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캉0.5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 온갖 한국적인 것을 차용해놓고 성의까지 없는데 자아도취만 한가득 한국을 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연기하는 네이티브 평범한 한국인은 최악이다. 평범한 한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입은 셔츠, 배바지, 배낭까지 다 어색하다. 정말 한국 토박이인데 저런 눈빛과 말투를 가졌다면 걸러야 한다. 도믿남 같은 싸한 기운이 스크린 너머로 다 전해지는데 캐릭터에 애정이 느껴질 리가. 극 중 '해성'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는데 "아 유 헝그리?" 이 한마디를 못 알아들어서 얼타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간 사람은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이 정도로 캐릭터가 허술하다. 그리고 12년이 지났음에도 해성의 술자리에서 '나 장기하요' 티 팍팍 내며 머리 스타일 하나 안 바뀌고 주름 하나 안 생긴 친구 배역까지 성의 없다. 이별 때문에 우는 친구 하나 있고 그걸 위로하는 남자 대학생 술자리씬은 진짜 무슨 스케치코미디나 웹드라마 단골 장면 아닌가? 해성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음을 보여주려는 장면의 목적을 이렇게 뻔하게 다 드러내야만 할까? 사소한 것 역시 너무나 고민이 없고 진부하다. 이 영화는 휘발성 강한 평화로운 풍경 이미지를 내내 고집한다. 노을, 강물 같은 서정적인 이미지로만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 듯이. 관객은 지겨운 감성 이미지 한가득 안에서 진전이 하나도 없는 둘의 대화를 들어야 한다. 별 시답잖은 말을 한마디 주고받을 때마다 10초를 넘기면서 대화를 하는데 정말 거북하다. 캐릭터를 좋아해야 대화에 녹아드는 거지, 둘 다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애정이 하나도 안 가는데 달달할 리 만무하다. 둘이 영화 내내 지겹게 하더니 끝에 가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나영과 해성은 ’아서‘가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고 전생이 어쨌니, 그때의 너를 사랑했니마니, 아주 정신 나간 대화를 다 한다. 전생이고 후생이고 나발이고 서로 키스라도 할 것마냥 쳐다보지 말고 지금 옆에 있는 남편이나 잘 챙겨라 이 양반아. 이 모든 문제는 둘의 관계가 애초에 유년 시절부터 재미없었고 그 재미없음이 성인이 돼서도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둘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알면 그게 바람일지라도 관객은 흔들린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둘의 어린 시절 관계를 그냥 '서로 좋아했음, 엄마 따라 데이트도 했음.'으로 퉁쳐버린다. 이 정도 갖고 그렇게까지 애틋하게 서로를 쳐다볼 수 있다고? 이해불가다. 몽롱한 음악과 이미지로 채운다고 관계가 애틋해지지 않는다.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성의 없고 진부한 장면과 메시지 종합선물세트. 집에서 영화관으로 이동한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Like767Comment31
정환4.0우리의 모든 만남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 우리의 관계를 긍정할 만큼 아름다웠던 거고, 모든 이별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의 우리의 관계를 결정할 만큼 숭고했던 거라고 믿고 싶다. 물론, 지금의 우리를 이끈 것은 전생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이번 생의 모든 선택들에겐 전생과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그만큼의 숭고함을 담아냈기에, 그래서 아름다운 것. . . 이 영화는 분명하게 머무르고 떠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어렴풋한 짐작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인연과 전생. 그녀는 인연과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낯선 두 사람이 거리를 걷다 우연히 옷깃을 스쳐도 인연 이랬다. 그건 전생에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을 당신은 믿냐는 질문에 그녀가 답한다. 이건 그냥 상대방을 유혹하기 위한 말들일 뿐이라고. 그녀가 그 남자에게 이런 인연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그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인연의 이야기를 믿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인연에게 지닌 사랑의 힘을 믿고 있었다. 우리는 왜 머무르고 왜 떠나는 걸까. 뭔가를 결정하기 전부터 시작할 이 질문은,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 그때의 질문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우리가 왜 머물렀었고 왜 떠났던 걸까. 이제 그 이유는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에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떠나던 사람이었던 나영은 인연 중에서도 우연이 지닌 사랑의 고유한 신비성을 믿었다. 그녀는 언제나 어딘가로 떠나던 사람인지라, 스쳐가는 수많은 것들과의 만남과 이별 속 인연의 우연함을 깊이 들여다본다. 왜 우리가 이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을까. 혹은 왜 떠났을까. 누군가와 이루어지는 인연과 이루어지지 못할 그 이유를 자신이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전생에 묻는다. 반면, 해성은 언제나 머무르던 사람이었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며 떠나보낼 시간을 주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 나에게 그녀는 너무 과분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신을 떠나보내게 만듦으로 그는 스스로 머무르는 사람이 되었다. 