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4.0루카 구아다니노는 공기의 밀도를 조절할 줄 아는게 분명하다. 아주 섬세한 조율로 보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빠르고 밀도 높은 숏의 전환과 가쁜 숨소리의 중첩들로, 화면 안에 채워지는 시각적/청각적 숨의 농도는 짙어지지만 보는 사람은 어쩐지 점점 더 숨이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마치 세밀한 조각가 같기도 하다. 분위기라는 형상을 구현해내는 조각가. 그것도 아주 세밀하고 섬세한 질감 표현을 하는, 그리고 그 과정을 찬찬히 조망하게 하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그가 형성해가는 분위기에 점차 스며들고 전이되게 만든다. 그래서 서스페리아는 급격히 엄습해오는 공포는 아니다. 오히려 정신없이 쏟아지는 불쾌한 이미지들,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요하지만 불길한 기류들을 꼼짝없이 감내해야 함에서 오는 압박감이 주는 공포에 가깝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몽타주와 급작스런 단절의 조각들로 ‘고요한 격정’과도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형성해낸다. 사실 그가 공포영화를 리메이크 한다길래 의아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왜 이런 장르에 손을 댔는지 알 것 같았다. 감정과 분위기라는 추상적인 것들을 섬세하게 형상화하는데 특화된 그이기에, 공포는 사랑만큼이나 그의 장기를 여실히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리라. 그렇기에 그의 전작과는 전혀 다른 완성품이지만, 같은 장인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특유의 세밀하고 섬세한 조각질은 여전했다. 영화는 독일의 68운동을 기저에 깔고 가는 듯 보인다. 당시 독일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전환을 요구했던 젊은 세대의 비판의식 속 촉발된 이 운동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고 기득권에 위치해있던 나치의 잔재들에 대한 처벌과, 이념/계급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 가리워져 있던 개인들의 일상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페미니즘, 환경, 반전주의 운동이 움을 트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독일사회는 이념과 정치적인 대립에 파묻혀 제대로 된 나치 청산을 이루지 못했고, 그 때문에 나치의 협력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회 내에 섞여 살며 누군가의 좋은 이웃으로, 아버지로, 동료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마담 블랑의 무용단이 사회적인 명성을 가졌고, 지도자들이 존경받는 스승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잔인한 마녀들이었다는 이중성처럼 말이다. 68운동의 주축이었던 젊은 세대들은, 아무리 친밀한 사이였다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청산와 처벌을 원했다. 수지는 그러한 새로운 세대의 바람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무용단이라는 설정도 문화정책으로 사람들을 세뇌하려 했던 나치를 떠올리게 한다. 블랑이 만든 작품은 마치 나치 시대의 예술처럼,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신체적인 능력을 뽐내는 규율적인 군무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블랑이 수지에게 Volk 춤을 전수하면서 너의 안을 비워라, 받아들일 준비를 해라, 비우고 온전히 작품으로 채워야 한다 라고 했던 말처럼 결국은 목적을 위해 춤이라는 도구로 무용수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수지의 움직임이 올가의 뼈와 장기를 파괴했던 것처럼, 나치라는 파시즘으로 조종되어 타자를 파괴하는 미학이고 예술이다. 