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
Safe
1995 · UK, United States
1h 58m



Carol, a typical upper middle-class housewife, begins to complain of vague symptoms of illness. She "doesn't feel right," has unexplained headaches, congestion, a dry cough, nosebleeds, vomiting, and trouble breathing. Her family doctor treats her concerns dismissively and suggests a psychiatrist. Eventually, an allergist tells her that she has Environmental Illness.
134340
4.5
미친 사람이 되지 않는 방법은 나를 사랑하는 것 뿐이었다.
김솔한
4.0
잠시 크로넨버그가 된 토드 헤인즈.
별,
4.0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자에게 절대적인 안전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만이 삶의 주체가 될 필요조건일텐데, 그나마도 지금의 세상은 끊임없이 자아를 위협하지 않는가. 폐쇄된 공간에서의 자신에 대한 사랑의 되뇌임이 왜 이리 공허하게만 들리는지...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완전하게 유지할 안전은 느껴지지 않는다.
Cinephile
4.0
여인을 괴롭힌 질환은 과연 환경 호르몬일까 아니면 부유한 환경 속 트로피로 전시된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 반항일까? 후자의 주관적 공포가 원인이라 해도, 세상 속에서 차마 홀로 설 능력을 잊어버린 여인이 느끼는 그 공포는 어느 객관적 질병보다도 무섭다.
ㅠㄹ
4.5
사회 속에 숨겨진 개인의 고통과 불안, 그 끝의 화살은 과연 어디에.
샌드
4.0
개인의 공포와 불안이 어디까지 갈지를 보여주며, 그 뒤엔 사회와 세상이 드리워있다.
Loki0
4.0
<파 프롬 헤븐>, <캐롤>에서 사회적 시선에 고통받는 이들을 그린 토드 헤인즈 감독의 독특한 초기작이다. 캐럴이 겪는 원인 불명의 질병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공포는 80년대를 휩쓴 에이즈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고급 세단에 탄 캐럴의 시선을 따라서, 블루 아워의 미묘한 푸른 기운에 휘감긴 산 페르난도 밸리 주택가를 부유하듯 롱 테이크로 비추며 시작된다. 곧 도착한 그 안온한 저택에서 캐럴은 남편에 깔린 병자처럼 무력하게 섹스하고, 그녀가 돌보던 화초처럼 점차 시들어간다. 개발로 파헤쳐진 황량한 주택가에서 바짝 말라가고 건조한 안색으로 나른하고 힘없이 말하며, 시체처럼 암흑의 소파에서 잠드는 그녀의 삶. 남편과 의붓아들 같은 가족과 친구와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단절된 그녀 내면의 억눌림은 반점과 기침, 코피 같은 증상으로 발현된다. 그녀는 어느덧 포대 같은 옷을 뒤집어쓰고 머리를 질끈 묶으며 불필요한 것을 버림으로써 고요히 침잠한다. 뉴웨이브 공동체에서 캐럴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아래에서 공동체 일원들과 서클을 갖는데, 그 방법이 집단상담 경험과 유사해 묘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촉진자의 통찰과 공감, 경청으로 존재 자체로서 만나며 지금, 내면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연대의 시간. 전쟁의 참혹함에서 도피하려던 히피 문화가 연상된다. 산업 도시에서 도망친 캐럴처럼. 감독은 한때 유행한 이 뉴웨이브 자연주의의 허울을 벗기면서 그 역시 비판적으로 그린다. 자연주의와 자유의 가치도 집단 속에서 규율로 패턴화되면 순응성을 낳기 마련이다. 마지막 장면, 멍든 듯한 반점이 남은 건조하고 창백한 피부의 그녀는 텅 빈 이글루에서 거울과 관객을 동시에 응시하며 공허하게 중얼거린다. “난 널 사랑해, 난 널 사랑해. 난 널 사랑해.”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그녀는 낫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 산소통을 매지 않고 숨쉬기조차 힘든 그녀는 감옥 같은 그곳에서 점차 기이한 외계의 존재처럼 변해간다. 반어적인 제목이다. 그녀는 그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에이즈 공포로 혐오가 심해지던 80년대 배경, 풍요롭고 보수적인 기득권 중심 미국 사회, 퀴어라는 감독의 정체성과 작품 성향을 고려할 때 영화는 ‘정상’ 이라는 당시 사회의 환상에 대한 거대한 회의처럼 느껴진다. 감독의 최근작 <캐롤>에서 50년대 전후 보수적 공기가 그녀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가. 흑인, 퀴어 혐오가 드러난 <파 프롬 헤븐>에서도 줄리언 무어는 주변 시선에 고통받으며 혼자 남겨진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정상, 안정된 사회, 문명 도시라는 환상. 한 폭의 그림 같은 미국 중산층 삶 속에서 캐럴은 질식한다. 히피의 잔재도, 종교라는 허상도, LA 신도시도, 뉴멕시코도, 그녀를 둘러싼 80년대 미국의 모든 환경은 독소다. 인간은 주변 환경을 부숴가면서 문명에 치열하게 적응하느라 늘 지치고 피곤하다. 안전해보이는 현대사회에서 타인과 온전히 소통하는 건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가까운 타인도 결코 내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없다. 이 공포의 사회 안에서 어쩌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것을, 감독은 줄리안 무어의 투명하고 창백한 낯빛과 두려운 눈빛을 통해 전한다. 지독히 염세적이며 잔인하게.
별빠
3.5
Give yourself to love, and you can feel more comfortable and more s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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