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원3.5어텀이 자신의 몸 일부분에 피어싱을 할 때 그 총체적인 과정을 어느 생략도 없이 온전히 카메라로 담아내는 장면이 있다. 나의 신체에 대한 나의 선택, 그 순간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너가 무슨 결정을 하든 난 너의 편이야"라고 그 순간부터 확실히 선언하며 영화 내내 줄곧 어텀의 곁에서 머무른다. 나만 결정내릴 수 있는 외로운 선택과 의지할 곳 없는 이 고독 속에서, 어텀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순간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카메라와 그녀의 친구 스카일라. 스카일라가 따라가지 못한 공간에선 카메라의 응시가, 카메라가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엔 스카일라의 손길이 언제나 뒤따르며 어텀이 혼자 남겨지는 순간을 제거한다. 백마디 말보다 더욱 큰 위로가 되는 응시와 머무름의 힘,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Like54Comment1
Lemonia3.5낙태를 결심한 이들은 자신이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이 자신이 만들어 낸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낙태 수술이 본인의 몸에 부담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불행해지는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오롯이 여성의 책임으로만 돌려 버리고, 낙태에 대한 곱지 않은 다수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관점에서 낙태를 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낙태를 결심하는 이유는 원치 않는 아이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앞서 말한 것들보다 더 크고 무섭기 때문이다.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들은 낙태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Like39Comment0
동구리4.0어텀(시드니 플래너건)은 펜실베니아 시골 지역에 사는 가수 지망생이다. 그는 학교를 다니며 사촌 스카일라(탈리아 라이더)와 함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그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펜실베니아는 임신중절이 불법이다. 집 인근의 클리닉에서는 임신중절에 대한 도움 대신 낙태 반대 비디오를 보여줄 뿐이다. 그는 모아둔 돈을 털어 스카일라와 함께 의학적 도움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긴 제목(원제는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을 지닌 이 영화는 어텀과 스카일라의 짧은 여정을 담아낸다. 임신중절에 대해 어떤 운동을 보여준다거나, 두 사람의 여정이 대단한 모험을 동반한다든가, 어텀이 가족과 대치하고 도망간다거나, 임신중절을 위한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든가 하는 등의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티즌 루스>와 같은 영화가 아니다. 두 사람은 그저 임신중절이 합법인 도시에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돌아올 뿐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의 제목은 설문조사의 응답 항목이다. 뉴욕의 임신중절 클리닉을 찾은 어텀은 수술을 받기 전 구두로 진행되는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다. 이는 17살 미성년자인 어텀의 임신이 폭력에 의한 것인지, 혹은 다른 사연에 의한 것인지 등을 조사한다. 다분히 사무적이지만 점점 격해지는 어텀의 감정에 따라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상담가의 말은 어텀이 펜실베니아에서 듣지 못했던 종류의 말이다. 이는 그와 동행한 스카일라 또한 해내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그러한 종류의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무적인 단어들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암컷 반려견을 ‘Bitch’라 부르는 가부장의 언어로 가득한 펜실베니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종류의 언어다. 때문에 뉴욕을 찍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는 어텀의 여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 줄 최소한의 언어와 만나는 여정이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약 이 여정이 어텀의 이야기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스카일라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스카일라는 다소 소심한 어텀과 다르다. 그가 마트 점장을 상대하는 모습은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는 직장 내 성희롱을 견뎌내는 모습이다. 그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필요할 때는 그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스카일라가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고 하여 그에게 가해지는 성착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텀이 뉴욕으로 떠날 용기와 지지에 스카일라가 필요했듯이, 스카일라 또한 어텀의 손길과 연대가 필요한 존재다.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재스퍼라는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는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등의 호의를 베푼 대가로 스카일라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여정의 마지막, 펜실베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두 사람은 어텀의 수술로 인해 돈이 떨어진 상황이다. 스카일라는 어쩔 수 없이 재스퍼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는 두 사람과 함께 볼링을 치고 가라오케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어텀이 없는 사이 스카일라에게 키스한다. 두 사람을 찾아 버스터미널을 헤매던 어텀은 기둥 뒤에서 키스하는 스카일라의 손을 잡는다. 어텀의 여정에 스카일라가 동행했듯, 어텀은 스카일라에게 손을 내민다.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와 의료적 조치를 위해 떠난 어텀의 여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펜실베니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한층 불안이 가신 어텀의 표정에서 환하게 드러난다.Like27Comment1
