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21도 회고시」를 번역한 이유는 선학의 옛 도읍에 대한 애정과 보존의지를 일부나마 계승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선학의 큰 뜻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영재가 열람했던 국내외의 사서를 가능한 한 찾아서, 해당부분을 각주로 처리했다. 영재는 한민족의 전통문화에 대해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21도 회고시」역시 정치한 고증을 통한 옛 도읍지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고대 왕조들의 흥망을 운문으로 노래하면서, 마지막 왕들의 정감적 일탈과 신흥왕조 창업주들의 웅혼한 기상도 감동적으로 묘사했다. 21도를 읊조리면서 이처럼 다정다감한 영재의 금회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 더 돋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영재가 형상한 21도에는 수백 년이 흘러간 지금 서울과 평양이 다시 추가되었다. 한양과 평양은 여러 왕조가 도읍했지만, 그 위치는 각각 달랐다. 중국 장안 일원에 역대 왕조가 수도를 삼은 영역이 각각 상이했던 것과 같다. 왕궁의 소재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기준하여 고찰할 때 권역간의 상거가 있다. 영재가「21도 회고시」를 읊은 시대만큼 시간이 다시 흘러간 뒤, 오늘날 서울과 평양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이 또한 흥미롭고 궁금하다. 신라 천년의 도읍지였던 서라벌과 고구려의 국내성 · 평양성,그리고 백제의 공주 · 부여성과 같이 황량하거나 괴이한 모습으로 남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