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4.5필름메이킹, 인생의 불가해한 시기를 기록하고 기념하기. . (스포일러) <수베니어>는 파트1과 파트2라는 부제 하에 두 편으로 양분이 돼 약간의 텀을 두어 개봉한 작품이다. 그러나 감독 조안나 호그의 소개에 의하면 <수베니어>는 관객이 이 두 편을 연달아 감상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사실상 4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한 편의 영화로 보아야 합당하다. 파트1과 파트2모두, 개별적인 작품으로서는 미완의 느낌이 짙으며 이 두 편의 영화는 서로 굉장히 긴밀한 내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수베니어>는 파트1과 2의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온전히 성립이 되는 영화이다. . 영화의 주인공 줄리는 졸업작품을 앞둔 영화학교 학생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덕에 금전적 문제에 직면하지는 않지만 줄리는 인생의 여러 방면에서 허둥대며 방황한다. 그녀의 현 상황을 요약하건대 그녀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어리숙한 필름메이커이자 종잡을 수 없는 애인과의 관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부모의 재력에 철저히 의존하며 사는 미숙한 한 청춘이다. 조안나 호그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80년대 당시 영화학교 학생이었던 감독 본인의 실제 경험이 다분히 투영된 자전적 성격의 영화라 한다. 조안나 호그는 본 영화를 통해 줄리가 어떻게 인생의 쓰라린 한 시기와 작별하고 다음 페이지로 도약하는지에 대해 그려냄으로써 본인이 겪었던 과거의 성장통을 은연중에 웅변하려 한다. . <파트1>의 눈에 띄는 전략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영화가 줄리의 학교생활에 대한 플롯과 그녀의 연애관계에 관련된 플롯을 분리시켜 이를 대위적으로 전개시킨다는 것이다. <수베니어>는 영국의 도시 선더랜드의 쇠락과 어느 모자관계를 엮은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줄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영화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학교에서 영화제작을 준비하는 줄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일정 분량을 할애한다. 그러나 이처럼 영화학도로서 그녀의 모습이 묘사된 분량은 그녀가 앤소니라는 남자를 만나 우여곡절을 겪는 영화의 메인스토리와 좀처럼 접점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줄리와 앤소니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그녀가 찍으려는 영화에 그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그녀가 점차적으로 학교생활에 소홀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 극의 기둥을 이루는 줄리와 앤소니의 관계는 그 어느 방면에서 보든 참으로 기이하며 불가해하다. 그리고 영화는 그 불가해함을 관객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장치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며 역으로 관객과 인물사이의 거리감을 배가한다. 헤로인 투여를 일삼는 비행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앤소니는 줄리의 집에서 그녀의 물건을 훔쳐놓고도 이것이 강도에 의한 도난 사건인 냥 상황을 조작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폭탄테러에 가담하기까지도 한다. 영화는 이처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앤소니의 작중행적을 그냥 헤아릴 수 없는 영역에 고의적으로 내버려둔다. 관객에게 그의 의중을 해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조금도 없는 셈이다. . 그런가하면 그런 그에게 빠져드는 줄리의 심리역시 관객의 입장에서 심히 의아한 면이 적지 않다. 첫 만남에서부터 거만한 태도로 본인의 지식을 뽐내기만 하는 이 남성에게 줄리가 어떠한 매력을 느껴 빠져들게 되는지, 영화는 이를 관객에게 알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영화는 점프 컷을 적극 활용해 감정적 개연성을 부러 제거함으로써 서사에 공백을 생산한다. 예컨대 앤소니와 줄리가 대판 다툰 뒤 별다른 화해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은 채 곧장 아무렇지 않게 관계가 회복된 순간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영화는 앤소니와 줄리를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상정함과 동시에 이들의 관계에 관객이 좀처럼 온전한 이입을 할 수 없도록 유도한다. . 이토록 불안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 염려하며 지켜보던 도중, 앤소니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며 그들의 관계가 끝이 난다. 