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phile4.0이미 저지른 죄의 무게를 자신의 삶으로 지탱할 수 없는데 그래도 자기 목숨을 죄값으로 바칠 수 없다면, 살기 위해 목숨 대신 양심을 죽이는 것은 지나치게 간편해서 끔찍하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섬뜩함도 좋지만 츠츠이 마리코의 절절한 호연이 몹시 인상깊다.Like22Comment0
샌드4.0단 하나의 균형과 어울림 없이 불균질한 사건과 감정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후카다 코지가 이야기를 정말 재밌게 하는 감독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완벽하게 장악할 줄 아는 감독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 내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곳으로 질주합니다. 제게는 오프닝이 정말 탁월한 영화로 보이는데, 오르간을 연주하는 소녀와 연주를 끝내고 홀로 움직이는 메트로놈이 만드는 묘한 느낌의 균형 속의 불균일함은 이 영화를 그대로 담아내는 듯 느 껴집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난 뒤 엔딩에서 아버지의 행동이 오프닝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이 영화가 오프닝과 엔딩을 어떻게 잇고 있는지 더 잘 느껴집니다. 이미 균열이 일어난 한 가정 속에 낯선 사람이 찾아 오면서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파괴하고, 이를 다시 반복하는 이 영화의 구조가 정말 인상적인데, 그 속에서 일어나는 파격적인 사건과 이를 겪어 가는 사람 사이의 감정을 다루는 솜씨가 정말 탁월합니다. 죄에 대한 수많은 재밌는 영화가 떠오르는 만큼, 제게 이 영화는 죗값에 대한 정말 뛰어나면서도 흥미로운 영화로 남을 것입니다.Like12Comment0
카이신4.01. 죄의식과 피해의식의 균형을 정확히 맞추는 메트로놈. 그 메트로놈이 오차 없이 작동하는 가운데 풍금(하모늄) 연주가 한창이다. 아이는 (혼내는 선생님 때문에)연주를 두려워 하고, 엄마는 (뒤에서 옷 벗고 쳐다보는 아저씨 때문에)눈치를 보느라 잘 하지 못하는데, 아저씨는 두려워하지도 눈치를 보지도 않고 아주 잘 연주한다. 반면에 아저씨의 친구이자 엄마의 남편,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는 연주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 2. 야사카의 속죄 방식은 -본인이 확립한 가치관에 따라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거나 숨지 않는 방식, 즉- 직면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안에서는 원죄(怨罪원한을 품고 저지른 악한 죄)에 대한 죄책감과 동시에 공범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데에 대한 원죄(冤罪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는 의식이 자라난다. 그가 형을 살고 나와 곧장 토시오를 찾아오는 것은 그의 죄의식과 피해의식이 정확히 양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에게는 균형과 조화 자체가 가치관이다. 그는 메트로놈 같은 인간이다. 반면 토시오는 죄를 회피하고 합리화하며 속이 텅 빈 그저 그런 타성에 젖은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그의 속죄 방식은 아내(의 몸)와 아이(의 몸)를 내어준다. 아내와 야사카의 관계를 눈감고, 아이가 야사카에 의해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을 내 죄를 대신 갚았다는 연좌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죄를 모두 상환하였다 하는 의식이 들었을 때야 그는 주변인과 살갑게 대하며 생활에 생기를 띄었고 부부간의 관계도 오히려 회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탐정을 고용해 야사카의 소식을 수소문하지만, 부인의 질문을 통해 드러난 속내는 다르다. 야사카를 직접 대면했다 해도 그다지 할 말이 없고 죄를 물을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시오는 야사카를 정말 찾고 싶은 것인지, 범인을 찾고 있는 피해자, 입장이 역전된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미 거미를 잡아 먹은 아이 거미에게 죄의식은 있을까. 어미 거미는 천국에 갈까. 토시오는 말한다. 그 어미 거미도 자기 어미 거미를 잡아 먹은 과거의 아이 거미라고. 죄를 함께 지은 야사카와 토시오. 그 죄값을 치른 야사카, 그리고 그가 죄값을 치르지 않은 토시오에게 저지른 범죄. 그 범죄의 분사에 의하여 희생양이 된 아키에, 호타루, 타카시.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죄를 짓고 묻는다. 그들은 원죄原罪의 그물에 갇혀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3. 나는 아직도 야사카가 호타루를 일부러 해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기에는 처음 내비친 그의 당황한 행동과 눈빛이 걸린다. 그는 이 가족과 함께 지내며 아키에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은 채, 아무런 감정의 교감도 없이 오직 계획에 의해 그녀를 범하려 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기에 아키에의 야사카에 대한 태도, 그리고 격하게 거절받았을 때 야사카의 배신당한 듯한 모습이 걸린다. 또한 물놀이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안의 소리도 수감하는 동안 오래도록 간직한 마음인지, 아니면 행복해보이는 토시오 가족을 보고 순간 억울한 마음에 터져나온 소리인지 정말 모르겠다. 죄에 직면하는 방식으로 지난 삶을 보낸 야사카는 어째서 8년이란 시간동안 잠적한 것인가. 아사노 타다노부의 어딘가 명확하지 않은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Like11Comment0
P1
3.5
자신들의 죄의식을 전가하는 각자의 방법
Cinephile
4.0
이미 저지른 죄의 무게를 자신의 삶으로 지탱할 수 없는데 그래도 자기 목숨을 죄값으로 바칠 수 없다면, 살기 위해 목숨 대신 양심을 죽이는 것은 지나치게 간편해서 끔찍하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섬뜩함도 좋지만 츠츠이 마리코의 절절한 호연이 몹시 인상깊다.