Hyoung_Wonly3.0( )에겐 전혀 없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가끔씩 생기는 그러나 ( )에겐 항상 있는 일. 지난 7월 7일,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대법관 브렛 캐버노가 워싱턴 DC의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시위대가 몰려가 식당 앞에서 요란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식당 매니저를 불러서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을 손님으로 받는 게 수치스럽지 않느냐"라며 따졌다. 물론 손님을 받는 건 어디까지나 식당의 자유다. 하지만 너무나 요란한 시위여서 캐버노는 식사를 마칠 순 있었지만 후식은 먹지 못하고(세상에 그 와중에 후식만 남겼네!) 식당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고 전해졌다. 이후 식당 주인은 손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분노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가 나서서 "미안한데, 저녁을 (조용하게) 먹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후 백악관 대변인까지 나서서 "법관을 위협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위는 보장된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위와 관련된 간략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94년에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Madsen v. Women's Health Center, Inc.)에 따르면 낙태(임신 중지) 시술을 받으러 온 여성들을 상대로 반대 단체가 윽박지르고 끔찍한 사진을 들이대는 시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단지 건물에서 10m만 떨어져 있으면 된다. 대법원이 내린 결정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임신 중지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트라우마를 갖는다. 이번 식당 시위를 주도한 단체는 트위터를 통해 워싱턴 DC 내 거의 모든 서비스업 종업원들에게 “보수 대법관들이 식당에 들어오면 신고해달라"라면서 그곳에 있는 게 확인되면 50달러, 메시지를 보낸 후 30분 안까지 여전히 그 장소에 있을 경우 200달러를 벤모앱으로 이체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30분이면 시위대가 출동할 수 있는 시간이고, 최대한 빨리 신고하도록 인센티브 여부를 확실히 한 것이다. 참 미국스럽다(?). 낮은 시급을 받는 서비스업 종업원들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받을 기회가 생겼으니 (소위 엘리트)대법관 6명은 이제 외식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 '조커' 후반부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법 적용이 만나 삽시간에 번져가는 미국식 시위다.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오텀과 스카이라처럼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사실을 소리치고 팻말을 높인 들어올릴 뿐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 김지혜), 사람, 장소, 환대(2015- 김현경),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 - 마이클 센델), 거리 민주주의(2017 - 스티브 크로셔), 유럽 낙태 여행(2018 - 우유니게 외 3명) 등 참조Like22Comment0
진격의*몽글쌤
3.5
생명에 대한 죄책감과 소중한 내 인생을 지켜냈다는 안도감.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가랑이를 벌린 채 누워 있어야 할까?
Jay Oh
3.5
강요되어선 안되는 것들도 이리 많은데. Sometimes riveting, always poignant.
문희원
3.5
어텀이 자신의 몸 일부분에 피어싱을 할 때 그 총체적인 과정을 어느 생략도 없이 온전히 카메라로 담아내는 장면이 있다. 나의 신체에 대한 나의 선택, 그 순간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너가 무슨 결정을 하든 난 너의 편이야"라고 그 순간부터 확실히 선언하며 영화 내내 줄곧 어텀의 곁에서 머무른다. 나만 결정내릴 수 있는 외로운 선택과 의지할 곳 없는 이 고독 속에서, 어텀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순간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카메라와 그녀의 친구 스카일라. 스카일라가 따라가지 못한 공간에선 카메라의 응시가, 카메라가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엔 스카일라의 손길이 언제나 뒤따르며 어텀이 혼자 남겨지는 순간을 제거한다. 백마디 말보다 더욱 큰 위로가 되는 응시와 머무름의 힘,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Lemonia
3.5
낙태를 결심한 이들은 자신이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이 자신이 만들어 낸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낙태 수술이 본인의 몸에 부담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불행해지는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오롯이 여성의 책임으로만 돌려 버리고, 낙태에 대한 곱지 않은 다수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관점에서 낙태를 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낙태를 결심하는 이유는 원치 않는 아이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앞서 말한 것들보다 더 크고 무섭기 때문이다.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들은 낙태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팬서
3.5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 인상적인 묵묵하게 보내는 응원의 시선.
chan
3.5
옳고 그름에 관한 도덕을 논하기 이전에 너의 선택 그자체를 응원하리란 친구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영화.