줄리의 연애생활과 영화제작 활동을 시종 분리시켜 전개시켜 오던 <파트1>은 말미에 이르러 <파트2>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의 함의가 담긴 엔딩을 선보인다. <파트1>의 마지막, 영화현장에 있는 줄리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촬영현장을 멍하니 쳐다본다. 단언컨대 그 무렵의 줄리는 앤소니를 잃은 상실의 아픔에서 내내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리라. 그런 그녀에게로 카메라가 서서히 줌인한다. 그러자 프레임의 좌측 편에 위치한 촬영현장을 묵묵히 바라보던 줄리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불안한 눈동자로 프레임 정 중앙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후 줄리가 촬영현장 밖으로 퇴장하고 <파트1>이 끝이 난다. 여기에 엿보이는 건 앤소니와의 관계가 마무리된 후 줄리에게 찾아온 모종의 심리적 변화다. 그녀는 더 이상 선더랜드에 관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줄리가 아니다. 스스로도 해석하지 못할 그와의 관계로부터 맺힌 가슴의 응어리, 오직 자신의 속마음을 진솔히 담은 영화제작만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창구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그녀의 영화제작 활동은 스스로의 사생활과 분리될 수가 없어진다. 줄곧 평행 관계를 유지하며 별다른 유착을 보이지 않던 두 개의 플롯이 한 쪽의 선회로 인해 급작스런 접점을 보이며 <파트1>이 마무리 된다. . 앤소니가 극에서 온전히 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트2>를 강력하게 휘어잡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앤소니의 존재감이다. 그 존재감에 압도되어 다시금 평온한 일상으로 회귀하지 못한 줄리는 그와의 관계를 갈무리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다짐한다. 영화는 <파트1>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줄리의 현 상태를 요약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줄리는 하나의 미스터리와 같은 앤소니와의 관계의 늪에서 아직까지 헤어 나오지 못했으며 이 관계의 끝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의 영화제작에 있어 난항을 겪는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영화제작을 빌미로 필요할 때마다 부모의 재력에 철저히 의존하며 지내고 있는 것 역시 그녀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의 어느 일면이라 할 수 있겠다. . 그녀는 이 모든 불안을 털어 내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필름메이킹을 택한다. <파트2>의 대다수의 분량은 줄리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겪는 우여곡절을 묘사한다. 자전적 설정이 다분히 반영된 영화를 찍으며, 줄리 자신을 모티브로 한 배역을 연기한 동료 배우가 줄리에게 작중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줄리는 여기에 명확한 디렉팅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때 앤소니에게 그렇게 했다는 어정쩡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여기서 엿보이는 건 줄리 스스로가 그 시절의 자신이 불가해한 존재였음을 시인하고 있는 듯한 태도다. 앤소니와의 관계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찍음으로써 어쩌면 줄리는 도무지 헤아리지 못할 그때의 자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든 앤소니와의 관계를 속 시원히 마무리해야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그녀가 직면한 당장의 실존적 과제이자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거스를 수 없는 인생의 어느 단계일 것이다. . 줄리 본인부터가 앤소니와의 이 수수깨끼 같은 관계 속 양가적인 정서를 이해하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기에 다른 이들이 줄리가 찍는 영화에 내재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촬영기간 도중 줄리를 지지하는 편과 그렇지 못한 편으로 의견이 갈려 약간의 불화가 빚어지는 것은 물론, 줄리는 자신의 스탭들에게 작품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명료히 잘 설명하지 못한 탓에 동료들의 고른 신임을 얻지 못한다. <파트2>는 초짜 아티스트들이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겪을 법한 일련의 갈등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가령 촬영 및 조명 기구의 배치에 있어 이에 익숙지 않은 줄리가 허둥대는 장면이 연속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스탭들이 줄리의 자질을 의심하기도 하는 식이다. 