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ror
Zerkalo
1975 · Biography/Drama · USSR
1h 47m · R

A dying man in his forties remembers his past. His childhood, his mother, the war, personal moments and things that tell of the recent history of all the Russian nation.
폐허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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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한
4.0
고르끼의 어느 여자 관객은 이런 편지를 보내 왔다: "당신의 영화 <거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영화와 똑같았습니다. ... 한데 - 어떻게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까? 그때는 정말 그런 바람이 불었고, 그런 소나기가 왔었죠. ... '갈카, 고양이 내쫓아라' - 할머니가 소리치곤 했었죠. ... 방 안은 어두웠습니다. 석유등도 그때는 꺼졌었죠, 그리고 내 영혼은 어머니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 당신의 영화는 어린이의 의식이 깨어남을 얼마나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는지! 영화의 장면들은 정말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 우리들은 정말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들을 모릅니다. 얼마나 간단하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입니까. 어두운 극장 안에서 당신의 재주로 비쳐지는 한 쪽의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내 영화가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온 터에, 위와 같은 고백은 나의 영혼을 따뜻이 감싸주었으며, 나의 작업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고, 나 자신이 결코 우연이 아니게 선택한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다. <봉인된 시간> 11쪽
정환
5.0
단순한 회상에 머무르는 대신, 시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담아낸 동시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진정한 시가 된 영화. 삶을 돌아볼 때 인생의 거울(회상, 꿈, 영화, 그 모든 것)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을 회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거울이 된 영화. “너는 어떤 사람이니?” 누군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생각했었다. 내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답들이 많을수록 나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조금은 뿌듯해할 것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길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혹시나 나에 대해 얘기하는데 나조차도 말더듬이는 아니었을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짧게 말하거나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릴 지도. 핵심은 내가 말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 질문에 관해서만큼 말할 거리를 생각하는 데는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 그런데 너는 어떤 삶을 살았냐며 묻는다면,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못하겠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하는 건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할 때엔, 양심의 문제로 나 자신을 바라보면 될 일이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냐에 대한 대답은 기억의 문제로, 눈을 감고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을 향해 그 지점까지 더듬어야만 했다. 분명한 나의 역사와 그에 발상하는 불분명한 이미지들 사이에 시간들은 어느새 내겐 낯선 것들이 되었다. 가끔은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오래된 것들을 온전하게 구현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있었던 사실인데도 말이다. 대부분 내가 가진 시간의 이미지들은 더 이상 또렷하지 않았고 감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영화가 그랬다. 이 영화는 나라는 개인을 어떤 방법들로 바라보는지에 대해 묘사한다. 거울을 통해 나의 뚜렷한 이미지를 본다. 회상을 통해 감각만이 존재할 뿐, 왜곡된 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꿈 또한 마찬가지다. 이 외에도 물에 비친 내 모습이나, 혹은 카메라를 통해 나의 이미지를 확인한다. 그러나 내 스스로 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은 사실과 거짓의 여부만이 논의할 문제이지, 어느 것이 현실이고 진실인가에 대한 물음은 옳지 않은 듯하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내 모습을 회상으로 떠오른다고 하여 그것 또한 현실이 아닐 리가 없진 않으니까. 카메라로 나를 담아내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라면, 꿈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은 어떻게 거짓일 수 있을까. 되려 후자가 내겐 더 감각적일 텐데. 내 삶을 떠올려보는 그 과정 속에서 기억, 꿈, 사진, 거울,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현실이냐 비현실인가에 관한 구별은 점차 모호해진다. 따라서 그릇된 망상이나 상상이 아닌 이상, 위와 같은 매체들로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겠다면,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나 많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존재하지 않다. 내가 나를 자각하고 기억하고 있는데 이를 비현실이라며 하나라도 부정한다면 말이다. 