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 of the Road
Im Lauf der Zeit
1976 · Drama · West Germany
2h 55m



Itinerant projection-equipment repairman Bruno Winter and depressed hitchhiker Robert Lander - a doctor who has just been through a break-up with his wife and a half-hearted suicide attempt - travel along the Western side of the East-German border in a repair truck, visiting worn-out movie theaters, learning to communicate across their differences.
다솜땅
4.0
혼자여야할 남자, 떠날 이유가 있었던 남자가 뭉쳤다. 함께하며 흐르는 시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만, 그것도 헤어짐이라는 조건을 말없이 되뇌이는 시간.. 버스와 기차로 나뉘는 그들의 길에 또 다른 여정이 있으리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만날 날이 있겠지.. 몇몇, 독특한 장면들이 각인효과를 발휘했다.. 굳이 안넣어도 될 장면도… 윽 디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2.7.28 (838)
Dh
3.5
정처없이 흘러가는 시간속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든 남자의 방랑기 #만남과 헤어짐
이승빈
3.5
우리는 단지 공간을 통해, 혹은 공간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미미하게나마 그것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공간과 장소는 적극적인 물질적 실천을 통해 출현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그런 (실천적) 움직임은 단지 공간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시간적인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 이동과 관계 만들기는 시간을 점유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만들어간다. … 표면으로서의 공간을 가로질러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궤적들을 가로질러 여행하 는 것이다. -도린 매시 (2005). 공간을 위하여.
뒤죽박죽
4.0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영화였고,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정말정말 지루했다. 속으로 '아니 그러면 시간 속에선 결국 어떤 의미도 상쇄되고 그냥 무의미만 남는단 말인가??? 그럼 뭐 어쩌란 말인가???' 라고 이 영화를 저주하기까지 했다. 사연은 펼쳐지지 않은 채 개인의 미묘한 표정 속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져버리고, 그의 파편들은 다른 남은 조각을 불러오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수명을 다해 내버려진다. 거의 전위에 가까워보이는, 이 무의미의 장을 의지적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 로드무비를 어떻게 견디나. 길은 끝이 없고, 대화보다는 침묵이 우세한 이 여정. 심지어는 두 주인공의 관계마저 미진하기만 하다. 그런데 나의 저주는 머쓱할 정도로 그냥 영화가 의도한 체험의 내용을 읊은 것에 불과했다. 무의미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로 삼는다고 해도 변함 없이 저주하고 싶었는데 후반부가 갑작스럽게 몰아쳐서 마음을 바꾸고 말았다... 심지어는 상영관을 나오며 쫌 좋다고까지 생각해버렸다. 정말로 이 영화는 주인공이 중얼거리는 대사처럼, '쓰는 동시에 지워버리는 글쓰기'를 행하고 있었다. 길이라는 텅 빈 공책 속의 보이지 않는 선들을 따라, 쓰면서 지우고, 쓰면서 지우고. 의미를 두려워하고, 나는 결코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무력해하면서 여정을 지속해 나간 것이다. 새로운 사건도 의미도 관계도 감당해내지 못 할 것이라고 빈 페이지를 두고 생각하면서. '진정한 영화'를 틀기 위해 아무 것도 틀지 않고 기다리는 하얀 스크린의 극장처럼. 게다가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의미체계를 제대로 전복하기도 전에 로베르토가 방문한 나이든 부친은 거의 정지상태다. 경멸에서 그나마 가능했던 의미조차도 제대로 길어올릴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브루노의 어릴 적 집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렸다. 과거는 더이상 거주할 곳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갈 곳 없이 길 위에서 그냥 부유할 뿐이다. 그럼에도 국경의 끝에서 던져지는 후반부의 짧은 대사들은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적인 정서가 팽배한 세상에 나름의 희망을 암시한다. 로베르트는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묻는다. '뭐하고 있니?' - '제가 본 것들을 쓰고 있어요.'- '뭐가 그렇게 쉽니?' -'파란 하늘. 기차. 가방을 든 남자'-'그 공책을 넘겨주면 이 가방을 주마'-'좋아요.' (대충 이런 뉘앙스인데 이 대화가 너무 좋았다. 뭐가 그렇게 쉽니.)