해성은 우연히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이 지닌 우연성의 신비를 찬양하진 않는다. 그에게 우연으로 만난 인연은 그중에서도 오래 스쳐갔을 뿐인 하나의 시공간에 불과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에게 인연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스쳐가는 것들 속 영원히 붙잡고 싶은, 붙잡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인연을 우연에 기대는 대신, 스스로 인연을 만들어 갔다. 어린 시절 첫사랑 나영을 찾기 위한 공고를 올리기도 하고, 13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12살, 해성에게는 영원히 붙잡고 싶었던 첫사랑의 인연이 나영에게는 그저 못 다 이뤘던 전생과도 같은 기억 속 인연이었을 뿐이다. 나영은 이민을 갈 때, 12살 시절의 모습은 한국에 놔두고 떠났다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영이 아닌 노라의 삶으로 살아간다. 즉, 한국에서의 12살 소녀 나영은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전생의 모습이다. 우리는 전생을 절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어땠을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해성과 나영은 대체 전생에 우리는 어떤 관계였기에 지금 우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지를 서로 생각해 보지만, 지금은 노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나영은 전생의 기억과도 다를 게 없었다. 그녀에게 첫사랑 해성은 전생에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던 기억일 뿐이다. 나영이 떠나는 사람이기에 해성이 머무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해성이 일궈내지 못한 옛사랑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성은 나영에게 받은 메일에 답장하지 않았고, 자신이 영원히 붙잡고 싶었던 인연이 아닌 다른 인연으로 눈 돌리기도 했었다. 그들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의 탓을 전생으로 돌려보지만, 실은 모두 그들이 선택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도, 떠났던 것과 머물렀던 것 모두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지금 이번 생에 대한 모든 인연의 운명이란 그저 짐작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인연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혹은 우리가 어쩌면 인연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의 머무름과 떠남을 전생의 운명이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마저 확신이 아닌 짐작일 뿐이니까. 어쩌면 저번 생에 우리는 잠시 날아가는 길에 머물렀던 새와 나뭇가지의 관계였을 거란 짐작부터 나는 이 이야기에서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오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의 역할일 거라고 짐작하는 것까지 말이다. 기억하지 못할 전생은 마치 기억하지 못할 꿈과도 같았다. 우리의 전생은 어땠을까 짐작하는 것. 내가 어떤 꿈을 꾸었길래 잠꼬대를 그리했었을까 짐작하는 것. 다른 언어로 잠꼬대를 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자고 있는 그대가 어떤 꿈을 꾸었을지를 짐작하고, 다른 언어로 나누던 얘기들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를 짐작하는 것. 전생과 현생의 인연, 꿈과 현생에서의 일들. 우리의 모든 삶은 짐작일 뿐이라며. 누군가의 짐작으로부터 시작했던 이 영화가 그랬듯이 말이다. 나영과 해성은 서로의 인연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랐지만, 그들에게 소중한 인연이었음은 분명하다.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 나의 평범함이나 내 사랑이 지닌 평범성에 대해 우려를 하곤 하지만, 결국은 모든 평범한 것들을 예찬하게 된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우리의 이야기에 나름의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스스로 우리 삶의 작가가 되어 모든 평범한 것들에 소중함을 불어넣는 것이니까. 비록 그 인연들이 모두 우리의 짐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모든 인연과 모든 결정에는 우리의 마음이 깃들어있기 마련이었다. 인연이 그토록 숭고하고 아름다운 건, 모든 경우의 수들을 지나온 끝에 마침내 우리가 같은 시공간에 머물러서는 아니었을까. 함께 이곳에 있다는 사실보다도 어떻게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 말이다. 아마도 우리의 모든 만남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 우리의 관계를 긍정할 만큼 아름다웠던 거고, 모든 이별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의 우리의 관계를 결정할 만큼 숭고했던 거라고 믿고 싶다. 물론, 지금의 우리를 이끈 것은 전생의 탓은 아니겠지만, 이번 생의 모든 결정들에겐 전생과 다음 생의 운명만큼, 그만큼의 숭고함을 담아내는 것. 그러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때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힘들었는지를 떠나서 우리의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 머무른 것 같지만, 무엇 하나 머무른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불행이던 축복이던 우리의 어제는 이미 잃어버린 것. 우리의 오늘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어딘가로 나아가야한다. 기어코 전생과 옛 사랑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Like367Comment6
이재성
3.0
윤회를 논하는 동양인 사이에 낀 유대인 부처 아서 이야기
이동진 평론가
4.0
우리를 자꾸 되돌아가게 만드는 건 첫사랑이 아니라 아직 손 흔들어 떠나보내지 못한 그 시절 자체.
