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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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Comedy/Drama · United States
1h 47m · PG-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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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rtist on the verge of a career-changing exhibition navigates family, friends and colleagues in the lead-up to her show and finds that the chaos of life becomes the inspiration for more grea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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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5
예술은 섬광 같은 마법이 아니라 그 모든 부대끼는 일상의 깃털 같아서.
STONE
4.0
가장 일상적인 고뇌가 담긴 예술가의 영화
동구리
4.0
어떤 영화는 자신이 가진 것을 쉬이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오레건의 아름다운 풍경도, 예술에 관한 치열한 고민도, 어딘가 갈등이 있는 듯한 가족의 과거도 이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자신이 어떤 영화인지를 철저히 숨기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예술에 관한, 가족에 관한, 직업에 관한, 일상에 관한, 친구에 관한, 동물에 관한 것임과 동시에 그것을 벗어난다. 영화는 종종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카메라 같은 필치로 예술학교의 학생들을 관찰한다. 도예, 조각, 회화, 섬유공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품을 생산하는 학생들, 카메라는 얼핏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맹렬한 그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예술학교에 일상에 불안감을 도입하는 것은 리지(미셸 윌리암스)의 존재 자체다. 아니, 영화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그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다분히 평화로운 일상은, ‘리지’라는 개인에게 집중하자 미묘한 투쟁의 장으로 변화한다. _ 이 투쟁의 장은 사실 보잘것없다. 학교 동기이자 작가인 집주인은 고장 난 온수기를 고쳐주지 않을 뿐더러, 우연히 구조한 비둘기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으면서 리지에게 맡기고 다른 일을 한다. 각각 예술가인 가족들은 각자의 생활영역에서 스치며 서로의 삶의 가볍지 않은 파문을 남긴다. 예술적 작업에 관한 고민은 드러나지는 대신 일상적 상황들 속에 갉아 먹힌다. 리지는 완전히 자리 잡은 작가가 아니다. 어쩌면 그의 사정은 예술학교의 다른 학생들보다 나아 보인다. 아버지는 도예를 하던 예술가고, 어머니는 학교 행정실에서 일한다. 자신도 어머니를 따라 행정실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다. 예술적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학교에 새로 부임한 강사는 그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한다. 집주인으로 있는 친구의 집은 리지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수리한 것으로, 그 덕분에 값싼 월세로 살아간다. 이 영화는 리지의 예술적 실천, 작가적 열망, 그것을 얻기 위한 쟁투를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예술, 가족, 친구, 생계, 동물, 모든 것은 비슷한 비중으로 리지의 삶 속에서 다뤄진다. 그러니까 이 애매한 정도의 삶,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해나가고 있는 삶, 프로라기엔 부족하지만 아마추어라 불리기엔 인정받는 시기, 어쩌면 예술과 연관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중간단계가 이 영화의 중핵이다. _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은 그 고양이가 공격했던 비둘기를 쓰다듬는 손이 된다. 핸드빌딩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던 손은 행정실의 컴퓨터로 사무를 보는 손이 된다. 리지의 몸, 특히 리지의 손은 그가 일상을 영위하는 방식이자 삶을 둘러싼 불안감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감각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라이카트에 따르면 <쇼잉 업>은 “천재라는 개념을 해체하는(deconstructs the idea of a genius)” 영화다. 리지의 개인전 오프닝에 온 아버지는 자신이 영감을 받는 순간을 떠벌리지만, 그곳에 전시된 리지의 작품들은 하루하루 일상을 견뎌내며 연마된 기술의 결과물이다. 예술가가 예술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담아내던,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노동을 하는 예술가들을 어딘가 안쓰럽게 바라보던 시선들을 이 영화는 해체한다. 라이카트의 영화적 여정, 정착과 떠돎, 연대를 바라며 내미는 손길, 사랑과 우정이 노동과 맺는 관계를 이야기해온 라이카트는 이번 영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비신
3.5
고통과 번뇌, 숭고함마저 묻어나는 예술(인)의 삶.