하지만 나치의 문화정책이나 미국의 대중매체의 이면에 깔린 정치적인 의도를 극렬하게 비판했던 호르크와 아도르노처럼 인간은 마냥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올가나 사라처럼 의심이 피어나기 마련이며 이는 결국 수지와 같은 그들에 대한 단죄의 요구로 이어진다. 점프동작에 관한 블랑과 수지의 의견차이는 그들이 속한 범주의 대립을 보여준다. Volk라는 말은 국민, 민족을 의미한다. 블랑은 이 춤이 재탄생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파시즘의 범주에 속한 블랑에게 새로운 민족이란 이념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지가 대표하는 젊은 세대는 그러한 담론 논쟁에 파묻혀 수많은 개인이 희생당해 오던 것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낀 세대다. 그렇기에 그녀는 위로 떠오르려고 하기 보단, 바닥에 붙어있는게 이 춤의 의도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새로운 민족이란, 거시적인 문제에 여념하느라 현실의 일상적인 문제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랑이 만든 춤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클렘페러가 숨을 옥죄는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마녀들은 사라의 부러진 다리를 표면적으로 가린 채 그녀를 무대에 세운다. 파시즘이 가진 폭력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덮어버린다. 그런데 수지가 블랑의 안무를 벗어나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 사라에게 가해졌던 폭력이 가시화된다. 수지는 가시화되지 못했던 내부의 곪아가는 상처들을 제기하는 새로운 바람이다. 수지의 동작이 강렬하고, 힘이 있는 것처럼, 이 움직임은 불가항력의 이끌림을 지닌다. 이에 대한 마녀들의 반응을 보면 누군가는 마르쿠스처럼 포섭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블랑처럼 동요하기도 하고, 이것이 불가항력임을 깨닫고 공포에 떨며 자결하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의 충격적인 단죄의 장면에서, 수지는 모든 잔재들을 단죄한 뒤 그들의 희생양으로 쓰였던 제물들에게 다가가 한명 한명씩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다. 누군가는 이것이 허무주의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나에겐 68혁명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일상적이고 부차적으로 치부되던 각 개인들의 다양하고 미시적인 문제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고자 하였던 68혁명의 지향점을 말이다.Like169Comment14
JY3.0CGV 아트하우스가 제공한 어마어마한 관람경험 최악의 라이브톡) 무려 세번이나 라이브톡중계가 중단된것 실화냐 응 실화 안내공지 하나 없었다? 응 실화 담당자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죄없는 알바생들은 어쩔줄 모르고 세번째 중단후 암전이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관객은 그야말로 방치되었다 아트하우스관을 나갈때까지 관 내로 들어온 알바나 관계자 담당자는 전무했다 손놈이 된 느낌이었다 고요한 와중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고 다시켜진화면에서의 평론해주시는 죄없는 이동진님이 이유없이 뻔뻔해보였다 잃어버린 조각난 십여분을 그분이 알턱 없지만 .. 저번수업 결석생들 보란듯이 다음날 진도나가시는 교수님 같았달까? 난 결석 안했는데 말이다 절단난 해설 차마 더 볼수없어 나왔다 출입구에 누가 있으면 설명이라도 듣나 했지만 안녕히 어서 가시라는듯 아무도 없었다. 쾌적하네 라이브톡은 하나도 기억나지않고 영화도 지금 어떻게 정리가 안된다 핵심은 대응메뉴얼 자체가 일절 없어보였다는것. 영화관내에 어떠한 공지도 없었으니까 밖에있는 알바생들도 지시가 있어야 움직일것아닌가 그렇다는것은 지금 나의 경험이 전국 어느곳에서 벌어졌어도 대응방식이 크게 다를것 같지 않을것같다는것이다 그 폭탄을 난 먼저 맞은것 뿐이다 다른분들도 어느순간 이런 경험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래. 현명하게 이제부턴 압구정으로가자 직관하면 내 눈과 귀를 틀어막진 못할테니 이런 쉬운방법이 있었네 CGV.. . . 배경지식을 알고봐야 더 좋은 영화가있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케이스 장르적인 재미보다 다른것들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지향하는 바가 다른듯한 영화라서 관객이 예상했던 방향과 일치하느냐에 따라서 감흥의 폭이 완전히 틀어질수 있다 이 좋은영화가 나와 맞지않다고 낙심하지 말것. 그럴 수 있다Like133Comment12
