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일4.0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은 항상 위태로운 가족(혹은 남녀) 사이의 관계를 표방한다. 기어코 어떠한 균열에 맞닥뜨린 관계(들)의 간극에 아슬아슬하게 틈입하는 불협화음의 선율. 줄곧 평화를 상징해야만 할 것만 같은 나루세식 피아노의 차분한 선율은, 한결같이 삶이란 전장에서 파생되는 비극의 마찰음을 닮은 듯한 묘한 감각을 건넨다. <안즈코>는 시대의 과도기가 몰고 온 사회 속 방황하는 청춘들의 일상을 프레임에 수놓는다. 전후 도쿄의 집을 잃고 가족과 함께 시골 마을로 내려와 산 지도 십여 년이 지난 현재, 아버지의 소소한 걱정은 딸 안즈코의 시집 정도이다. 전쟁의 상흔도 어느 정도 아물어 갈 무렵, 스스로의 삶을 두고 살 만큼 살았다고 판단하는 아버지의 눈에는 이젠 자신이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거쳐야 할 안즈코의 인생이 보인다. 아버지는 사랑의 중요성을 안다. 부와 명예라는 허울로 건축된 거짓된 사랑이 아닌,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삶의 풍요로움을 가꿔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버지는 안즈코에게 스스로 남편이 될 사람을 선택할 자유를 준다. 안즈코는 부자가 아닌 예술가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 예술가는 전후 무너진 경제와 함께 짓밟혀 버린 자신의 남근을 작가로서의 성공으로 증명하고픈 '재능 없는 예술가'의 삶을 유랑할 뿐이며, 그의 세계 안에서 안즈코는 사랑의 실패와 상실을 경험한다. 그 예술가는 자신과 다르게 '성공한 예술가'인 안즈코의 아버지를 보며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욕망한다. 자신의 헛된 이상이 현실의 한계에 얽매이고 있음을 깨달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재능의 부재를 외면하고 (부부이기 이전에 개인의 주체여야 하는) 안즈코의 세계를 침범한다. 개인적으로 '안즈코' 역을 맡은 배우 카가와 쿄코의 얼굴을 아낀다. 때묻지 않은 영혼의 순수함을 몸짓 없이 표정만으로 일구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싶기까지 한다. 이미 <산쇼다유>에서 오빠를 위해 호수에 몸을 내던진 기적 같은 숭고함을 한차례 목격한 바 있지만, <안즈코>에서는 또 다른 숭고함이 그녀의 표정에서 보인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ㅡ라고 말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서 그녀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굳세다. 죽기로 결심한 <산쇼다유>에서의 숭고함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어떠한 살아야겠다는 숭고함.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다시) 집으로 향하는 안즈코의 뒷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오늘도 삶이란 비극을 경유하는, 하지만 여전히 내일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숭고한 자태. <안즈코>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타카미네 히데코의 기적에 준한다.Like4Comment0
Ben4.0달콤함은 잠시고 역겨움은 오래간다. 관객들도 조마조마한 시한폭탄 같은 결혼생활. 안즈코는 아버지 같은 자상한 남편이 필요했는데, 순간의 호의에 속아 전쟁터 같은 가정에 끌려가고 말았다. 딸바보 아버지의 훈훈한 인생얘기로 영화가 다정한 드라마 장르였다가 갈수록 폭주하는 남편의 찌질함 때문에 단숨에 스릴러로 변모. 남편의 역겨움이 화면 밖까지 풍겨온다.Like3Comment1
오세일
4.0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은 항상 위태로운 가족(혹은 남녀) 사이의 관계를 표방한다. 기어코 어떠한 균열에 맞닥뜨린 관계(들)의 간극에 아슬아슬하게 틈입하는 불협화음의 선율. 줄곧 평화를 상징해야만 할 것만 같은 나루세식 피아노의 차분한 선율은, 한결같이 삶이란 전장에서 파생되는 비극의 마찰음을 닮은 듯한 묘한 감각을 건넨다. <안즈코>는 시대의 과도기가 몰고 온 사회 속 방황하는 청춘들의 일상을 프레임에 수놓는다. 전후 도쿄의 집을 잃고 가족과 함께 시골 마을로 내려와 산 지도 십여 년이 지난 현재, 아버지의 소소한 걱정은 딸 안즈코의 시집 정도이다. 전쟁의 상흔도 어느 정도 아물어 갈 무렵, 스스로의 삶을 두고 살 만큼 살았다고 판단하는 아버지의 눈에는 이젠 자신이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거쳐야 할 안즈코의 인생이 보인다. 아버지는 사랑의 중요성을 안다. 부와 명예라는 허울로 건축된 거짓된 사랑이 아닌,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삶의 풍요로움을 가꿔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버지는 안즈코에게 스스로 남편이 될 사람을 선택할 자유를 준다. 안즈코는 부자가 아닌 예술가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 예술가는 전후 무너진 경제와 함께 짓밟혀 버린 자신의 남근을 작가로서의 성공으로 증명하고픈 '재능 없는 예술가'의 삶을 유랑할 뿐이며, 그의 세계 안에서 안즈코는 사랑의 실패와 상실을 경험한다. 그 예술가는 자신과 다르게 '성공한 예술가'인 안즈코의 아버지를 보며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욕망한다. 자신의 헛된 이상이 현실의 한계에 얽매이고 있음을 깨달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재능의 부재를 외면하고 (부부이기 이전에 개인의 주체여야 하는) 안즈코의 세계를 침범한다. 개인적으로 '안즈코' 역을 맡은 배우 카가와 쿄코의 얼굴을 아낀다. 때묻지 않은 영혼의 순수함을 몸짓 없이 표정만으로 일구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싶기까지 한다. 이미 <산쇼다유>에서 오빠를 위해 호수에 몸을 내던진 기적 같은 숭고함을 한차례 목격한 바 있지만, <안즈코>에서는 또 다른 숭고함이 그녀의 표정에서 보인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ㅡ라고 말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서 그녀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굳세다. 죽기로 결심한 <산쇼다유>에서의 숭고함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어떠한 살아야겠다는 숭고함.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다시) 집으로 향하는 안즈코의 뒷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오늘도 삶이란 비극을 경유하는, 하지만 여전히 내일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숭고한 자태. <안즈코>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타카미네 히데코의 기적에 준한다.
Ben
4.0
달콤함은 잠시고 역겨움은 오래간다. 관객들도 조마조마한 시한폭탄 같은 결혼생활. 안즈코는 아버지 같은 자상한 남편이 필요했는데, 순간의 호의에 속아 전쟁터 같은 가정에 끌려가고 말았다. 딸바보 아버지의 훈훈한 인생얘기로 영화가 다정한 드라마 장르였다가 갈수록 폭주하는 남편의 찌질함 때문에 단숨에 스릴러로 변모. 남편의 역겨움이 화면 밖까지 풍겨온다.
우울한cut과 유쾌한song
0.5
자전거가 왔(을 뿐이)다.
cdp
4.0
간 아저씨가 남편에게 한소리할때 진심 개사이다... 가정이라는 전쟁터에서 짐승이 되지않을 자신있나? 아니면 짐승이 되도 포용해줄 사람인건가.
전지훈
4.0
여자는 평생이 손해지만 남자의 손해는 잠깐이다.
윌슨
4.0
자신의 인생과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안즈코.
또로로
3.5
암 걸릴 뻔 하셨다고요? 이제 <야성의 여인>을 보실 차례입니다.
Ahipdream
3.5
아 속터져
Please log in to see mor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