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catcher
Ratcatcher
1999 · Drama · UK
1h 33m · G

James Gillespie is 12 years old. The world he knew is changing. Haunted by a secret, he has become a stranger in his own family. He is drawn to the canal where he creates a world of his own. He finds an awkward tenderness with Margaret Anne, a vulnerable 14 year old expressing a need for love in all the wrong ways, and befriends Kenny, who possesses an unusual innocence in spite of the harsh surroundings.
석미인
3.0
늦게 봐서 미안하다. 끓는 물에 우러나온 참깨라면 별첨스프 봉지같은 영화 차라리 안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밑바닥에서 널 건져 올린다.
Dh
3.5
고치를 벗어나 나비가 되고 싶었던 침잠하는 소년 쓰디쓴 성장통 #결핍 #동병상련
MayDay
4.0
“수로는 결국 그 아이를 잡아먹었다” ‘린 램지’ 감독이 쓴 스토리텔링을 바라본 관객의 마음은 떠오를 수 없는 침전물로 계속해서 가라앉는다. 지나만다녀도 악취가 엄청 날 것 같은 마을에서 어린 소년의 쓰라린 성장통은 우연한 사고로 친구를 익사시킴과 동시에 시작되게 된다. 이 동네는 ‘제임스’라는 아이가 이른 나이에 성적인 부분에 눈을 뜨거나 말할 수 없은 진실에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곳이자 행동과 생각에 제약을 주는 곳으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기에는 가족들 모두 비정상적이며 그나마 여동생과 마가렛 두 명과 교감을 형성하지만 ‘마가렛’이 동네 아이들에게 성적인 폭력을 당하는 장면에서 자신이 손 쓸 수 없음에 나약함을 드러낸다. 동네 사람들이 꺼려하던 그 수로는 죽음이 떠돌던 장소로 어둠이 서려있고, ‘제임스’만이 알고있는 사실과 죄책감이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장소로 당장이라도 그 소년을 잡아먹을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다, 수면 위로 떠오른 비밀과 함께 그 소년을 끌어당겼다. ‘죽음’을 나타내는 방법에서의 감독님만의 특유 스타일과 상황과 동떨어진 밝은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후에 다가오는 절망을 덧없이 무겁도록 만든다. ‘제임스’가 바라본 신축 건물 창문 너머의 황금 빛이 감도는 풍경은 정말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자유와 희망이 가득한 곳이었던 것 뿐일까.
Jay Oh
4.5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가라앉지도 못하는. The sorrow of bliss in the dross.
P1
4.5
Look what you've done 가만히 욕조에 누워 물을 틀고 목 밑까지 차오를 때쯤, 폐 속에도 오물이 차오르는 듯한 상상.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치료하면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걸까? I kill any pain.
Lomain
4.5
그 동네의 아이들은 쥐를 잡는다. 정부에서도 쥐를 잡는다. 쥐는 질병의 매개체다. 그런 낙인을 지녔기에 죽여도, 괴롭혀도 마땅한 대상이다. 허나 쥐들만이 그렇지 않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인간‘을 쥐로 은유한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쌓인 쓰레기 더미 때문에 모이는 쥐들, 그 쥐들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정부가 보낸 사무적인 주거지 조사원들에게는 주민들이, 가부장에게는 그에게 속한 가족 구성체가, 사내아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비치는 동네의 소녀가 쥐로 그려진다. 또한 의도치 않게 하천에서 죽은 아이도 쥐에 부합한다. 마지막 사례이자 은유, 그러니까 하천에 빠진 아이가 어떻게 쥐로 전치될 수 있을까. 영화 초반에 아버지가 쥐를 집아 변기 속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고 쥐는 바다로 갔을 거라며 달랜다. 이 장면은 스노우볼(생쥐)을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날려 보내고 나자, 달로 갔을 거라 안위하는 아이와 등치되며 그 의미를 재차 확인 시켜준다. 바다/달 모두 인간 또는 쥐가 살 수 없는 곳, 즉 비장소이다. 이 비장소들이 지시하는 건 다름아닌 아이가 갖는 위로이자 이상일 뿐이다. 그들은 영화 초반에 모사된 타조처럼 하늘을 날지 못하며, 부패해가는 하천으로 들어가면 바다로 가지 못하고 끝내 죽거나 운이 좋게 살아 나왔다 해도 질병에 옮고 만다. 이렇게 해서 '변기에 내려진 쥐=하늘로 올려 보내진 쥐'라는 등식은 '바다로 가지 못하는 쥐=달로 갈 수 없는 쥐, 또는 하늘을 날 수 없는 타조'(이상의 허물어짐)로 치환될 수 있다. 바다로 갈 걸라는 꿈은 품은, 변기에 내려진 쥐는 결국 하천으로 내려가 죽고 말므로 이는 곧 꿈을 품었어야 될 대상인 '하천에 빠진 소년'과 상응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 내내 중첩된다. 쥐로 대상화된 주연 소년은 쥐를 잡아야 하는 곳에서 부단히 감수성 충돌을 겪는다. 쥐로 대상화 해야 될 타자와 소년의 내면(내면 속이 아닌)은 갈등한다. 이런 충돌 속에서 새로운 집이라는 갈망이 움튼다. ‘새로운 집‘ 이라는 건 깔끔-청결(물리적으로서의)한 장소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정부에 의해서 물리적으로 치워진 쓰레기 더미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텅빈 행위다. 소년의 소망은 쥐가 없는, 쥐로 은유되지 않을 수 있는, 감수성이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장소-비장소를 지시한다. 그리고 그 비장소는 마지막에 가서야 환영 속에서 뒤늦게 취하게 된다. 이 영화가 성장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성장 영화라는 장르는 바깥에서 갈등하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겪는 감수성의 동요를 안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일 텐데, 이건 그렇지가 않다. 어쩌면 성장의 역설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성장영화다. 그 밖에 눈여겨 볼 것들 - 동물 보호 협회에 들어갈 거라는 소년의 친구가 쥐를 잡고 있는 장면 - 소년이 여자 몸 위에서 그저 엎드려 있는 모습 - 초반 커튼과 스크린 또는 액자처럼 연출된 창문 - 한 순간 영웅으로 비춰진 아버지
김동원
4.0
절제되고 대비되는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암울한 시를 읽은 느낌 . 커튼 감기
Indigo Jay
4.5
성장 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수작, 백미는 풀밭 씬. 글래스고우에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으로 쓰레기가 쌓여 동네가 쥐가 들끓는 곳으로 변했던 사건을 기초로 촘촘하게 만들어진 플롯도 뛰어나지만, 때로는 슬로우 모션으로, 때로는 클로즈업, 혹은 롱테이크 등 다양한 카메라워크로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그녀의 첫 장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램지 감독을 '영상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리뷰 http://m.blog.naver.com/cooljay7/10148983194 *2012.7.30 첫 감상, 2012.9.27 재감상, 2012.10.1 세 번째 감상, 2013.5.1 네 번째 감상, 2016.4.12 다섯 번째 감상, 2018.6.15 여섯 번째 감상, 2024.7.12 영자원에서 복원판으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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