비속어4.0(쿠키 있어요) 호불호 어마어마하게 갈리고 여성주의냐 반여성주의냐에 대해서도 완전히 갈릴 것 같은데 나는 탁월한 여성서사라고 생각한다. 철저히 배제되어 특정부위가 작은 것 때문에 조롱받는 남경을 제외하고 기성세대의 유형을 대표하는 모르코스, 블랑, 클램퍼러를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점, 전세대와 후세대 부터 그들을 심판하는 세대까지 모든 세대를 여성으로 대표한 점, 그리고 완벽한 모계전통에 이어서 모성을 다루는 방식도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대자연으로서의 모성'으로 다룬 것까지. 그리고 후반부에서 많은 의견이 갈리겠지만 여성의 육체를 기존의 영화에서 소비하던 방식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육체로 다루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이 진실을 말할 때 너는 망상 취급을 했어!" 결국은 이 이야기는 늘 망상 취급을 당하던 여성들이 마녀로서 화형당하지 않고 은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해 세상을 잡아먹은 이야기다. 여성들이 세대간의 갈등으로 낡은 세력과 새로운 세력이 교체되는 전쟁을 벌이는 동안 남자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늘 그래왔듯이 보이지 않는 의제처럼 여긴다. 그러나 굴하지 않는 그의 타고난 악마성으로 구세대를 응징하고 결국 승기를 잡는다. 사라는 체제에 순응하다가 의심을 품고 해갈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로 영화내내 사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ㅅㅏ라 살려ㅜ ㅜ 공포영화 아니라고 포스터로 구라쳐도 되나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날 뻔했는데 잔인함 정도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것 같다 ㅋㅋㅋ 학살의 주체가 바뀌어서 그런지 괜찮았음. 초반부 너무 지루해서 날리듯이 봐서 한 번 더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고.... 모르겠다 내 마음★ 그리고 이 영화보고 사망사유였던 호기심병이 치유됨 ㅜㅜㅜㅜLike120Comment5
Skräckis4.50. 원작을 완전 지우고 자신 만의 마법을 창조해낸다. 태도가 만점이다 1. 전쟁과 정치적 배경을 부각시키며 인간성에 대한 주제를 더 풍부하게 가져가고 2. 예술의 아름다움과 힘을 찬양하면서도 그 어리석음과 쓸모없음과 오만함에 대해서도 노래하고 있다 - 그리고 스스로도 딱 그런 예술이 된다. 아름답고 파워풀하며 어리석고 쓸모없고 오만하다. 3. 영화 속 여성들의 몸은 아름답고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힘없는 남성들은 처량한 성기를 늘어뜨린채 조롱당하고 무지하고 무력할 뿐이다. 여자들은 서로를 유혹하고 사랑하고 지배하고 싸우며 ‘어머니’가 지배하는 여성들의 세상이 전부인 곳이다. 4. 장르 영화로서 늘어지고 너무 잔가지들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난 모든 장르 영화가 비슷한 모양새를 유지하는 걸 원치 않고 이 영화 속 주렁주렁 아낌없이 달린 잔가지들은 모두 야심차고 정성스럽다. 장편 소설 읽는 기분이었어서 서브 플롯들도 다 좋았고 엉뚱한 곳에서 길게 방점 찍는 에필로그도 좋았다. 5. 유전과 견줄만한 올해 가장 창의적이고 충격적인 호러 시퀀스들이 등장한다. 6. 톰 요크의 음악은 역시나 좋다. 허나 고블린의 음악처럼 오래 개성을 인정 받으며 살아남을 것 같진 않다. 7. 아르젠토 원작의 팬인데 이 정도면 원작만큼이나 마력있는 컬트 괴작을 탄생 시킨데 성공했다고 본다. ps) 한국에 개봉하면 성기 장면들은 다 짤리는 건지 궁금하다...Like118Comment3
영화고독발버둥치며본다4.0랭보가 영화를 찍는다면 이런 영화일 것 같아... . . . 탐미주의의 이면에는 악마성이 자리잡고 있다. 문드러지게 넘쳐흐르는 과육에 나는 넉다운. . . . ps. 쿠키있습니다.Like108Comment0
chan
3.5
This may contain spoiler!!