zerkalo
4.5
70년대 서독의 젊은 세대, 그들은 한곳에 머무르며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대신 유랑을 자처한다. 그들에겐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한 늙은 극장주처럼 그리워할 과거가 없다. 그들의 과거는 섬 위에 놓인 브루노의 옛집처럼 안에서 잘 수도 없을 정도의 폐허나 다름없으며, 그들은 그 원인으로 아버지 세대들을 지목하며 증오한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웃을 수 있는 어린이들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다. 종반부 한 어린이에게 뭐가 그리 쉽냐고 묻는 로베르트의 질문엔 분명 부러움이 담겨있지만, 그와 브루노는 어느 극장에서 그림자놀이로 아이들을 웃겨준 뒤 분노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변이 밝을수록 더욱 초라해진다. 트럭을 타고 부유하는 브루노와 로베르트를 둘러싼 국경 주변의 풍경은 아름답고 광활하며, 그들과 늘 함께하는 밴드 음악들은 흥겹고 화려하다. (모든 로드무비가 그렇겠다마는, 이 영화에서 특히 굉장한 풍경과 음악은 사실상 이 영화의 전부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그들의 황량함과 고독함이다. 브루노와 로베르트의 여정은 무려 세 시간에 달한다. 그 끝엔 과연 희망이 담겨 있을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빔 벤더스의 로드 무비 3부작 중 혼자 희망적인 <도시의 앨리스>(1974)은 나머지 둘과 궤를 달리한다.) 만약 마지막 신이 없었으면 낙관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삶에 변화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강조하던 로베르트가 "모든 것은 변해야만 해."라는 작별의 쪽지를 남기고 브루노를 떠난 뒤, 이를 본 브루노가 "좋아, 최선을 다해 보지."라 대답하기 때문이다. 곧이어 각각 기차와 트럭을 탄 채 서로 만남과 엇갈림을 반복하는 장면에서도 미소를 짓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뒤따르는 마지막 신에서 브루노는 영사기를 수리하러 한 극장에 와있고, 그곳의 극장주는 영화를 더이상 상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착취에 불과한 요즘 영화를 상영할 바에 차라리 극장이 없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여기서 극장주가 말하는 '착취'는, 일전에 브루노가 한 여인과 하룻밤을 함께했던 극장에서 스스로 틀었던 광고 영상에서 부각되던 잔인성, 액션과 섹스(brutality, action, sex)로 대표된다. 또한 이는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즉, 극장주가 말한 '요즘 영화'는 곧 브루노이며, 극장주는 그의 불필요함을 논한 것이다. 극장주의 말을 가만히 듣다 대답하지 않고 나온 브루노는 자신의 트럭에 올라탄다. 그리고 어떤 종이를 꺼내어 (아마 그가 가야 하는 극장들의 목록이 적힌 일정표가 아닐까 싶다) 찢기 시작한다. 이는 영화의 시작에서 차를 타고 강물로 뛰어들기 직전에 사진을 찢던 로베르트의 모습과 일치한다. 요컨대 종이를 찢는 브루노의 모습은 그가 세상에 고하는 안녕인 것이다. 이윽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카메라는 극장의 간판을 프레임에 담는다. 간판의 네온사인 일부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공교롭게도 "E, N, D"라 적힌 세 글자만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잔인한 "끝"은 정처도 욕구도 없이 방랑하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 가라앉을 젊은 세대만을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끝"은, 그들과 함께 사라질 시네마의 종말이기도 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70년대에 사람들은 필름 영화와 종이 신문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시대가 오리라 예상했을까?)
sendo akira
4.5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해야 할 그들과 나를 위해 십자로의 길에서 헤어져야 할 필연적 운명일지라도 "낯선 이"가 빨리 판타지처럼 내 곁에 나타나 주기를!!
보정
3.0
난 잘모르게꼬... 진짜로... 똥 싸는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다...
새까칩
3.0
다 보여 준다. 하지만 오즈와 달리 먹는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Please log in to see mor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