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Battle After Another
One Battle After Another
2025 · Crime/Action/Thriller/Drama · United States
2h 42m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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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eir evil nemesis resurfaces after 16 years, a band of ex-revolutionaries reunite to rescue the daughter of one of thei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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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5.0
밥 퍼거슨 같은 사람을 많이 봤다. 빗질을 마지막으로 한 게 16년 전인 것 같은, 길이가 애매한 체크 남방을 입은, 3km 떨어져서 봐도 성격 안 좋은 사람. 총체적으로 너저분한 사람. 탄핵 시위에도 퀴어 퍼레이드에도 팔레스타인 시위에도 그런 사람이 꼭 있다. 노란 봉투 법도, 중대 재해 처벌 법도, 각종 파업과 그로 인한 지정 휴일도 그런 분들에게 빚진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외모 전성기가 얼핏 보이기도 하는데, 정작 본인들은 남의 시선 따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래서 꽃미남 시절이 잘 알려진 배우가 그 역할을 맡은 게 중요하다. 폭싹 속을 애순이가 아이유여야만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시장 바닥에서 오징어 파는 사장님 안에 팝스타가 한 명쯤 살아 있고, 한물간 좌파 혁명가 안에 그 잘생긴 청년이 남아있다는 것. 그런 게 왜인지 소중하다. 윌라의 엄마 퍼비디아가 온 세상의 팬티를 다 벗길 수 있는 섹시한 생명체인 것도 그래서 중요하다. 그녀의 혁명 시퀀스들은 비욘세 뮤직비디오 버금가게 관능적이다. 법치가 틀렸을 때 정치를 외치는 일이 섹시함일 수 있는 시대에 대한 경배다. 동시에 이 영화는 혁명에서 한 발 뺀 사람들, “자기야 혁명 잘해,” 하면서 애 밥 챙기느라 바빴던 사람들을 향해서도 절을 올린다. 열여섯이 된 윌라의 등장에서 나는 밥의 선택을 통째로 납득했다. 카메라가 내시경도 아닌데 윌라의 팔다리 안에서 뛰는 맥박이 보이는 것만도 같았다. 아빠는 암구호를 까먹어서 집결지를 못 듣고, 체력이 안 따라줘서 엉뚱하게 잡히지만. 세월이야말로 혁명의 적인가 싶을 때쯤. 윌라의 존재로 세월은 그 모든 짓궂음을 보상해준다. 암구호를 이어받을 딸이 저렇게 크고 있다면 세월은 우리 편이다. 시간은 결코 모른 척하지 않는다. 무전기가 고물이 아닐 거라고 믿어준다면. 마침내 음악이 흐른다. 학교나 직장에서 헛소리에 말대답하는 것도 이민국에 쳐들어가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혁명이다. 돈 잘 버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에 그건 아니라고 소심하게 딴지를 걸기까지 필요한 마음가짐은 복면 쓰고 은행을 터는 일에 필요한 작정만큼이나 무겁다. 자본주의에 대항하겠다는 크나큰 의지. 그러므로 혁명 분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밥 퍼거슨이 다 끝난 줄 알았던 순간에 낯선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모습은 꽤나 현실적인 그림이다. 마약과 술에 절여져 있는 사람이 과거에 뭘 했는지 잊지 않고 존중하는 게 이 영화 속 연대다. 밥 같은 사람들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에 대한 의리만큼 끈질긴 건 이 세상에 없다. 윌라가 도복을 입고 사부님 밑에서 가라테를 배워야 하는 건 아빠의 거창한 교육적 비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부님이 그저 동네 아군이라서였을 것이다. 끼리끼리 도우며 살아야 하니까 이쪽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주고 저쪽 가서 또 하나 팔아주고 뭐 그러는 거다. 그 연쇄가 테이큰급 블록버스터일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유머다. 악당들에게 잡힌 딸을 구해낸 아빠 이야기가 더는 세상에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옆으로 꺾지 않고 아래위로 꺾어버린 추격전이라면 당연히 세상에 필요하다. 코사인 함수처럼 생긴 길에서라면 더 빠른 사람이 이기지 않는다. 시야를 이용하는 사람이 이긴다. 자신이 지나온 길과 앞에 놓인 길이 똑같을 것이라고 상정하는 사람이 진다. 치킨 너겟을 만드는 이민자들을 구속한 스티븐 J. 록조는 누가 프랜차이즈를 소유하는지 몰라서 망했다. 하던 대로 했다가 낭패 보는 건 누구인가. 브레이크 없이 직진하는 차를 이기는 건 미리 멈춘 차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존재, 하던 대로 하자는 사장님부터 성별은 두 가지 뿐이라는 정치인까지. 멈춰서 사유하지 않는다면 끝없는 전투에 참전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흥분해서 글을 쓰는 동안 내 손가락은 PTA를 향한 사랑을 뜬금없이 발사하지 않도록 참느라 힘들었다. 미친 듯이 존경한다, 폴 토마토 앤더슨.