영화는 이들의 갈등에 있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의 불화는 비단 줄리의 독단과 무능함만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스탭들이 치기어린 투로 줄리에게 생떼를 부림으로 인해 빚어진 것도 아니다. 조안나 호그는 이 모든 과정을 그저 순수한 열정들이 한 데 모이고 모이다 보니 발생한 한 때의 해프닝 정도로 해석한다. 어찌됐든 곡진한 사연을 거쳐 영화는 완성되었고 권위적 태도로 인해 해고 된 어느 남성감독과 달리 어떻게든 줄리는 감독직을 끝끝내 사수했다. 영화는 마치 그 시절의 미숙함까지 결국엔 긍정하는 듯하다. . 이어서 줄리의 완성된 작품이 첫 관객들을 맞이한다. 영화의 제목은 본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수베니어’다. 영화 속 영화가 상영되면, 우리는 줄리의 시점을 통해 극중극을 감상한다. 영화에서 보이는 건 줄리와 앤소니를 연기한 한 쌍의 주연 배우진이 아니라 실제 줄리와 앤소니의 얼굴이다. 줄리의 영화는 퍽 초현실적인 무드를 유지한다. 앤소니라는 미스터리한 남자가 내뿜는 기이한 매력과 그의 위험한 면모가 표현주의적 성질을 띤 시각적 장치들을 발판 삼아 마구 발산되고, 그 마력에 홀려 시각적 기표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줄리의 모습이 초현실적인 톤으로 은유된다. 줄리는 앤소니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자신의 매혹을 보는 이에게 정합적으로 납득시키는 것이 아닌 그들을 매혹의 현장으로 초대함으로써 그 불가해함을 체감케 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 속 영화의 말미에, 줄리는 카메라를 손에 쥔 채 벽을 부수고 나가면서 앤소니와 작별한다. 이 시각적 은유는 우리에게 필름메이킹의 과정을 통해 수수께끼 같던 인생의 어느 시기와 시원섭섭히 작별한 한 여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인 ‘수베니어’의 뜻처럼, 줄리는 자신의 데뷔작을 그토록 모순적이었고 결함으로 가득했던 앤소니와의 관계를 기념하는 용도로 여기려 한다. . <파트2>의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영화가 줄리의 작품의 흥망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줄리가 찍은 ‘수베니어’가 관객의 호평을 얻었는지, 혹은 실패작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영화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예술가의 데뷔작에 관대함을 보인다. 마치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긴요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후회 없이 녹여내기만 했다면 흥행은 상관없고 그걸로 족하다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 영화의 반응이 어떠했든과 무관하게 자신의 영화가 상영된 이후 줄리는 꽤나 후련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두 가지 사소한 장면에서 우리는 줄리의 변화를 확인한다. 첫째로는 그녀가 엄마에게 빌린 돈을 마침내 지불하는 장면이다. 물론 이를 온전한 경제적 독립으로 읽는 건 지나친 비약이겠다만 <파트1>과 <파트2> 모두에서 시종 부모의 재력에 묶여있던 그녀가 마침내 나름의 재정적 능력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더 이상 줄리가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고 부모의 그늘을 떠나 자생할 수 있게 되었음을 명시하며 그녀의 성장을 보여준다. . 두 번째 장면은 그녀가 뉴스를 보며 홀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예술가로서 줄리의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암시한다. <파트1>에서 줄리는 선더랜드에 대한 영화를 찍기로 다짐했으나 앤소니에 온 신경이 사로잡혀 소재를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앤소니와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갈무리한 지금, 그녀의 감수성은 이제 그녀가 다른 주제의식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예민함을 허락한다. 영화는 줄리가 잠시 특수한 상황에 놓였던 단발적인 영화감독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관객의 염려를 덜어주는 듯하다. . 인물의 성장이 이뤄지고 앞날을 기대케 하는 대목에서 극을 마무리 짓는 영화의 라스트신은 감독 조안나 호그 본인의 자전적 맥락을 다소 노골적으로 짙게 부각한다. 줄리가 학교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흥에 젖어 맘껏 노는 장면에서 갑자기 영화의 카메라가 이동하고 마치 그녀의 집이 하나의 세트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리고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의 사인, 컷. 