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4.5영화 예찬이 아니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공존하는 필름의 역사다. . . 씨네 21 송경원 평론가는 <라라랜드>(2016)에 대해 “영화보다 뮤지컬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평했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바빌론>에도 유사한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극 전체의 유기성보다 각 넘버에 전념하는 뮤지컬처럼,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보다 시퀀스 각각의 기승전결이 부각된다. 이따금 대놓고 뮤지컬의 리듬을 차용하기도 한다. 레이디 페이 주(리 준 리)의 무대와 파티에 심취한 넬리(마고 로비)의 단독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구성이 영화로서 단점일 수 있지만, 덕분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고속도로에서 펼쳐지는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환상적인 댄스 씬처럼 말이다. <바빌론>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대개 세 가지 방식으로 구성된다. 공간 전체를 한 호흡에 담는 롱테이크, 한 인물에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단독 시퀀스, 마지막으로 다수의 사건을 병렬적으로 교차하며 빠른 패닝과 음악으로 리듬감을 유지하는 연출이다. 빠른 패닝이 <위플래시>(2014)를 상기하듯, 세 방식 모두 감독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개별 장면들의 독립성이 두드러지며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장면 구성 방식을 정리하면서 문득 의문이 생겼다. 셔젤 감독은 왜 이토록 많은 연출을 반복해가면서까지 긴 러닝타임(188분)을 채택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들은 상영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단순히 유행을 따랐다고 하기엔 각각의 장면이 다분히 개성 넘친다. 시퀀스가 개별적인 기승전결을 갖추게 되면, 이후 결합되는 장면에서 ‘완료’된 리듬감을 다시 쌓아 올리는 작업이 요구된다. <바빌론>은 같은 방식의 연출을 반복함으로써 리듬감에 숨을 불어넣으려 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몰입감 차이가 여실히 체감되었다. 이처럼 분명한 단점에도 감독이 장황한 러닝타임을 채택한 것은 결국 ‘영화 역사 전체의 재현’이라는 목표가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상영 이후 관객의 반응은 순수한 열정에 대한 감탄과 정돈되지 못한 서사에 대한 혹평으로 나뉘었다. 호불호가 갈린 양측의 반응 모두 영화가 재현하고자 한 ‘수많은 이야깃거리’에서 비롯될 것이다. 영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정돈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무수한 인간이 교차하는 시대를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정리하려는 것 자체가 역사 외적인 관점을 요구하는 그릇된 욕망일 수도 있다. <바빌론>은 눈부시게 화려하면서도 지독하리만치 부정한 시대의 상을 몇 개의 큰 덩어리로 제시할 뿐이다. 심지어 과감하게 선악의 판단을 유보한다. 따라서 영화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선 사건의 연쇄 속에서 나타나는 반복에 주목해야 한다. 할리우드를 ‘죄악의 도시’에 빗댄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인들은 서서히 몰락을 향한다. 영화의 막을 올린 ‘코끼리’는 자본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부정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 무분별한 쾌락이 넘쳐흐르는 파티에서 미성년자 배우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준비된 코끼리는 그녀의 죽음을 감추는 눈속임으로 활용된다. 심지어 많은 남녀가 코끼리조차 신경 쓰지 않고 마약에 취한 채 섹스를 이어 나간다. 소녀의 죽음은 이후 짤막한 기사로 수습될 뿐, 이내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에 자연스레 잊혀진다. 흥겨운 연주가 끊이지 않는 파티장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기란 너무나 쉬운 법이다. 해당 파티가 관객에게 환상을 선사하는 영화인들에 의해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카메라가 넬리의 자극적인 춤사위를 가리킬 때 모든 눈과 귀는 그녀의 육감적인 몸을 향한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 그 중심에 소녀의 죽음을 감추기 위한 코끼리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첫 번째 영화 촬영장에서 엑스트라가 창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카메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넬리의 첫 유성 영화 촬영장에서도 상황은 매한가지다. 카메라 감독 빌리가 장비가 내뿜는 고온을 이겨내지 못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스크린은 삽시간에 ‘사운드 만세’로 시작되는 또 다른 파티의 흥겨운 연주로 전환될 뿐이다. 심지어 콘래드(브래드 피트)가 소중한 동료를 잃었을 때, 영화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영화의 흥행 여부만을 향해 있다. 이처럼 예술의 그림자에서 인간은 빈번히 소외되었다. 안타까운 희생이 죽음의 방식으로만 자행된 것은 아니다.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적절한 발성을 갖지 못한 넬리는 ‘목소리 끔찍하고 헤픈 걸레’로 전락한다. 