Natural
3.5
아사노 타다노부는 자연스레 복수를 하러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엔딩을 제외하곤 좋았습니다.
JE
3.5
This may contain spoiler!!
ygh_光顯
4.0
일종의 묵시록 같은 플롯이 이토록 모골이 송연하게 조화로우면서도, 기이한 화음의 쾌감을 이룬다.
샌드
4.0
단 하나의 균형과 어울림 없이 불균질한 사건과 감정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후카다 코지가 이야기를 정말 재밌게 하는 감독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완벽하게 장악할 줄 아는 감독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 내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곳으로 질주합니다. 제게는 오프닝이 정말 탁월한 영화로 보이는데, 오르간을 연주하는 소녀와 연주를 끝내고 홀로 움직이는 메트로놈이 만드는 묘한 느낌의 균형 속의 불균일함은 이 영화를 그대로 담아내는 듯 느 껴집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난 뒤 엔딩에서 아버지의 행동이 오프닝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이 영화가 오프닝과 엔딩을 어떻게 잇고 있는지 더 잘 느껴집니다. 이미 균열이 일어난 한 가정 속에 낯선 사람이 찾아 오면서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파괴하고, 이를 다시 반복하는 이 영화의 구조가 정말 인상적인데, 그 속에서 일어나는 파격적인 사건과 이를 겪어 가는 사람 사이의 감정을 다루는 솜씨가 정말 탁월합니다. 죄에 대한 수많은 재밌는 영화가 떠오르는 만큼, 제게 이 영화는 죗값에 대한 정말 뛰어나면서도 흥미로운 영화로 남을 것입니다.
카이신
4.0
1. 죄의식과 피해의식의 균형을 정확히 맞추는 메트로놈. 그 메트로놈이 오차 없이 작동하는 가운데 풍금(하모늄) 연주가 한창이다. 아이는 (혼내는 선생님 때문에)연주를 두려워 하고, 엄마는 (뒤에서 옷 벗고 쳐다보는 아저씨 때문에)눈치를 보느라 잘 하지 못하는데, 아저씨는 두려워하지도 눈치를 보지도 않고 아주 잘 연주한다. 반면에 아저씨의 친구이자 엄마의 남편,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는 연주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 2. 야사카의 속죄 방식은 -본인이 확립한 가치관에 따라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거나 숨지 않는 방식, 즉- 직면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안에서는 원죄(怨罪원한을 품고 저지른 악한 죄)에 대한 죄책감과 동시에 공범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데에 대한 원죄(冤罪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는 의식이 자라난다. 그가 형을 살고 나와 곧장 토시오를 찾아오는 것은 그의 죄의식과 피해의식이 정확히 양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에게는 균형과 조화 자체가 가치관이다. 그는 메트로놈 같은 인간이다. 반면 토시오는 죄를 회피하고 합리화하며 속이 텅 빈 그저 그런 타성에 젖은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그의 속죄 방식은 아내(의 몸)와 아이(의 몸)를 내어준다. 아내와 야사카의 관계를 눈감고, 아이가 야사카에 의해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을 내 죄를 대신 갚았다는 연좌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죄를 모두 상환하였다 하는 의식이 들었을 때야 그는 주변인과 살갑게 대하며 생활에 생기를 띄었고 부부간의 관계도 오히려 회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탐정을 고용해 야사카의 소식을 수소문하지만, 부인의 질문을 통해 드러난 속내는 다르다. 야사카를 직접 대면했다 해도 그다지 할 말이 없고 죄를 물을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시오는 야사카를 정말 찾고 싶은 것인지, 범인을 찾고 있는 피해자, 입장이 역전된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미 거미를 잡아 먹은 아이 거미에게 죄의식은 있을까. 어미 거미는 천국에 갈까. 토시오는 말한다. 그 어미 거미도 자기 어미 거미를 잡아 먹은 과거의 아이 거미라고. 죄를 함께 지은 야사카와 토시오. 그 죄값을 치른 야사카, 그리고 그가 죄값을 치르지 않은 토시오에게 저지른 범죄. 그 범죄의 분사에 의하여 희생양이 된 아키에, 호타루, 타카시.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죄를 짓고 묻는다. 그들은 원죄原罪의 그물에 갇혀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3. 나는 아직도 야사카가 호타루를 일부러 해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기에는 처음 내비친 그의 당황한 행동과 눈빛이 걸린다. 그는 이 가족과 함께 지내며 아키에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은 채, 아무런 감정의 교감도 없이 오직 계획에 의해 그녀를 범하려 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기에 아키에의 야사카에 대한 태도, 그리고 격하게 거절받았을 때 야사카의 배신당한 듯한 모습이 걸린다. 또한 물놀이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안의 소리도 수감하는 동안 오래도록 간직한 마음인지, 아니면 행복해보이는 토시오 가족을 보고 순간 억울한 마음에 터져나온 소리인지 정말 모르겠다. 죄에 직면하는 방식으로 지난 삶을 보낸 야사카는 어째서 8년이란 시간동안 잠적한 것인가. 아사노 타다노부의 어딘가 명확하지 않은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장승하
4.0
조화(造花)와 같은 하얀 삶을 걷어내고 나서야 받쳐진 붉은 조화(調和) 한송이의 애처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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