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irit of the Beehive
El Espiritu de la Colmena
1973 · Drama/Fantasy · Spain
1h 38m · PG-13

In the aftermath of the Spanish Civil War, Ana, a sensitive seven-year-old girl in a rural Spanish hamlet is traumatized after a traveling projectionist screens a print of James Whale's 1931 "Frankenstein" for the village. The youngster is profoundly disturbed by the scenes in which the monster murders the little girl and is later killed himself by the villagers. She questions her sister about the profundities of life and death and believes her older sibling when she tells her that the monster is not dead, but exists as a spirit inhabiting a nearby barn. When a Loyalist soldier, a fugitive from Franco's victorious army, hides out in the barn, Ana crosses from reality into a fantasy world of her own.
볶음너구리
5.0
‘벌집’은 벌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화된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스페인 내전 이후 억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통제되고 있는 사회를 암시한다. 벌집 안에서 벌들은 체계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지만, 개별성은 사라지고 전체의 일부로만 존재한다. 영화 속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아나가 느끼는 두려움과 매혹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의 내면에서는 그것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정령’은 아나의 무의식 속에서 자라나는 감정적, 심리적 갈등을 상징하며, 마치 ‘벌집’처럼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내면의 세계를 암시한다.
무비신
4.5
어슴푸레한 시대에 순수한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건.
Cinephile
5.0
여왕벌의 입장에서 수많은 일꾼 말벌들의 탄생과 죽음은 일상에 불과할 뿐이다. 말벌의 운명처럼 인간의 목숨 역시도 가볍게 다뤄지는 정치적 현실, 그리고 그 죽음의 공포는 순수한 아이의 눈망울마저도 어느새 침범하고야 만다.
JE
4.5
무력하고 무참한 세상에 아이를 내세우는 영화를 볼 때면 애틋하면서도 가슴이 너무 시리다. 티 없는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견뎌내거나. 어느 쪽이 되었건 어른들의 판타지인 것만 같아서. <벌집의 정령>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혼자 엉뚱스레 고민스럽지만, 숨막히게 아름답고 섬뜩한 이미지로 둘러싸인 영화를 보고 있자면 아무렴 매혹된다. 이미지를 초과하는 불안과 긴장. 프랑켄슈타인, 외딴 건물, 우물, 발자국, 독버섯, 벌집, 기차, 마치 모닥불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천진하면서 위험천만한 것들. 모호한 이야기를 감싼 은유들조차 분명 풍요로운 것일 테지만, 낯선 남자의 등장만으로 공기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이미지가 호흡을 앗아가고 느슨한 리듬으로 이미 압도한다. (마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들처럼)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우린 무력하다는 진실과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죽음을 음미하는, 이렇게나 아름답고 무력한 영화.
STONE
4.5
두 번째로 마주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더 이상 환영받을 수 없다.
다솜땅
4.0
아이들의 천진 난만함. 정적인 배경. 조용하지만 곧 침묵이 일관된 사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19.6.28 (780)
Jay Oh
4.5
벌집처럼 정돈되어 보이지만 격동적인 세상 속에서 상상에 기댄다. 다른 선택지는 트라우마 뿐이니. On the nature of innocence in an age of turbulence and fear.
천수경
4.5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어른들이 정한다. 전쟁은 그렇게 웃기다. 입고 있는 옷이 원피스인지 군복인지에 따라 즉살 또는 참호의 여부가 갈린다. 태생부터 보호가 주어진, 선택받은 아이는 인간의 몸에 심장도 폐도 필요하다는 걸 배워나가는 것만으로 칭찬받는다. 의자를 직접 들고 가서 보는 영화 상영회에선 화면 속 사람들의 슬픔을 흥미롭게 응시할 수 있고, 영화 속 괴물은 이따 설명해준다는 언니의 약속을 종일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는 다 뻥이라고 선언하는 언니도 ‘시체 놀이’를 마무리할 땐 배시시 웃을 수 있다. 죽은 척 사람을 놀리는 일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되레 축하하는 저릿한 행위라서. 삶에 손을 내미는 것인 줄 알고 건넨 선물은 저승의 바닥까지 찍고 유턴하여 안나에게로 돌아왔다. 군인을 죽인 결정적 총알이 뚫은 건 심장이었을까 폐였을까. 안나의 작은 몸을 보자마자 총구를 거둔 남자는 뿌듯했을까. 감히 죽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결계가 쳐진 듯한 두 눈동자를 질투하진 않았을까. 불가사의한 만큼 멋지고 흥분되는 정령을 소환해서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열린 창문 틈으로 아이는 사라진 사람들을 달래주는 말을 읊었을 것이라 믿는다. 내 말을 꼭 전해달라고, 간청했을 거라고 믿는다. 어디선가 죽음을 훑고 온 시원한 바람은 정령이 아닐 수 없다. 그 온도와 무게가 닿아 있는 것들을 애도했으리라 믿는다. 아이의 순수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침묵한 어른들을 응징할 지조가 저 밤으로부터 비롯될 거라고 믿는다. 순수는 그렇게 아이의 손으로 해체되기 위해서만 애초에 존재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는 말은 저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믿는다. 시체 국물이 섞인 개천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용이야말로 가장 높이 날 수 있다고. 가장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정말로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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