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and See
Idi I Smotri
1985 · Drama/Thriller/War · USSR
2h 20m · NC-17



The invasion of a village in Byelorussia by German forces sends young Florya into the forest to join the weary Resistance fighters, against his family's wishes. There he meets a girl, Glasha, who accompanies him back to his village. On returning home, Florya finds his family and fellow peasants massacred. His continued survival amidst the brutal debris of war becomes increasingly nightmarish, a battle between despair a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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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and See


MavericK
4.5
‘이반의 어린시절’의 성취가 소년의 눈을 통해 비현실적인 전쟁의 참상을 꿈의 이미지와 시적 서정성을 앞세 운 아름다운 영상들로 묵묵히 물의 파장을 담아낸 것 이라면 ‘컴 앤 씨’는 군중들의 눈을 통해 일상화 된 전쟁과 비명섞인 울음소리를 그대로 끄집어 내, 부유하는 카메라를 사용하여 필사적으로 불의 전염성을 담아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사실 영화 속 카메라의 태도는 시종일관 가학적이기에 윤리성이 결여된 듯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영화는 괴작과 걸작사이의 기로에서 분주히 오가며 스스로를 저울질한다. 숲 속에서 소년과 소녀 사이에 폭탄이 여과없이 떨어지는 상황 속 현실을 찍어낸 카메라는 그 순간은 유난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현실에서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자행되는 것 처럼 보인다. 그것의 무게가 산을 짓누르고 사방에 울려 퍼지는 순간 고통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한 소년의 귀가 잠시 멀어버린다. 우리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 클 때 환상속에 기대어 의지한다. 지금을 버틸 수 있는 이유. 그것은 고난 뒤에 찾아올 찬란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미쳐버리게 될 것 이다. 그러나 소년에 눈에 보이는 것은, 손에 쥐어진 것은 황폐한 쥭음 뿐 이다. 혹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잠식시키는 무신경함이다. 자연스레 영화의 오프닝부터 이성을 놓아버린 체 중얼거리며 자폐적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이것이 영화가 시종일관 광기에 휘말려 미쳐있는 이유이다. 트뤼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전영화는 없다고 말했다. 영화가 전쟁을 품을 때 감독의 의도는 전쟁을 지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결과물로써의 영화는 애석하게도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 감독의 터치를 무시한 체 관객에게 은밀히 전쟁에 관한 찬가를 바치고 있다는 것 이다. 이미 불가능해 보이는 전제를 뚫고 나가 진정한 반전영화를 만들기 위해, 남아있는 한 가지 대안은 절대악을 내세운 뒤, 편합한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영화 스스로를 윤리성에 관한 도전이라는 위험과 비난을 감수한 체 극한까지 몰아부쳐야 할 것 이다. 그러나 전쟁 자체가 이성과 동떨어 진 행위이기에 생경하게 느껴지며 비현실적인 사건으로 다가오듯 감독은 영화의 어느 지점이 바람직한 태도이고 어디까지가 윤리성의 한계점인 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때로는 고요한 숲에 폭탄을 퍼붓고 히틀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죄없는 가축을 도륙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반전영화가 갖추어야 할 지향점을 기괴하게도 영화 스스로가 관객에게 계속적인 감상을 요구하며 자체적으로 학습하며 탐구한다. 영화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자의식을 가진 체 역경 속 동반자의 역할을 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 처럼 보인다. 희망이 없는 현실 속 영화와 소년은 어떻게 성장할 것 인가? 애초에 주어진 영화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는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필사적으로 인물들을 담아낸다. 그보다 인물의 눈을 무서울 정도로 자주 관객과 대면시킨다. 그들의 눈빛 특히 소년의 일그러진 눈의 시선은 누구를 향하는가? 진정 좋은 영화는 이따금 관객에게 각자의 인간성에 관하여 질문한다. 주객전도 현상을 일으키며 영화는 이렇게 질문하는 듯 하다. 와서 무엇을 보았는가?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 인가? 후반부 독일군은 마을주민 500명을 한 곳에 모아 불을 지른다. 이후에 등장하는 광기는 불처럼 번져나가 모든 독일군에게 전이된다. 그야말로 순수한 악을 목도한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창문으로 비집고 나오는 아이를 도로 낚아채 던져버리고 그들은 웃으며 분별없이 총을 쏜다. 그것만으로 부족한 듯 화염병을 던져 화재를 일으키고 잿더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여기서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는 소년의 눈빛을 마주한다. 발화점에서 출발하여 전이되는 순간, 광기와 불의 겉잡을 수 없는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가 이 곳 까지 도달했을 때, 이 영화는 걸작보다 괴작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양한 전위적 시도는 결국 한 가지의 결과로 도출되지 않아도 하나의 태도만은 확고하게 고수해야 한다. 