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Elle
2016 · Crime/Drama/Thriller · France, Germany, Belgium
2h 10m · NC-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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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ontrol

The Shutters

The Shutters

Lust For Life

The Book, The Bell, The Candle

The Book, The Bell, The Candle




이동진 평론가
4.5
평범한 구석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다. 예술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카프카)"같은 것.
Pars Ignari
4.5
This may contain spoiler!!
메뚜리언
3.5
여기 있어도 지옥 나가도 지옥이라면 내가 이 판을 리드하는 수 밖에
비속어
5.0
This may contain spoiler!!
재원
4.0
'피해자 다움'이라는 색안경을 산산이 깨부수는 이자벨 위페르의 차분하고 의연한 얼굴. 그 어떤 캐릭터와도 다르며, 다른 어떤 연기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명이누나
3.5
진짜 무서운건 이사가는 여자...
Cinephile
4.0
남녀의 성 역할 구분이 실종된 포스트 페미니즘의 사회에서 인간 관계는 지배자-피지배자의 구분만이 남겨졌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지배자의 지위에 선 채, 선악을 모르는 그 힘을 인정하지 못한 종교와 아버지의 모순을 단죄하고 자신을 해방시킨다.
들오리
4.5
‘그리고 스물일곱명을 죽였어요. 개 여섯마리, 고양이 세마리와 함께. 무슨 이윤지는 몰라도 햄스터는 살려뒀고…’ . 보잘것없는 햄스터, 저항 한 번 못 하고 물려죽은 새. 영화 속 미셸은 제목 Elle(그녀)에서 비춰지듯 타자이다. 항상 다른 이의 시선에서 비춰지고 그려지는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가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인 아버지와 같은 사이코패스였는지 아니면 그저 어린 아이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더이상 자신의 인생을 돌보는 것을 포기한듯 보인다. 겉으로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무게를 능숙하게 버티고 상처에 굴복않는 듯 하지만 실상 그녀는 그 구렁에서 빠져나오려는 적극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 변태성욕의 스토커, 악의적인 동영상 유포자, 타인인듯 폭언을 일삼는 아들, 자신을 폭행하는 남편, 자신의 성욕 해소만을 요구하는 남자친구 등 그녀의 삶의 도처에 존재하는 주변의 남성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왜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성들과 그 폭력적인 행위에 수동적으로 응수하거나 거부할 뿐이다.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될 폭력들을 공권력으로 원천거세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 도중 미셸이 도움을 청하는 유일한 사람들은 자신의 동영상을 유포한 케빈과 무자비하게 자신을 겁간한 파트리크로, 심지어 둘은 모두 그녀를 성적으로 유린한 가해자이다. . 이는 그녀가 이미 오래 전 시스템에 의해 낙인찍히고 사회로부터의 보호를 포기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매스컴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 그녀는 익명의, 다수의,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버림받았다. 그렇기에 미셸은 의사가 처방하는 약도 신뢰할 수 없고, 야생 새를 치료하는 법은 알지 못 한다는 동물병원의 전화에도 더이상 실망하지 않는다. 이 경우 새(미셸 자신)를 물어뜯은 '고양이'와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거부하는 '동물병원'은 모두 기존 사회 시스템이나 남성을 의미한다. . 어쩌면 영화 속 위페르는 무수히 많은 ‘그녀들'의 복합체일 것이다. 회사에서 근거없는 성적 추문에 시달리고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 알수없는 누군가에게 스토킹 당하는… 하지만 권고사직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더 큰 2차, 3차 가해를 가하는 동료들이, 혹은 어떤 식으로 범인이 행동했는지 소상히 묘사하라고 재차 물어 상처를 헤집는 경찰이, 자극적인 소재를 팔기 위해 앞다투어 피해자의 신상을 털고 기사화하는 추악한 언론이 두려워 그들은 도움을 포기한다. 자신을 이 구렁에서 구원하는 것을 스스로 단념한다. . 그래서 어쩌면 어떠한 형태의 가해에도 굴복하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담대하게 헤쳐나가는 그녀는 적극적인 방어행위를 취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 의해 무언가를 당한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다, 어쩌면 나도 그들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즐겼고 원했다, 라는. 피해자로 남기 싫어서 가해자이자 공모자로 지위를 격상(?)하고 싶은 애처로운 마음. 하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말할 것없이 분명하다. . 미셸은 안나에게 그녀의 남편과의 불륜 상대가 자신임을 말하고 담담히 그녀를 바라본다. 어쩌면 더이상 ‘올바른’ 형태의 친구가 아니더라도 자신 그대로를 받아줄 수 있는지, 아니 받아주면 안 되냐는 듯이. 안나가 자신을 한 대 후려치길 바랐을 수도 있다. 그것은 부도덕한 ‘자신’을 엄중히 벌하는 것일지니. 비뚤어지고 어딘가가 망가졌을지라도 그대로의 ‘주체’로 인정받고 싶었던 처절한 발버둥이다. . 여태까지 그녀의 집(혹은 인생)에 걸어들어왔던 모든 이들이 그녀를 타자화하고 무자비하게 상처줬다면 영화의 말미에 앞으로의 동거를 암시하는 안나만은 홀로 남은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진한 시스터후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등뒤로 손을 마주잡아 무덤 사이를 표표히 헤쳐가는 두 뒷모습을 아주 오래토록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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