조명 장비는 흑인 배우(조반 아데포)에게 블랙 페이스를 강요한다.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활동인 예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위플래시>에서 한 명의 드러머에 한정되어 있던 인간 소외 서사가 <라라랜드>의 배경이 되는 영화업계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더욱이 안타까운 사실은 수많은 무덤을 벽돌 삼아 쌓아 올려진 ‘영화’라는 바벨탑이 기울어간다는 사실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의 가치는 곤두박질친다. 짧게 등장한 시위대의 모습처럼 영화계는 여전히 고용윤리와 최소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것이 관례로 여겨진다. 바벨탑 신화에서 인간들이 파멸을 맞이한 것은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콘래드와 수많은 전처의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결혼 생활이 비극으로 귀결된 것을 언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프랑스 이름을 가진 넬리와 멕시코 출신의 매니(디에고 칼바)는 진실된 교감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Talkie Film’ 시대의 문제는 ‘언어’라는 영화 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괴수’를 영화계의 새로운 스타로 추천한다. '괴수'는 말초적인 쾌감과 더 많은 자극만을 요구하는 시장 논리의 의인화로 ‘코끼리’의 진화된 형태이다. 새로운 자본의 질서에 부응하지 못한 예술인들은 꾸준히 도태된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미래에 한 아이가 나를 스크린에 부활시킬 것”이라는 말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격언 아래 인간은 무기력하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스크린에 현신시켜주리라는 수동적인 기대뿐이다. “미래는 자네 것이야.” 세대교체가 임박했음을 깨달은 스타는 쓸쓸히 무대를 퇴장한다. 그들의 죽음 역시 ‘테크니 컬러’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에 묻히게 된다. 1952년, 영화계를 떠난 매니는 오랜만에 영화관을 방문한다.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온 영화는 <사랑은 비를 타고>(1952)로, 유성 영화 전환기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는 매니에게 사랑했던 여인과 그를 촬영장으로 처음 이끈 인물들을 상기시킨다. 과거 한 평론가(진 스마트)의 대사처럼 그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극중극의 서사가 극중 인물의 전기였음이 밝혀지며 한 인물의 생애와 영화의 역사 전체가 교차한다. 영화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왔고 개인은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씬보다 큰 아티스트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예술의 발전이지, 인간 소외가 아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Dignity, always dignity." 예술가는 인간 보편의 품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시퀀스가 돋보인 것은 단순히 화려한 색의 향연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의 발전 너머 스크린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희생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230213 기사 최종 수정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41 / Q. 영화의 발전을 총망라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넷플릭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흥미롭다. / 230126 건대 롯데시네마 시사회Like688Comment19
현 성5.0“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걸 감사히 여겨요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천사와 영혼처럼 영원할 테니” 무책임한 미화가 아닌 난잡한 본성마저 끌어안겠다는 영화에 대한 진심어린 러브레터Like682Comment2
이진수/(Binary)5.0사라지지 않고 의미 있는 게 있긴 할까? 그 막막한 질문에 오직 영화와 내 본성(本性)만이 후대에 기억될 수 있다고. 우리 그 사실에 감사하며 만족하자고, 그렇게 이젠 물러나보자고.. 토닥여주며 상처받은 꿈들을 위로한다 *영화의 존재 이유와 당신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주는 착한 걸작 *새로운 세대, 시대를 위한 시네마 천국 *당신이 사랑해왔던 수많은 할리우드의 해피엔딩 속, 어두운 이면과 은폐된 거짓들을 낱낱이 해부해 까발린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이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단 걸 똑똑히 각인시키며 장대한 헌사를 바친다 “우리가 언제부터 영화를 예술성 때문에, 고급예술이기에 좋아한 적 있나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기에 사랑하는 거지” *당신이 영화를 사랑해온, 앞으로도 사랑할 이유를 질문하는 영화 영화(*kino, cinema, motion picture, feature film, movie, pictures, 映畵) 정의: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우리의 오래된 친구. 영원한 사랑. 만병을 통치하는 의사. 