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stody
Jusqu'à la garde
2017 · Drama/Thriller · France
1h 33m · R



In the midst of a divorce, Miriam Besson decides to ask for exclusive custody to her son, in order to protect him from a father that she is accusing of violence. The judge-in-charge of the file grants a shared custody to the father whom it considers abused. Taken as a hostage between his parents, Julien Besson will do everything to prevent the worst from hap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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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ilar (feat. Pitbull & Elvis Crespo)

Bailar (feat. Pitbull & Elvis Crespo)


강민주
5.0
중학교 2학년 때, 아빠가 가족들을 다 죽이겠다고 다같이 죽자고 고함을 지르며 날뛰었었다. 엄마랑 오빠랑 나랑 내 방에서 문을 잠그고 피해있었는데 아빠가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오빠가 112에 신고해서 경찰이 왔지만 아무 조치도 없이 돌아갔고 엄마랑 오빠랑 내가 오히려 집에서 쫓겨나 모텔에 가서 자려는데, 아빠가 엄마가 가지고 있는 아빠 신용카드를 정지시켜 버려서 현금을 뽑느라 애를 먹었고 아빠는 밤새도록 엄마한테 문자로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 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가 잠잠해질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서 살았겠지? 경찰을 불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게 내 학습된 무기력에 한 몫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다가 내가 그때 느꼈던 공포가 떠오르면서 심장이 막 뛰고 눈물이 정말 많이 났다... 이 영화에 나오는 남편은 너무너무 우리 아빠 같다 ㅜㅜ 잊기 전에 적어놓고싶다. - 남들 앞에선 젠틀한 척, 자식 위하는 척 하기 - 차 안에서 소리지르기 - 공포 분위기 조성해놓고 도리어 자기가 울기 - 자식한테 아내 욕하기 - 위협하기 ("너희 엄마는 하는 짓마다 법을 어기고 있어!") - 이랬다 저랬다 하기 - 질문에 대답 안하고 딴 곳 쳐다보거나 tv만 응시하기 -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서 긴장감 팽팽한 대화 근데 '엄청나게 잔인한 수준의 신체적 학대'가 없었기 때문에 난 이게 폭력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주변에서도 다들 아빠가 젠틀맨인줄 알고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줄로 알고있다. (엄마 친구나 엄마쪽 친척들도) 그리고 난 오히려 '내가 아빠 맘 더 이해해야지, 아빠는 유년기가 힘들었던 불쌍한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했다. 아빠의 불행했던 과거를 이해해보려 애쓰다가 정작 내가 공포에 질려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우리 아빠는 고함을 지르고 주정을 하고 으르렁 거리고 문 쾅 닫고 유치한 격분을 표출하고 나서 자꾸 운다. 그래서 도리어 내가 죄책감을 느꼈다. '아빠가 힘드니까 저러는거지..?' 싶었다. '힘들어서 저러는 사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는 커면 원망하면 안되잖아?' 주변 어른들도 너희 아빠는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었다. 상담쌤 마저도 나보고 아빠처럼 불행하게 크신 분이 이렇게 직장생활 30년 가까이 하며 사시는 게 대단한 거랬다. 이해 받기는커녕 요런 소리나 듣고 산 내가 이렇게 정신 붙들고 사는 게 더 대단한 것 같다.. 이런 창살없는 감옥같은 환경에 힘입어 아빠는 자기 행동들을 '실수'로 포장하고 되려 큰소리를 떵떵 쳤다. 그 실수 조차도 다 엄마 때문이라며, 엄마 보고 당신이 뭐가 그렇게 잘났길래 나한테만 그러냐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류의 가정폭력범을 이렇게나 잘 묘사한 영화가 나오다니 완전 기대 이상이다. 요새 크리스텔 프티콜랭이 쓴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책을 읽었는데, 걍 이 책 내용이 그대로 영화 내용이다. 부모 중 한 쪽이 이 영화의 아빠와 같은 심리조종자(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라고도 함)일 경우 심리조종자 부모에게 자식이란 전 배우자를 끝까지 괴롭히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정상인 부모는 미쳐버릴 것 같은 결혼 생활에 간신히 종지부를 찍나 싶었는데 이젠 양육권을 두고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영화 내용대로, 왠만한 증거 가지고는 상대방이 난폭한 가정폭력범임을 입증하기 힘들고 아이가 아빠를 싫어한다고 증언해봤자 "엄마가 애를 싸고 돈다"는 증거로 쓰인다고 한다 하... 애가 아빠를 멀리 하지 않게끔 '부권'을 세워주는 것도 엄마 몫이라고... 어이가 없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내게는 영화에서 심리조종자 남편이 하는 짓들이 새롭지 않았다. 이런 인간들이 벌이는 짓은 천.편.일.률.적이다. 책에 나온 내용이 고대로 영화에 나오니 거의 뭐 영상으로 한번 더 확인하듯이 봤다. 