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ericordia
Miséricorde
2024 · Comedy/Drama · France, Spain, Portugal
1h 43m · NC-17


This is about 31 year-old Jérémie who returns to Saint-Martial in the Massif Central region for an old friend’s funeral. In this village where so much goes unsaid, he must contend with rumours and suspicion, until he commits an irreparable act and finds himself at the centre of a police investigation.
Where to 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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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5.0
숭고한 자비와 야단스런 욕망의 동치가 비범하게 작동하는 그 축축한 세계.
장-뤽 고자르
4.0
(남)미새리코르디아 모두가 남자에 미쳐 있음...
서정남
3.0
This may contain spoiler!!
JE
4.0
This may contain spoiler!!
재원
4.0
욕망의 갈증이 낳은 해괴한 자비. - 영화가 끝나고도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너무 궁금해 자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대환장 막장극.
Jay Oh
3.0
우리 이 꼬라지인 거 신도 다 아신답니다. 우리도 알면서 서로 사랑하잖아요. God knows we're messes.
우기즘
4.0
호모섹슈얼리티가 피해자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알랭 기로디의 에로스는 동전의 양면처럼 타나토스와 긴밀히 붙어 있다. 죽음이 단순히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 죽음을 계기로 인물들은 욕망과 사랑의 감각을 되새긴다. 어쩌면 기로디의 세계에서 욕망의 성취를 위해서는 차라리 죽음까지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호숫가의 이방인>(2013)을 떠올려 보자. 호수에서는 의문의 연쇄 살인이 이어지지만 쾌락을 충족하려는 게이 남성들이 호숫가에서 상대를 물색한다. 즉 ‘호숫가’는 죽음이 도사리는 공포의 공간인 ‘호수’와 쾌락과 욕망의 공간인 ‘숲’을 연결해주는 매개의 공간인 셈이다. 상대를 찾고 나면 이들은 숲으로 가 서로 뒤엉켜 오럴섹스와 사정을 주고 받는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주고받는 섹스, 어떠한 프로텍션 없이 이루어지는 즉흥적인 관계는 그 자체로 죽음으로 질주하는 욕망과 다름 없다. 익명의 상대에 전적으로 의지한, 그야말로 성병 등의 감염에 취약한 상태를 기로디는 연쇄살인이라는 영화적 사건으로 은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될 가능성까지도 감내하는 욕망인 것이다. 숲에서 게이 남성들이 갖는 이같은 취약성은 당연하게도 소수자성에서 비롯된다. 사회에서 배제된 소수자들이 어떤 은밀한 공간(호수, 숲)으로 모이고, 이들이 나누는 익명의 섹스가 갖는 위험(성병, 살인 등)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호숫가의 이방인>에서 ‘숲’은 게이 남성들이 모여 건설한 정치적으로 안전한 낙원임과 동시에, 보건적으로나 범죄적으로나 위험한 공간이기도 하다. <미세리코르디아>에서의 ‘숲’ 역시 섹슈얼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이다. 제레미는 남근을 표상하는 ’버섯‘을 ’숲‘에서 채취한다. 숲에서 벌어지는 뱅상과의 몸싸움은 왠지 모르게 섹슈얼한 톤이 섞인 몸짓인건지 헷갈린다. 기로디는 이번 작품을 통해 소수자성의 취약성과 피해자성을 확실하게 극복하려는 듯하다. 일단 <미세리코르디아>의 호모섹슈얼리티는 주변인들에게 솔직하게 ‘공개’되며 아예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제레미의 섹슈얼리티가 이 세계에서는 전혀 약점이 아니며,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제레미는 심지어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녀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수년 간 집을 비웠다가 자신이 자란 마을로 돌아온 이유는, 제레미가 한때 사랑했던 동성인 남성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망자의 부인 마르틴은 제레미가 한때 자신의 남편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뱅상은 제레미와 어릴 적 함께 자란—그 이상의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르는—친구로, 반대로 제레미가 자신의 어머니와 섹스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뱅상과 제레미 사이에 갈등이 있게 되고, 제레미는 우발적으로 그를 살인하게 된다. 제레미는 숲에 시신을 유기하고 뱅상의 차를 끌고 가 인근 시내에 주차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제레미의 살인사건을 숨길 알리바이를 구성하는 하나의 여정이 된다. 아마 제레미의 살인 행각은 신부인 필리프에게 발각되었을 것이다. 뱅상과의 다툼이 있을 때마다 필리프는 어김없이 등장하였고, 제레미가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도 필리프는 제레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리프는 제레미를 사랑해서 범죄를 묵인한다. 어차피 뱅상은 돌아오지 않으며 이제 와 처벌을 받는다 한들 무슨 효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비로운 모순이다. 한 술 더 떠서 그는 제레미와의 가짜 잠자리 현장을 구성해 경찰의 의심에서 벗어나게 해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제레미의 공개된 호모섹슈얼리티는 정치적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이기에 은밀한 알리바이가 되어주며, 그런 성향을 공개함으로써 범죄의 책임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면책된다. ‘미세리코르디아’(Misericordia)는 ‘자비’를 의미한다. 누구에 대한 누구의 자비인가. 필리프가 주창하는 ‘무상의 사랑’에 그 단초가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독점적이지 않은 사랑, 보답을 바라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랑. 필리프는 제레미에게 독점적이거나 배타적인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여생을 곁에 있어 달라는 것. 물론 그가 제레미와 동침할 때 성적 흥분을 느끼지만, 그의 요구는 세속의 사랑이라기보다 차라리 신적인 성격의 사랑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동성애를 배격하는 종교의 교리가 역설적으로 그 사랑을 장려하는 근거가 되어주며, 그 ‘무상의 사랑’의 실천자를 마치 예수의 화신과 같은 제레미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을에서 제레미가 이웃들에게 행해야 하는 사랑의 성격도 유사하다. 이렇게 이해하면 마지막 장면에서 그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마르틴과의 동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레미가 마르틴이나 신부와 진짜 섹스하게 될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제레미가 베푸는 무상의 사랑은 신의 은총으로 환대받는다.
창민
4.0
욕망의 힘이군요 / 그 힘을 얕보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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