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Oh4.5수십년의 공백마저 상쇄할 기세로, 完. Complete regardless. 근래 영화라는 것이 변해가는 듯한, 혹은 좀 과장하자면 죽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 이들이 꽤 있을 듯하다. 영화가 기적을 이룰 힘이 있다고 스스로도 믿고는 싶으나, 현실은 좀처럼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런 게 결국 어느 방향이든 괜찮다며 나아가는 듯했다. 당연히 기적을 바랄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아도 모든 게 값졌을 것이라는 영화의 확신이 체감됐다. 이야기가 미완성으로 남아도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듯이, 그 빈자리야 어떻게든 채워질 수 있다는 듯이. 공백기간 동안 영화와 자기 자신을 지켜봤을 감독님의 시선과 고민들이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더불어, 미완인 채로 마무리된 감독님의 전작 <남쪽>에 대해 한때 남으셨을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 긍정과 받아들임이 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억을 다룬 부분이 특히나 와닿았었다. 나와 동일시되는 기억, 영화 매체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그 기억이 결국 전부는 아니라는 관점이 여기서는 이상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만들어지다 만 영화를 보고도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잊거나 잊혀진다는 것이 결코 우리를 구원으로부터 배제하지도, 불온전케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위안을 받은 기분이었다. 눈빛 하나로도 완성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눈을 감기를 택한다. '결말'이 '끝'은 아니기에. (여담: 원제 "Cerrar los ojos"는 명령문이 아닌 동명사입니다. "To close your eyes"나 "눈을 감는다는 것"에 더 가깝겠네요.)Like176Comment0
ll5.0□ 상실된 시네마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은 스크린이라는 골대 앞의 개인이다. 영화 매체는 인간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는가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주된 내러티브와 극중극 모두 공통적으로 과거에 사라진 인물을 쫓는 미스터리 장르의 형식을 띤다. 초반 10분에 나오는 극중극 '작별의 눈빛' 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담겨있는데, 재미있게도 시대적 배경을 1940년대로 제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의도적인 착각을 유발한다. 이후 다시한번 실제 시대적 배경을 2012년으로 제시하며 영화 초반부터 극중극과 현실의 테두리를 미묘하게 흐린다. 영화의 주된 사건인 훌리오의 실종은 현시대 시네마의 상실에 대한 직접적인 메타포일 것이고, 이는 더 이상 상영이 어려운 영화 역사 속 90%를 차지하는 필름이 쌓인 창고를 통해 구체화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상영할 수 없는 필름 더미들은 과거의 인물들과 함께하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훌리오라는 인물과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이러한 상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이 작품은 극중극 '작별의 눈빛'과 훌리오를 쫓는 중심 내러티브, 두가지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이름을 붙히는 주체가 누구냐에 주목하고 있다. '작별의 눈빛'에서 레비는 자신의 딸을 찾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로, 레비는 일종의 별명이며 딸만이 자신의 실제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임을 꼽는다. 그러나 딸은 자신의 어머니가 지어준 가짜 이름을 받고 레비를 떠난 상황이다. 이와 유사하게 훌리오도 요양원에서 자신의 실제 이름이 아닌 남들이 붙혀준 별명으로 통칭되며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극중극에서 레비는 자신의 저택에도 '슬픈 왕'이라는 이름을 붙혀 일반적인 공간에 특수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시네마라는 개념은 물리적인 실재보다는 이름 붙히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볼 수 있으며, 상실의 회복을 위해서는 영화 자체를 주체로 여기기 보다는 이미 객체로서 곁에 존재하는 영화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붙힐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작별의 눈빛'은 수십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금 관객 앞에서 상영되고 현실에서 딸 아나가 훌리오를 쫓아 재회한 것처럼 극중극의 레비는 딸과 재회하고 그 곁에서 숨을 거둔다. 표면적으로는 한 인물의 종말이지만 '작별의 눈빛'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미완의 작품이 현실 세계와 영화 속의 두 차원의 재회를 동시에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영화의 영속성을 나타낸다. 체스의 '슬픈 왕'은 상대 왕을 공격하기 위한 다른 기물들과 달리 수비적으로 자리를 지키며 이동을 최소화한다. 축구의 골키퍼 역시 유사한 성질을 띠는데 미겔의 상상 속 훌리오는 사각형의 골대 앞에서 하늘로 손을 뻗는다. 이 장면은 미겔이 마지막 상영회에서 직사각형의 스크린 앞에 서 있는 장면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훌리오 또는 미겔이라는 개인이 시네마의 상실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주고, 그에 따라 이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된다. 딸 아나는 아버지 훌리오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자신을 돌아볼때 자신의 눈을 감는다. 그 순간 이전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빗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네마가 주는 안식에 한번 더 눈을 감을 때 잊혀진 영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중고서점에서 잊혀지고 있는 '폐허'라는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특수한 생명력을 만들거나, 미완성으로 남겨진 '작별의 눈빛'을 폐업한 영화관에서 감상하며 소멸된 과거를 되짚고,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속 수많은 디졸브처럼 눈을 감고 작품에 젖어들며 감상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 볼 수 있다면, 잠시나마 영화를 매개로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Like152Comment1
이동진 평론가
5.0
아직도 영화의 기적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
STONE
4.5
언젠가 영화가 몰락하는 날이 다가올지라도 필름은 여전히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
Jay Oh
4.5
수십년의 공백마저 상쇄할 기세로, 完. Complete regardless. 근래 영화라는 것이 변해가는 듯한, 혹은 좀 과장하자면 죽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 이들이 꽤 있을 듯하다. 영화가 기적을 이룰 힘이 있다고 스스로도 믿고는 싶으나, 현실은 좀처럼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런 게 결국 어느 방향이든 괜찮다며 나아가는 듯했다. 당연히 기적을 바랄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아도 모든 게 값졌을 것이라는 영화의 확신이 체감됐다. 이야기가 미완성으로 남아도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듯이, 그 빈자리야 어떻게든 채워질 수 있다는 듯이. 공백기간 동안 영화와 자기 자신을 지켜봤을 감독님의 시선과 고민들이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더불어, 미완인 채로 마무리된 감독님의 전작 <남쪽>에 대해 한때 남으셨을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 긍정과 받아들임이 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억을 다룬 부분이 특히나 와닿았었다. 나와 동일시되는 기억, 영화 매체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그 기억이 결국 전부는 아니라는 관점이 여기서는 이상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만들어지다 만 영화를 보고도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잊거나 잊혀진다는 것이 결코 우리를 구원으로부터 배제하지도, 불온전케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위안을 받은 기분이었다. 눈빛 하나로도 완성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눈을 감기를 택한다. '결말'이 '끝'은 아니기에. (여담: 원제 "Cerrar los ojos"는 명령문이 아닌 동명사입니다. "To close your eyes"나 "눈을 감는다는 것"에 더 가깝겠네요.)