세상에 유일한, 나만의 약을 지어줄 약사) * 본성(本性):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 인생이란 건 근사해질 리가 없기에 사람은 영원히 영화를, 영화는 관객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돌고 돌며 뒤섞여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둘은 서로 친구가 되어 인생은 근사해진다 당신이 영화를 들여다보며 사랑했던 모든 순간, 영화도 당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사랑을 절절히 고백하고 있었다 관객은 영화 덕에 외로움을 지웠고 영화는 관객 덕에 의미를 새겼다 어느 관계에서나 그렇듯이 성장은 반드시 쌍방향이다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엔딩 신을 보고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사랑했던 영화 속 모든 순간을 바라보며 관객들 각자의 인생 영화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 영화를 보는 당신의 표정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침내 우리가 영화를 짝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당신이 그토록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었단 걸 깨달았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정을 느낄 거라 확신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그것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자신의 본성을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맞춰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건가요? 라라랜드가 일(꿈)과 사랑, 중 무엇을 택했을 때 이루지 못한 잔상에 관한 이야기였고 위플래쉬는 본인의 도덕성과 신념을 해치면서까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이번 영화도 기존의 셔젤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볼 여지도 있지만 거기에 영화를 끌어들어오면서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영화를 사랑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가 실은 삼류들이 근사하지 않은 난장판 속에서 만들어낸 공산품이라 해도 당신은 끝까지 영화를 사랑할 수 있나요? 그리고 그 답은 관객들 저마다의 답이 있을 거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서 얻어낸 결론은 영화를 좋아할 때는 존경스럽거나 고급예술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기에 그것에는 약도 없기에 사랑하는 거다. 영화는 그런 거다 “인생을 망칠 멋진 방법을 찾아봐야지” The Film must go on “그저 영화일 뿐인 동시에 오직 영화뿐인 세상” (송경원 평론가님 한 줄 평/Once upon a time in holly wood/Quentin Tarantino/2019 film) *의미 없는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건 옆에서 기록하는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고 의미 없는 인생들이 저마다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우리들 눈으로 세상을 담고 직접 체험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공인 관객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주인공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우린 영화라는 인생의 친구를 얻었다 아름답지 않은 인생 속에서 이제 발버둥 치지 말고 그저 눈이라는 카메라를 이용해 세상을 담아보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인생을 연출해 보자 *나 혼자 영화에 빚지며 살아왔는지 알았는데 영화도 나한테 빚지며 살아왔구나 아, 우리 서로 오랜 시간 사랑해왔구나 앞으로도 영화는 사라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데미언 셔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Cinema paradaiso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인생, 주인을 잃어버린 영화 그 둘이 만나 사랑에 빠져 서로의 의미가 되어 후대에도 영원히 재생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사람)는/은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물이 될 순 없지만 사랑받을 가치는 충분하다 #놉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등 최근에 영화에 러브레터를 보내는 영화들이 많았지만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독특하다 관객이 영화나 한 시대에 바치는 러브 레터에만 머물지 않고 영화도 관객에게 애정을 보이며 쌍방향으로 소통한다 많은 시네필들은 이 영화를 통해 본인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깨닫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그 애정에 보답받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거다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 진가가 드러나는 우리가 환장해마다 않는 그런 영화가 나왔다 #세반스찬과 미아의 테마가 전설로 남았듯이 매니와 넬리의 테마도 전설로 남을 거 같다 셔젤의 영화를 보면 테마를 들으며 밤거리를 걷고 싶다 #자신의 본성때문에 성공하고 본성 때문에 걸림돌이 되는 걸 흥미롭게 다뤘다 ———————————————————————————————————————————————— 볼품없는 영화가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카메라로 찍어낸 영화이기 때문이고 망가진 우리들의 인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눈을 가지고 담아내며 살아낸 인생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영화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완전해질 수 없는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게 같은 처지인 영화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관객과 영화, 그 둘이 뜨겁게 사랑하며 상처를 들여다봐주는 영화다 “때가 오면 어둠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 사라질 거야” “그때가 오면 후대가 우리를 기억하며 존경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해 보자. 