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릴 수 없이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974년 여름,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과거 핀란드의 수도이기도 했던 투르쿠가 소설의 배경이다. 페르시넨과 티모 두 젊은이가 외설 비디오를 보고서 페르시넨의 즉흥적인 발상에 이끌려 같이 빨간색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이 색다른 범죄소설의 흥미로운 공간이 열린다. 작가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이, 그래서 아무 선입견 없이 소설을 읽는다면 문득 두 젊은 남자 간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스치자마자 뒤통수를 치듯 전혀 다른 공간과 사건이 펼쳐진다. 그리고 바그너 소설 특유의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숨 돌릴 사이 없이 활자가 지나가고 문장이 흘러가는 대로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이야기 한가운데 푹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1974년 여름 피아 레티넨이라는 13살 소녀가 살해된 채 호수에서 발견된 지 33만에 동일범 소행인 듯한 실종사건이 터지면서 펼쳐지는 긴박한 이야기 속으로.
살아 있는 캐릭터, 탁월한 심리묘사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하면서도 천진무구하다 싶을 정도로 순수한 심성의 소유자인 듯싶은 문제의 살인범 페르시넨, 33년 전 살인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퇴임식을 치른 수사반장 케톨라,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서 쉬 빠져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아내의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모범적인 스타일의 감성적이면서도 사리분별이 분명한 형사 킴모, 다소 우악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리더십과 배포를 보여주는 신임 수사반장 준드슈트롬, 그리고 33년 전 살해된 피아 레티넨의 어머니 엘리나, 33년이 지나 새로이 터진 실종사건의 피해자 부모인 칼레비와 루트 베카살로 부부, 33년 전과 똑같은 형태의 실종사건이 터지자 과거 사건을 떠올리며 자가당착의 혼란 속에서 속죄의 길을 모색하는 독특한 성향의 부동산 중개업자 티모 코르벤소, 어른들이 풀지 못한 숙제를 단번에 해치운 당돌한 10대 소녀 시니카 베카살로……. 그런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교차 반복되는 가운데 이야기는 서서히 티모 코르벤소의 심리상황으로, 피아 레티넨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문제의 호수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통쾌한 반전으로 독자의 편견을 깨다
시니카 베카살로라는 소녀가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다. 케톨라의 후임으로 들어온 준드슈트롬의 지시 하에 투르크 경찰청사는 다시 분주해진다. 33년 전 살인사건의 동일범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하에 투르쿠 지역 내의 모든 호수에서 실종자의 시신수색 작업이 이뤄지고, 킴모는 피해자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만나 실종자의 신원과 실종 당시의 상황을 탐문수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3년 전 문제의 미제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케톨라 반장의 당시 기록 파일들도 다시 들춰보며 상호연관성을 짚어나간다. 그러다 결국 직접 케톨라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같이 피해자의 가족과 33년 전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면서 수사는 보다 활기를 띤다. 그런 와중 케톨라는 살인범을 유인하기 위한 술책으로 피아 레티넨의 어머니 엘리나와 같이 텔레비전의 한 토크쇼에 나가고 그 내용은 생중계로 전국에 방영되고 사건은 점차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방송이 나가자 예상대로, 과거 살인사건 현장에 함께했던 티모 코르벤소가 직접 엘리나를 찾아오고 그런 지 얼마 안 되어 시신으로 발견되어 이제 살인범을 찾았구나, 하고 숨을 돌려려는 찰나, 전혀 예상 밖의 반전이 기다렸다는 듯이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그런데 그 반전의 뒤통수가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처음엔 어이없어 실소를 머금을지 모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이없어하는 자기 자신의 고루하고 편벽함의 실체를 보게 된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기성관념에 갇혀 살아왔는지를…….
이 소설은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한다. 그래야 소설을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읽으면서는 이 소설 특유의 흥미진진한 미로 게임을 보는 듯한 구성 속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를 쫓는 경찰들 간의 동시다발적인 상황들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다 앞서 말한 대로, 놀라운 반전의 기습을 당하게 된다. 그러고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어김없이 다시 첫 페이지로 손이 가게 된다. 그리고 퍼즐을 맞춰보듯 이야기의 앞뒤를 더듬어가면서 다시 천천히 소설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
감동은 천천히 그러나 여운은 길게
이 소설에서는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이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러다 반전의 순간, 섬광처럼 뇌리를 뚫고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또 어떤 의미인지는 아마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이것은 이 소설을 강력히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는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성향과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단편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등장인물들 각각의 생활환경과 고유한 삶의 방식을 통해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떨쳐버리기 위해 무리하게 안간힘을 쓰기보다 오히려 마음 아픈 채로 상처를 보듬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그런 가운데서도 소소하게나마 행복감을 맛보며 미래를 내다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러나, 선과 악 또는 행복과 불행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가치기준을 뛰어넘는, 인간의 본성과 개인적인 내밀한 심리상황에 초점을 맞춘 작가 바그너 특유의 탁월한 심리묘사와 구성력 덕분에 아주 문학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독자의 이성을 자극하고, 나아가 감성을 건드리며 끝내 감동을 자아내고 만다. 물론, 책을 다 읽은 후 그러한 감동은 조금 늦게 찾아오지만, 그 여운은 아주 길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욱, 끊임없이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작가 얀 코스틴 바그너가 문학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인기를 끄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인간을 바라보는 바그너의 시선은 공평하고 따뜻하다. 그 대상이 살인범이든, 피해자이든, 피해자 가족이든, 그 누구든 간에.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가 독자 가까이에 빙 둘러 서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주 친근한 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