나는 내 삶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사건들의 이미지들을 생각해냈는데, 분명한 건 그 일들은 사실이었다는 것이고 과연 그 이미지들이 나를 대표하는 것인가가 중요했다. 한 남자는 회상한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이 뒤섞여버린 서사들을 떠올린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었나? 한 사람의 삶을 떠올릴 때, 다른 누군가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는 법. 과거와 현재가 대칭되며 더듬었던 이 영화의 역사는 결국 노인과 아이가 손을 잡고 풀밭을 걸어간다. 회상이자 사실이며,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이 모두 집합되면서. 어쩌면 그가 인생을 떠올릴 때,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겠다. 마치 누군가에게 전달될 내 피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처럼, 혹은 어머니와 아내를 같은 배우가 연기했던 것처럼 한 세대에서 비롯된 것들이 다음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될 때면,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는 나라는 개인의 존재는 역시 시간과 역사가 융화된 존재임을 일깨웠을 지도.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이야기해 준다는 건, 그저 정보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영화들도 나에겐 정보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네 삶은 어떠했는가를 물어볼 때 그 의도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질문을 들은 우리는 정보를 떠올리는 일과 함께 감정이 동반된다. 따라서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할 때, 그저 정보만을 줄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감정들은 과연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내가 말할 내 삶을 대표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적어도 시간을 다루는 매체인 영화는 고민해야 한다. ‘나는 너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줄 테니(보여줄 테니) 너는 부디 이런 걸 깨달았으면 한다.’라는 시를 써 내려가는 것은 누군가에게 역사와 이미지들 사이 그 낯선 시간에 대한 정보를 고민 없이 서술한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다. 단 하나로 해석될 그것은 결코 시가 아니다. 물론 누군가를 관심 가게 만들고, 무언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정보들이겠지만, 나는 그것들에게 어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시인이라는 직업은 우상을 떠받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내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는 것에서 각자 개개인이 느낄 감정만으로도 어떤 이의 삶을 이해하기엔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의 파편이 아닌, 온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 꽃을 샀다는 정보와 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비를 다 맞으면서까지 달려갔다는 정보도 감동을 주기엔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이 정보는 의도한 몇 가지의 감정들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꽃을 고를 때부터 비를 맞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들을 온전히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배가 된다. 이것이 가진 의도는 오로지 내 시간을 너에게도 주겠다는 것이지, 어떤 감정을 느끼던 그 의지와 자유는 오로지 당신에게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정의하는 시는 이런 것이었다. 시간만이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 스스로를 비롯해 누군가를 사랑하려 할 때, 정보들은 꽤나 유용하지만 탄탄한 기반이 되지 않는다. 너를 온전히 바라보는 그 시선과 집중한 시간들이 내겐 중요하다. 설사, 사랑한다는 감정을 제외하고는 너(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너(나)를 향한 시선은 조금은 왜곡되었을지는 몰라도, 너(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너(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첫 번째. 이 영화는 나에게 어떤 삶을 살아왔냐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 두 번째. 질문을 한 영화 역시도 그 질문에 답을 하겠다는 것. 세 번째. 그러기 위해서는(나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 우리에게 거울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서 거울은 아마도, 회상이고 꿈이자 카메라, 영화라는 현실이면서 진실한 것이겠다. 단순히 흑백으로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듯이, 단순한 회상에 머무르는 대신, 시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담아낸 동시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진정한 시가 아닐 수 없었다. 난해하다는 말은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쓰는 말이다. 난해하다는 말은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삶을 돌아볼 때 인생의 거울(회상, 꿈, 영화, 그 모든 것)이 필요한 것처럼, 이 영화는 우리 각자의 인생을 회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화 그 자체로 거울이 된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가 당신의 삶을 물어본 것과 조응해서 생각해 보면 된다. 어려웠다. 나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STONE
5.0
시간을 두 거울 사이에 봉인하여 영원을 소망하는 유년 시절.