이캉
0.5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 온갖 한국적인 것을 차용해놓고 성의까지 없는데 자아도취만 한가득 한국을 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연기하는 네이티브 평범한 한국인은 최악이다. 평범한 한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입은 셔츠, 배바지, 배낭까지 다 어색하다. 정말 한국 토박이인데 저런 눈빛과 말투를 가졌다면 걸러야 한다. 도믿남 같은 싸한 기운이 스크린 너머로 다 전해지는데 캐릭터에 애정이 느껴질 리가. 극 중 '해성'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는데 "아 유 헝그리?" 이 한마디를 못 알아들어서 얼타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간 사람은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이 정도로 캐릭터가 허술하다. 그리고 12년이 지났음에도 해성의 술자리에서 '나 장기하요' 티 팍팍 내며 머리 스타일 하나 안 바뀌고 주름 하나 안 생긴 친구 배역까지 성의 없다. 이별 때문에 우는 친구 하나 있고 그걸 위로하는 남자 대학생 술자리씬은 진짜 무슨 스케치코미디나 웹드라마 단골 장면 아닌가? 해성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음을 보여주려는 장면의 목적을 이렇게 뻔하게 다 드러내야만 할까? 사소한 것 역시 너무나 고민이 없고 진부하다. 이 영화는 휘발성 강한 평화로운 풍경 이미지를 내내 고집한다. 노을, 강물 같은 서정적인 이미지로만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 듯이. 관객은 지겨운 감성 이미지 한가득 안에서 진전이 하나도 없는 둘의 대화를 들어야 한다. 별 시답잖은 말을 한마디 주고받을 때마다 10초를 넘기면서 대화를 하는데 정말 거북하다. 캐릭터를 좋아해야 대화에 녹아드는 거지, 둘 다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애정이 하나도 안 가는데 달달할 리 만무하다. 둘이 영화 내내 지겹게 하더니 끝에 가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나영과 해성은 ’아서‘가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고 전생이 어쨌니, 그때의 너를 사랑했니마니, 아주 정신 나간 대화를 다 한다. 전생이고 후생이고 나발이고 서로 키스라도 할 것마냥 쳐다보지 말고 지금 옆에 있는 남편이나 잘 챙겨라 이 양반아. 이 모든 문제는 둘의 관계가 애초에 유년 시절부터 재미없었고 그 재미없음이 성인이 돼서도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둘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알면 그게 바람일지라도 관객은 흔들린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둘의 어린 시절 관계를 그냥 '서로 좋아했음, 엄마 따라 데이트도 했음.'으로 퉁쳐버린다. 이 정도 갖고 그렇게까지 애틋하게 서로를 쳐다볼 수 있다고? 이해불가다. 몽롱한 음악과 이미지로 채운다고 관계가 애틋해지지 않는다.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성의 없고 진부한 장면과 메시지 종합선물세트. 집에서 영화관으로 이동한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재원
3.0
추억으로 남을 인연과 운명으로 번질 인연은 결국 그 관계의 지속성으로 나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차플레이
4.0
인생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STONE
3.5
어쩌면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If에 관한 짙은 탐구.
정환
4.0
우리의 모든 만남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 우리의 관계를 긍정할 만큼 아름다웠던 거고, 모든 이별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의 우리의 관계를 결정할 만큼 숭고했던 거라고 믿고 싶다. 물론, 지금의 우리를 이끈 것은 전생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이번 생의 모든 선택들에겐 전생과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그만큼의 숭고함을 담아냈기에, 그래서 아름다운 것. . . 이 영화는 분명하게 머무르고 떠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어렴풋한 짐작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인연과 전생. 그녀는 인연과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낯선 두 사람이 거리를 걷다 우연히 옷깃을 스쳐도 인연 이랬다. 그건 전생에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을 당신은 믿냐는 질문에 그녀가 답한다. 이건 그냥 상대방을 유혹하기 위한 말들일 뿐이라고. 그녀가 그 남자에게 이런 인연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그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인연의 이야기를 믿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인연에게 지닌 사랑의 힘을 믿고 있었다. 우리는 왜 머무르고 왜 떠나는 걸까. 뭔가를 결정하기 전부터 시작할 이 질문은,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 그때의 질문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우리가 왜 머물렀었고 왜 떠났던 걸까. 이제 그 이유는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에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떠나던 사람이었던 나영은 인연 중에서도 우연이 지닌 사랑의 고유한 신비성을 믿었다. 그녀는 언제나 어딘가로 떠나던 사람인지라, 스쳐가는 수많은 것들과의 만남과 이별 속 인연의 우연함을 깊이 들여다본다. 왜 우리가 이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을까. 혹은 왜 떠났을까. 누군가와 이루어지는 인연과 이루어지지 못할 그 이유를 자신이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전생에 묻는다. 반면, 해성은 언제나 머무르던 사람이었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며 떠나보낼 시간을 주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 나에게 그녀는 너무 과분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신을 떠나보내게 만듦으로 그는 스스로 머무르는 사람이 되었다. 