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East
D'Est
1993 · Documentary · Belgium, France, Portugal
1h 47m

Chantal Akerman has toured Eastern Europe through Russia, Poland, Ukraine filming everything that moved her : faces, streets, cars, buses, stations, landscapes, interiors, queues, doors, windows, meals. Women and men, young and old passing or stopping, seated or standing. Days and nights, rain, snow and wind, winter and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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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Day
4.5
“수평선에 놓아 바라본 흐르는 변화 및 정체된 움직임” 같은 땅 안에서도 나뉘어졌었기에, 서쪽에서 온 이방인이 담은 동쪽의 모습은 어떠한가. 장벽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 체제도 무너져 내리고 몸 담고 있었던 사람들의 변화하는 시대에 움직임은 이리저리 분주하다가도 무엇인지 모를 것에 하염없이 멈춰 기다리는 모습은 오히려 아직은 불안정한 모습을 힘껏 담는다. 긴 트래킹 쇼트에 담겨진 사람들은 자신들을 담는 카메라에 호기심을 느꼈다가도 낯선 이의 시선에 숨어버리기도 한다. 그저 객관적으로 관찰자의 시점에서 어떠한 간섭없이 찍은 다큐멘터리적 특징과 은근히 건들인 것 같는 연출적인 모습이 보이면서 둘은 대비를 이루면서 더더욱 실험적인 영화가 만들어진 느낌이다. 프레임 속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정체성의 떠돌음과도 같아 보이며 이것은 특정한 스토리 없이 흐르는대로 혹은 보이는대로 느끼게 하는 카메라의 시선 역할이 컸다.
Cinephile
4.0
몹시 단조롭게 움직이는 트래킹 숏 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 지루한 프레임 안팎을 다양한 인물들이 다채롭게 치고 빠지면서 의외로 흥미로운 이미지의 변주를 형성한다. 특히 정류장과 대합실 부분의 인물 배치 구성은 어디까지가 연출된 부분인지 궁금해진다.
권영민
2.5
우선 찍은 것 자체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있겠지만 ...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그 목적이 어느 정도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담아낸 것들에서 관객이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일련의 흐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별로 읽히는 것이 없었다. 기록물로서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긴 했으나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이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맞물려 고유하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때때로 트래킹 쇼트의 속도가 바뀌는 것이 아커만 감독의 카메라가 표현한 최소한의 정치성, 주관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만으로 카메라가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설령 영화보다 사실적이고 관찰자적 시각이어야 할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관객보다도 뒤에 숨어버리는 카메라는 무책임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아무리 훌륭한 기교와 피사체가 있더라도 별로 좋게 받아들일 순 없다.
김도현
2.5
단평 | 카메라로 찍는 행위가 그저 관찰에 그친다면 소련의 붕괴 직후 동구권이라는 정치적 좌표를 끌어들이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외부인을 자처한 시점에 이미 장소와 시간에 대한 코멘터리를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이상으로 할 말은 없으니, 영화는 다시 비겁한 방법론 뒤로 숨는다. 창작자가 사유를 그만 둔 지점에서 관객들이 아무리 고민해봤자 그걸 웃도는 의미는 발생하지 않는다. | 파나비전 | 143 | 대전철도영화제 | 9/27
지하실
5.0
지하실 (jihasil.com) | OTT | 2026년 1월 5일 - 1월 31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 여러 지역을 횡단하며 촬영한 이 작품은, 역사 전환기의 공기를 오직 얼굴과 풍경에 새긴다. 샹탈 아커만은 일체의 인터뷰나 나레이션 없이 사람들의 정지와 이동을 롱테이크로 관찰한다. 카메라 앞의 사람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는 체제의 변화가 남긴 정서가 응어리져 있다. 영화는 특정 국가나 인물, 혹은 사건을 설명하는게 아닌, ‘기다리는 육체들’을 통해 시대의 감각을 아로새긴다. 기록과 사유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샹탈 아커만 특유의 역사 영화. • 샹탈 아커만이 잘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영화 안에서 바로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입장'이랄 게 딱히 없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그 고질병은 <동쪽 (1993)>에서 전면으로 드러난다. 특정 소재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영화들이 있다. 역사적 현장 한복판에 뛰어드는 영화들도 이에 속한다. 이를 둘러싼 담론이 이미 형성되었으니, 감독은 카메라를 아무데나 비춰도 뭔가 있어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미가 모일데로 모인 곳으로 가서 그걸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게 양식장에서 낚시하는 것과 뭐가 다른걸까? 그것은 태만하기 짝이 없는 작업방식이다. <동쪽>은 정확히 그런 계산 하에 만들어졌다. 아커만은 소련의 붕괴 직후 동구권 국가들을 찾아가서 영화를 찍었는데, 별다른 계획없이 찍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고 다녔다. 꽤 실망스러운 태도다. 사유 작업을 거의 내팽개치고 들어갔다는 얘기인데, 그건 일상의 영역에서는 허용되지만, 구태여 타국에 원정까지 가서 할 일은 아니다. 어떠한 의미라도 더할 생각이 없었다면, 애시당초 안 가는 게 맞다는 말이다.
모르그
4.0
카메라(를 든 사람)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아방가르드
3.0
그 시대의 공간을 포착하다, 근데 어쩌라는 것 인가 한 시대의 공간과 사람들을 찍는다는 감독의 동일한 목적 아래에, 어느정도 확고해진 스타일과 철학으로 안정적인 다큐멘터리를 찍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트랙킹 숏과 숏의 길이 등에서 안정적이고 노고가 보이지만 목표가 불명확하고 결과적으로 "동독"의 고유성은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공한 영화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리듬과 구조, 숏 하나하나의 개성이 살아있어 보인다는 점은 감독의 연출력을 증명하는 지점이다. 작품은 질감 전달에는 충실하다. 그러나 그 질감에 대한 깊은 이해나 성찰 따위는 관객에게 미루는 게으른 태도를 보인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태건
3.5
카메라 이동이 말해주는 그때 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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