초반부가 불같은 광기의 전염성을 시네마적 터치로 그려내 놀라움을 자아냈다면, 후반부는 독일군에 의해 마을주민 모두 잔혹한 폭력에 내팽개쳐진 체 수렁에 빠져 허둥대며 절망속에 서서히 침전된다. 어떠한 성과없이 목적없는 잔인함만 남아있다. 불운한 미래를 암시하듯 소년은 그저 멍하게 황량한 시선을 유지할 뿐 이다. 그 후 영화는 마지막 10분을 남겨둔 상황 속 기적적으로 구원된다. 부유하는 카메라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소년과 영화는 상호간에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며 불가능에 가까운 진정한 반전영화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다. 후반부 소년이 히틀러에게 방아쇠를 당길 때 시간은 뒤틀리고 공간을 완전히 뒤엎어진 체 영화는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자기성찰적 태도를 취한다. 벨라루스인들은 독일군을 포로로 붙잡은 뒤 어떤 사내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는 듯 하다가 불을 지르지 않고 최소한의 행위만 보여준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타오르는 횃불은 독일군의 광기처럼 전염되지 않은 체 웅덩이 속에 차갑게만 식어간다.(영화는 굉장히 영리하게도 그 순간을 클로즈업한다.)거장들은 대부분 영화를 만들면서 후미에 항상 인간에 관한 존경과 믿음을 녹여냈다. 특히 구로자와 아키라는 ‘라쇼몽’에서 한 없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국 아이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지나간 역사를 다가올 미래에 투영시켜 해답을 제시했다. ‘컴 앤 씨’도 마찬가지다. 횃불이 꺼지고 웅덩이에서 소년은 히틀러와 대면하여 엄청난 살기로 방아쇠를 당긴다. 흡사 플레쉬백처럼 리와인드 되는 악행의 역사 속 에서 실마리를 찾기위해 그는 히틀러의 일대기를 돌이켜 보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소년의 나이대와 같은 남자가 있을 뿐 이었다. 아무리 시간을 돌려보아도 그 남자는 결국 타고난 악인이 아니었다. 몇 번의 교차편집으로 소년의 일그러진 얼굴과 히틀러의 어린시절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히틀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직면하며 총을 거둔다. 영화의 마지막 쇼트 벨라루스군이 오솔길을 헤치며 나아간다. 부유하는 카메라는 그들을 쫓아 앞서나가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샛길을 통해 따라 잡으려 한다. 중력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카메라는 샛길을 통과한 후에도 러시아군을 추월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뒤에서 바라 보며 운동을 멈춘다. 역사 또한 영화처럼 일정한 속도로 수레바퀴 흐르듯 움직이며 편법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 임으로 악은 오직 역사에 의해서만 심판받을 것 이다. 영화는 말없는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아내어 그들에게 삶은 계속 될 것 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광기로 시작된 역사에서 조차 희망을 걸 수 있는 용기와 인간에 관한 신뢰가 전제한 후에 비로소 바람직한 반전영화라 부를 수 있을 것 이다.
에베베베
5.0
This may contain spoiler!!
P1
5.0
음울한 진흙탕에 젖어들어가는 전쟁의 참상. 그런 기분을 느끼게하는 퇴폐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환상적인 연출.지독하고 무서운 영화. 소년의 표정은 잔다르크의 수난도 대적할 만하다. 보라 보라 죽음이 등뒤까지 다가오고 어둠이 발 밑에 내려앉는 걸 보라 쏘아올린 파란 등불이 산등성이에 내려앉아 조용히 사라지는 걸 보라 보라, 이 지독한 비명과 총소리를 보라, 이 소년을 소년은 울지 않는다 소년은 두려움에 눈물이 모두 말라버렸다.
다비
5.0
네 역사의 징벌을 아이가 될 때까지 받으라. 네 발에 짓이겨진 이 세상에 아이는 없으니.
Jay Oh
5.0
보았느냐. Torment.
Dh
5.0
하루가 멀다하고 검은 연기가 자욱하다. 그곳에는 모두 울부짖는 것들 뿐이다 눈빛이 완전 찐이다.. #출구 없는 생지옥 #공허한 메아리
ChrisCHUN
5.0
칼리번(엑스칼리버)이 바위에 수천년 꽂혀있던 것은 왕이 될 사람을 기다린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 검이 뽑히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해변의 숨겨둔 총을 찾지 말라던 이의 외침을 무시한채 피똥(?) 싸듯 기어코 총을 뽑아 내던 소년의 기쁨은 아주 잠시, 후에 피비린내 나는 2시간 20분을 감당해야 했던 것은 오롯이 소년의 몫이었다. . 'Come and See!'는 요한복음 1장 46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come and see) 에서 따왔다고 한다. 벨라루시의 듣도 보도 못한 작은 마을에서 어찌 그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수 있겠냐 라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감독은 '눈 있는 사람들은 직접 와 보시오!'(come and see)라며 이 영화의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제암리 학살이나 난징 대학살과 너무도 유사한 이 사건은 언어와 인종, 지역과는 상관 없이 인간의 악이 도달할수 있는 궁극의 지점은 결국 한길에서 만나는 만국 공통어임을 이야기 한다. . [컴앤씨]와 [사울의 아들]의 화면비는 4:3으로 같다. 허나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이 주는 체감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보통의 전쟁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그려 내다' 로 표기하는데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겪게 하다'로 표기하는게 맞다.
Indigo Jay
5.0
This may contain spo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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