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President
노무현입니다
2017 · Documentary · Korea
1h 49m · PG-13
In 2002, the Millennium Democratic Party elects the first presidential candidate by introducing a popular election system. While politicians like Ki Ra-seong have joined the election, Roh Moo-hyun the very last candidate with only 2% approval, throws in his hat. This is the story of a nation and the nation he 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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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0
그 에너지, 그 분노, 그 슬픔.
999
4.5
진심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 너무 그립다.
Dilettante
3.5
2002년 노무현 대선 후보 출마 연설 중,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 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던,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던, 패가망신했던, …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던’ 그는 그의 말이 당신에게도 해당될지 알고 있었을까. 내가 어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2002년 당시의 민주당 경선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같은 민주당이었던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죽이기의 수법으로 ‘색깔론’을 사용한 것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2002년의 색깔론, 그리고 2017년의 빨간 넥타이를 맨 사람의 색깔론. 과연 15년 동안 대한민국은 진보했는가, 퇴보했는가? 비인간적인 사람이 늘 있었고, 계속해서 더욱 늘어가는 이 시대를 살면서 ‘인간 노무현’을 존경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할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와 관련해 영화에서 유시민 작가의 한마디가 참 와닿는다. 실로 ‘노무현 정신’이 만연한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 대한 애도를 멈출 것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정의’를 가르친 선생 노무현, 그는 그것만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인간’이다.
윤제아빠
5.0
시작한지 5분만에 눈물이 맺힌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기신 유산이 이렇게나 큰지 잠시 잊고 살았다. 지켜야한다 노무현의 세상을...
창민
3.0
노무현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무현 정부도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노무현 정신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약자에 대한 연민, 권위주의 타파, 지역주의 극복, 그리고 우리 삶에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해 계속 투쟁했고, 불의를 깨진 못했어도 깨야한다는 정신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정의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깨달아서 죄송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노여워하지는 마십쇼. 당신으로 하여금 그 꿈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게 당신이 말했던 운명일 것입니다.. [리뷰] http://naver.me/xXAAfYRl
장태준
3.5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찡찡
5.0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영화로라도 오랫동안 보고있고 싶었다 너무 그립고 보고싶다 이렇게나마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손정빈 기자
3.5
"생존 아닌 실존하려 했던 노무현" 다음은 이창재 감독 인터뷰 -기획은 2014년 10월,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간 게 지난해 4·13 총선 직후였다. 기획 당시는 물론이고, 촬영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촬영 도중에도 개봉을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이 작품의 미래가 불확실한 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정말 극적인 개봉이 아닐 수 없다. 소감이 어떤가. "얼떨떨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적은 개봉관이더라도, 아주 적은 인원이라도 이 영화를 보고 마음 속에 응어리진 부분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메이저 개봉관에서 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니.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할 정도다." -시사회 반응이 좋았다. 울고 웃는 분위기였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반응이 매우 좋았던 걸로 알고 있다.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도 꽤 있고, 흥행을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음…. 이전에 했던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참 쉽지 않았다. 소재가 호스피스 병동('목숨'), 비구니('길 위에서') 이랬으니까. 촬영하다가 막히면,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신들이, 여러분들이 나를 통해서 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 단, 할 말이 없다면 날 멈추게 하라.' 이번에도 그렇다. 당신께서(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그렇게 하고 싶은 것 같다. 당신이 이렇게 보이고 싶은가보다, 생각한다." -'그렇게 보이고 싶은가 보다'라는 말의 의미는 뭔가.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처럼 만든 영화다. '노무현 영화'이니까 노무현처럼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스타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일 것이다. 감독은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나. 나 역시 그렇다. 더 이성적이고, 더 분석적이고,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그게 내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다르다. 당신은 솔직한 사람이었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려운 말 싫어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려는 사람이었으니까, 영화도 시작하자마자 이화춘씨 인터뷰로 팡 때리고 시작하지 않나. 