이건 명백히 본 영화의 감독 조안나 호그의 컷 사인이다. 맨 마지막에 이르러 묘한 액자구성을 형성케 하는 이 외마디는 본 영화를 감독의 자전적 맥락을 고려하여 읽도록 유도한다. ‘수베니어’라는 영화 속 영화에는 이미 흘러간 자신의 어리숙한 시기를 추억하기 위한 줄리 개인의 사적인 의미가 내재돼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줄리가 ‘수베니어’라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담긴 <수베니어>라는 영화를 찍은 조안나 호그에게 역시 이 <수베니어>는 그녀의 내밀한 기억을 기념하고자 하는 의도의 산물로 추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화 촬영 이후 줄리에게 예술가로서 모종의 도약의 순간이 찾아왔듯이, 이 두 편의 영화를 긍정하는 한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추진 삼아 감독 조안나 호그 역시 예술가로서 다음 챕터로 훌쩍 넘어가기를 막연히 소망할 따름이다. Like15Comment1
박지원_리뷰를 리뷰하다3.5진짜가 되기 위해 가짜를 택해야 하는 순간들, 그렇게 나는 영화가 되기로 했다. Moments where you have to choose fake to be real, That's how I decided to become a films.Like3Comment0
엄지수4.0줄리의 기억-단어 자체만으로도 주관적인-은 현재와 상쇄한다. 보이지 않는 도자기 파편이 살을 베듯 앤소니는 줄리를 조각낸다. 실재하던 앤소니는 현재의 줄리에겐 조각난 환상일 뿐이다. 그 환상은 그녀를 붙들어 매고 ‘기념’을 욕망하게 한다. 20분을 위해 200분이 기록된다. 몇만개의 문장과 장면이 스쳐 갔을 이 영화는 제법 멋진 일기장이다.Like3Comment0
유나나4.5영화를 만드는 과정자체가 예술임을 알게 해준 영화, 개인적으로 1편보다 재미있었어요^^ 주인공이 나인데 또 그 주인공의 배역은 다른 사람이 맡게 되고 또 그걸 다시 찍고 있는 진짜 나의 전환들이 경이로웠어요 또 극 중 주인공이 사는 집과 자연배경들이 그림 속에 들어와있는듯 아름다웠습니다Like2Comment0
이석범3.5전편이 재미없다고 파트2를 거르면 분명 실수. 파트1이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면 파트2는 감독이 전편에서 겪은 내면의 과거사를 영화로 녹여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으며, 영화로 녹여내는 과정은 다시 주인공의 기억의 흔적,파편으로 남아 체화된다Like2Comment0
Jay Oh
3.5
영화로 이루었다. 나 아니면 누가 내 재탄생을 기념하리. A personal celebration of rebirth.
chan
4.5
필름메이킹, 인생의 불가해한 시기를 기록하고 기념하기. . (스포일러) <수베니어>는 파트1과 파트2라는 부제 하에 두 편으로 양분이 돼 약간의 텀을 두어 개봉한 작품이다. 그러나 감독 조안나 호그의 소개에 의하면 <수베니어>는 관객이 이 두 편을 연달아 감상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사실상 4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한 편의 영화로 보아야 합당하다. 파트1과 파트2모두, 개별적인 작품으로서는 미완의 느낌이 짙으며 이 두 편의 영화는 서로 굉장히 긴밀한 내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수베니어>는 파트1과 2의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온전히 성립이 되는 영화이다. . 영화의 주인공 줄리는 졸업작품을 앞둔 영화학교 학생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덕에 금전적 문제에 직면하지는 않지만 줄리는 인생의 여러 방면에서 허둥대며 방황한다. 그녀의 현 상황을 요약하건대 그녀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어리숙한 필름메이커이자 종잡을 수 없는 애인과의 관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부모의 재력에 철저히 의존하며 사는 미숙한 한 청춘이다. 조안나 호그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80년대 당시 영화학교 학생이었던 감독 본인의 실제 경험이 다분히 투영된 자전적 성격의 영화라 한다. 조안나 호그는 본 영화를 통해 줄리가 어떻게 인생의 쓰라린 한 시기와 작별하고 다음 페이지로 도약하는지에 대해 그려냄으로써 본인이 겪었던 과거의 성장통을 은연중에 웅변하려 한다. . <파트1>의 눈에 띄는 전략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영화가 줄리의 학교생활에 대한 플롯과 그녀의 연애관계에 관련된 플롯을 분리시켜 이를 대위적으로 전개시킨다는 것이다. <수베니어>는 영국의 도시 선더랜드의 쇠락과 어느 모자관계를 엮은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줄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영화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학교에서 영화제작을 준비하는 줄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일정 분량을 할애한다. 