이런 집들 우리나라에도 엄~청 많을텐데 우리나라는 이 폭군들이랑 이혼을 못하고 그냥 같이 사느라고 양육권 싸움까지 가지도 않는 것 뿐이다. 우리 집처럼 말이다.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27살 현재까지 이 영화의 아빠같은 인간이랑 한지붕 밑에서 살고있다. 에혀 이제라도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행이다.. 작년에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유골은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항상 그랬듯 청개구리마냥 납골당에 모셔놓았다(비용 때문 아님. 아빠 왈 수목장은 관리가 힘들다나? 본인이 관리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요샌 오빠한테 엄마에 대한 근거없는 험담을 늘어놓으면서("니네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거 너네 엄마가 잘못한거야..!") 여전히 배우자에 대한 증오로 희번뜩 거리고 있다. 엄마가 암 걸린 데에는 분명 아빠로 인한 스트레스가 큰 요인일텐데 그걸로는 성에 안 차나보다. 자식한테 암투병으로 사별한 배우자를 비난하고 싶어서 안달난 이 남자분의 실체를 아무도 모른다.. 밖에선 얼마나 젠틀한 양반인지.. 아오 정말 이런 인간들이 있다는 거 좀 빨리 사회적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ㅠㅠㅠ 그래야 피해자들 모임도 많이 생기고 상담사들도 '아빠를 이해'하라는 둥 '그래도 아버님은 자식들을 사랑'하신다는 둥 헛소리 안하고!!! 내 상담쌤이 한 말들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아빠가 포악하게 굴고 비난하고 시비걸고 이죽거리고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 와중에도 자식들을 위해 완전히 무너져 버리지 않고 버티셨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그덕에 자식들한테 너무 공부공부 안하시고 대신 책을 많이 읽혀주셨다. 엄마가 얼마나 큰 의지로 그 세월을 버틴건지 다시 새삼 느껴졌다. 엄마한테 정말 고맙다.. 엄마가 그 와중에도 우리 행복하게 살자고 하시며 힘낸 만큼 나도 자포자기 하지 않고 있다. 영화에서 남편이 아무리 노답이라고 해도 클라이막스에서 나오는 그 짓거리까지 하리라고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 부분이 요새 내가 현실에서 공포를 느끼는 부분이다. 나는 이제 아빠가 시비 걸어도 넘어가지 않고 심리적 거리를 유지한지 몇달 됐는데, 아빠 입장에선 괴롭힐 엄마도 없고 고분고분하던 딸도 멀어지니 또 피해망상에 쩔어가지고 무슨 큰일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빠는 오빠한테 내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그리고 내가 너무너무 무섭다고 나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꺼내겠다고 울부짖다가는 또 아주 냉정하고 무서운 애라고 부르르 떨며 맹비난을 한다고 한다. (잡아죽일듯한 그 말투겠지. 안들어봐도 알 것 같다) 그러고는 내 앞에서는 '우리 민주, 공부하느라 힘들지요...? 아빠는 항상 응원해요...' 이러면서 빌빌 기는 척을 한다. 존댓말은 또 왜 쓰는지 진짜 너무 듣기 싫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아니 내가 무섭기는 뭐가 무섭나. 집안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를 땐 내가 무서워서 어떻게 하셨나? 아빠는 피해망상이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아서 무섭다.. 진짜 저렇게 믿어버리고는 칼이라도 휘두르면 어떡하지? 성격장애자들은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라고 믿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거짓말 탐지기에도 안 걸린다고 한다. 내가 안 했는데? 라고 진짜 믿는댄다. 사실 가끔은 진심으로 내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 걱정이 되다가도 에이 설마.. 싶기도 하고. ㅠㅠ 얼른 독립해야 되는데 아직 졸업도 안했고.. 시험 준비 중이라 휴학중이고ㅠㅠ.. 최소 2년 후에나 독립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언제 집 나갈지를 미리 알려주면 안 될 것 같다. 아빠가 자기 입으로 직접 한 말인데, 아빠는 오빠랑 내가 지금처럼 같이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고 있다. 당연히 그렇겠지. 먹잇감들이 떠난다니...! 내가 마음껏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수 있는 장난감들이 떠난다니!! 이젠 좀 늙어서 또다른 먹잇감을 찾진 못할테니 나랑 오빠가 독립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을 거다. 집 나간다 하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모든 준비를 끝내고 통보없이 나가버려야 한다. 내가 이 집을 나가는 날은 또 엄청난 난리가 벌어질 것임이 100프로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 어른들한테 얘기해봤자 아빠가 홀로 되셔서 힘든가 보구나 어쩌구 저쩌구 할 게 뻔하다. 아빠가 공무원이라 왠지 나중에 주소 안 알려주고 나가 살아도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에혀 그땐 또 그때 나름대로 해결책을 강구해야지 ㅜㅜ 생각하고 생각하다 걱정이 많아지는 게 습관이다. 우리 아빠가 벌이는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동진 평론가
4.0
가정폭력의 작동방식을 소름 끼치는 실감으로 담아낸다.