볶음너구리
5.0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가, 타르코프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에서의 시간을 본질적으로 다루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그의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하거나 중첩시키면서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했다. ‘거울’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무시하고, 비선형적인 시간선을 통해, 관객에게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을 느끼게 한다. 시간은 단순히 사건들의 순차적 연결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 왜곡되고 재구성된다. 기억은 시간의 주요한 매개체로, 기억 속에서 시간은 압축되거나 확장될 수 있다. 인간이 기억하는 순간들은 시간적 순서가 아닌 감정적 연관성에 따라 형성된다. 따라서 기억을 통해 재구성된 시간은 비선형적일 수밖에 없고, ‘거울’은 이러한 복잡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
JE
4.5
사실 타르코프스키 같은, 소위 영잘알을 위한 감독의 영화라고 함은 얼마간 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보게 되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극장에서 볼) 기회가 생기거나 괜한 마음이 들어 손이 닿기 전에는 구태여 억지로까지 보려고 하진 않는다. 우연히 본 <이반의 어린 시절>이 좋아 연달아 보긴 했지만 <솔라리스>를 보면서 상술한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 같다. 대신 <거울>은 그보단 훨씬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느 정도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솔라리스>에 비해 <거울>은 (조금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흐름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거울>이 쉬운 영화라거나 특별히 사고를 요하지 않는 영화라는 건 결코 아니지만, 어차피 내러티브는 이해를 벗어나 있고, 대신 영화를 메우고 있는 시공간을 감각하는 듯한 리듬이 충분히 매혹적이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물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리듬의 매혹에서 벗어나면, 아무래도 숙제 같은 것이 남는다. 영화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영화는 과거와 현재, 기억과 환상, 연출된 극과 다큐멘터리 따위가 막 뒤섞인다. 몇 차례인가 에피소드라 할 만한 게 등장하지만 어떤 통일성이나 완결성보다는 파편적인 인상에 머문다. 특히 공간은 분열적이고 시간은 혼잡하며, 말했듯이 내러티브엔 이렇다 할 일관성이 없다. 내레이션처럼 흘러 나오는 시조차 펼쳐진 상황과 연관을 찾기가 어렵다. 패닝 한 번으로 (시공간적인) 인과의 흐름을 깨어 버리듯 이 유령적이고 비약적인 리듬을 보면 결국 시공간의 문제, 즉 영화에 대한 사유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혹시 도입부 등장한 최면은 관객에게 그러한 사유의 의지를 주입하는 걸까. 아마 <거울>은, 그 제목이 시사하듯, 반영적이고 성찰적인, 그러나 불가피한 왜곡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마치 거울을 닮은 영화라는 수단이 어떻게 시공간적으로 해체를 기하며 (또 역설적으로) 무한히 확장함으로써 관념적인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지를 탐색할 때 그 가치가 더욱 드러날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 거울들 역시 그러한 시공간적인 해체 내지 확장의 도구가 되어주는 만큼 최소한 시퀀스 바이 시퀀스로는 분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텐데, 부끄럽게도 내게 그만한 능력은 없다. 다만, 시공간적인 해체 작업이 추구하는 의미론적인 지향점을 정확히 설명하진 못 해도,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를 병치하고 공간을 뛰어넘어 시간을 그려내는 기획, 또 그 안에서 치미는 유별난 감흥들의 매력만큼은 다시 강조하고 싶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추)억과 죽음에의 불안을 잇고, 비디제시스적으로 채워진 매혹의 순간들. 특히 오프닝 무렵 들판을 기이하게 스치는 거센 바람이나 초반부 어머니와 통화하는 보이스오버와 함께 집안 내부를 천천히 미끄러지는 카메라의 움직임. 흐르는 빗물과 불타는 집. 유난히 회화적인 풍경 같은 것. 누군가는 과잉이라는 비판을 가져댈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영화가 애당초 환상임을 알고 보는, 일종의 자각몽 같은 것이라면 그런 순간에 취하지 않을 도리도 없어 보인다. 솔직히 <거울>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이끌린 지점도 (영화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기보다는) 그런 단면들에 훨씬 가깝다. 마지막으로 사족 같은 감상을 덧대면, <거울>을 통해 비간 감독의 모방(?) 능력이 얼마나 적확한지, 얄궂게도 <카일리 블루스>를 더 애정할 수 있겠다는 마음과 타르코프스키야말로 정말 (비간이 지향하던 것의) 완성태구나 싶었다.
...
5.0
.
Jay Oh
5.0
기억을 비추는 시간의 파편. 영화여야만 했던 한 사람의 시. Reflections via remnants of time.
성유
3.0
내가 어린아이로 등장하는 꿈을 꾸고 싶어서 안달하며 기다려. 그 꿈을 꾸면 다시 행복해지거든. 모든 것이 아직도 내 앞에 있고, 모든 것이 아직도 가능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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