그러나 이처럼 영화학도로서 그녀의 모습이 묘사된 분량은 그녀가 앤소니라는 남자를 만나 우여곡절을 겪는 영화의 메인스토리와 좀처럼 접점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줄리와 앤소니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그녀가 찍으려는 영화에 그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그녀가 점차적으로 학교생활에 소홀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 극의 기둥을 이루는 줄리와 앤소니의 관계는 그 어느 방면에서 보든 참으로 기이하며 불가해하다. 그리고 영화는 그 불가해함을 관객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장치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며 역으로 관객과 인물사이의 거리감을 배가한다. 헤로인 투여를 일삼는 비행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앤소니는 줄리의 집에서 그녀의 물건을 훔쳐놓고도 이것이 강도에 의한 도난 사건인 냥 상황을 조작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폭탄테러에 가담하기까지도 한다. 영화는 이처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앤소니의 작중행적을 그냥 헤아릴 수 없는 영역에 고의적으로 내버려둔다. 관객에게 그의 의중을 해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조금도 없는 셈이다. . 그런가하면 그런 그에게 빠져드는 줄리의 심리역시 관객의 입장에서 심히 의아한 면이 적지 않다. 첫 만남에서부터 거만한 태도로 본인의 지식을 뽐내기만 하는 이 남성에게 줄리가 어떠한 매력을 느껴 빠져들게 되는지, 영화는 이를 관객에게 알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영화는 점프 컷을 적극 활용해 감정적 개연성을 부러 제거함으로써 서사에 공백을 생산한다. 예컨대 앤소니와 줄리가 대판 다툰 뒤 별다른 화해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은 채 곧장 아무렇지 않게 관계가 회복된 순간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영화는 앤소니와 줄리를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상정함과 동시에 이들의 관계에 관객이 좀처럼 온전한 이입을 할 수 없도록 유도한다. . 이토록 불안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 염려하며 지켜보던 도중, 앤소니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며 그들의 관계가 끝이 난다. 줄리의 연애생활과 영화제작 활동을 시종 분리시켜 전개시켜 오던 <파트1>은 말미에 이르러 <파트2>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의 함의가 담긴 엔딩을 선보인다. <파트1>의 마지막, 영화현장에 있는 줄리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촬영현장을 멍하니 쳐다본다. 단언컨대 그 무렵의 줄리는 앤소니를 잃은 상실의 아픔에서 내내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리라. 그런 그녀에게로 카메라가 서서히 줌인한다. 그러자 프레임의 좌측 편에 위치한 촬영현장을 묵묵히 바라보던 줄리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불안한 눈동자로 프레임 정 중앙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후 줄리가 촬영현장 밖으로 퇴장하고 <파트1>이 끝이 난다. 여기에 엿보이는 건 앤소니와의 관계가 마무리된 후 줄리에게 찾아온 모종의 심리적 변화다. 그녀는 더 이상 선더랜드에 관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줄리가 아니다. 스스로도 해석하지 못할 그와의 관계로부터 맺힌 가슴의 응어리, 오직 자신의 속마음을 진솔히 담은 영화제작만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창구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그녀의 영화제작 활동은 스스로의 사생활과 분리될 수가 없어진다. 줄곧 평행 관계를 유지하며 별다른 유착을 보이지 않던 두 개의 플롯이 한 쪽의 선회로 인해 급작스런 접점을 보이며 <파트1>이 마무리 된다. . 앤소니가 극에서 온전히 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트2>를 강력하게 휘어잡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앤소니의 존재감이다. 그 존재감에 압도되어 다시금 평온한 일상으로 회귀하지 못한 줄리는 그와의 관계를 갈무리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다짐한다. 영화는 <파트1>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줄리의 현 상태를 요약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줄리는 하나의 미스터리와 같은 앤소니와의 관계의 늪에서 아직까지 헤어 나오지 못했으며 이 관계의 끝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의 영화제작에 있어 난항을 겪는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영화제작을 빌미로 필요할 때마다 부모의 재력에 철저히 의존하며 지내고 있는 것 역시 그녀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의 어느 일면이라 할 수 있겠다. . 