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ide!
The Bride!
2025 · Horror/Romance/Thriller · United States
2h 6m · NC-17

A lonely Frankenstein travels to 1930s Chicago to seek the aide of a Dr. Euphronius in creating a companion for himself. The two reinvigorate a murdered young woman and the Bride is born. She is beyond what either of them intended, igniting a combustible romance, the attention of the police and a wild and radical soci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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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2.5
크리처 창조 과정에서 활용하지 못한 부위들이 제각각 널려 있는 수술실을 엿보는 듯하다.
Dh
3.5
검붉은 잉크 자국에 번진 광기 어린 커플의 낭만 #제시 버클리 배우 👍 #용산CGV IMAX LASER 2D
옥점이
1.0
오랜만에 최악의 영화. 두 주연 배우 때문에 봤는데 그들의 연기말곤 볼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여성 서사를 말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두 미친년놈들의 요상한 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던건지 잘 모르겠고 등장인물도 쓸데없이 많다. 감독의 남동생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로니 리드는 왜 나오는건지 모르겠고, 그녀의 남편 피터 사스가드는 존재감도 없어서 극장에서 나오면서 한 생각은 “영화의 탈을 쓴 가족모임” 정도다. 미친 캐릭터는 그저 단어를 운율만 맞춰서 줄줄 내뱉으면 끝나는건지, 원작 소설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제대로 연구는 해본건지 답답하고 화가 난다. 원작에서는 빅터를 괴롭히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도 아버지에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복잡한 그가 영화에서는 그저 소심하고 외로워하는 단순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도 못마땅하다. 여주인공 아이다가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와 겹쳐지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덕분에 오랜만에 용아맥 상영관에서 숙면했네. 에휴… * 미국 시사회에선 호평일색이었다고 해서 더 답답하네. 미국보다 국내개봉이 더 빠른 신작이라 현지 실관람평을 볼 수 없는게 단점이구나, 현 시점에서 내적 친밀감 느낄만한 감상이 없어 슬프다.
창민
레이첼이 살아 돌아와 메가폰을 쥐고, 웨인은 도시 걱정 필요 없어져 배우로 전향했다. 브라이드!
김노엘
4.5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매기 질렌할의 <브라이드!>는 좀 과할 정도로 야심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일단 매기 질렌할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걸 전혀 숨기지 않아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재정의된 여성성에 대해서도 논해야 하고, 1930년대라는 시대 배경에 맞게 서프러제트 이후의 여성 운동에 대해서도 그려야 하겠고, 아무래도 이야기의 뿌리를 <프랑켄슈타인>과 그에서 파생된 미디어 믹스에 두고 있으니 메리 셸리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메타적으로 펼쳐 나가야 하겠죠. 거기에 매기 본인이 가진 고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덕심도 뽐내고 싶고, <조커>나 <보니 앤 클라이드> 같은 범죄 영화들을 뒤집어서 여성 서사로 재전유 하고 싶기도 해 보여요. 이 모든 게 뒤섞이면 나오는 결과물은? 좋게 말해서 종합선물세트고 그냥 냉정하게 얹어 놓고 보면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이야기의 국면이 전환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미시적인 소재와 주제의식이 조금씩 바뀌는데, 이런 혼란스러움에 어떤 마스터플랜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아무말 대잔치 하듯이 늘어놓으려던 시도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또 한 편의 악명 높은 괴작이 나온 걸로만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괴작'이기는 해도 결코 무시하거나 저평가 받을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 영화가 드러내는 투머치토킹의 패기에 완전히 젖어들고 말았어요. 