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leaners & I
Les Glaneurs et la glaneuse
2000 · Documentary · France
1h 22m · PG-13


Varda focuses her eye on gleaners: those who scour already-reaped fields for the odd potato or turnip. Her investigation leads from forgotten corners of the French countryside to off-hours at the green markets of Paris, following those who insist on finding a use for that which society has cast off, whether out of necessity or activism.
Where to 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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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e
4.5
검소하게 이미지를 착실히 한 줌씩 담는 감독의 모습에서 일상을 포착하는 겸손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자본주의 비판의 구호가 붙은 정치적인 의제가 될 수 있음에도, 개인으로서 소박하게 사색하는 감독의 온기가 오늘날의 영화인에게 필요한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카리나
4.5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거나 밭에 버려진 채소 과일등을 줍는 사람들을 거지가 아닌 자본에 저항하는 환경주의자로 전복시키고 그들의 행위를 행위예술로, 그들의 모습을 19세기 명화에 비유하는 시적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점에서 뛰어난 , 야네스 바르다의 시적 다큐의 모든 것.
Jay Oh
3.5
아직도, 앞으로도, 각자의 삶을 줍는 사람들. The gleaning of life.
Magic_Sora
4.0
'줍는 이가 길을 따라 걸으며 수확하는 이가 남기고 간 흔적을 숨긴다' 이삭을 줍는 여인. 쓰래기를 줍는 환경 미화원. 감자나 굴을 주우며 먹고 사는 사람.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 을 찾는 부랑자. 버린 폐품을 모아 예술품을 만드는 예술가. 어떤 이는 버린 폐품을 모아 골동품점 또는 폐공장. 쓸모없는 것 들에 대한 쓸모있는(줍는) 행위는 우리 인생과 사회와 닮아 있다. 우리는 화창한 날에 이삭을 주울 수도 있고 때로는 폭풍 속에서 이삭을 줍기도 한다. 오늘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줍던 그것은 충분히 가치있다고 말하고 싶다.
GS
4.5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제목에서부터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이삭줍는 여인들]을 떠올리게 하며, 실제로 아녜스 바르다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 그림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가 밀레의 그림을 분석하고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미술관에 박제되어 구경거리로 전락한 한 폭의 그림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줍는 행위’를 여전히 지속하는 일부 현대인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는 영화다. 동시에 아녜스 바르다는 밀레의 그림에서 시작한 여정을 통해 현실과 예술의 상호관계를 자문하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태도를 성찰한다. -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도입부에서 농장 근처에 거주하는 한 시민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삭을 줍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설정한다. 산업화된 공정에서 제작된 식량을 먹고 사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순수 자연에서의 식량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도 아니고, 생활과 밀접한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허리를 굽히며 무언가를 줍는 사람들이 있다. 이삭, 밀, 감자, 포도, 굴, 쓰레기까지... 그들은 왜 줍는 것일까.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잉여 생산물로 버려진 무언가를 줍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사연을 부여하거나, 사회적 약자의 프레임을 덧씌우지 않는다. 줍는 행위의 필요성을 채근하지 않고, 불쾌한 연민으로 줍는 이들을 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식사와 취미, 직업과 예술 등 제각각의 이유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줍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만날 뿐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온정 어린 시선과 저항 음악 힙합을 결합하여 줍는 사람의 윤리를 복권하고, 현대인의 피부로 인식할 수 없던 자본주의의 폐단을 고찰한다. - 하지만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가 탁월한 이유는 단지 영화의 소재가 태생적으로 갖는 시의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녜스 바르다의 근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에서도 느꼈지만, 그녀의 영화에는 이상하리만큼 기분 좋은 모종의 기운들이 넘실거린다. 그런 기운들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노년의 연륜과 지혜는 물론 세상을 사랑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마음이 작품 전반에 녹아있다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를 말하려면 그런 인상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녜스 바르다는 산업화의 반작용으로 무심히 버려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영화적 메시지를 계몽적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자신이 찍고 있는 소재의 사물성에 천착하기 보다 그것이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한다. 줍는 행위와 버리는 행위, 과거와 현재, 노동과 예술,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다방면으로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 내레이션으로 말했듯이 아녜스 바르다는 자신이 관찰한 것의 인상과 이미지, 행위와 정보를 소묘하듯 기록한다. 지역 순회를 하며 이곳 저곳 촬영하면서도 유유함을 잃지 않는 영화의 태도는 여타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느끼기 힘든 종류의 감흥이다. 느슨한 궤적으로 이동하는 그녀의 여정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상을 주기보다 순간의 놀이와 풍경의 아름다움에 영화를 내맡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차량의 이동을 막는 양떼가 나타났을 때 애정을 표하며 자신이 촬영한 동물들의 스틸샷을 영화적 요소로 할애할리 없을 것이며, 도로에서 줄줄이 운행하는 대형 트럭을 보고 자동차 레이스를 천진난만하게 펼치지도 않을 것이다. - 같은 맥락에서 아녜스 바르다가 만난 사람들을 주목해보자. 그들은 어떤 인위나 인과를 설계하지 않고 자연스레 영화의 이야기를 구축하며 확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습적인 영화적 완성도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하거나 탐구의 대상으로 소비되지 않고,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주체로서 영화가 관계 맺는 세상에 현존한다.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마지막까지 제각각의 사람들을 특정한 이유나 의미로 결집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 그렇다고 해서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가 단순한 낭만과 이상만을 끌어안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반례를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몇몇 영화들과 다르게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끊임없이 경청하고 사유하는 자세를 여정의 전제로 설정한다. 슈퍼마켓 쓰레기통의 문제로 법정까지 간 청년들을 위해 영화는 보편적 다수가 규정하는 사회성의 사각지대를 재조명하면서도 그들의 행위와 입장을 손쉽게 재단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길거리에서 빵을 주워 먹던 남성이 무료 교육 봉사를 할 때 카메라는 그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이미지를 기록하는 행위에 충실한다. 그것이 진심이라는 태도로 말이다. 이토록 세상과의 작동관계를 세심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화는 흔치 않을 것이다. - 아녜스 바르다의 여정이 그림에서 다시 그림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결국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가 현실과 예술의 상호 관계를 고민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잉여 생산물을 줍는 행위가 재활용의 가치와 맞닿아 있듯이, 현실과 예술의 관계는 익히 보던 세상을 다시 보게 한다. 영화의 초반부, 들고 있던 이삭을 내려놓고 디지털 카메라를 든 아녜스 바르다의 천진난만한 얼굴은 영화 감독으로서의 모종의 결단이다. 산업화/표준화된 영화 제작 공정의 기준에서 노쇠한 자신의 손주름과 흔들리는 렌즈 뚜껑, 움직이는 트럭들은 불필요한 잉여 생산물과 다름 없을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그렇게 무의미하고 무쓸모한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밀레의 그림처럼 아녜스 바르다가 담아낸 세상의 풍경은 어떻게 기억될까. 밀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아녜스 바르다처럼 그녀의 예술은 먼 훗날 누군가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예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기다려진다. -
이진구
3.5
다큐멘터리도 결국은 우리 사회 주변에 존재하는 무수한 까치밥들을 잘 줍거나 따 담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꿰뚫어본, 바르다 감독의 남다른 통찰력
하원
3.5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버려지는 것들'에 보내는 걱정어린 안부.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의 성찰임에도 흔들림 없는 메세지.
주 영 화
4.0
버려지다: 쓰임에서 자유로워지다 줍다: 다르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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