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greenwhere5.0나도 꽃을 자꾸자꾸 샀었다. 그냥 길을 가다가 예뻐보여서 사기도 했고, 집안을 싹 청소하고 다시 살아보자며 사기도 했고, 그냥 잘되고 싶은 마음에 사기도 했다. 그런데 그 꽃을 살 때의 나와 다르게 나는 그 꽃을 늘 그냥 썩게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꽃을 살필 만큼 나는 여유롭지도 너그럽지도 못해서 늘 정신 차려보면 꽃이 다 시들어 있었다. 물도 다 썩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왜 잘 두지도 못할 거면서 꽃을 사냐고 해도, 왜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냐고 해도, 꽃에 대한 무언가가 있냐고 물어도 나는 대답할 게 없다. 나에게 정말 꽃에 대한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그 꽃을 산 순간에는 그 순간이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 순간이 떠올랐다고 해도 중요한 건 그 순간이 아니라 내가 꽃을 산 순간이다. 나는 또 썩게 둘 꽃을 또 살 거다. 이번에는 꽃이 잘 시들 때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꽃을 사던 나는 새로운 기대감을 품으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어떤 종류의 기대감, 나에게는 그게 늘 필요하니까. 다 썩어 시들어도 다음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세계의 주인을 보는 내내 너무 많이 울었다. 그런데 반대로 너무 많이 웃었다. 울어버릴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웃어버릴 걸 알면서도 비장해지는 나처럼 주인이도 세상 속의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라고 적어두었던 기억도 안 나는 시간 속의 내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의 내가 살고 있던 방식이 정답이란 게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게 정답일 것 같다. 잘 정리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두서없이 무작정 적어내리는 지금이 가장 솔직한 것 같아서 써둔다. 영화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마음대로 생각해버리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나는 알고 있고, 이제 나 혼자가 아니라 세계의 주인과 함께 같이 알고 있다. 나는 또 시간이 생기면 꽃을 사야지. 세계 속에서 꽃은 매년 매순간 피어나니까.Like1248Comment6
재원4.5다시 웃음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린지 모른다면, 어찌 그리 멀쩡할 수 있냔 말들은 그냥 목 끝에서 삼켜주길.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세계의 주인으로써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강해지길 택한 것이니.Like1201Comment6
김현영3.0이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와 별개로, 감독이 인터뷰에서 ‘내용을 아무 것도 모른 채로 가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걸 접했다. 그래서인지 리뷰나 추천글에서도 그런 식의 언급이 많더라. ‘모르고 봐라’라는 식으로. 언론배급 시사때도 그런 감독의 손편지를 돌렸다고 전한다. 제작사의 홍보 방식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제나 소재를 숨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태도가 조금 기만적으로 느껴진다. 이 영화가 다루는 수많은 ‘주인’을 고려하지 않는, 너무 다수자 중심의 태도 아닐까. 비당사자, 비피해자를 기준으로 삼고, 그걸 기본값처럼 깔고 가는 것 같은. 공연계에서 왜 그토록 트리거 워닝 공지를 민감하게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물론 영화가 반드시 트리거 워닝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일부러 숨기는 것(그게 영화적 감상을 위해서든, 관객 수를 위해서든)은 이 세상의 다양한 ‘주인’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이 내용이 보고 싶지 않거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의 홍보 방식 자체가, 오히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 “왜냐고? 내가 성폭력 피해자였거든.” 원치 않는 자리와 타이밍에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꺼내며 비판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마치 영화 속 세계와 이 영화의 홍보 방식이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개봉 후에도 성폭력 피해자나 관련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들 스포일러라며 쉬쉬할 뿐이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 자체가 ‘수호’의 역할을 한다. ‘주인’이 아니고 말이다.Like689Comment5
살살
5.0
This may contain spoiler!!