해성은 우연히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이 지닌 우연성의 신비를 찬양하진 않는다. 그에게 우연으로 만난 인연은 그중에서도 오래 스쳐갔을 뿐인 하나의 시공간에 불과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에게 인연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스쳐가는 것들 속 영원히 붙잡고 싶은, 붙잡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인연을 우연에 기대는 대신, 스스로 인연을 만들어 갔다. 어린 시절 첫사랑 나영을 찾기 위한 공고를 올리기도 하고, 13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12살, 해성에게는 영원히 붙잡고 싶었던 첫사랑의 인연이 나영에게는 그저 못 다 이뤘던 전생과도 같은 기억 속 인연이었을 뿐이다. 나영은 이민을 갈 때, 12살 시절의 모습은 한국에 놔두고 떠났다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영이 아닌 노라의 삶으로 살아간다. 즉, 한국에서의 12살 소녀 나영은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전생의 모습이다. 우리는 전생을 절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어땠을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해성과 나영은 대체 전생에 우리는 어떤 관계였기에 지금 우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지를 서로 생각해 보지만, 지금은 노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나영은 전생의 기억과도 다를 게 없었다. 그녀에게 첫사랑 해성은 전생에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던 기억일 뿐이다. 나영이 떠나는 사람이기에 해성이 머무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해성이 일궈내지 못한 옛사랑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성은 나영에게 받은 메일에 답장하지 않았고, 자신이 영원히 붙잡고 싶었던 인연이 아닌 다른 인연으로 눈 돌리기도 했었다. 그들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의 탓을 전생으로 돌려보지만, 실은 모두 그들이 선택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도, 떠났던 것과 머물렀던 것 모두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지금 이번 생에 대한 모든 인연의 운명이란 그저 짐작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인연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혹은 우리가 어쩌면 인연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의 머무름과 떠남을 전생의 운명이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마저 확신이 아닌 짐작일 뿐이니까. 어쩌면 저번 생에 우리는 잠시 날아가는 길에 머물렀던 새와 나뭇가지의 관계였을 거란 짐작부터 나는 이 이야기에서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오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의 역할일 거라고 짐작하는 것까지 말이다. 기억하지 못할 전생은 마치 기억하지 못할 꿈과도 같았다. 우리의 전생은 어땠을까 짐작하는 것. 내가 어떤 꿈을 꾸었길래 잠꼬대를 그리했었을까 짐작하는 것. 다른 언어로 잠꼬대를 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자고 있는 그대가 어떤 꿈을 꾸었을지를 짐작하고, 다른 언어로 나누던 얘기들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를 짐작하는 것. 전생과 현생의 인연, 꿈과 현생에서의 일들. 우리의 모든 삶은 짐작일 뿐이라며. 누군가의 짐작으로부터 시작했던 이 영화가 그랬듯이 말이다. 나영과 해성은 서로의 인연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랐지만, 그들에게 소중한 인연이었음은 분명하다.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 나의 평범함이나 내 사랑이 지닌 평범성에 대해 우려를 하곤 하지만, 결국은 모든 평범한 것들을 예찬하게 된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우리의 이야기에 나름의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스스로 우리 삶의 작가가 되어 모든 평범한 것들에 소중함을 불어넣는 것이니까. 비록 그 인연들이 모두 우리의 짐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모든 인연과 모든 결정에는 우리의 마음이 깃들어있기 마련이었다. 인연이 그토록 숭고하고 아름다운 건, 모든 경우의 수들을 지나온 끝에 마침내 우리가 같은 시공간에 머물러서는 아니었을까. 함께 이곳에 있다는 사실보다도 어떻게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 말이다. 아마도 우리의 모든 만남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 우리의 관계를 긍정할 만큼 아름다웠던 거고, 모든 이별은 전생과 다음 생에서의 우리의 관계를 결정할 만큼 숭고했던 거라고 믿고 싶다. 물론, 지금의 우리를 이끈 것은 전생의 탓은 아니겠지만, 이번 생의 모든 결정들에겐 전생과 다음 생의 운명만큼, 그만큼의 숭고함을 담아내는 것. 그러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때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힘들었는지를 떠나서 우리의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 머무른 것 같지만, 무엇 하나 머무른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불행이던 축복이던 우리의 어제는 이미 잃어버린 것. 우리의 오늘은 그것을 받아들이며 어딘가로 나아가야한다. 기어코 전생과 옛 사랑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성유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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