그렇게 훌훌 털며 나비처럼 날아가 버리자 *이제껏 영화를 봐오며 처음 마주한 영화를 보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 한 평생 달려오면서 지켜내고 싶었던 건 한결같이 무엇을 사랑하는 마음, 내 본성, 그때 가졌던 뜨겁던 열정 아니었을까 당신이 사랑한 영화 속 모든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영화가 사랑하는 당신의 모습을 난생처음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을 거다.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인지 오랜만에 곱씹게 해주는 고마운 영화다 #영화(낼리)와 관객(매니)의 사랑 이야기 *꿈을 무너트리면서까지 자신의 본성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야기 *영화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상황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카메라로 찍어냈기에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없다면 스스로의 눈을 카메라로 세뇌하며 본인의 인생을 담아내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는 건 어떨까. 그렇게 평생 완벽하지 않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주인공이 살아낸 인생을 영화 한 편으로 남기듯이 의미 있게 살아가면 어떨까 영화처럼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될 순 없더라도 본인 스스로 뜨거운 졸업작품을 가슴속에 새기고 다음 생으로 떠나는 건 어떨까 그런데, 저세상에 영화가 없다면 정말 슬프긴 할 거 같다 그건 아름답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자꾸 든다 만약을 대비해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몸소 만끽하며 스스로 인생의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마음껏 즐기다 떠나자. 우리 인생의 감독, 각본가, 주인공, 조연, 엑스트라, 기획자, 평론가 모두 해보면서 후회 없이 영화로 담아내보자 #영화를 열심히 봐왔던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씨네필이라면 그 순간들에 보상받는 순간을 느끼실 겁니다 #사랑해. 사랑해 진짜 사랑한다 ——————————————————————- *세시간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달려 마주한 영화 속 내가 사랑한 모든 순간.. 처음 보는 영화를 보는 내 모습 영화가 고급예술이 아닌 걸 알아서 사랑해 네가 완벽하지 않은 나사 여러 개 풀린 상처투성이 이기에 사랑해. 그럼에도 넌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는 고마운 영화 #세상이 우리의 모습을 바꾸려 하고 뜯어 고치려 해도 순응하지 말자. 망가지더라도 우리의 본성, 형태를 지켜내보자 마지막에 흘린 눈물은 자신이 영화(본인이 살아낸 인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으면서 흘린 눈물 같다. 그저 그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 같다 ———————————————————————— 인생이란 건 근사해질 리가 없기에 우리는 영화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잊힌 사람들도 지금은 잃어버린 감정들도 내가 밟아온 발자취도 모두 영화 속에 살아있다 이것이 우리가 영화를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시네필들이 살아온 이유를. 살아갈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 ——————————————————————— 우리가 영화를 보며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영화를 동경하며 살아갈 것이기에 잊힌 스타들도, 조연과 엑스트라들 역시 지금 여기에도,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인생이 근사해질 리가 없기에 그렇게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살고 싶어할거다 It's written in the stars, I am a star. 이건 운명이야, 내가 바로 스타야. “중요한건 영화 그 자체야” '영화계에 바치는 러브레터(love letter)이자 헤이트레터(hate letter)' 가장 애정 하는 감독 중 하나인 데미언 셔젤이 가장 동경하는 배우 중 하나인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거기에 원어 할 듀오인 마고 로비까지 이 영화는 마법 같을 거고 황홀할 거 같다. 의심할 바 없다 #매번 마법 같은 순간을 영화에 담아내는 셔젤의 차기작 ———————————————————————— “훗날 나의 손자, 손녀에게 당신과 함께 뛰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데르 에레라 (맨유를 떠나는 루니에게)Like467Comment19
이동진 평론가
4.0
영화에 대해 절절히 고백하는 장대한 서사시, 고귀해서가 아니라 너라서 사랑해.
STONE
4.0
영화는 죽지 않는다. 100년 후 이 영화가 고전이 되는 순간을 경험해보고 싶다.
