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dwig and the Angry Inch



Hansel Schmidt, is a young East German boy, born and raised during the Cold War in communist East Berlin. In his 20s, he meets Luther Robinson, an older American soldier, who falls in love with Hansel and the two decide to marry, which will allow Hansel to leave communist East Germany for the West. But, in order to marry, Hansel must undergo a sex-change. However, the procedure does not go perfectly and Hansel becomes not a trans woman, but a 'genderqueer', Hedwig. Back in the USA, on their first wedding anniversary, Luther leaves Hedwig for another man. On that same day the news headlines were of the fall of the Berlin Wall and freedom. Hedwig tours the US with her rock band and relates her life story while following her ex-boyfriend/band-mate Tommy Speck (to whom she gives the stage name "Tommy Gnosis"), who stole her songs and rose to fame.
지용
4.0
인정만큼 오만한 단어도 없다. 네가 나의 인정 없이도 존재하듯, 나 역시 너의 인정 없이도 존재한다.
김일국
4.5
This may contain spoiler!!
홍쥬
5.0
여자도 남자도 아닌,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인 헤드윅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는건, 우리 역시 그처럼 언젠간 극복해내야만 하는 1인치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인혁
4.5
뭐랄까, 아이디어가 좋고 잘 만들고 재밌고 그런 영화가 아닌 심장으로 만든것 같은 영화
Joy
5.0
토미 노시스를 용서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지나가는 관객 하나 주제에, 몇년 전 극장에서 특별 상영 비슷하게 본 후로, 몇번이고 되돌려본 이 영화에서 헤드윅도 용서하는 토미를 매번 죽어도 용서하지 못했다. . 헤드윅의 음악은 그저 멜로디와 가사가 아니었으니까. 그 음악들은 모두 동베를린 작은 아파트 고장난 오븐에서부터 라디오로 배워온 헤드윅의 자유고 호흡이었다. 그 음악들은 그가 학대 받고 버림 받으면서도 품에서 키운 그의 철학과 지성, 위엄과 존엄함이었다. 바로 옆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날에 유일하게 헤드윅 곁을 지켜준 것은 그에게 가발을 쓰고 메이크업만 하면 된다고 알려준 음악이었다. . 그걸 빼앗아 간 토미 노시스가 솔직히,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어차피 끝을 아는 영화를 몇번씩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솔직히 슬래셔 무비 빌런들보다 더 싫었다. . 아직도 내 마음은 토미 노시스라는 가상인물에 한 뼘도 자리가 나지 않는데, 리프레이즈 버전으로 돌려받은 Wicked little town, 을 큰 스크린에서 보고 나서야, 그를 용서하는 헤드윅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 한셀이던 때부터 헤드윅은 평생 그 누구도 그의 불운에 진심으로 미안해 한 적 없는 세상에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동베를린에 데려와서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의 의사는 자신의 불법수술과 그 실패에 미안해하지 않았고, 루터는 그가 데려온 헤드윅을 버리고 떠난 것에 미안해하지 않았다. 세계는 뒤늦은 독일 통일 그 안에서 저주를 겪는 헤드윅을 알 필요도 없었다. 딱히 헤드윅이 그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라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분노와 억울함을 음악으로, 사랑보다 오래 남는 강인한 사랑으로 표출했을 때, 그마저도 가져가 버린 사람이 토미 노시스였다. 그리고 그 토미를 쫓느라 더욱 비참해져갈 무렵, 그의 밴드도 그를 떠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거리로 돌아갔을때 세상이 다시 뒤집어졌다. .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조롱처럼 사람을 막 대할까. 그 순간 헤드윅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토미의 노래를 듣는다. . 순서와 시간대를 따져보자면, 'Wicked little town'은 헤드윅이 토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던 시절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다. 당시 헤드윅은 베이비시터, 오랄섹스로 연명하던 성매매자, 트레일러에 남은 하루살이, 가장 외로웠던 시절이었다. 화자인 헤드윅이 설정한 대상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힘들고 아플 때 내게로 와요, 내가 있는 곳은..." 헤드윅이 누군가에게서 듣고 싶었던 노래, Wicked little town. 그렇게 쓴 곡을 그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그는 그 곡을 직접 불렀다. 여러번. 시시한 곳들에서 자주. 토미가 그 곡으로 용서를 빈 것이다. . Wicked little town. 오직 헤드윅을 위해서. . 그제서야. 계속 의연하게 살아오며 세상이 사랑하든 말든 상관 없다고 격렬하기 소리 지르던 마이크를 잠깐 내려놓아도 되었을, 그제서야.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섣부른 통념을 조심스레 믿는다. 그리고 헤드윅의 소리와 치장은 정말 볼륨이 높았다.) . 토미가, 그 노래를 헤드윅을 위해 부르는데, 헤드윅은 표절을 해도 가사 하나도 제대로 못 베끼는 멍청한 토미가, 그나마 자신의 마음을 이해했음에 마음 어느 구석이 탁 풀렸다. 그리고 처음 자신의 공연을 보고, 처음 자신에게 키스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그 자동차 안에서 제안했던 그 어떤 때보다- 깊은 토미의 눈빛이 있었다. . 그게 동정이든 연민이든 혹은 진정한 사랑이든. 드디어 누군가 그의 감정과 허락을 묻기에. 헤드윅은 처음으로 제 음악의 청중이 될 수 있었고. . 나는 그 포인트를 보고나서야 헤드윅이 왜 토미를 끝까지 저주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헤드윅이 자신의 노래를 진정 스스로에게 들려주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 사람들이 헤드윅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처음엔 이렇게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니 보라는 부끄럽고 새디스틱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젠 당신이 누구라도 헤드윅처럼 억울한 구석이 하나는 있을테고. 그에 대해 세상이 좀 미안하게 여겨야 하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한 적이 없을테니까, 헤드윅을 통해 그에 조금이라도 심심한 위로를 받으라고. 진정 끝내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 듣고 싶은 노래를 갚음 받는 그 허망한 위안을 공유하고 싶어져서, 누구라도 헤드윅을 보라고 하고 싶다. . 하지만 아직도 골목 속으로 사라지던 그 슬픈 뒷모습은 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다만 거기서부턴 헤드윅 혼자만의 감정으로 존중하고 싶기도 하다. 최소한 이 뮤지컬이자 영화, 쇼의 주인인 존 카메론 미첼을 위해.
최휘병
5.0
이 영화의 모든걸 사랑함
sei
5.0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JJ
4.0
반쪽짜리 우릴 위로하는 조각난 당신의 다정한 비극 그대가 외치던 1인치 아픔에 우리 역시 각자의 1인치로 공감했다 불완전한 채로 완전한 존재의 아름다움 이 얼마나 열정적인 위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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