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길이 순수 국내 저자의 연구 성과물만을 엄선해 국내 학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기획·출간 중인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본격 학술서 시리즈 ‘인문정신의 탐구’의 열한 번째 책이다. 이번 책의 지은이는 경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아도르노 연구자 김유동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충적세, 즉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인 약 1만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인류 문명사를 한눈에 조망하겠다는 야심 찬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현대인의 삶이 펼쳐지는 ‘물과 공기’, 즉 모더니티라는 시공간이 궁극적인 관심대상이지만, 그것을 분석적 방법으로 파고들다 미로 속에서 길을 읽기보다는 다른 문명과의 대비 속에서, 나아가 ‘충적세 문명’ 전체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지은이는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소유와 지배’는 ‘문명’이 발생하면서 인간에게 얹혀진 업보요 원죄이지만, 모더니티의 문화구조가 생겨나 기 전에는 ‘자연’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휴머니즘적 가치와 인문주의적 지성의 제도화가 동서양 어디 서나 ‘소유와 지배’라는 악(惡)의 해독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모더니티의 문화구조 속에서 ‘자본 의 논리’가 득세하는 정도에 비례해 ‘하나로 엉킨 생명의 연대’를 해체하고, 산의 맥(脈)을 끊고 강의 흐름을 막으며 차별을 극대화하는, 생명에 기초한 ‘가치’와 ‘의미’ 일반의 몰락을 목격하게 된다. ‘인문학의 위기’는 삶과 세상의 위기가 드러나는 ‘징후’에 불과할 것이다. 이 글은 그런 ‘가치’와 ‘의미’ 내지 그 ‘무의미와 덧없 음’에 대한 ‘기억’이나마 기록하려는 끼적임이었다.
금융자본주의가 세계 민중 전체와 생명 전체를 향해 불칼을 휘두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파국에 직면한 문명을 징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지식인의 존재를 낡아빠진 것으로 폐기하고는 지식인을 전문가로 대체하려 하는 포스트모던한 현대세계는 모든 사유를 쓰레기장에 처박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혼돈’에 직면해, 김유동은 혼돈 너머의 미래에 대해 막막함을 느낀다. 물론 재스민 혁명과 월가의 데모 등 그에 대한 변혁과 반동의 기운이 퍼져나가고는 있으나, 이 시대 지식인의 책무는 단순히 변혁적인 결론 자체에만 의탁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사유를 다시 가동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사유를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 김유동은 발터 벤야민과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관점을 취한다.
헤겔이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서구중심주의적인 ‘완성’ 같은 것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가 확장되는 역사’ 같 은 것을 구상했다면, 그런 근대적 발상이 충분히 해체된 시대에, 위기의 징후들이 도처에서 터져나오는 시 대에 헤겔적 낙관주의는 발터 벤야민이나 테오도어 아도르노적인 “역사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구원의 관 점”으로 바뀌는 것이 필연이라고 본다. 벤야민의 ‘구원적 비평’의 관념이나 ‘역사철학 테제 9’ 또는 아도르 노가 『미니마 모랄리아』의 결론에서 말한 ‘구원의 관점’은 역사나 삶을 바라보는 나의 무의식을 지배할 것이다.
진보사관과 서구중심주의가 무너뜨린 문명의 잔해 위에서
전체를 위한 사유를 다시 가동시키려는 시도!
이러한 관점에서 지은이가 유용한 척도로 제시하는 것은 동양의 문화구조이다. 문명의 발생은 필연적으로 지배의 발생을 가져왔지만, 동양의 문화구조는 ‘지배’를 완화하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좀 덜 모순적이고 좀 더 상보적인 관계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진보사관이나 서구중심주의가 인류 문명을 파국으로 이끌었다면, 이제 그 잔해들 속에서 ‘전체’를 재구성하는 실험을 감행하는 데 있어 원시와 동양의 척도가 유의미할 수 있다.
‘소유와 지배’에 기초한 인위의 문명은 그 ‘타자’인 자연 또는 ‘원시문화’, 그리고 ‘동양의 문화’와의 대비 속에서 그 의미와 무의미(덧없음)을 찾을 수 있다. 인간과 뭇 생명들의 삶이 인위의 지배, 기술의 지배를 받게 되기까지,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낸 서양의 문화구조는 무엇인가, 다른 문명은 어떠했는가라는 화두에서 출발하니, 동양과 인도가 진지한 관심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지은이의 의견에 따르면, 아시아 대륙은 유럽에 비해서는 좀더 자연과 조화된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동양은 서양과는 다른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중국이나 인도, 일본 등에서는 상업과 대도시가 일찍부터 상당히 번창했지만, 경제나 상업의 계기가 자립화하여 균형을 무너뜨리고 상업주의나 자본주의로 치닫는 것을 억제하는 문화구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동양은 가파른 역사의 궤도를 달려온 서양문명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자각하면서 서양에 대한 비판적 ‘척도’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견해이다.
부분적 현상들을 통해 전체를 예감하며
‘징후를 읽어내는’ 비교문화구조학적 성찰!
그러나 지은이는 그저 동양과 서양을 양손에 쥐고 이 둘 사이의 차이와 우열을 도식적으로 도출해내지는 않는다. 그러한 도식적이고 단순한 비교?대조는 파편화된 두 조각을 억지로 엮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시와 동양의 척도로 문명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이 책은 ‘비교문화구조학’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전체’는 하나로 얽혀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면서도 파편화된 학문적 인식으로는 ‘전체의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인식의 초조’는, ‘문화’나 ‘문화구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다. 이러한 초조는 포스트구조주 의적인 ‘현실 해체’나 문학?예술에서 나타나는 ‘재현의 위기’에 의해 더욱 가중된다. … ‘문화’는 개개 현상 들이 일어나는 분위기나 구조, ‘지층’으로서, 상대적 독립성을 갖는 ‘부분으로서의 전체’이다. … ‘비교문화구 조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기존 학문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전체는 하나로 엉켜 있는데 도 불구하고 기존학문은 대체로 조각그림들만을 보여주며, 그나마 대개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부분성의 오 류나 전문주의의 왜곡에 빠진다.
다만 ‘문화’라는 용어가 ‘자본의 논리’에 포획당하게 되면서 이 책에서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부분으로서의 전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문화’를 ‘문화구조’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이 책에서 시도하는 ‘문화구조 연구’는 ‘징후읽기’이다. 전체나 문화구조는 개념을 통해 규정할 수도 재현을 통해 그려낼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부분적 현상들’을 전체가 발현되는 ‘징후’로 여기고는, 이 징후들을 해석함으로써 ‘전체’를 예감해보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김유동의 이 책은 벤야민이나 아도르노의 저작들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징후읽기는, ‘연결된 전체’에 대한 예감 없이 ‘부분들’이나 ‘사실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분석’하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자신의 문화를 떠나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 낯선 행태나 풍경을 만나게 될 때, 그것 을 ’다른 관습, 다른 문화‘의 징후로 받아들이면서, ’낯선 문화 전체‘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 … 문화에 대한 연구는 어떤 문화구조 속으로 ’들어가‘ 현상들을 전체의 징후로서 해석하는 과정이면서, 또한 ’밖으로 나와‘ 다른 문화구조들과 비교하고, 문화구조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성을 상상하는 작업이다.
동서고금과 분과학문의 경계을 넘나드는 방대한 전거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
‘전체’에 대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지은이는 필연적으로 분과학문들의 주요 업적들과 함께 동서양의 신화?경전?고전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총 10개의 장(章)과 장 사이의 간주곡들을 통해 오시리스 신화, 『반야심경』, 『길가메시 서사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세르반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