그녀는 이 모든 불안을 털어 내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필름메이킹을 택한다. <파트2>의 대다수의 분량은 줄리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겪는 우여곡절을 묘사한다. 자전적 설정이 다분히 반영된 영화를 찍으며, 줄리 자신을 모티브로 한 배역을 연기한 동료 배우가 줄리에게 작중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줄리는 여기에 명확한 디렉팅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때 앤소니에게 그렇게 했다는 어정쩡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여기서 엿보이는 건 줄리 스스로가 그 시절의 자신이 불가해한 존재였음을 시인하고 있는 듯한 태도다. 앤소니와의 관계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찍음으로써 어쩌면 줄리는 도무지 헤아리지 못할 그때의 자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든 앤소니와의 관계를 속 시원히 마무리해야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그녀가 직면한 당장의 실존적 과제이자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거스를 수 없는 인생의 어느 단계일 것이다. . 줄리 본인부터가 앤소니와의 이 수수깨끼 같은 관계 속 양가적인 정서를 이해하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기에 다른 이들이 줄리가 찍는 영화에 내재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촬영기간 도중 줄리를 지지하는 편과 그렇지 못한 편으로 의견이 갈려 약간의 불화가 빚어지는 것은 물론, 줄리는 자신의 스탭들에게 작품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명료히 잘 설명하지 못한 탓에 동료들의 고른 신임을 얻지 못한다. <파트2>는 초짜 아티스트들이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겪을 법한 일련의 갈등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가령 촬영 및 조명 기구의 배치에 있어 이에 익숙지 않은 줄리가 허둥대는 장면이 연속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스탭들이 줄리의 자질을 의심하기도 하는 식이다. 영화는 이들의 갈등에 있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의 불화는 비단 줄리의 독단과 무능함만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스탭들이 치기어린 투로 줄리에게 생떼를 부림으로 인해 빚어진 것도 아니다. 조안나 호그는 이 모든 과정을 그저 순수한 열정들이 한 데 모이고 모이다 보니 발생한 한 때의 해프닝 정도로 해석한다. 어찌됐든 곡진한 사연을 거쳐 영화는 완성되었고 권위적 태도로 인해 해고 된 어느 남성감독과 달리 어떻게든 줄리는 감독직을 끝끝내 사수했다. 영화는 마치 그 시절의 미숙함까지 결국엔 긍정하는 듯하다. . 이어서 줄리의 완성된 작품이 첫 관객들을 맞이한다. 영화의 제목은 본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수베니어’다. 영화 속 영화가 상영되면, 우리는 줄리의 시점을 통해 극중극을 감상한다. 영화에서 보이는 건 줄리와 앤소니를 연기한 한 쌍의 주연 배우진이 아니라 실제 줄리와 앤소니의 얼굴이다. 줄리의 영화는 퍽 초현실적인 무드를 유지한다. 앤소니라는 미스터리한 남자가 내뿜는 기이한 매력과 그의 위험한 면모가 표현주의적 성질을 띤 시각적 장치들을 발판 삼아 마구 발산되고, 그 마력에 홀려 시각적 기표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줄리의 모습이 초현실적인 톤으로 은유된다. 줄리는 앤소니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자신의 매혹을 보는 이에게 정합적으로 납득시키는 것이 아닌 그들을 매혹의 현장으로 초대함으로써 그 불가해함을 체감케 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 속 영화의 말미에, 줄리는 카메라를 손에 쥔 채 벽을 부수고 나가면서 앤소니와 작별한다. 이 시각적 은유는 우리에게 필름메이킹의 과정을 통해 수수께끼 같던 인생의 어느 시기와 시원섭섭히 작별한 한 여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인 ‘수베니어’의 뜻처럼, 줄리는 자신의 데뷔작을 그토록 모순적이었고 결함으로 가득했던 앤소니와의 관계를 기념하는 용도로 여기려 한다. . <파트2>의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영화가 줄리의 작품의 흥망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줄리가 찍은 ‘수베니어’가 관객의 호평을 얻었는지, 혹은 실패작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영화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예술가의 데뷔작에 관대함을 보인다. 