재윤
4.5
해결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직접 체험을 하게 해주는 영화.
Dilettante
4.0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영제는 <Custody>이다. ‘보호’라는 뜻과 동시에 ‘감금’으로 직역되기도 하는데, 이 중의성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본 영화에서 그와 같이 중의성을 지닌 것으로 크게는 세 가지를 들어 볼 수 있다. 안전 벨트, 욕조, 그리고 엄마의 품이다. 줄리앙이 아빠의 차에 탔을 때 매는 안전 벨트는 그 일반적 기능 외에도 아빠라는 위협적인 존재에 대한 자신의 신변, 그리고 불편한 상황에 놓여 있는 심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호’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안전 벨트는 차 안에서 아빠의 강제를 뜻하는 상징물이 되기도 하며 아빠의 공간에 줄리앙을 ‘감금’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안전 벨트를 매면 우리의 안정성은 증가할 수 있겠으나 자유로운 움직임이 제한된다는 표면적인 상황만 보아도 ‘보호’와 ‘감금’이라는 동음이의적 공존을 엿볼 수 있다. 욕조에 숨는 것 역시 앙투안의 총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보호임과 동시에 집에서 화장실로, 화장실에서 욕조로 점차 그들의 생활 반경을 좁혀 들어가는 앙투안의 감금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품’은 필자가 다소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극후반 앙투안이 초인종을 계속해서 울리는 순간 미리암은 아들을 품에 꼭 들인다. 이 엄마의 품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확대해 보면 그것은 화사한 온실이기도, 동시에 음울한 그늘이기도 하다. “아이가 엄마의 편만 드는 것도 문제의 일면”이라는 판사의 얘기를 떠올려 보자. 영화가 끝난 후 이는 다소 오만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상이나, 한편으로는 그 뜻이 깊은 말이기도 하다. 미리암이 자녀에게 취하는 태도는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그녀가 남편에, 즉 남자에 대해 갖는 불신은 딸의 연애를 방해하게 만든다. 딸이 학원을 빠지고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한 억압이 과연 그녀의 말대로 학원비나 딸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딸이 남자를 만나 자신의 품을 떠날 것을 두려워해서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더불어 미리암은 아들 역시 자신의 품에 두려 한다. 격주로 아들을 아빠에게 보내야 하는 것이 법에 의해 강제되었음에도 줄리앙을 떠나보내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줄리앙의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설령 그 순간 줄리앙이 아빠와의 만남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줄리앙 스스로의 온전한 생각이 일부 침해된 것은 오프닝 시퀀스의 법정 심리에서부터 드러나 있다. 판사는 미리암의 ‘저희’라는 표현에 대해 그것이 왜 ‘제’가 아니라 ‘저희’인지를 꿰뚫며 반문한다. 이는 아빠에 대한 인식이 아빠의 잘못과 그에 대한 줄리앙의 판단에서 크게 비롯된다 할지라도, 이것에는 엄마의 입김이 일몫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고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신’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쪽 부모,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품에 아이를 항상 두고 편을 가르는 것은 심리적으로 아이에게 희생 정신을 고양시킬 위험이 있다. 내가 열심히 잘 자라나 어머니를 지키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다짐은 실패에 이르렀을 때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변모할 수 있다. 왜 내가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절대 자식을 자신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차후 자신이 자식에게 희생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호라는 명목 하에 ‘엄마의 품’은 결국 자녀를 가두는 감금 장치가 되기도 한다. 안전 벨트, 욕조, 엄마의 품 이 세 가지 ‘보호’는 세 가지의 소리에 의해 마치 그 불완전함과 강제성을 안내받는 듯 보인다. 첫 번째로, 안전 벨트 경고음이 그렇다. 앙투안의 차에서 울리는 안전 벨트 경고음은 마치 앙투안처럼 줄리앙에게 특정 행위를 ‘강제’한다. 그러나 줄리앙이 벨트를 매도 앙투안이 매지 않는다면 경고음은 끊이지 않고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며, 그 소리는 줄리앙을 괴롭게 만든다. 