동구리
4.0
어텀(시드니 플래너건)은 펜실베니아 시골 지역에 사는 가수 지망생이다. 그는 학교를 다니며 사촌 스카일라(탈리아 라이더)와 함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그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펜실베니아는 임신중절이 불법이다. 집 인근의 클리닉에서는 임신중절에 대한 도움 대신 낙태 반대 비디오를 보여줄 뿐이다. 그는 모아둔 돈을 털어 스카일라와 함께 의학적 도움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긴 제목(원제는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을 지닌 이 영화는 어텀과 스카일라의 짧은 여정을 담아낸다. 임신중절에 대해 어떤 운동을 보여준다거나, 두 사람의 여정이 대단한 모험을 동반한다든가, 어텀이 가족과 대치하고 도망간다거나, 임신중절을 위한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든가 하는 등의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티즌 루스>와 같은 영화가 아니다. 두 사람은 그저 임신중절이 합법인 도시에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돌아올 뿐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의 제목은 설문조사의 응답 항목이다. 뉴욕의 임신중절 클리닉을 찾은 어텀은 수술을 받기 전 구두로 진행되는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다. 이는 17살 미성년자인 어텀의 임신이 폭력에 의한 것인지, 혹은 다른 사연에 의한 것인지 등을 조사한다. 다분히 사무적이지만 점점 격해지는 어텀의 감정에 따라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는 상담가의 말은 어텀이 펜실베니아에서 듣지 못했던 종류의 말이다. 이는 그와 동행한 스카일라 또한 해내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그러한 종류의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무적인 단어들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암컷 반려견을 ‘Bitch’라 부르는 가부장의 언어로 가득한 펜실베니아에서 접할 수 없었던 종류의 언어다. 때문에 뉴욕을 찍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는 어텀의 여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 줄 최소한의 언어와 만나는 여정이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약 이 여정이 어텀의 이야기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스카일라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스카일라는 다소 소심한 어텀과 다르다. 그가 마트 점장을 상대하는 모습은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는 직장 내 성희롱을 견뎌내는 모습이다. 그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필요할 때는 그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스카일라가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고 하여 그에게 가해지는 성착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텀이 뉴욕으로 떠날 용기와 지지에 스카일라가 필요했듯이, 스카일라 또한 어텀의 손길과 연대가 필요한 존재다.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재스퍼라는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는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등의 호의를 베푼 대가로 스카일라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여정의 마지막, 펜실베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두 사람은 어텀의 수술로 인해 돈이 떨어진 상황이다. 스카일라는 어쩔 수 없이 재스퍼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는 두 사람과 함께 볼링을 치고 가라오케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어텀이 없는 사이 스카일라에게 키스한다. 두 사람을 찾아 버스터미널을 헤매던 어텀은 기둥 뒤에서 키스하는 스카일라의 손을 잡는다. 어텀의 여정에 스카일라가 동행했듯, 어텀은 스카일라에게 손을 내민다.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와 의료적 조치를 위해 떠난 어텀의 여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펜실베니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한층 불안이 가신 어텀의 표정에서 환하게 드러난다.
Hyoung_Wonly
3.0
( )에겐 전혀 없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가끔씩 생기는 그러나 ( )에겐 항상 있는 일. 지난 7월 7일,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대법관 브렛 캐버노가 워싱턴 DC의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시위대가 몰려가 식당 앞에서 요란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식당 매니저를 불러서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을 손님으로 받는 게 수치스럽지 않느냐"라며 따졌다. 물론 손님을 받는 건 어디까지나 식당의 자유다. 하지만 너무나 요란한 시위여서 캐버노는 식사를 마칠 순 있었지만 후식은 먹지 못하고(세상에 그 와중에 후식만 남겼네!) 식당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고 전해졌다. 이후 식당 주인은 손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분노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가 나서서 "미안한데, 저녁을 (조용하게) 먹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후 백악관 대변인까지 나서서 "법관을 위협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위는 보장된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위와 관련된 간략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94년에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Madsen v. Women's Health Center, Inc.)에 따르면 낙태(임신 중지) 시술을 받으러 온 여성들을 상대로 반대 단체가 윽박지르고 끔찍한 사진을 들이대는 시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단지 건물에서 10m만 떨어져 있으면 된다. 대법원이 내린 결정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임신 중지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트라우마를 갖는다. 이번 식당 시위를 주도한 단체는 트위터를 통해 워싱턴 DC 내 거의 모든 서비스업 종업원들에게 “보수 대법관들이 식당에 들어오면 신고해달라"라면서 그곳에 있는 게 확인되면 50달러, 메시지를 보낸 후 30분 안까지 여전히 그 장소에 있을 경우 200달러를 벤모앱으로 이체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30분이면 시위대가 출동할 수 있는 시간이고, 최대한 빨리 신고하도록 인센티브 여부를 확실히 한 것이다. 참 미국스럽다(?). 낮은 시급을 받는 서비스업 종업원들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받을 기회가 생겼으니 (소위 엘리트)대법관 6명은 이제 외식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 '조커' 후반부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법 적용이 만나 삽시간에 번져가는 미국식 시위다.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오텀과 스카이라처럼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사실을 소리치고 팻말을 높인 들어올릴 뿐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 김지혜), 사람, 장소, 환대(2015- 김현경),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 - 마이클 센델), 거리 민주주의(2017 - 스티브 크로셔), 유럽 낙태 여행(2018 - 우유니게 외 3명)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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