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or
Pokot
2017 · Crime/Drama/Mystery/Thriller · Poland, Germany, Czech Republic, Sweden, Slovakia, France
2h 8m

A story about Janina Duszejko, an elderly woman, who lives alone in the Klodzko Valley where a series of mysterious crimes are committed. Duszejko is convinced that she knows who (or what) is the murderer, but nobody believes her.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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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go Jay
4.0
인간만이 오락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인다고 한다. 사냥이라는 행위는 동물 뿐만 아니라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에게 향하는 폭력에 병치된다. 상업성과 블랙 유머까지 가미된 독특한 스릴러 장르물로, 메인 캐릭터 두셰이코를 '나만의 여전사'에 등극시켰다. 폴란드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다. P.S. 여성 중심의 유토피아가 나오는 엔딩이 만약 판타지가 아니고 현실이라면 너무 나이브했다. 그것이 페미니즘 영화의 한계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 2017.12.28 영자원 사사로운 리스트 기획전에서 감상. 상영 후 박진형 (부국제 프로그래머)와 조혜영 (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토크가 이어짐. . P.S. 내가 흠모하는 여전사 계보에서 1위는 존 카사베츠 감독의 <글로리아> (1980)에서 지나 롤랜즈가 맡은 글로리아. 2위는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의 <글로리아> (2013)에서 글로리아 (플리나 가르시아)인데, 우연하게도 카사베츠의 캐릭터와 동명이인이다. 3위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재키 브라운> (1997)의 팸 그리어가 연기한 재키, 4위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1958)에서 미사 우에하라의 유키 공주이다. 5위는 <에일리언> (1979) 시리즈의 시고니 위버가 맡은 엘렌 리플리, 6위는 <아쿠아리우스> (2016)에서 소냐 브라가 연기한 클라라, 7위는 <프로메테우스> (2012)에서 누미 라파스의 엘리자베스 쇼, 8위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신나는 일요일> (1983)에 화니 아르당이 연기한 캐릭터 바바라이다. https://m.blog.naver.com/cooljay7/220474076128
H.W
3.5
복음 : 멸시 받은 내 새끼들의 흔적들로 세상은 변할 것이니.
호호
4.0
자연을 애도하지 않는 사회 안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적인 방법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무정부주의자가 된 주인공과 이를 말없이 지지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는 "에코 페미니즘 스릴러 영화"
이은택
4.0
스푸어는 이상하다. 에코페미니즘스릴러라는데, 요모조모 따져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할만한 에코도, 스릴러도, 페미니즘도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어긋나있다. 일면 만듦새가 박살나 보이는 이 영화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두셰이코가 벌이는 기행과 나치가 벌인 대학살을 병치 시키는 영화라 생각한다. 작금의 폴란드의 보수주의적 폐단은, 아니 그저 폴란드의 현재, 일관되지 않은 인간의 작동원리, 그것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시스템 따위들이 저 두 축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살해대상이 되는 상징적 존재들은 하나의 개개인 혹은 정교한 시스템으로 묘사되지 않고 악덕 시장, 악덕 포주, 부폐한 종교 정도로 굉장히 평평하게 묘사된다. 장르적으로 볼 때 이 영화의 큰 틀은 바로 이 '악인들에 대한 복수극'일텐데, 그 세부는 전혀 이런 큰틀에서의 서사와 별개로 돌아간다. 이 영화의 세부는 오로지 두셰이코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모순된 인간이며, 그녀가 복수라는 목적에 동원하는 수단과 방법이 무엇이며 그녀가 대의 삼은 것들과 그녀의 삶 사이에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보인다. (그렇기에 살해대상이 되는 이들이 가진 상징성을 당장 깊이 사고할 필요가 없어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사고를 촉발시키는 구체적 존재가 아닌 그저 서사 구조상 필요한 도구적 존재이기 때문에, 예컨대 그들은 두셰이코 주변에 블러처리 혹은 포커싱아웃된, 뻔한 배경인 셈이다) 후반부, 블랙아웃과 함께 환영적 이미지로서 유토피아적 유배지에서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두 남녀는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도 서로에 대한 욕구가 여전히 강해보이고, 테러리스트 할아버지는 곤충할아버지가 있음에도 지극정성으로 가사를 돌보며 그녀에게 헌신하고(테이블웨어부터 창가 화단과 평원의 꽃밭까지 라벤더가 매우 강조되는데, 어원은 씻다, 꽃말은 '침묵', 그외 '여자의 정절', '나에게 대답하세요'와 같은 꽃말도 있다고), 곤충할아버지는 이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선지 함께이며, 무엇보다 레아와 비앙카가 존재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두셰이코의 낙원이다. 