무비신
5.0
그럼에도, 영화는 참으로 마법 같은 것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시대는 변해도 영화는 함께 했고, 하고 있고, 할 것이다.
Re
4.5
그래도 사랑하시죠?
김현승
4.5
영화 예찬이 아니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공존하는 필름의 역사다. . . 씨네 21 송경원 평론가는 <라라랜드>(2016)에 대해 “영화보다 뮤지컬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평했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바빌론>에도 유사한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극 전체의 유기성보다 각 넘버에 전념하는 뮤지컬처럼,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보다 시퀀스 각각의 기승전결이 부각된다. 이따금 대놓고 뮤지컬의 리듬을 차용하기도 한다. 레이디 페이 주(리 준 리)의 무대와 파티에 심취한 넬리(마고 로비)의 단독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구성이 영화로서 단점일 수 있지만, 덕분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고속도로에서 펼쳐지는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환상적인 댄스 씬처럼 말이다. <바빌론>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대개 세 가지 방식으로 구성된다. 공간 전체를 한 호흡에 담는 롱테이크, 한 인물에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단독 시퀀스, 마지막으로 다수의 사건을 병렬적으로 교차하며 빠른 패닝과 음악으로 리듬감을 유지하는 연출이다. 빠른 패닝이 <위플래시>(2014)를 상기하듯, 세 방식 모두 감독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개별 장면들의 독립성이 두드러지며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장면 구성 방식을 정리하면서 문득 의문이 생겼다. 셔젤 감독은 왜 이토록 많은 연출을 반복해가면서까지 긴 러닝타임(188분)을 채택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들은 상영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단순히 유행을 따랐다고 하기엔 각각의 장면이 다분히 개성 넘친다. 시퀀스가 개별적인 기승전결을 갖추게 되면, 이후 결합되는 장면에서 ‘완료’된 리듬감을 다시 쌓아 올리는 작업이 요구된다. <바빌론>은 같은 방식의 연출을 반복함으로써 리듬감에 숨을 불어넣으려 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몰입감 차이가 여실히 체감되었다. 이처럼 분명한 단점에도 감독이 장황한 러닝타임을 채택한 것은 결국 ‘영화 역사 전체의 재현’이라는 목표가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상영 이후 관객의 반응은 순수한 열정에 대한 감탄과 정돈되지 못한 서사에 대한 혹평으로 나뉘었다. 호불호가 갈린 양측의 반응 모두 영화가 재현하고자 한 ‘수많은 이야깃거리’에서 비롯될 것이다. 영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정돈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무수한 인간이 교차하는 시대를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정리하려는 것 자체가 역사 외적인 관점을 요구하는 그릇된 욕망일 수도 있다. <바빌론>은 눈부시게 화려하면서도 지독하리만치 부정한 시대의 상을 몇 개의 큰 덩어리로 제시할 뿐이다. 심지어 과감하게 선악의 판단을 유보한다. 따라서 영화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선 사건의 연쇄 속에서 나타나는 반복에 주목해야 한다. 할리우드를 ‘죄악의 도시’에 빗댄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인들은 서서히 몰락을 향한다. 영화의 막을 올린 ‘코끼리’는 자본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부정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 무분별한 쾌락이 넘쳐흐르는 파티에서 미성년자 배우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준비된 코끼리는 그녀의 죽음을 감추는 눈속임으로 활용된다. 심지어 많은 남녀가 코끼리조차 신경 쓰지 않고 마약에 취한 채 섹스를 이어 나간다. 소녀의 죽음은 이후 짤막한 기사로 수습될 뿐, 이내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에 자연스레 잊혀진다. 흥겨운 연주가 끊이지 않는 파티장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기란 너무나 쉬운 법이다. 해당 파티가 관객에게 환상을 선사하는 영화인들에 의해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카메라가 넬리의 자극적인 춤사위를 가리킬 때 모든 눈과 귀는 그녀의 육감적인 몸을 향한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 그 중심에 소녀의 죽음을 감추기 위한 코끼리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첫 번째 영화 촬영장에서 엑스트라가 창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카메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넬리의 첫 유성 영화 촬영장에서도 상황은 매한가지다. 카메라 감독 빌리가 장비가 내뿜는 고온을 이겨내지 못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스크린은 삽시간에 ‘사운드 만세’로 시작되는 또 다른 파티의 흥겨운 연주로 전환될 뿐이다. 심지어 콘래드(브래드 피트)가 소중한 동료를 잃었을 때, 영화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영화의 흥행 여부만을 향해 있다. 이처럼 예술의 그림자에서 인간은 빈번히 소외되었다. 안타까운 희생이 죽음의 방식으로만 자행된 것은 아니다.