everygreenwhere
5.0
나도 꽃을 자꾸자꾸 샀었다. 그냥 길을 가다가 예뻐보여서 사기도 했고, 집안을 싹 청소하고 다시 살아보자며 사기도 했고, 그냥 잘되고 싶은 마음에 사기도 했다. 그런데 그 꽃을 살 때의 나와 다르게 나는 그 꽃을 늘 그냥 썩게 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꽃을 살필 만큼 나는 여유롭지도 너그럽지도 못해서 늘 정신 차려보면 꽃이 다 시들어 있었다. 물도 다 썩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왜 잘 두지도 못할 거면서 꽃을 사냐고 해도, 왜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냐고 해도, 꽃에 대한 무언가가 있냐고 물어도 나는 대답할 게 없다. 나에게 정말 꽃에 대한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그 꽃을 산 순간에는 그 순간이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 순간이 떠올랐다고 해도 중요한 건 그 순간이 아니라 내가 꽃을 산 순간이다. 나는 또 썩게 둘 꽃을 또 살 거다. 이번에는 꽃이 잘 시들 때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꽃을 사던 나는 새로운 기대감을 품으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어떤 종류의 기대감, 나에게는 그게 늘 필요하니까. 다 썩어 시들어도 다음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세계의 주인을 보는 내내 너무 많이 울었다. 그런데 반대로 너무 많이 웃었다. 울어버릴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웃어버릴 걸 알면서도 비장해지는 나처럼 주인이도 세상 속의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라고 적어두었던 기억도 안 나는 시간 속의 내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의 내가 살고 있던 방식이 정답이란 게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게 정답일 것 같다. 잘 정리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두서없이 무작정 적어내리는 지금이 가장 솔직한 것 같아서 써둔다. 영화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마음대로 생각해버리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나는 알고 있고, 이제 나 혼자가 아니라 세계의 주인과 함께 같이 알고 있다. 나는 또 시간이 생기면 꽃을 사야지. 세계 속에서 꽃은 매년 매순간 피어나니까.
재원
4.5
다시 웃음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린지 모른다면, 어찌 그리 멀쩡할 수 있냔 말들은 그냥 목 끝에서 삼켜주길.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세계의 주인으로써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강해지길 택한 것이니.
이동진 평론가
4.0
함부로 명명하거나 헤집는 대신 온전히 맡기고 보듬는 연출의 넓고 깊은 품.
rushmore
5.0
세차장 진짜.. 디스이즈시네마
성유
5.0
그을린 벽조차 주인이 있고 새로 덧칠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응
3.0
This may contain spoiler!!
김현영
3.0
이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와 별개로, 감독이 인터뷰에서 ‘내용을 아무 것도 모른 채로 가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걸 접했다. 그래서인지 리뷰나 추천글에서도 그런 식의 언급이 많더라. ‘모르고 봐라’라는 식으로. 언론배급 시사때도 그런 감독의 손편지를 돌렸다고 전한다. 제작사의 홍보 방식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제나 소재를 숨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태도가 조금 기만적으로 느껴진다. 이 영화가 다루는 수많은 ‘주인’을 고려하지 않는, 너무 다수자 중심의 태도 아닐까. 비당사자, 비피해자를 기준으로 삼고, 그걸 기본값처럼 깔고 가는 것 같은. 공연계에서 왜 그토록 트리거 워닝 공지를 민감하게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물론 영화가 반드시 트리거 워닝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일부러 숨기는 것(그게 영화적 감상을 위해서든, 관객 수를 위해서든)은 이 세상의 다양한 ‘주인’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이 내용이 보고 싶지 않거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의 홍보 방식 자체가, 오히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 “왜냐고? 내가 성폭력 피해자였거든.” 원치 않는 자리와 타이밍에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꺼내며 비판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마치 영화 속 세계와 이 영화의 홍보 방식이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개봉 후에도 성폭력 피해자나 관련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들 스포일러라며 쉬쉬할 뿐이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 자체가 ‘수호’의 역할을 한다. ‘주인’이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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