마치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긴요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후회 없이 녹여내기만 했다면 흥행은 상관없고 그걸로 족하다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 영화의 반응이 어떠했든과 무관하게 자신의 영화가 상영된 이후 줄리는 꽤나 후련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두 가지 사소한 장면에서 우리는 줄리의 변화를 확인한다. 첫째로는 그녀가 엄마에게 빌린 돈을 마침내 지불하는 장면이다. 물론 이를 온전한 경제적 독립으로 읽는 건 지나친 비약이겠다만 <파트1>과 <파트2> 모두에서 시종 부모의 재력에 묶여있던 그녀가 마침내 나름의 재정적 능력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더 이상 줄리가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고 부모의 그늘을 떠나 자생할 수 있게 되었음을 명시하며 그녀의 성장을 보여준다. . 두 번째 장면은 그녀가 뉴스를 보며 홀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예술가로서 줄리의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암시한다. <파트1>에서 줄리는 선더랜드에 대한 영화를 찍기로 다짐했으나 앤소니에 온 신경이 사로잡혀 소재를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자신의 영화를 통해 앤소니와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갈무리한 지금, 그녀의 감수성은 이제 그녀가 다른 주제의식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예민함을 허락한다. 영화는 줄리가 잠시 특수한 상황에 놓였던 단발적인 영화감독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관객의 염려를 덜어주는 듯하다. . 인물의 성장이 이뤄지고 앞날을 기대케 하는 대목에서 극을 마무리 짓는 영화의 라스트신은 감독 조안나 호그 본인의 자전적 맥락을 다소 노골적으로 짙게 부각한다. 줄리가 학교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흥에 젖어 맘껏 노는 장면에서 갑자기 영화의 카메라가 이동하고 마치 그녀의 집이 하나의 세트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리고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의 사인, 컷. 이건 명백히 본 영화의 감독 조안나 호그의 컷 사인이다. 맨 마지막에 이르러 묘한 액자구성을 형성케 하는 이 외마디는 본 영화를 감독의 자전적 맥락을 고려하여 읽도록 유도한다. ‘수베니어’라는 영화 속 영화에는 이미 흘러간 자신의 어리숙한 시기를 추억하기 위한 줄리 개인의 사적인 의미가 내재돼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줄리가 ‘수베니어’라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담긴 <수베니어>라는 영화를 찍은 조안나 호그에게 역시 이 <수베니어>는 그녀의 내밀한 기억을 기념하고자 하는 의도의 산물로 추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화 촬영 이후 줄리에게 예술가로서 모종의 도약의 순간이 찾아왔듯이, 이 두 편의 영화를 긍정하는 한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추진 삼아 감독 조안나 호그 역시 예술가로서 다음 챕터로 훌쩍 넘어가기를 막연히 소망할 따름이다.
주 영 화
3.0
'영화화'하다. 나도 언젠가 '주영화'할 수 있을까?
박지원_리뷰를 리뷰하다
3.5
진짜가 되기 위해 가짜를 택해야 하는 순간들, 그렇게 나는 영화가 되기로 했다. Moments where you have to choose fake to be real, That's how I decided to become a films.
김병석
4.0
이 손짓이 작품이 될때까지, 대리석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힘겹게 조각한다.
엄지수
4.0
줄리의 기억-단어 자체만으로도 주관적인-은 현재와 상쇄한다. 보이지 않는 도자기 파편이 살을 베듯 앤소니는 줄리를 조각낸다. 실재하던 앤소니는 현재의 줄리에겐 조각난 환상일 뿐이다. 그 환상은 그녀를 붙들어 매고 ‘기념’을 욕망하게 한다. 20분을 위해 200분이 기록된다. 몇만개의 문장과 장면이 스쳐 갔을 이 영화는 제법 멋진 일기장이다.
유나나
4.5
영화를 만드는 과정자체가 예술임을 알게 해준 영화, 개인적으로 1편보다 재미있었어요^^ 주인공이 나인데 또 그 주인공의 배역은 다른 사람이 맡게 되고 또 그걸 다시 찍고 있는 진짜 나의 전환들이 경이로웠어요 또 극 중 주인공이 사는 집과 자연배경들이 그림 속에 들어와있는듯 아름다웠습니다
이석범
3.5
전편이 재미없다고 파트2를 거르면 분명 실수. 파트1이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면 파트2는 감독이 전편에서 겪은 내면의 과거사를 영화로 녹여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으며, 영화로 녹여내는 과정은 다시 주인공의 기억의 흔적,파편으로 남아 체화된다
Please log in to see mor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