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적절한 발성을 갖지 못한 넬리는 ‘목소리 끔찍하고 헤픈 걸레’로 전락한다. 조명 장비는 흑인 배우(조반 아데포)에게 블랙 페이스를 강요한다.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활동인 예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위플래시>에서 한 명의 드러머에 한정되어 있던 인간 소외 서사가 <라라랜드>의 배경이 되는 영화업계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더욱이 안타까운 사실은 수많은 무덤을 벽돌 삼아 쌓아 올려진 ‘영화’라는 바벨탑이 기울어간다는 사실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의 가치는 곤두박질친다. 짧게 등장한 시위대의 모습처럼 영화계는 여전히 고용윤리와 최소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것이 관례로 여겨진다. 바벨탑 신화에서 인간들이 파멸을 맞이한 것은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콘래드와 수많은 전처의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결혼 생활이 비극으로 귀결된 것을 언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프랑스 이름을 가진 넬리와 멕시코 출신의 매니(디에고 칼바)는 진실된 교감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Talkie Film’ 시대의 문제는 ‘언어’라는 영화 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괴수’를 영화계의 새로운 스타로 추천한다. '괴수'는 말초적인 쾌감과 더 많은 자극만을 요구하는 시장 논리의 의인화로 ‘코끼리’의 진화된 형태이다. 새로운 자본의 질서에 부응하지 못한 예술인들은 꾸준히 도태된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미래에 한 아이가 나를 스크린에 부활시킬 것”이라는 말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격언 아래 인간은 무기력하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스크린에 현신시켜주리라는 수동적인 기대뿐이다. “미래는 자네 것이야.” 세대교체가 임박했음을 깨달은 스타는 쓸쓸히 무대를 퇴장한다. 그들의 죽음 역시 ‘테크니 컬러’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에 묻히게 된다. 1952년, 영화계를 떠난 매니는 오랜만에 영화관을 방문한다.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온 영화는 <사랑은 비를 타고>(1952)로, 유성 영화 전환기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는 매니에게 사랑했던 여인과 그를 촬영장으로 처음 이끈 인물들을 상기시킨다. 과거 한 평론가(진 스마트)의 대사처럼 그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극중극의 서사가 극중 인물의 전기였음이 밝혀지며 한 인물의 생애와 영화의 역사 전체가 교차한다. 영화는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왔고 개인은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씬보다 큰 아티스트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예술의 발전이지, 인간 소외가 아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Dignity, always dignity." 예술가는 인간 보편의 품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시퀀스가 돋보인 것은 단순히 화려한 색의 향연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의 발전 너머 스크린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희생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230213 기사 최종 수정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41 / Q. 영화의 발전을 총망라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넷플릭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흥미롭다. / 230126 건대 롯데시네마 시사회
현 성
5.0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걸 감사히 여겨요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천사와 영혼처럼 영원할 테니” 무책임한 미화가 아닌 난잡한 본성마저 끌어안겠다는 영화에 대한 진심어린 러브레터
이진수/(Binary)
5.0
사라지지 않고 의미 있는 게 있긴 할까? 그 막막한 질문에 오직 영화와 내 본성(本性)만이 후대에 기억될 수 있다고. 우리 그 사실에 감사하며 만족하자고, 그렇게 이젠 물러나보자고.. 토닥여주며 상처받은 꿈들을 위로한다 *영화의 존재 이유와 당신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주는 착한 걸작 *새로운 세대, 시대를 위한 시네마 천국 *당신이 사랑해왔던 수많은 할리우드의 해피엔딩 속, 어두운 이면과 은폐된 거짓들을 낱낱이 해부해 까발린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이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단 걸 똑똑히 각인시키며 장대한 헌사를 바친다 “우리가 언제부터 영화를 예술성 때문에, 고급예술이기에 좋아한 적 있나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기에 사랑하는 거지” *당신이 영화를 사랑해온, 앞으로도 사랑할 이유를 질문하는 영화 영화(*kino, cinema, motion picture, feature film, movie, pictures, 映畵) 정의: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우리의 오래된 친구. 영원한 사랑. 만병을 통치하는 의사. 