그런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아야 했다.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당신 영화 맞냐고 하더라. 하지만 그게 내겐 더 칭찬이다. 이창재 같은 게 아니라 노무현 같은 게 '노무현입니다'가 돼야 했다." -'노무현' 그 자체가 연출 방식이었다는 말로 들린다. 영화에는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다. 그리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다. 다양한 감정들이 러닝타임 내내 교차한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 과장된 감정들이 작품 안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닐지 우려하기도 했다. "인터뷰이 중 많은 분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참 힘들어했다. 엉엉 우는 분도 많았다. 그렇게 만들 수도 있었다. 우는 모습 줌인하면서. 그런데 노 대통령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건 노무현스럽지 않다. 조금 울 수는 있어도, 통곡하며 슬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웃음)" -이미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창작자다. 자신만의 세계도 구축했다. 꼭 이 작품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 아닌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노무현은 말해서는 안 되는 단어였으니까, 작품 활동에 피해가 갈 수도 있었을 거다.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결정적인 트리거(trigger)가 있었던 건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과거에 당신을 덮어놓고 비난했던 적이 있었다. 미안했다. 참 미안했다. 그래서 노제(路祭) 때 안 입던 양복을 입고 나갔던 거다. 그런데 그걸로 해소가 안 되더라. 시중에 나온 노무현 관련 책을 문재인 대통령이 쓴 '운명'까지 다 읽었다. 그때 좀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뭔가 비겁한 것 같더라. 노 전 대통령이 죽은지 4~5년이 지나고 있는데,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영화 하나 없는 거다. 아무도 못하고 있었다. '변호인'이 전부인데, 그건 노무현의 시작을 그린 작품이지 않나.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삶을 담을 필요가 있었다. 사실 '목숨'(2014) 전에 하려고 했는데,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목숨'을 끝내놓으니까, 그 작품을 통해 워낙 극한에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난 뒤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두려움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노무현의 무엇을 담고 싶었나. "인간 노무현이다. 노무현을 카메라 앞에 앉힐 수는 없으니까, 주변 분들을 인터뷰하기로 한 거다. 그 분들을 통해서 노무현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그런 기록들이 글로 쓰여진 건 있기는 한데,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관한 깊이 있는 영상은 없다시피 하다. 인터뷰이 한 분 한 분이 모두 노무현으로 보이는, 노무현이 되는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답을 찾았나. "어떻게 한 마디로 말하겠나. 그래도 하나를 꼽아본다면 실존적이라는 거다. 사람이 어려우면 생존을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평생 실존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 그건 바로 진실된 사람이었을 거다. 그 부분에 있어서 노 대통령은 결벽증적이었다. 인터뷰에 그런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하나 소개해줄 수 있나. "극 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유서를 읽는 장면이 있지 않나.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그게 노무현이다. 진실되지 않은 실존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욕망이 강하니까 절대 남에게 신세를 못진다. 쓰지 못한 인터뷰 중에 노 대통령 동창이 말해준 일화가 있다. 노 대통령이 사시 공부하려는데, 책 살 돈이 없어서 한동안 울산에 가서 노가다를 했다더라. 4~6개월 정도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고향에 내려온 거다. 그때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함바집에 밥값을 못내고 왔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일인데, 당신은 돈을 벌어서 기어코 갚았다더라. 이런 거다. 그렇게는 자기가 못 사는 거다. 단순히 밥값이 문제가 아니고 뭔가 거짓같은 느낌,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참 많이 고통스러웠을 거다." -오프닝 시퀀스 후 첫 번째 인터뷰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노무현 변호사 시절 그를 감시했던 역할을 한 안기부 요원 이화춘씨 인터뷰였다. 왜 그가 가장 먼저 나와야 했나. 문재인도 있고, 유시민도 있고, 안희정도 있고, 이광재도 있지 않나. "누가 가장 먼저 나와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인터뷰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을 고문하듯 붙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말씀하시더라. 그렇게 인터뷰가 다 끝나고 헤어졌는데, 문 대통령이 주차장까지 갔다가 다시 인터뷰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끔 노무현 대통령 꿈을 꾼다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도 그렇고 아주 한가롭게 있을 때, 혹은 아주 지쳐있을 때, 가끔 노무현 대통령이 찾아온다고. 그런데 노 대통령이 한 마디도 안 하고 그냥 웃기만 한다는 거다. 너무나 반가운데 말을 안 하더라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때 문 대통령 표정도 정말 안 좋았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첫 장면으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노무현이라는 인간을 축소하는 것 같았다. 문 대통령은 평생 동지였으니까 그럴 수 있지 않나. 그런 아픔과 서글픔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화춘씨는 당신을 감시했던, 사실상 적이었다.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분까지 친구로 만들었다. 적이기 이전에 그를 인간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리서 시작해야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 또한 기억에 남는다. '노무현입니다'라는 제목에 참 잘 어울리는 엔딩 시퀀스였다. 노 대통령이 콧노래를 부르며 홀로 거리를 걷는 그 모습에 참 묘한 감동이 있더라. 왜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마지막이어야 했나. "가장 끌렸던 장면이다. 무조건 이 장면이 엔딩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집이 잘 안 되고, 일이 잘 안 될 때 이 장면을 봤다. 그리고 참 많이 울었다.