ll
5.0
□ 상실된 시네마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은 스크린이라는 골대 앞의 개인이다. 영화 매체는 인간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는가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주된 내러티브와 극중극 모두 공통적으로 과거에 사라진 인물을 쫓는 미스터리 장르의 형식을 띤다. 초반 10분에 나오는 극중극 '작별의 눈빛' 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담겨있는데, 재미있게도 시대적 배경을 1940년대로 제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의도적인 착각을 유발한다. 이후 다시한번 실제 시대적 배경을 2012년으로 제시하며 영화 초반부터 극중극과 현실의 테두리를 미묘하게 흐린다. 영화의 주된 사건인 훌리오의 실종은 현시대 시네마의 상실에 대한 직접적인 메타포일 것이고, 이는 더 이상 상영이 어려운 영화 역사 속 90%를 차지하는 필름이 쌓인 창고를 통해 구체화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상영할 수 없는 필름 더미들은 과거의 인물들과 함께하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훌리오라는 인물과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이러한 상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이 작품은 극중극 '작별의 눈빛'과 훌리오를 쫓는 중심 내러티브, 두가지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이름을 붙히는 주체가 누구냐에 주목하고 있다. '작별의 눈빛'에서 레비는 자신의 딸을 찾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로, 레비는 일종의 별명이며 딸만이 자신의 실제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임을 꼽는다. 그러나 딸은 자신의 어머니가 지어준 가짜 이름을 받고 레비를 떠난 상황이다. 이와 유사하게 훌리오도 요양원에서 자신의 실제 이름이 아닌 남들이 붙혀준 별명으로 통칭되며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극중극에서 레비는 자신의 저택에도 '슬픈 왕'이라는 이름을 붙혀 일반적인 공간에 특수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시네마라는 개념은 물리적인 실재보다는 이름 붙히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볼 수 있으며, 상실의 회복을 위해서는 영화 자체를 주체로 여기기 보다는 이미 객체로서 곁에 존재하는 영화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붙힐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작별의 눈빛'은 수십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금 관객 앞에서 상영되고 현실에서 딸 아나가 훌리오를 쫓아 재회한 것처럼 극중극의 레비는 딸과 재회하고 그 곁에서 숨을 거둔다. 표면적으로는 한 인물의 종말이지만 '작별의 눈빛'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미완의 작품이 현실 세계와 영화 속의 두 차원의 재회를 동시에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영화의 영속성을 나타낸다. 체스의 '슬픈 왕'은 상대 왕을 공격하기 위한 다른 기물들과 달리 수비적으로 자리를 지키며 이동을 최소화한다. 축구의 골키퍼 역시 유사한 성질을 띠는데 미겔의 상상 속 훌리오는 사각형의 골대 앞에서 하늘로 손을 뻗는다. 이 장면은 미겔이 마지막 상영회에서 직사각형의 스크린 앞에 서 있는 장면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훌리오 또는 미겔이라는 개인이 시네마의 상실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주고, 그에 따라 이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된다. 딸 아나는 아버지 훌리오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자신을 돌아볼때 자신의 눈을 감는다. 그 순간 이전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빗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네마가 주는 안식에 한번 더 눈을 감을 때 잊혀진 영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중고서점에서 잊혀지고 있는 '폐허'라는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특수한 생명력을 만들거나, 미완성으로 남겨진 '작별의 눈빛'을 폐업한 영화관에서 감상하며 소멸된 과거를 되짚고,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속 수많은 디졸브처럼 눈을 감고 작품에 젖어들며 감상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 볼 수 있다면, 잠시나마 영화를 매개로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재원
4.0
부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앞으로도 쭉 영화의 힘을 믿을 수 있게.
무비신
4.5
잊혀질 지언정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영화 그리고 기억.
조조무비
4.0
#🎞️ 영화가 매초 24번 깜빡이듯, 현실이 잠시 눈을 감아도 기필코 다시 뜰 것이라는 기적을 믿어서.
진태
5.0
작품에 담긴 시간을 완전히 체화해내기엔 아직 내가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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