세상에 유일한, 나만의 약을 지어줄 약사) * 본성(本性):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 인생이란 건 근사해질 리가 없기에 사람은 영원히 영화를, 영화는 관객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돌고 돌며 뒤섞여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둘은 서로 친구가 되어 인생은 근사해진다 당신이 영화를 들여다보며 사랑했던 모든 순간, 영화도 당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사랑을 절절히 고백하고 있었다 관객은 영화 덕에 외로움을 지웠고 영화는 관객 덕에 의미를 새겼다 어느 관계에서나 그렇듯이 성장은 반드시 쌍방향이다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엔딩 신을 보고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사랑했던 영화 속 모든 순간을 바라보며 관객들 각자의 인생 영화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 영화를 보는 당신의 표정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침내 우리가 영화를 짝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당신이 그토록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었단 걸 깨달았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정을 느낄 거라 확신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그것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자신의 본성을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맞춰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건가요? 라라랜드가 일(꿈)과 사랑, 중 무엇을 택했을 때 이루지 못한 잔상에 관한 이야기였고 위플래쉬는 본인의 도덕성과 신념을 해치면서까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이번 영화도 기존의 셔젤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볼 여지도 있지만 거기에 영화를 끌어들어오면서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영화를 사랑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가 실은 삼류들이 근사하지 않은 난장판 속에서 만들어낸 공산품이라 해도 당신은 끝까지 영화를 사랑할 수 있나요? 그리고 그 답은 관객들 저마다의 답이 있을 거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서 얻어낸 결론은 영화를 좋아할 때는 존경스럽거나 고급예술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기에 그것에는 약도 없기에 사랑하는 거다. 영화는 그런 거다 “인생을 망칠 멋진 방법을 찾아봐야지” The Film must go on “그저 영화일 뿐인 동시에 오직 영화뿐인 세상” (송경원 평론가님 한 줄 평/Once upon a time in holly wood/Quentin Tarantino/2019 film) *의미 없는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건 옆에서 기록하는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고 의미 없는 인생들이 저마다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우리들 눈으로 세상을 담고 직접 체험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공인 관객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주인공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우린 영화라는 인생의 친구를 얻었다 아름답지 않은 인생 속에서 이제 발버둥 치지 말고 그저 눈이라는 카메라를 이용해 세상을 담아보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인생을 연출해 보자 *나 혼자 영화에 빚지며 살아왔는지 알았는데 영화도 나한테 빚지며 살아왔구나 아, 우리 서로 오랜 시간 사랑해왔구나 앞으로도 영화는 사라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데미언 셔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Cinema paradaiso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인생, 주인을 잃어버린 영화 그 둘이 만나 사랑에 빠져 서로의 의미가 되어 후대에도 영원히 재생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사람)는/은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물이 될 순 없지만 사랑받을 가치는 충분하다 #놉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등 최근에 영화에 러브레터를 보내는 영화들이 많았지만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독특하다 관객이 영화나 한 시대에 바치는 러브 레터에만 머물지 않고 영화도 관객에게 애정을 보이며 쌍방향으로 소통한다 많은 시네필들은 이 영화를 통해 본인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깨닫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그 애정에 보답받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거다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 진가가 드러나는 우리가 환장해마다 않는 그런 영화가 나왔다 #세반스찬과 미아의 테마가 전설로 남았듯이 매니와 넬리의 테마도 전설로 남을 거 같다 셔젤의 영화를 보면 테마를 들으며 밤거리를 걷고 싶다 #자신의 본성때문에 성공하고 본성 때문에 걸림돌이 되는 걸 흥미롭게 다뤘다 ———————————————————————————————————————————————— 볼품없는 영화가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카메라로 찍어낸 영화이기 때문이고 망가진 우리들의 인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눈을 가지고 담아내며 살아낸 인생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영화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완전해질 수 없는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게 같은 처지인 영화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관객과 영화, 그 둘이 뜨겁게 사랑하며 상처를 들여다봐주는 영화다 “때가 오면 어둠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 사라질 거야” “그때가 오면 후대가 우리를 기억하며 존경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해 보자. 