이동진 평론가
4.5
시대가 요구하는 영화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신랄하고도 장대하게.
하원
4.5
This may contain spoiler!!
희정뚝
5.0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암구호가 될 영화.
정환
5.0
미래를 꿈꾸던 지난날의 랑데부도 잊은 채, 언덕마루 너머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질주하던 관성적 전투를 멈추고,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혁명 언어라 믿는 이 시대의 영화. .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이 없지만, 차라리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 부분이 없지는 않기에 개인적으로는 그의 최고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시대의 영화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될 운명적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운명이 타고난 작품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그 운명을 자처하며 등장한 것만 같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서 시작된 영화는 그 이름을 담지 않아도 명확하게 이 시대를 조명하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급진적 좌파 조직의 자칭 혁명 또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겠지만, 여전히 혈통에 집착하는 백인 민족주의자나 강경 기독교 민족주의와 같은 극우 집단 역시도 오늘날에 두드러지고 있으므로. 불꽃과 연이은 폭발이 점철된 프롤로그로부터 16년 정도의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지만, 어쩐지 둘 다 현재인 것만 같은 이 영화의 핵심 배경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어두운 면을 지운 채 국가의 결핍을 덮어버리며 역사를 미화하려는 기득권이 있다. 동시에, 건국으로부터 뿌리내린 인종적 배제와 폭력의 역사를 이어가려는 이들이 있고, 그런 세상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좌절 속에서 여전히 과거에 매달리는 이들도 있다. 권위주의적 정권과 그 체제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식 혁명 사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이들 모두가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다. 한때 어떠한 미래를 꿈꿨던 젊은 날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사람들인 것이다. 총은 과거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혁명의 불꽃이자 목적 없는 관성적 분노의 상징이 되고, 모자는 체제를 지탱하는 권위의 가면이자 언제든 벗겨질 수 있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혁명이든 권력이든 결국 폭력과 권위라는 두 축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언제나 불꽃이 터지던 하늘 아래에서 함께했던 섹스는 곧 폭력의 역사와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은유로, 결국 그들의 다음 세대도 본인들의 의지가 아닌 부모 세대의 약속을 짊어진 채, 같은 전투의 언어(암호)를 반복하게 된다. 다음 세대를 찾거나(빼앗거나), 혹은 지키려는 병적인 집착 속에서, 이전 세대는 자식마저 자신들의 유산이라 착각한다. 그 착각은 두 갈래로 흘러, 어떤 이는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라 여기는 ‘착오’로, 또 어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했다는 죄책의 ‘과오’로 드러난다. 혁명과 저항이 한처럼 맺힌 이들의 혁명 언어가 그 옛날의 고전 영화 “알제리 전투”인 것처럼, 분노와 냉소, 허세와 폭력이 가득한 옛 과거의 언어를 쓰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아무리 “알제리 전투”가 옛 혁명의 신화이자 민중 봉기의 교본이라지만, 지금 시대는 몇 번의 총격으로는 도저히 바뀔 세상도 아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다. 순진할 정도로 멍청한 나는 정보의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디지털 시대일수록 거짓과 갈등은 없어질 줄만 알았지만,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에 양분된 사람들은 좀처럼 공생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악마를 위해 싸우겠다는 옛날의 싸움들은 어느덧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도,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각자가 꿈꾸며 같은 미래를 향해 만나자던 지난날의 랑데부(영화에서는 “암호”)는 잊은 지 오래다. 초반의 명확한 적과 명분이 지나 이제는 관성의 지속일 뿐인 싸움이었다. 왜 싸웠는지도 잊은 듯한 관성적 분노들. 다음 언덕마루 너머에 뭐가 있을지 보지도 못한 채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향해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중요하지도 않다는 듯 가속을 멈출 수 없는 질주 같은 나날들이었다. 체제에 속하는 것도 덧없고, 체제를 뒤집는 것도 덧없을 뿐, 어차피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다음 전투가 오기 마련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며 애써 지나쳐온 덧없던 나날들을 근본으로 삼아 시간을 변명으로 쓰는 것을 멈춰야 할 때, 과거의 전투에 얽매어었는 대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현재를 함께하는 것. 혹은 태어난 다음 세대를 위해 지킬 것. 그것이 진짜 혁명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고립과 단절로는 결코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낼 수 없는 법. 구닥다리 옛 것들을 무시하는 것도, 철없는 요즘 것들을 배척하는 것도 아닌 서로의 시대와 문물을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보라. 미래를 꿈꾸던 지난날의 랑데부도 잊은 채, 언덕마루 너머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질주하던 관성적 전투를 멈추고,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혁명 언어라 믿는 이 시대의 영화다. 다시, 이 영화는 현재 전투의 기록이고 방향이자, 언젠가 또 다른 세대에게는 오늘을 담아낸 미래의 "알제리 전투"다.
