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r in the Dark
Dancer in the Dark
2000 · Crime/Drama/Musical · Denmark, Germany, Netherlands, Italy, United States, UK, France, Sweden, Finland, Iceland, Argentina, Norway, Taiwan, Belgium
2h 20m · PG-13

Selma, a Czech immigrant on the verge of blindness, struggles to make ends meet for herself and her son, who has inherited the same genetic disorder and will suffer the same fate without an expensive operation. When life gets too difficult, Selma learns to cope through her love of musicals, escaping life's troubles - even if just for a moment - by dreaming up little numbers to the rhythmic beats of her surroundings.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28일 후 트릴로지’ 패키지 30% 할인 중!
왓챠 개별 구매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28일 후 트릴로지’ 패키지 30% 할인 중!
왓챠 개별 구매
장동수
5.0
라스폰트리에... 개새끼 ㅠㅠ
제시
5.0
This may contain spoiler!!
amelie
5.0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중 가장 친절하게 멘붕의 길로 인도하는 영화
chan
4.0
- 극단의 비극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 . (스포일러)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인데, 개인적으로 인물들의 수난사를 다룬 영화들을 좋아하는 타입의 관객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나도 사람인지라 극중 인물들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고난을 겪고 좌절을 맛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크게 동요되며 울컥한다. 허나 영화를 다보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대체 왜 이렇게 인물들이 비극을 겪어야 하는 거지?” 비극의 전제에 설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결국 그 순간순간의 감정적 동요가 영화적 감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대게 이러한 영화들은 태초부터 무엇을 보여주리란 목표, 내지는 주제를 설정한 뒤 인물들이 그 목표로 도달하는 길에 좌절과 고난의 장치들을 삽입한다. 그리고 극중 인물들은 영화가 설치한 고통의 장치들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종국에 이르러 내적성장, 혹은 그 반대의 내면적 결과를 맞으며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그리고 그 메시지의 대다수는 희망 혹은 끝없는 절망이다.) 견해의 차가 있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너무 인위적이라는 생각이다. 희망과 절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물들에게 부득불 역경을 안겨주어야 하는지 의문이고, 말하고자 하는 결과 값에 비해 과정이 너무 장대하지 않나 라는 생각 또한 든다.(개인적으로 한국독립영화들을 선호하지 않는 하나의 이유다.) 인물들의 고통이 희망을 노래하기 위한 하나의 정교한 설계라면, 그것이 후반부에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캐릭터를 시종 학대하는 신파극에 비해 뭐가 더 낫단 말인가. . 영화 ‘어둠 속의 댄서’ 또한 위의 입장에서 바라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우선, 위의 견해와는 별개로 영화 자체가 큰 명성에 비해 다소 심심한 구석이었고, 참혹한 현실의 에피소드-> 현실을 잊는 셀마(비요크)의 환상 속 뮤지컬 씬. 의 동어 반복적 전개는 인상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후로 갈수록 물리는 느낌이었다. 인물의 측면에서, 선하게만 보이던 빌(데이빗 모스)을 비롯한 셀마의 주변인물들이 셀마가 곤경에 처하자 갑자기 악의 모습으로 급변하는 모습은 비극을 위해 영화가 편의적으로 인물들을 전환시킨 것만도 같다.(그의 대립항으로 지극히 선한 인물 2명을 놓은 것 또한 마찬가지.) 허나 ‘어둠 속의 댄서’의 결과 값은 그 장대한 과정에 비해도 전혀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결과를 다보고 나면 이러한 시련의 연속은 필수불가결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 점점 눈이 멀어가는 셀마는 선한 본성에도 불구하고 태초부터 비극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다. 하지만 낙천적인 그녀는 볼 수 없다는 비극에 주저앉지 않고 음악을 활로로 삼아 시각의 비극에 청각의 희망으로 대항한다. 그녀는 지독하게도 힘겨운 현실을 뮤지컬이란 대안의 현실 영역으로 끌어들여 극복하려한다. 하지만 그 현실은 점점 더, 그리고 급속하게 셀마의 삶을 옥죄어 온다. 셀마가 빌을 살해한 직후 연습실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시퀀스에서, 현실의 가혹함은 마침내 대안의 영역으로 침범한다. 환상의 영역인 뮤지컬에 현실 속 경찰이 난입해 그녀를 어딘가로 이송함으로서, 그녀는 더 이상 대안의 현실로 그녀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의 고통을 무마할 수 없으며 그 세계에서 마저 자유로울 수 없다. 유치장에 갇힌 그녀에게, 대안의 현실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청각의 활로마저 닫힌 그 곳에서 그녀는 굳게 결심한다. 본인의 아들만큼은 대안의 현실이 필요 없는 곳에서 살게 하리라고. . 아들의 수술 소식을 접한 뒤, 셀마는 그제야 감정을 추스르고 본인의 노래로 아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전한다. 그 전까지의 장면들과는 달리 영화는 셀마가 노래를 부름에도 뮤지컬의 형식을 차용하지 않는다. 마치 이것은 셀마의 환상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려는 듯이. 노래를 부르기 직전에 셀마는 아들의 안경을 전달받는다. 아들의 안경을 전달받은 그녀는 아들이 들을 수는 없지만 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하며 꿋꿋이 열창한다. 그렇게 노래를 하던 도중 그녀는 형을 집행 받는다. 허나 죽음도 막을 수 없는 그녀의 의지는 활자로 되살아나 스크린에 새겨진다. 노래를 들려줄 수 없기에 그녀는 아들에게 노래를 보여준다. . 영화의 중반에, 셀마는 뮤지컬 영화에서 노래가 끝나는 것이 싫어 앤딩크레딧이 오르기 전에 극장을 뛰쳐나온다고 말한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형을 집행당한 셀마는 영원히 노래가 끝나지 않는 영역으로 입장했고 아들은 청각이라는 대안의 현실이 필요 없는 곳에 머무른다. 추악함의 극단에서 본인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트리에 식 미학이 빚어낸 끔찍한 희망이다.
STONE
4.5
카메라가 고정되기를 바라는 소망
sean park
3.5
염세주의가 창조해낸 천사, 하지만 비요크는 창조된 게 아니다, 거기에 그저 있었을 뿐, 잠시 빌려왔을 뿐이다
영화고독발버둥치며본다
4.5
[극장 관람전] 2019년 2월 21일 목요일 재개봉 확정. ...격렬하게 상처받고 싶은 자들을 위한 진혼곡.
박형곤
5.0
상황이 악화될수록 아름다워지는 노래들의 아이러니
Please log in to see mor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