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Under the Moon
月はどっちに出ている
1993 · Drama/Comedy · Japan
1h 49m · R

A Korean taxi-driver interacts both humorously and tragically with his customers and employers in '90s Tokyo.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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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4.5
태생적으로 타지에 정착할 수 밖에 없었던 한남자, 그의 인생은 어디에 떠 있는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행복을 쫓다
P1
4.0
해학이 들어간 짠함.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안보씨 달은 어디에 떠 있죠?" "동쪽인가 서쪽 남쪽 북쪽 같기도 하고요" "안보씨 달을 향해 달리세요" 직접적인 정서적 와닿음이 덜한 것은 그렇게 헤벌레하며 가슴조리게 하는 신파적인 면이 덜하기도 하기 때문인걸로..
이동진 평론가
4.5
페이소스의 극점.
FemaleHorse Festival
1.5
하늘
청소년관람불가
4.5
이리저리 방황하는 그들의 모습을 시트콤 처럼 보여주다
이도형
4.5
달은 하늘에 분명히 떠 있는데 방황하는 것처럼
rol
4.0
일본의 대표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90년대 일본 영화 1위로 선정한 작품이다. 그 의외성에 새삼스레 찾아봤고, 관람 이후로는 일본 영화답지 않은 정서와 개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흥미가 더했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어떠한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관악기의 경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음색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이런 집시풍의 음악이 여러 장소를 유전해야 하는 택시 기사들뿐 아니라, 재일조선인 및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과 어울려 디아스포라의 ‘방황의 정서’에 조응한다. 더불어 매 신을 촌극과 난장으로 만드는 연출이 그들의 애환을 희극적으로 승화시키는 형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캐릭터, 음악, 분위기 등으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구현하며, 그 주위로 카메라를 뻔뻔히도 활기차게 공전하도록 한다. 이건 카우리스마키나 자무쉬의 침울하지만 태연자약하게 생활을 이어내는 서사에 비견할 만한 극화 방식이다. 나아가 흡사 봉준호 같은 기재로 완성한 복합적인 블랙코미디는 양식적인 일본 영화계의 지형에서 남다른 위상을 갖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약자로만 치부된 재일조선인을 이렇게 묘사한 적은 없었다는 <키네마 준보>의 평처럼 그 비틀기의 대담함은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주인공 충남은 재일조선인의 고정된 성격과 범주를 유연하게 벗어난다. 여자를 꼬시는 데 몰두하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것도 특이한 점이지만 세상의 말에 무신경한 감각을 가진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그는 조센징이 싫다는 모욕과 오해로 가득한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으며, 민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그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흘려듣는다. 재일조선인의 막내로서 심리적 교착상태에 놓인 그는 오히려 편견 없이 동료들의 싸움을 말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갈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영화의 형식이 디아스포라의 새로운 윤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 대의를 위한 각성에 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훌륭하다. 마지막까지 “야쿠자도 재일조선인도” 방향을 상실했다고 걱정하는 그에게서 영화사상 가장 독특한 중재자의 캐릭터를 본다. 인생의 '빛'을 그리려면 거짓과 환상이 되기 쉽고, '그림자'를 그린다면 자칫 독선이 되는 것을 우리는 여러 영화에서 확인했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그 양쪽의 경계에서 외줄을 외롭게 그러나 경쾌하게 타는 영화다. 첫 장면에서부터 운수사업의 사장이 신입 기사에게 “무념무상”이라는 사훈을 강조했던 것을 기억하자. 영화는 체념과 희망의 상태를 벗어나며, 빛도 그림자도 없이, 웃음도 슬픔도 사랑도 폭력도 정치도 그냥 거기에 있는 것으로 그려낸다. 여기에는 분명 큰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같은 세계의 누군가의 일상을 찍었을 뿐인데 작품은 이다지도 웃기면서 한편으로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나는 이것이 연극적 요소를 차용한 데서 비롯된 효과라고 생각한다. 본작의 인물들은 정체성을 임시로 공언하기 위해 과장된 언어와 몸짓을 수행한다. 요컨대 자신의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 사회적인 것들을 제 감정으로 수용하며 재연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행(performance)의 가능성은 충남의 습성대로 공허한 거짓과 자기기만적인 회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자친구 코니와 싸운 뒤 그녀가 다니는 교회로 찾아가 잘못을 사과하고 사랑을 고백하는—그 또한 거짓말로 보이는—장면은 서로의 정체성도 인종도 종교도 넘어선 새로운 삶이 태어나리란 기대를 걸게 한다. 코니는 거짓말이라도 마음에 닿는 말이라면 흔쾌히 울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무대 뒤의 공백을 가리키는 듯한 마지막 장면의 파노라마를, 진실과 거짓에 관계없이 지속될 삶의 모습이라고 믿고 싶다.
sendo akira
4.0
네이게이션이 존재하지 않아 방향성을 상실하고 떠돌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자이니치들과 타국에서 건너온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냉정한 자본주의를 그럴싸하게 치장한 민족과 단합이란 허울좋은 단어들은 그저 위선이며 사치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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