그렇게 훌훌 털며 나비처럼 날아가 버리자 *이제껏 영화를 봐오며 처음 마주한 영화를 보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 한 평생 달려오면서 지켜내고 싶었던 건 한결같이 무엇을 사랑하는 마음, 내 본성, 그때 가졌던 뜨겁던 열정 아니었을까 당신이 사랑한 영화 속 모든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영화가 사랑하는 당신의 모습을 난생처음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을 거다.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인지 오랜만에 곱씹게 해주는 고마운 영화다 #영화(낼리)와 관객(매니)의 사랑 이야기 *꿈을 무너트리면서까지 자신의 본성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야기 *영화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상황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카메라로 찍어냈기에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없다면 스스로의 눈을 카메라로 세뇌하며 본인의 인생을 담아내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는 건 어떨까. 그렇게 평생 완벽하지 않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주인공이 살아낸 인생을 영화 한 편으로 남기듯이 의미 있게 살아가면 어떨까 영화처럼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될 순 없더라도 본인 스스로 뜨거운 졸업작품을 가슴속에 새기고 다음 생으로 떠나는 건 어떨까 그런데, 저세상에 영화가 없다면 정말 슬프긴 할 거 같다 그건 아름답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자꾸 든다 만약을 대비해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몸소 만끽하며 스스로 인생의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마음껏 즐기다 떠나자. 우리 인생의 감독, 각본가, 주인공, 조연, 엑스트라, 기획자, 평론가 모두 해보면서 후회 없이 영화로 담아내보자 #영화를 열심히 봐왔던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씨네필이라면 그 순간들에 보상받는 순간을 느끼실 겁니다 #사랑해. 사랑해 진짜 사랑한다 ——————————————————————- *세시간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달려 마주한 영화 속 내가 사랑한 모든 순간.. 처음 보는 영화를 보는 내 모습 영화가 고급예술이 아닌 걸 알아서 사랑해 네가 완벽하지 않은 나사 여러 개 풀린 상처투성이 이기에 사랑해. 그럼에도 넌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는 고마운 영화 #세상이 우리의 모습을 바꾸려 하고 뜯어 고치려 해도 순응하지 말자. 망가지더라도 우리의 본성, 형태를 지켜내보자 마지막에 흘린 눈물은 자신이 영화(본인이 살아낸 인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으면서 흘린 눈물 같다. 그저 그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 같다 ———————————————————————— 인생이란 건 근사해질 리가 없기에 우리는 영화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잊힌 사람들도 지금은 잃어버린 감정들도 내가 밟아온 발자취도 모두 영화 속에 살아있다 이것이 우리가 영화를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시네필들이 살아온 이유를. 살아갈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 ——————————————————————— 우리가 영화를 보며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영화를 동경하며 살아갈 것이기에 잊힌 스타들도, 조연과 엑스트라들 역시 지금 여기에도,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인생이 근사해질 리가 없기에 그렇게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살고 싶어할거다 It's written in the stars, I am a star. 이건 운명이야, 내가 바로 스타야. “중요한건 영화 그 자체야” '영화계에 바치는 러브레터(love letter)이자 헤이트레터(hate letter)' 가장 애정 하는 감독 중 하나인 데미언 셔젤이 가장 동경하는 배우 중 하나인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거기에 원어 할 듀오인 마고 로비까지 이 영화는 마법 같을 거고 황홀할 거 같다. 의심할 바 없다 #매번 마법 같은 순간을 영화에 담아내는 셔젤의 차기작 ———————————————————————— “훗날 나의 손자, 손녀에게 당신과 함께 뛰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데르 에레라 (맨유를 떠나는 루니에게)
박서하
4.0
저급하더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대여, 불멸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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