이동진 평론가
3.5
부끄러움 모르는 이전 세대 권력을 학살하다.
김지원
4.0
루카 구아다니노는 공기의 밀도를 조절할 줄 아는게 분명하다. 아주 섬세한 조율로 보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빠르고 밀도 높은 숏의 전환과 가쁜 숨소리의 중첩들로, 화면 안에 채워지는 시각적/청각적 숨의 농도는 짙어지지만 보는 사람은 어쩐지 점점 더 숨이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마치 세밀한 조각가 같기도 하다. 분위기라는 형상을 구현해내는 조각가. 그것도 아주 세밀하고 섬세한 질감 표현을 하는, 그리고 그 과정을 찬찬히 조망하게 하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그가 형성해가는 분위기에 점차 스며들고 전이되게 만든다. 그래서 서스페리아는 급격히 엄습해오는 공포는 아니다. 오히려 정신없이 쏟아지는 불쾌한 이미지들,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요하지만 불길한 기류들을 꼼짝없이 감내해야 함에서 오는 압박감이 주는 공포에 가깝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몽타주와 급작스런 단절의 조각들로 ‘고요한 격정’과도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형성해낸다. 사실 그가 공포영화를 리메이크 한다길래 의아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왜 이런 장르에 손을 댔는지 알 것 같았다. 감정과 분위기라는 추상적인 것들을 섬세하게 형상화하는데 특화된 그이기에, 공포는 사랑만큼이나 그의 장기를 여실히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리라. 그렇기에 그의 전작과는 전혀 다른 완성품이지만, 같은 장인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특유의 세밀하고 섬세한 조각질은 여전했다. 영화는 독일의 68운동을 기저에 깔고 가는 듯 보인다. 당시 독일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전환을 요구했던 젊은 세대의 비판의식 속 촉발된 이 운동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고 기득권에 위치해있던 나치의 잔재들에 대한 처벌과, 이념/계급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 가리워져 있던 개인들의 일상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페미니즘, 환경, 반전주의 운동이 움을 트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독일사회는 이념과 정치적인 대립에 파묻혀 제대로 된 나치 청산을 이루지 못했고, 그 때문에 나치의 협력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회 내에 섞여 살며 누군가의 좋은 이웃으로, 아버지로, 동료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마담 블랑의 무용단이 사회적인 명성을 가졌고, 지도자들이 존경받는 스승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잔인한 마녀들이었다는 이중성처럼 말이다. 68운동의 주축이었던 젊은 세대들은, 아무리 친밀한 사이였다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청산와 처벌을 원했다. 수지는 그러한 새로운 세대의 바람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무용단이라는 설정도 문화정책으로 사람들을 세뇌하려 했던 나치를 떠올리게 한다. 블랑이 만든 작품은 마치 나치 시대의 예술처럼,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신체적인 능력을 뽐내는 규율적인 군무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블랑이 수지에게 Volk 춤을 전수하면서 너의 안을 비워라, 받아들일 준비를 해라, 비우고 온전히 작품으로 채워야 한다 라고 했던 말처럼 결국은 목적을 위해 춤이라는 도구로 무용수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수지의 움직임이 올가의 뼈와 장기를 파괴했던 것처럼, 나치라는 파시즘으로 조종되어 타자를 파괴하는 미학이고 예술이다. 하지만 나치의 문화정책이나 미국의 대중매체의 이면에 깔린 정치적인 의도를 극렬하게 비판했던 호르크와 아도르노처럼 인간은 마냥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올가나 사라처럼 의심이 피어나기 마련이며 이는 결국 수지와 같은 그들에 대한 단죄의 요구로 이어진다. 