양기연
4.0
리지는 비둘기가 날개를 다친 것이 자신의 고양이 탓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후부터 리지는 계속해서 주변에 "비둘기가 날개를 다친 것 같은데 조가 발견했다"고만 말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가공된 서사로 대체한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 리키가 비둘기의 날개를 물어뜯은 운동, 리지가 비둘기를 쓰레받이에 받아 창밖 화단에 내다버리는 운동, 비둘기의 다친 날개 아래 새겨진 그 '운동'들은 비둘기의 날개가 붕대로 '고정'되는 순간 감추어진다. . 켈리 라이카트는 영화 내내 단순히 메인 캐릭터 격인 리지와 조가 각자의 작업을 하는 숏들뿐 아니라, 서사상 큰 의미가 없는 인서트 숏조차도 '고정'된 형태의 예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운동'의 흔적(주로 손의 운동)을 끊임없이 기록한다. 그 각 예술 작품이 완성되면 그 '고정'된 형태 아래로 그 예술가들의 고생 어린 '운동'들은, 그리고 그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로 가득했던 그 밖의 모든 운동들도 다같이 감추어질 것이다. . (스포일러) . 켈리 라이카트는 이 영화에서 예술 작품을 완성하려는 예술가들의 운동과 예술 작품의 고정된 형태를, 비둘기와 관련된 고양이와 리지의 운동과 비둘기의 날개가 붕대로 고정된 형태를, 멈춰 있는 숏과 움직이는 숏을 끊임없이 대비시킨다. '고정'된 '완성'의 순간에 이르기 위해 수없이 겹쳐지는 '운동'의 과정 속에서 어떤 것들을 내 통제 밖에 있어 나를 끝도 없이 괴롭히더라도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마땅히 인정받고 싶은 노력의 운동이 감춰질까 아등바등하면서도 또 적당한 치부의 운동들은 감춰지길 바라는 이중적 욕망이 넘실거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일상과 예술은 어느 정도 겹쳐 있는지도 모른다. . 아무리 밉상이어도 기어이 가족은 다같이 모여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은근히 보듬고, 불만으로 가득했던 인간 관계는 다시 보니 또 애틋함으로 가득하고, 실패작으로 보였던 작품도 품음직해 보일 때, 고정되었던 비둘기의 날개는 다시 운동하기 시작하고, 카메라도 그 비둘기의 운동을 따라 유영하기 시작한다.
주+혜
4.0
'균열-봉합-연결'의 흐름이 개인, 비둘기, 창작, 우정 등의 수준에서 반복된다. 이는 태에서 떨어져 나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자연의 흐름과 같다. 바로 어제 대단한 인용구를 읽었는데, "The 'EARTH' without 'ART' is just 'eh'."였다. 예술이 지구의 일부라면 흙을 만지는 노동과 예술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보여지기까지의 일은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의 연속이고, 보는 누군가가 있을 때에 가능하다. 홀로 합일을 이루는 상태를 넘어 타자/다른 존재로까지 잇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Dh
3.5
대지 위 고독한 영혼들의 날갯짓 #🕊 #CGV
mekong1922
4.0
초반부터 타이어를 끌고 가는 조, 스케이트 보드 바퀴들 그렇게 빨리 달려가는 세상 속 쪼그려앉아서 봉투를 뒤지고 있는 리지. 그는 바쁘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세상 속 경직된 예술인 ‘조각’을 하며 나의 부족한 작품과 면들을 완성시키고 싶어한다. 반면 조는 그 예술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자유로워 보이는 존재지만 세심한 뒷면에는 관심이 없다.(리지, 비둘기) 어쩌면 물과 기름같은 존재인 둘에게 영화는 비둘기라는 자연의 수순을 제시한다. 전시전까지 여전히 냉온수처럼 온도를 지니고 있는 둘이다. 화해의 의미로 조는 비둘기를 전시장에 가지고 온다. 여전히 전시장 내는 개판이다. 대화 내용은 전부 자본과 속물에 관한 이야기와 뒷담, 또 아버지는 딸의 전시를 대충 둘러보곤 자신의 무용담 얘기에만 집중한다. 이런 어른들의 세상 속 아이들은 어른들이 묶어놓고, 조와 리지 사이에 묶여있는 붕대를 풀어준다. 그리고 자연과 수순을 잊어버린 세상을 마음껏 비행한다. 그 야생적이고 본능적인 비행은 세상에서 배제되고 자연의 목소리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숀만이 받아들이고 자연에 놓아줄 수 있다. 이 시점에도 리지와 조는 수순을 여전히 지배하려고 한다. 비둘기를 따라가고 자연을 따라간다. 그 속에서 둘은 깨닫는다. 쪼그려서 앞을 보지 않고 조각을 하거나, 타이어를 찾으며 뒤는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다가가는 인물들은 비둘기의 운동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본다. 답답하고, 불완전하지만 또 애증과도 같은 관계에서 허우적 대고 있을 때 비둘기는 의연하게 날아오를 뿐이다. 그를 무력하게 지켜본다. 비로소 이제 우리는, 조금은 자유롭다. 불완전해 보이는 조와의 관계, 반쪽이 타버린 나의 조각상, 혼란스러운 가족과의 관계 리지는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예술의 여정과 원시적인 연대에 관한 엮음, 라이카트는 이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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