(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이 작품을 어디로 끌고 가야하는지 다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잘가요 노무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표가 그거다. 인간 노무현을 제대로 보여주고, 이제 조금씩 그를 보내는 것. 이 작품이 그 시작이 됐으면 했다. 정말 잘 보내주고 싶었다. '안녕히 가세요', 이 느낌을 엔딩에 담고 싶었다." -이번엔 인터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클로즈업이 쓰였다. 결국 인터뷰이의 미세한 감정을 담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제대로 본 건지 모르겠지만, 유시민 작가의 눈에는 계속 눈물이 맺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 당시 유 작가에게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봤다. 그래도 우리는 뷰파인더로 보고 있으니까 다 보인다.(웃음) 실제로 눈물이 맺혀 있더라. 흐르지는 않았다. 사실 눈물 흘릴 만한 질문이 꽤 있었다. 유 작가는 끝까지 참았다. 참는 것처럼 보였다. 참 독하다고 생각했다. 제일 독한 인터뷰이였다. 본인 말처럼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고, 분노가 남아있어서 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반대로 문 대통령의 그런 침통한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세 시간 정도 진행했을 거다. 물어볼 수 있는 거 다 물어봤다. 뒤에 있던 약속을 취소했고, 마치고 나서도 빠진 게 있으면 또 부르라고 했다. 최우선적으로 해주겠다고 했다. 눈물도 보였다. 두 번 정도 눈물을 보였는데, 눈물이 흐르면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닦고 오더라. 유 작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유 작가가 독했다면, 문 대통령은 자기 절제가 매우 강한 분처럼 보였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노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결국 문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인터뷰이들은 문 대통령을 어떤 사람이라고 했나. "특히 노무현·문재인 두 분이 변호사를 할 때 곁에 있던 분들이 노무현 이야기 못지 않게 문재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했던 분의 이야기다. 두 분은 일곱살 차이다. 오래 함께 일했으니까 충분히 형님 동생 할 수 있는 사이였는데, 노 변호사가 평생 말을 편하게 안 했다고 하더라. 항상 깍듯이 존대하고, 문 변호사가 말 편하게 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분이 처음 동업할 때 당시 잘나가던 노 변호사가 초짜 문 변호사와 수입을 5대5로 나누자고 한 일화는 유명하지 않나. 노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처음 보자마자 알아봤다고 생각한다. 첫 눈에 나의 동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을 놓지 않고, 수입도 반으로 정확히 나누고 싶었던 거다." -평생 동지였지만,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다른 사람 같다. "그 사무장님이 해줬던 얘기다. 두 분 사무실이 마주보는 구조인데, 한 쪽에서는 큰소리가 나고 욕설이 들리는데, 다른 한 쪽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게 조용해서 가끔씩 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는 거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일을 시킬 때 사람을 사무실로 부르는 게 아니라 꼭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노무현입니다'는 굳이 나누자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각종 노무현 에피소드 인터뷰와 2002년 경선이다. 전자는 인간 노무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고, 후자에는 정치인 노무현도 함께 담겨있다. 의아한 건 정치인 노무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왜 하필 경선이냐는 거다. 다이나믹한 걸로 따지면 그 해 대선도 만만치 않았고, 대통령이 된 후 탄핵 정국도 있었다. "기획의도는 두 가지 단어였다. 노무현이라는 사람과 시민이다. 대선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한 예로 정몽준과의 단일화 문제를 놓고도 민주당 내에 정말 많은 의견들이 있지 않았나. 그리고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민해야 했던 노무현이 있다. 인간 노무현보다는 정치인 노무현이 보이는 상황이다. 또 시민도 사라진다. 그러나 경선은 다르다. 오직 저 두 단어로 표현 가능하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그들의 힘으로 꼴찌가 1등이 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시민의 힘만으로 대선 후보가 된 사례라고 말한다.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는 다시 보기 힘들 거라고도 한다. 이 시민혁명이 곧 노무현이었으니까, 그 정신이 가장 잘 살아있는 경선이 중심이 돼야 한 거다." -당시 경선 자료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정말 후회 많이 했다.(웃음) 대선 자료는 정말 많다. 그런데 경선 자료는 정말 드물고 질이 안 좋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 총선에 나가던 시절 영상은 정말 찾기 어려웠다. 결국 방송사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돈도 돈이지만 노무현 영화 만든다고 하면 협조받기가 힘들었다. 세월호보다 노무현이 더 금기시되던 시기였으니까. 어찌됐든 방송사 통해서 경선 자료를 구했는데, 이 영상들이 참 재미가 없더라. 각 후보들 연설 보여주고, 객석 잠시 보여주고 모든 구성이 다 똑같았다. 겉으로는 무미건조해 보이는 영상에 이야기를 넣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제목은 왜 '노무현입니다'인가. "내가 지은 제목은 아니다. 난 사실 '바람과 나'로 하고 싶었다. 제작사나 홍보사 모두 말리더라. 재미없다고.(웃음) 당신이 하신 말씀 중에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라는 게 있다. 그걸 생각했다. 바람을 거슬러 가는 새, 또 노풍이라는 말도 있었다. '바람과 나'가 딱이라고 생각했다.(웃음) 난 여전히 그 제목을 더 좋아한다."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봤으면 하나. "전주에서 이 작품을 억지로 보게 됐다는 한 분이 전화를 했다. 본인이 왜 노무현을 싫어하는지 한참을 말했다. 그리고나서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더이상 인간적으로 그를 미워하지는 않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공과는 분명히 있다고 선을 그었다. 난 그정도를 바란다. 이분처럼 말해준다면 내게는 가장 큰 찬사가 될 것이다. '노무현입니다'를 본 분들이 노무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그를 싫어했던 분들은 더이상 그를 싫어하지 않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게 당신도 원하는 일일 것이다." 손정빈 기자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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