이 반쪽짜리 보호 장치는 결국 줄리앙이 부모 두 명 모두의 보호가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데, 안타깝게도 줄리앙은 아빠에게 안전 벨트를 매라는 말을, 즉 자신을 사랑으로 지켜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둘째로 앙투안의 총성은 욕조의 불완전함을 신호하며 관객에게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앙투안이 광적으로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가 있다. 별안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모자는 잠에서 깨 소리를 최소로 설정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으려 한다. 미리암이 줄리앙을 품에 안고 다독여 보지만 앙투안은 멈출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총을 가져오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앙투안의 초인종 소리는 마치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엄마의 품’의 불완전함과 강제성을 알리는 경적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은 것은, 잘잘못의 비중을 떠나 그것에 대한 판단은 자녀가 직접 내리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고, 자식에게 있어 최적의 보호는 부모 양쪽 모두의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관람 후 딸인 조세핀의 입장에서의 그려짐이 부족함을 아쉬워했으나 돌이켜 보면 영화는 초반부터 조세핀이 성인이라는 사실과 그녀에 대한 보호는 줄리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함을 암시해 온 듯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줄리앙의 입장을 한 번 더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된다. 부모의 이혼이라는 고통 이후에도 자신을 두고 벌인 양육권 다툼은 줄리앙의 악몽을 연장시켰다. 엄마는 줄리앙이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게끔 만들며, 자신의 의견을 줄리앙을 통해 전달시킨다. 이 순간 줄리앙은 일종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며, 어린 나이에 엄마를 위해 자신을 희생’당한’다. 문제는 그의 아빠 역시 자신을 도구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앙투안의 ‘진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치더라도 결국 그가 아들을 아내에게 접근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관객조차 의아하게 할 만큼 줄리앙과의 첫 만남까지 앙투안은 따듯하고 좋은 아빠처럼 보였다. 허나 그가 줄리앙을 일면 도구화하고 있음이 점차 선명해진다. 결국 줄리앙은 부모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양육권 분쟁이라는 불쾌한 일의 ‘목적’이 되며, 동시에 부모의 불합리한 ‘수단(도구)’이 되기도 한다. 그는 그저 누나의 파티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다분히 불가항력적인 줄리앙의 고통은 공동 책임이라는 양육 제도마저 저주했으리라. 영화의 마지막 이웃 할머니의 시점 쇼트는 관객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할머니의 신고는 모자의 ‘보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미리암은 그런 우리를 두고 문을 닫으며 다시금 자신과 줄리앙을 ‘감금’시킨다. 아빠가 총을 쏘는 극단적인 상황과 육체적 고통은 경찰을 통해 해결되었지만, 부모 ‘둘 모두’에게서 기인하는 줄리앙의 정신적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특히 이따금 엄마와 누나가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시키는 끔찍한 재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영화의 전반을 점유하고 있는 어두운 이미지, 그리고 계속되는 공포적 소리. 종국에 확연히 두드러지는 이 ‘호러 리얼리즘’은 이 영화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줄리앙, 그리고 스크린 밖의 수많은 줄리앙들에 대한 것으로, 그들에 대한 시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seulgigomseulgi
4.0
가정폭력속에 자란 아이들은 유년시절 그 충격이 결국 트라우마로 남아 앞으로의 삶속에서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것이다. 폭력적으로 될지, 방어적으로 될지 그것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건 부정적이게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건 욕심일까..
김혜리 평론가 봇
4.0
가정 폭력의 해부. 견디기 힘든 서스펜스
Jibok
4.0
가정 폭력의 문제의 악센트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폭력'에 있다. -2018.6.15 with 이다혜 기자님과 이동진 영화평론가
Mashimaro
4.0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왜 마지막 문을 열 때까지 불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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