재원
5.0
어떤 영화는 존재 자체로 의의가 있다. 개인적으론 PTA 최고작.
성유
4.5
니 모자란 남성적 자아로는 나처럼 혁명을 이룰 수 없을 거야
대니엘프먼
0.5
도대체 어디가 재미있다는 건지, 도대체 이게 왜 아이맥스용이라는 건지, 도대체 왜 빨린다는 건지, 끝까지 납득이 안 됨 액션 연출은 지나치게 조악하고, 대사는 유치함, 자막 번역도 미국식 개그를 거의 옮기지 않았음, 그나마 번역된 대사 개그조차 노쇠한 감각의 농담 같아서 마치 회사 과장이 억지로 분위기 띄우려는 느낌이었음, “보지가 어딨죠?”, “보지가 없군요” 같은 대사는 세련됨은커녕 불쾌감만 주는 전형적인 직장식 드립이었음 연출을 일부러 투박하게 가져간 건 보였음, 근데 내 입장에선 전혀 장점이 되지 않고 마이너스만 됨 사람들이 극찬하는 부분 감정을 절제하다가 마지막 액션에서 폭발한다는 포인트 이 부분도 도대체 어디가 그렇다는 건지 모르겠음, 인물들의 행위 자체가 설득력이 없어서 공감은커녕 감정선을 따라가기조차 힘들었음 이런 점에서 놀란 영화랑 겹치는 부분이 꽤 많음, 물론 정치적 메시지의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름값과 정치적 담론에 기대는 구조는 똑같음, 그걸 걷어내면 사실상 B급 영화랑 다를 게 없어 보임 중간에 타란티노식 음악 삽입도 나왔는데, 맥락에 안 맞으니 연출 의도가 과잉 노출되고, 재미없는 와중에 억지 장식만 덧붙인 느낌이었음, 결과적으로는 거부감만 더 커졌음 물론 내가 영화를 잘 못 보는 걸 수도 있음, 근데 적어도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나 놀란 영화 모두 소리를 크게 박고, 감정을 절제시켰다가 마지막에 폭발시키는 패턴, 거기에 투박하지만 있어 보이는 카메라워크만 얹으면 명작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 보임, 더 답답한 건, 관객들까지 그 프레임에 맞춰서 칭송해준다는 현실임 이런 영화는 흔히 시간을 두고 곱씹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가주의 영화라는 프레임으로 포장되곤 함, 근데 문제는 이 영화를 두고 단 한 번의 관람 경험만으로 재미를 못 느꼈다고 말하면 곧바로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 일명 빡대가리 취급을 받을까봐 대부분이 솔직한 감상을 숨기고 억지로 찬양하게 되는 경향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함 이 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매드맥스와 비교되는 건 어불성설임, 저 두 영화는 감독의 재능이 확실히 드러나고 모든 연출과 서사가 긴밀히 맞물려 있음, 반면 이번 영화는 능력의 빈자리를 가리기 위해 재능 있는 감독들의 연출 방식을 단편적으로 흉내내는 것 같았음 결국 내가 멍청해서 이해 못 한 걸 수도 있음, 근데 확실한 건, 이 영화를 “현대 영화사의 걸작”으로 떠받드는 건 납득이 전혀 안 됨 아님 그냥 내가 빡통대가리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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