영화는 시작부터 쉽지 않게 전개되는데요. 프랭크(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양가감정을 배경으로만 은근슬쩍 깔고 시작되는 '신부 만들기 프로젝트'부터가 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 초반부에 성공해버립니다. 어떤 고뇌나 생명의 근원, 종교적/과학적/윤리적 은유도 담지 않은 채 브라이드는 그냥 그렇게 창조됩니다. 메타적 캐릭터인 메리 셸리의 '은총 혹은 저주'를 받기는 했다지만, 기실 어떤 토양도 갖추지 않은 채 말 그대로 근본없이 태어나버린 거죠. 이전의 삶과는 온전한 단절을 겪었으니 그건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니에요. 말 그대로 그냥 태어났어요. 더 나아가서 이 여자는 그냥 태어나 보니 미쳐 있어요. 그런데 이 근본없는 미친년의 서사가 너무 매력적입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골 때리고, 인간성이니 여성성이니 하는 이전까지의 근원을 깡그리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서사는 다분히 Z세대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매기 질렌할은 이런 근본 없는 캐릭터성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끌고 와서 무얼 하느냐?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합니다. <조커>류의 영화가 그려내는 비뚤어진 남성성의 서사를 뒤틀어서 여성에게 새롭게 부여하고, <보니 앤 클라이드>류의 커플 범죄물이 그려내는 유아적 도피 행각이 신드롬으로 확장되는 방식도 그려냅니다. 가장 직접적 레퍼런스가 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아예 영화 속에서 상영되기까지 하는데 그 서사 속 신부라는 캐릭터가 <브라이드!>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들을 생각해본다면 약간 비꼬는 듯이 느껴지기까지 해요. 고전 슬랩스틱 코미디나 뮤지컬 등을 의인화한 인물로 제시된 로니 린드라는 캐릭터까지 더해지고 대체 왜 등장한 건지도 모르겠는 뮤지컬 시퀀스까지 보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든 개판 오분 전이에요. 대체 뭘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사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아요. 영화 속에 '여성'이라는 느슨한 소재만을 던져 놓은 다음에, 여성 예술가 당사자로서 느낄 수 있었던 고전에 대한 애증, 시대유감, 메리 셸리라는 작가에 대한 경외감, 장르물의 젠더 답습에 대한 답답함, '괴물'이라는 대상화에 대한 양가적 시선 등을 허심탄회하게 다 풀어놓고 싶었던 거죠. 심지어는 그 모든 중구난방의 서사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규합은 해냅니다. 꼭 왜 굴러가는지는 모르겠는데 멀쩡히 작동되고 있는 코드들을 보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허술하게 엮어 놨는데 왜 이게 말이 되지? 이런 감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정말 기묘한 영화적 체험이에요. 주된 테제는 하나 뿐이고 그마저도 중심을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든 모든 이야기가 한 가지 지점으로 굴러갑니다. 물론 아쉬움도 존재합니다. 흩뿌리듯 수많은 이야기를 던져놓다 보니 대단히 발칙하게 보이고 파격적이기는 한데 무엇 하나 '급진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한 발짝만 더 나아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약간의 찝찝함이 영화가 끝나는 내내 남습니다. 다만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급진성까지 담보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는 건 확실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가 이뤄낸 가장 큰 성취는 '여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괴물'이라는 가능성에 함께하며 그것을 체화하는 존재가 되는지에 대해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호기롭게 드러내고자 했는가 하는 지점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매기 질렌할이 보여준 그 당당함에, 저는 감복되고 말았습니다. 덧 - 이번 글 제목으로 사용한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페미니즘 철학자인 김은주 박사가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여섯 명의 여성 철학자가 페미니즘/여성 담론을 어떻게 다르게 전개했는가를 살펴보는 책인데, 가벼운 개괄서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천 드립니다.
뭅먼트
3.0
직설적이지만 집요하게 꾸린 매혹적 괴설 속에서 한바탕 날뛰어 보는 크리스찬 베일과 제시 버클리.
