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iko
こちらあみ子
2022 · Drama · Japan
1h 44m · G

Amiko lives in Hiroshima, Japan. She is a little different from other girls. Her family consists of her father, pregnant mother, and an older brother. Her father is nice to other people and her mother teaches calligraphy. Amiko has classmate Ri-kun, whom she likes. Amiko is honest and naive. Her behavior sometimes makes people feel embarrassed.
이동진 평론가
3.5
닿을 곳을 찾지 못한 구조신호가 아프게 웅웅거린다.
신상훈남
4.5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 <여기는 아미코>는 아무런 응답을 해주지 않는 타인들에 대한 ‘혐오’ 같은 것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혐오하는 법을 모른다. 그 응답이 없는 고요한 무전은, 아미코는 언제 어디서든 기다리고 있고, 그것에 기대하고 있다는 걸 내포하고 있다. 누구보다 ‘아기와 노는 연습’ 같은 걸 하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환청을 듣는다. 듣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의 목소리를. 이제라도. 아미코는 ‘원함’에 있어서 의존적이다. 카드패를 섞어달라고, 엄마에게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니까. 그 의존적인 소망이, 환청이 되어 들린 것이다. “맛있지?” “그저 그래. 눅눅해.” “그래도 먹어.” (너가 먹었으면 좋겠어) 아미코는 자신이 하는 말에 (직접적인 표현)을 숨긴다. 그 숨김은 오해가 되기도 한다. 노리에겐 ‘지겨움’이, 엄마에겐 ‘충격’이, 아빠에겐 ‘귀찮음’이, 오빠에겐 ‘배신감’이. 하지만 그 말을 들여다 보면 그 말들은 ‘고작 몇 마디’지만 이다지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 명이라도 그 말을 알아들었다면, 아미코는 혼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자꾸 마음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이 영화는 나를 끊임없이 아프게 만들었다. “기다려준 거야?” “응.” (엄마가 걱정돼서) “엄마를 위해 마술을 준비했어.” (어서 보고 기운내야 해) “태어났는데 죽었어. 글씨 좀 써줘.” (슬프니까) 이 영화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전체관람가가 아니다... 아이가 처해져 있는 환경은 분명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아미코의 코뼈가 부러지는 장면과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오열을 하는 장면들은 호러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장면들이다. 이 영화는 어린이가 만든 영화가 아니다. 어른은 어린이의 시선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삶을 살면서 그 마음을 대부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네가 보기엔 난 뭐야? 오빠야? 괴물이야?” “오빠야.” “맞아. 아빠는? 아빠야? 안경잡이야?” “아빠야.” “그럼 아까 만난 사람은 누구야? 엄마야? 점박이야?” “엄마야.” “그래, 그런 거야.” 코타는 이미 너무나도 변해버려 아미코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그녀의 귓바퀴를 괴롭히는 소음을 해결해준다. 그에게도 남아있는 거다. 유년시절 함께 있었던 추억, 힘들게 따서 아미코에게 건넸던 신 열매, 그것을 먹고 시다고 하면서도 좋아하는 아미코. 그녀는 병실에 누운 채 그 사랑스러운 과거를 회상한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염원한다. 현실이 싫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좋았던 건 좋았던 거니까. 아미코는 아직도, ‘좋은 것’을 바라보고 싶은 어린아이니까. “이 젓가락 코타가 준 거야. 얼른 먹고 얼른 건강해져야 한다고. 코타가 준 젓가락으로 아미코랑 같이 만든 도시락을 먹으니까 엄마는 정말 행복해.” 아미코의 엄마는 뭐든지 ‘억지’였다. ‘억지로’ 아미코를 사랑하려고 하고, ‘억지로’ 도시락을 준비하고, ‘억지로’ 아미코에게 덕분에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억지’는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진심’이 아닌, ‘가짜 태도’였으니까. 모든 게 무너져내리고 나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아미코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때다 싶어’ 자신이 늘 하고 싶었던 무관심을 일삼는 것이다. “응답하라. 여기는 아미코.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까. 다들 말을 안 해줘. 매일, 항상 그래.”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이 영화의 명장면] 1. 이사를 가는 아미코에게 무엇이 좋고 싫은 건지, 아무도 아미코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아미코는 말을 정말 잘 듣는 아이인데. 냄새나는 아미코 옆에서 유일하게 도망가지 않던 아이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냄새가 난다고. 너는 지금 따돌림 당하고 있는 거라고. 싫어한다고. 아미코는 그제서야, 어떤 점이 싫냐고 물어본다. 희한하게 그 물음엔 대답해주지 않는다. 아이는 아미코를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싫어하는 이유가 백억 개일 리는 없으니까. “너의 싫은 점? 백억 개 정도 있어.” “싫다면서, 어디가?” (왜 날 싫어해? 난 널 싫어하지 않는데) “그건 나만의 비밀이야. 이사 가서도 잊지 마.” 2. 엔딩 아미코는 유령들을 본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공간을 벗어나 아미코가 꿈꾸는 세계에선 유령들과 노래를 부르며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유령들은 아미코를 좋아해주었다. 그래서 손짓한다. 같이 가자고... 같이 가면 참 즐겁겠지. 항상 놀아주겠지. 그러면서도 가면 안 돼. 안 된다고, 관객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기도한다. 나는 아미코를 위하는 척, 누구보다 괜찮아하던 아미코를 간과하며 멸시하고 있었다. 무턱대고 그 아이를 동정해버렸다. 아미코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아미코의 손인사는, 마치, “괜찮아. 난 괜찮아. 그러니까 나를 부르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얘야, 아직 물이 차갑단다.” “괜찮아요!” (정말로요) 마지막 아미코의 괜찮다는 말엔 많은 것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로요?) (시원한데요) (더 빠지고 싶어요) (행복해요) (늘 그랬어요) 그래... 행복했던 시절 추억하면서 사는 거지 현실이 어떻든 남이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든 행복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아미코야 그렇지? “그건 쿠키였잖아.” “좋아해.”
STONE
3.5
때로는 동화가 아니라 응답이 필요하다.
뭅먼트
1.5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던 순수와 상상의 터널 속으로 무한히 빠져드는 물음표, 물음표, 느낌표.
조조무비
2.0
#🎒 조금 별난 아이뒤에 숨은 최악의 부모.
simple이스
3.5
가장 안타까운 건 죽일 기세로 화내거나 목청 터져라 울지 않았다는 것.
사운
4.0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독 유별났던 아이가 공감이란 걸 깨달을 때. 공감이란 건 상호작용의 결과값이었다는 걸 체득할 때.
JY
3.0
이 특이하고 안타까운 시선을 특별하게 담아낸 주인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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