그런데 난 이 낙원이 영화가 마련한 어떤 구조적 환영처럼 보이더라. 블랙아웃 이후,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그들은 체포되어 처벌 받았을 것이나 이 영화적 현실에서는 그들이 무사히 몸을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러한 도피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두셰이코가 복수를 위해 가져다 쓴 수많은 명분들은 그렇다치고, 애초에 두셰이코조차 레아와 비앙카의 비극에 가담한 가해자 아니던가. 가혹하게 들릴 수 있으나 사냥꾼, 아니 밀렵꾼이 판을 치는 이 잔혹한 마을에서 최소한의 안전망 없이 아이들을 풀어놓는 두셰이코의 방식에는 얼마간의 책임소재가 분명히 있다. 쉽게 말하자면 범죄자들이 판을 치는 마을에서 야밤에 아이들을 내보내는 미친 부모가 있다면 우리는 아동학대자라 할 수 있지 않나. 존 윅의 개가 만약 존 윅의 불찰로 비정한 강호를 떠돌다 변을 당했다면, 존 윅의 복수극에 지금만큼의 무게가 실리지 않으리란걸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복수극은 애초에 복수극의 주체에 몰입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것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어떻게 대의를 형성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 보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마지막 유토피아로 돌아오면, 그들이 유토피아에 도달한 모습은 마치 현실에서도 믿을 수 없을만큼 많은 수의 나치잔당들이 수많은 국가들로 안전하고 부강한 지위를 약속 받으며 망명한 모습과 겹쳐보인다. 그러니까 블랙아웃을 기점으로 두 결과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생략되었지만, 국가 시스템에 의한 처벌. 만약 이것을 영화가 보여줘야 했다면 챕터2로 가야할만큼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블랙아웃과 환영적 공간으로 음영만 두드러질정도로 강조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영화 속에서 구조적으로 마련된 환영적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는 현실과도 무척 닮아있어 더욱 소름끼친다. 하여간 할 얘기 참 많은 영화, 얼핏보면 조악하기 그지 없는데 기묘하리만치 약간씩 어긋나있어서 그 균열을 한번 보게되는 순간 영화 전체가 소름끼치게되는 정말 기이한 영화... 삶과 죽음이 맞닿아있다는 아이러니. 블랙아웃 이후의 시퀀스가 과연 그러했고 두셰이코란 존재 또한 과연 그러했다.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두셰이코가 결코 악인이 아니란 점이다. 악의 평범성이란 테마 위에서 존오인은 악인에게서 평범성을 보았고, 스푸어는 범인에게서 매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악을 발견한다. 이 영화가 무서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홀란드는 두셰이코를 평범한 우리의 얼굴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워딩이 정확하진 않을 수 있다) 파시즘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진부한 말을 이토록 이상하고 기이하게 전달하는 홀란드에게 존경을 표한다...
Ordet
3.5
장르를 비틀어 생태계 위협에 대한 경고, 노년 여성의 실존적 문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을 영리하게 풀어낸 범죄 스릴러. 연쇄 살인범의 살해 동기나 동물을 그려내는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영화들과 궤를 달리 한다.
Yella
2.0
재미도 두서도 없어서 용서가 안 된다. 그나마 클로즈업숏들이 힘 있다.
김은수
1.5
동물은 죽이면 안되고 사람은 죽여도 되는거야? 동물보호를 한답시고 주인공이 입은 오리털 파카가 아이러니의 절정. 다큐영화로 만들었 으면 차라리 눈물이라도 났을텐데..
Kyu Hyun Kim
3.0
늑대인간에 관한 호러영화? 아니면 코넬 울리치 같은 작가가 썼을 법한, 막판에 묘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시골 할머니가 탐정 노릇을 하는 변종 미스테리? 이런 생각을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다 아니고, 동물권보호적 철학을 정면으로 내세운 반종교(카톨릭) 적 사상드라마로 도로롱하고 변신. 감독은 자그마치 명장 아그녜스카 홀란드인데,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연출력과 욜란타 딜레프스카 및 두 명이 담당한 촬영의 감탄스러운 아름다움은 역시 일류. 단, 홀란드 감독의 최고작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감동은 없고, 설움이 배인 냉랭한 동화같은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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