Fridaythe13th
3.5
새로운 이야기가 살아 숨쉬기 위해선, 아직 명명되지 않은 캐릭터가 필요하다. - - (아래 스포일러 리뷰) "아직 할 얘기가 남았어. 속편이 나올거야.. 새어나오는 틈으로 내가 침투하게." 새로운 이야기, 미처 다뤄지지 않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선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하다. 아직 '이름'이란 정체성에 갇히지 않아야 하며, 그녀가 이름을 찾게 되는 과정 자체가 이야기인 것이다. 프랑켄은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들을 보며 떠돈다. 그는 등장인물 속에 본인을 투영시킨다. 이미 완성된 캐릭터기에, 약간은 수동적이며, 신부를 보편적인 이야기 속으로 귀속시키려 한다. 그는 신부에게 '페니'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분수대에서 수많은 동전들(penny)들을 줍는 모습처럼, 이런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 역시 보편적인 틀에 그녀를 가두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프랑켄은 신부와 함께 "heartbreak anniversary"를 관람하며 그 속에 둘을 투영한다. 영화 속의 연인처럼, 정식적인 부부가 되길 요청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이 거절의 순간에 프랑켄은 죽는다. 왜냐하면 이미 명명되어 캐릭터성이 확실한 존재가 풀어나갈 이야기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은 여지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로서 신부를 귀속시키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서는 것일 텐데, 이 시도가 좌절된 것이다. 그가 이 영화에서 메인 서사를 트리거만 하며, 거의 말동무 수준으로 역할한다는 점도 그렇다. 이 영화의, 이야기의 주인은 브라이드다. 더 이상 습득하며 변화할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옛날 영화 들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진짜 배우를 만났을 때, 그는 It’s me!라고 외친다. 그는 자신을 찾으러만(배우의 영화만을 찾으러) 다니는 존재일 뿐이고,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한다. 신부는 기존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어떤 이름에 귀속되기도 거부한다. 아이다도 아니며,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도아니며, 페니도 아니다. 그저 '신부'로서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며,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제 이 캐릭터는 처음으로 능동적이게 창조자에게 말을 건다. 똑똑. Knock knock 누구세요. Who’s there 신부요. The Bride. 어떤? Of what? 그냥 신부요. Just a bride. 남자 형사와 여자 형사의 관계 역시 프랑켄과 브라이드의 관계이다. 프랑켄처럼, 남자 형사 역시 어떠한 캐릭터성을 지닌다. 보편적인 남성과는 다르다. 둘 다 여성을 존중함에도,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확립되어 크게 변화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프랑켄은 브라이드에게 도망다니기를 권유하며, 형사는 기존의 수사 방식을(여성 대신 나서는)고집한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듯 그들은 목격자일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새로운 이야기의 발언권을 준 것은 '브라이드’, ‘여성‘이다. 두 커플의 대면에서도, 총을 쏘는 건 여자들이다. 아직 차마 다루어지지 않은, 완전히 빚어지지 않은 캐릭터들 말이다. 행동하는 것,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결국 이들이다. 바로 박사를 체포하지 않고 프랑켄과 신부 커플에게 기회를 한번 더 부여하는 것도, 폭력적인 목소리들을 이끌어낸 것도.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소생, 새로운 변화에 대한 평가는 필요치 않다.) 다시 브라이드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역설적이게도 이 캐릭터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순간 죽음을 맞는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정체성과 주체성은 충족되나 프랑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이 캐릭터론 새로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여기서 메리 셀리는 말한다. ‘아주 멋진 이야기지.’ 그러고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여기서 메리 셀리의 이야기는 끝난다. 그리고 박사는 ‘I prefer not to.’라고 하며 둘을 소생시킨다. 여기서부턴 이야기의 주체가 다시 바뀐다. 그녀는 메기 질렌할, 감독 자신이다. 이야기가 그녀의 죽음으로 끝났음에도(끝나야함에도), 다시 소생시키겠다고 선언한다. 같은 존재로 소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박사는 브라이드처럼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박사는 자신의 연인을 되살린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기하학적 구조를 깨버리고 싶었다고. 그러니까, 새로 숨을 불어넣는 것, 창조하는 것은 틀을 부숴야한다. 브라이드처럼 혼란을 가져올지라도 말이다. 그 혼란이 두려워 소생시키길 멈추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이 소생, 새로운 변화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는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몇번이고 새롭게(그대로가 아니다. 새로워야 한다.)되살려 창조자의 목소릴 부여할 것이라 한다. 죽은 존재를 소생시킨다는 것, 그것 자체가 차마 발언되지 못한 것들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혀를 잘라 모으는 마피아 보스처럼, 이 발언권의 파급력은 매섭다. 브라이드는 가끔 창조자의 목소리에 반감을 가진다. 자신이 그로 인해 벌인 행동들에 회의적이기도 하다. 메리 셀리가,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라 껍데기가 깨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아마 시대적으로 이런 영화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단 아직 다뤄지지 않은 것들에 한해선 소생을 멈추지 않겠다는 일종의 집념이다. 이는 방향을 잃고 단순히 폭력적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상관없다. 공간과 시대를 타지 않는 이 이야기로서의 소생은 요구에 응할 때까지, 제대로 된 파급력을 전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Jay Oh
2.0
오, 신부와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를 파내서 뭘 한거야? I didn't know they made an adaptation of the thesau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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