선고를 피하기 어렵다. 시게모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극형만은 면하게 하는 것. 이에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사형을 받지 않을지도 모를 단서를 잡고 변론 계획을 짜나간다. 그런데 미스미의 말이 자꾸만 번복되는 게 수상한 데다가 그와 피해자 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되자 시게모리는 이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세 번째 살인'에는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정교한 연출력이 살아있다. 영화는 스펙터클과 거리가 멀고 느리게 진행되지만, 단단히 날 선 분위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배어있다. 대사 하나를 낭비하는 법이 없고, 쉽게 촬영한 신과 시퀀스도 보이지 않는다. 전작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더 공격적인 설정들과 미쟝센은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전달한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를 비롯한 배우들은 절제돼 있지만, 세밀한 연기로 이 작품의 공기를 담는다. 히로세 스즈의 눈빛은 특히 잊기 힘들다. 이 작품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세계를 확장한다. 그는 이제 가족을 넘어 사회를 본다.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머릿속에 눌러담아왔던 생각과 질문을 적극 쏟아낸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심판할 수 있다면,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악을 방관하는 자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더라도 적극적으로 그 악을 제거하려는 자 중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 진실은 무엇이며, 사람들 혹은 사회는 진실을 정말로 원하기는 하는가.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런 물음들은 고레에다 감독이 이전에 단 한 번도 던진 적 없는 것들이다. 이 질문들에는 세계에 대한 근심이 있다. 그건 우리가 언제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왔던 진실이라거나 이해라는 게 없어도 이 사회는 무리 없이 돌아간다는 탄식이다. 시게모리가 재판은 이기면 그만인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판사가 소송경제를 언급하는 것, 피해자의 아내가 딸에게 원활한 공장 운영을 이유로 침묵을 종용하고, 검사가 증인석에 선 딸을 은근히 윽박질러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장면 등은 다 같은 맥락이다. 진실은 거대한 힘이 단번에 묻어버리는 게 아니라 자각 없는 다수에 의해 서서히 침몰한다. 카메라는 진실과 이해에 도달하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안다. 영화는 시게모리가 미스미를 면회해 사건에 관해 대화하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다.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촬영해도 두 사람 사이를 가른 유리벽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는 건 상징적이다. 두 사람의 옆 모습을 정면에서 촬영한 시퀀스에는 마치 유리벽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착시일 뿐이다. 유리벽 건너 시게모리의 얼굴과 유리벽에 비친 미스미의 얼굴은 기어코 겹쳐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번 가라앉은 진실을 끌어올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법정물로 불리지만, 흔한 영화들이 그리는 법정 공방은 없다. 영화에는 재판을 준비하는 시게모리와 미스미의 대화, 미스미 주변 정보를 얻기 위한 시게모리의 조사 과정이 담길 뿐이다. 중요한 건 이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시게모리는 물론이거니와 판사나 검사, 재판을 지켜보는 배심원 그리고 관객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제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해 미스미에게 형(刑)을 내려야 한다. '진실'은 그렇게 알아보기 힘든 모양새로 '사실'에 달라붙어 있어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려고 노력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미스미가 저지른 두 번의 살인, 그리고 미스미에 대한 사형이 아마 세 번째 살인일 것이다. 다만 이 세 번째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미스미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의 주장에 따르면, 최소한 그의 행동 이면에 어떤 이유들이 있었는지 이해해볼 여지가 있었다는 거다. 다시 말해, 그는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라 '완전히 나쁘지는 않은 사람' 정도는 될 수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 간극을 노려본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야쿠쇼 코지 그리고 히로세 스즈의 인상적인 눈빛이 곧 고레에다의 마음이다. 손정빈 기자 jb@newsis.com
재원
4.0
명백한 사실, 아득한 진실, 모호한 진심.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매 순간 장르가 뒤바뀌며,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오가는, 휴먼 심리 스릴러.
오지보이
4.0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법정 안,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법정 최고형 사형이 법의 정당한 심판이 아닌 검사의 혀놀림과 판사의 흑백논리적인 망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또 하나의 살인(세 번째 살인)의 실태를 보여주었고, 항상 찬반논란에 서있는 사형제도의 존폐여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우
3.5
"누구를 심판하느냐는 누가 정하는 거죠?"
영화봤슈
3.5
'심판자'와 '진실'의 행방불명!
권혜정
3.0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져주는 좋은 영화이지만, 고레에다의 따뜻한 감성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저격하지는 못했다. (메가박스 동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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