점프동작에 관한 블랑과 수지의 의견차이는 그들이 속한 범주의 대립을 보여준다. Volk라는 말은 국민, 민족을 의미한다. 블랑은 이 춤이 재탄생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파시즘의 범주에 속한 블랑에게 새로운 민족이란 이념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지가 대표하는 젊은 세대는 그러한 담론 논쟁에 파묻혀 수많은 개인이 희생당해 오던 것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낀 세대다. 그렇기에 그녀는 위로 떠오르려고 하기 보단, 바닥에 붙어있는게 이 춤의 의도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새로운 민족이란, 거시적인 문제에 여념하느라 현실의 일상적인 문제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랑이 만든 춤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클렘페러가 숨을 옥죄는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마녀들은 사라의 부러진 다리를 표면적으로 가린 채 그녀를 무대에 세운다. 파시즘이 가진 폭력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덮어버린다. 그런데 수지가 블랑의 안무를 벗어나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 사라에게 가해졌던 폭력이 가시화된다. 수지는 가시화되지 못했던 내부의 곪아가는 상처들을 제기하는 새로운 바람이다. 수지의 동작이 강렬하고, 힘이 있는 것처럼, 이 움직임은 불가항력의 이끌림을 지닌다. 이에 대한 마녀들의 반응을 보면 누군가는 마르쿠스처럼 포섭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블랑처럼 동요하기도 하고, 이것이 불가항력임을 깨닫고 공포에 떨며 자결하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의 충격적인 단죄의 장면에서, 수지는 모든 잔재들을 단죄한 뒤 그들의 희생양으로 쓰였던 제물들에게 다가가 한명 한명씩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다. 누군가는 이것이 허무주의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나에겐 68혁명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일상적이고 부차적으로 치부되던 각 개인들의 다양하고 미시적인 문제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고자 하였던 68혁명의 지향점을 말이다.
문성식
3.0
This may contain spoiler!!
JY
3.0
CGV 아트하우스가 제공한 어마어마한 관람경험 최악의 라이브톡) 무려 세번이나 라이브톡중계가 중단된것 실화냐 응 실화 안내공지 하나 없었다? 응 실화 담당자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죄없는 알바생들은 어쩔줄 모르고 세번째 중단후 암전이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관객은 그야말로 방치되었다 아트하우스관을 나갈때까지 관 내로 들어온 알바나 관계자 담당자는 전무했다 손놈이 된 느낌이었다 고요한 와중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고 다시켜진화면에서의 평론해주시는 죄없는 이동진님이 이유없이 뻔뻔해보였다 잃어버린 조각난 십여분을 그분이 알턱 없지만 .. 저번수업 결석생들 보란듯이 다음날 진도나가시는 교수님 같았달까? 난 결석 안했는데 말이다 절단난 해설 차마 더 볼수없어 나왔다 출입구에 누가 있으면 설명이라도 듣나 했지만 안녕히 어서 가시라는듯 아무도 없었다. 쾌적하네 라이브톡은 하나도 기억나지않고 영화도 지금 어떻게 정리가 안된다 핵심은 대응메뉴얼 자체가 일절 없어보였다는것. 영화관내에 어떠한 공지도 없었으니까 밖에있는 알바생들도 지시가 있어야 움직일것아닌가 그렇다는것은 지금 나의 경험이 전국 어느곳에서 벌어졌어도 대응방식이 크게 다를것 같지 않을것같다는것이다 그 폭탄을 난 먼저 맞은것 뿐이다 다른분들도 어느순간 이런 경험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래. 현명하게 이제부턴 압구정으로가자 직관하면 내 눈과 귀를 틀어막진 못할테니 이런 쉬운방법이 있었네 CGV.. . . 배경지식을 알고봐야 더 좋은 영화가있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케이스 장르적인 재미보다 다른것들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지향하는 바가 다른듯한 영화라서 관객이 예상했던 방향과 일치하느냐에 따라서 감흥의 폭이 완전히 틀어질수 있다 이 좋은영화가 나와 맞지않다고 낙심하지 말것. 그럴 수 있다
