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어떠한 경우에도 너는 내 딸이고 네가 한 일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할 일은 없을 거야. 누구를 만나든 굽히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당당해라.” 내가 지긋지긋한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듯 집을 나왔을 때, 정신없는 서울의 지하철 안에서 묵직한 짐가방을 들고 갈 곳 없이 휘청이던 내게 엄마가 보냈던 문자는 저 대사와 정확히 같진 않았지만 결국 저런 내용이었다. 그 짧은 글을 몇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새끼가 다 자라 이젠 어디로 날아갈지 엄마도 모르는 때가 오면 어떤 어머니라도 딸의 등에 대고 저런 기원을 보내게 되는 걸까. 저 대사가 원작에서 나온 건지 리메이크 과정에서 만들어지게 된 건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대사를 쓴 작가님께 감사를 보내고 싶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런 장면과 대사를 찾기 위해서 수많은 작품 사이를 헤매고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인생의 찰나에 번졌던 소중한 순간을 뜻밖에도 기억해내고 그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오랫동안 간직하게 되는 일은 언제나 기쁘기 때문에. 마더를 보며 매 화 오열하고 있는데 이렇게 진이 빠지도록 울고 나면 왠지 엄마도 이 드라마를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이걸 보고 울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같은 말을 엄마에게 하고 싶어진다. +) 이혜영 배우님을 이제야 알아서 아쉽고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남기애 배우님도 정말 최고셨어.

“이젠 네가 엄마를 버리는 거야. 할 수 있겠니?”

수진-윤복의 관계보다 영신-수진의 관계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건 왜일까. 수진이 아이일때도 어른일때도, 곁에 있어도 없어도, 수진을 향한 한결같은 영신의 사랑이 느껴져서인가보다. 제목의 마더는 수진이 아니라 영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신이 있었기에, 아낌없이 사랑을 줬기에 엄마가 되지 않을거라던 수진도 엄마가 될 수 있었던거다. * 이혜영님 아닌 영신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다. 영신과 수진, 영신과 윤복, 영신과 이진, 영신과 현진, 영신과 홍희 등등 이혜영님과 다른배우들이 붙는 장면은 더 몰입도 높고 더 감정전달이 깊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15회는 보는내내 눈물바다였다. *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원통한 거, 우리 수진이 낳지 못 한 거.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수진이 낳은 사람." * "수진아 엄마 짐 다 쌌어. 너하고 했던 모든거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다 가지고 갈거야. 너무 소중하니까. 엄만 준비됐어. 이제 놔줘. 괜찮은 인생이었어. 후회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