비속어
4.0
(쿠키 있어요) 호불호 어마어마하게 갈리고 여성주의냐 반여성주의냐에 대해서도 완전히 갈릴 것 같은데 나는 탁월한 여성서사라고 생각한다. 철저히 배제되어 특정부위가 작은 것 때문에 조롱받는 남경을 제외하고 기성세대의 유형을 대표하는 모르코스, 블랑, 클램퍼러를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점, 전세대와 후세대 부터 그들을 심판하는 세대까지 모든 세대를 여성으로 대표한 점, 그리고 완벽한 모계전통에 이어서 모성을 다루는 방식도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대자연으로서의 모성'으로 다룬 것까지. 그리고 후반부에서 많은 의견이 갈리겠지만 여성의 육체를 기존의 영화에서 소비하던 방식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육체로 다루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이 진실을 말할 때 너는 망상 취급을 했어!" 결국은 이 이야기는 늘 망상 취급을 당하던 여성들이 마녀로서 화형당하지 않고 은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해 세상을 잡아먹은 이야기다. 여성들이 세대간의 갈등으로 낡은 세력과 새로운 세력이 교체되는 전쟁을 벌이는 동안 남자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늘 그래왔듯이 보이지 않는 의제처럼 여긴다. 그러나 굴하지 않는 그의 타고난 악마성으로 구세대를 응징하고 결국 승기를 잡는다. 사라는 체제에 순응하다가 의심을 품고 해갈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로 영화내내 사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ㅅㅏ라 살려ㅜ ㅜ 공포영화 아니라고 포스터로 구라쳐도 되나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날 뻔했는데 잔인함 정도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것 같다 ㅋㅋㅋ 학살의 주체가 바뀌어서 그런지 괜찮았음. 초반부 너무 지루해서 날리듯이 봐서 한 번 더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고.... 모르겠다 내 마음★ 그리고 이 영화보고 사망사유였던 호기심병이 치유됨 ㅜㅜㅜㅜ
Skräckis
4.5
0. 원작을 완전 지우고 자신 만의 마법을 창조해낸다. 태도가 만점이다 1. 전쟁과 정치적 배경을 부각시키며 인간성에 대한 주제를 더 풍부하게 가져가고 2. 예술의 아름다움과 힘을 찬양하면서도 그 어리석음과 쓸모없음과 오만함에 대해서도 노래하고 있다 - 그리고 스스로도 딱 그런 예술이 된다. 아름답고 파워풀하며 어리석고 쓸모없고 오만하다. 3. 영화 속 여성들의 몸은 아름답고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힘없는 남성들은 처량한 성기를 늘어뜨린채 조롱당하고 무지하고 무력할 뿐이다. 여자들은 서로를 유혹하고 사랑하고 지배하고 싸우며 ‘어머니’가 지배하는 여성들의 세상이 전부인 곳이다. 4. 장르 영화로서 늘어지고 너무 잔가지들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난 모든 장르 영화가 비슷한 모양새를 유지하는 걸 원치 않고 이 영화 속 주렁주렁 아낌없이 달린 잔가지들은 모두 야심차고 정성스럽다. 장편 소설 읽는 기분이었어서 서브 플롯들도 다 좋았고 엉뚱한 곳에서 길게 방점 찍는 에필로그도 좋았다. 5. 유전과 견줄만한 올해 가장 창의적이고 충격적인 호러 시퀀스들이 등장한다. 6. 톰 요크의 음악은 역시나 좋다. 허나 고블린의 음악처럼 오래 개성을 인정 받으며 살아남을 것 같진 않다. 7. 아르젠토 원작의 팬인데 이 정도면 원작만큼이나 마력있는 컬트 괴작을 탄생 시킨데 성공했다고 본다. ps) 한국에 개봉하면 성기 장면들은 다 짤리는 건지 궁금하다...
영화고독발버둥치며본다
4.0
랭보가 영화를 찍는다면 이런 영화일 것 같아... . . . 탐미주의의 이면에는 악마성이 자리잡고 있다. 문드러지게 넘쳐흐르는 과육에 나는 넉다운. . . . ps. 쿠키있습니다.
Please log in to see mor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