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웨이의 한국전쟁

매슈 B. 리지웨이 · History/War/Social Science
3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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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리지웨이 장군은 전쟁 발발부터 정전에 이르기까지 치열했던 전투 과정은 물론이고, 한반도 문제 불개입 정책을 고수하며 애치슨 선언으로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미국이 한국에서 사전경고도 없이 전쟁이 벌어지자 전쟁에 개입하게 된 이유를 서술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공할 원자폭탄과 든든한 유엔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마지노선에 안주하며 군사력 감축을 단행함으로써 전쟁 대비 태세가 전혀 되어 있는 않았던 미국의 국내 상황, 전쟁 초기 신생국가였던 대한민국에 대한 미군의 인식, 6·25전쟁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게 된 제한전 개념, 맥아더 장군의 해임으로 촉발된 민군관계에 대한 대논쟁, 지난한 정전협상 과정, 그리고 정전협상이 2년여간 계속되면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계속된 잔혹한 고지전 양상, 골치 아픈 전쟁포로 문제, 6·25전쟁을 통해 얻은 교훈 등을 이 책에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6·25전쟁 전반을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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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추천의 글 저자 서문 제1장 조용한 아침의 나라: 폭풍 전야 제2장 도전과 응전: 스미스 특임부대의 용감한 저항 제3장 유엔군의 공세: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 교두보 돌파 제4장 압록강에서의 절망: 중공군의 개입과 미 해병 1사단의 후방으로의 공격 제5장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 전투의지 회복과 공세로의 전환 제6장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 해임의 원인과 결과, 중공군의 후퇴 제7장 정전회담과 교착상태: 처절한 고지전과 적의 본질 제8장 전쟁의 막바지: 포로수용소 폭동, 클라크 장군과의 교대, 그리고 정전협상 서명 제9장 문제와 해답들: 맥아더 장군 관련 논쟁의 의미와 정치·군사적 시사점 제10장 얻게 된 교훈들과 얻지 못한 교훈들: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 한국전쟁 연표 옮긴이 후기

Description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으로 8군을 이끌다가 맥아더 장군 해임 후 유엔군사령관에 임명되어 유엔군을 지휘한 리지웨이 장군이 쓴 ‘한국전쟁 징비록(懲毖錄)’ ★ “우리는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에 대응했는가? 아시아에서 어떻게 전면전을 피할 수 있었는가? 맥아더 장군은 왜 해임되었는가? 오늘날 전쟁 목표는 왜 제한되어야 하는가? 한국전쟁을 통해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 ★ 올해(2023년)는 6·25전쟁 73주년,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 체결) 및 한미동맹(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다. 지금으로부터 73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정전협정 체결로 전쟁이 중단된 이후 지금까지 70년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6·25전쟁 당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5000 대 1 성공 확률로 거의 도박에 가까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전세를 역전시킨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데 반해, 워커 중장 순직 이후 미 8군 사령관으로서 8군을 이끌다가 맥아더 장군 해임 이후 그의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으로서 유엔군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리지웨이 장군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리지웨이 장군은 6·25전쟁 발발 후 1950년 12월 23일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순직한 미 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의 후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중공군의 공세에 대항해 미 8군의 공세적 전투의지 회복과 위력 수색, 과감한 화력 운용 등을 통해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고, 1951년 4월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맥아더 장군의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 겸 극동군사령관에 임명된 후 지금의 휴전선 위치까지 전선을 회복하고 전쟁포로 관리와 정전협상 등을 통해 한반도의 적화통일 저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발판으로 북진해 압록강까지 도달해서 승리의 문턱에 거의 다다랐을 때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순간에 리지웨이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이 없었다면 유엔군과 한국군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패배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미 정부가 내부적으로 출구전략을 고심하면서 한반도에서의 군대 철수를 검토하고 있을 때 리지웨이 장군의 공세 의지와 탁월한 전쟁 수행 능력 덕분에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 리지웨이 장군이 쓴 이 책은 6·25전쟁 당시 그가 미 8군 사령관으로서 당시 패배주의가 만연한 8군을 어떻게 이끌었고, 맥아더 장군 해임 이후 유엔군사령관으로서 유엔군을 어떻게 지휘했으며, 전쟁을 통해 어떠한 교훈을 얻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한 ‘한국전쟁 징비록(懲毖錄)’이라 할 수 있다. 6·25전쟁은 전쟁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 간의 전쟁인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자유 수호의 기치 아래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군과 함께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운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간의 전쟁이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미 8군에 이어 유엔군을 지휘한 리지웨이 장군이 직접 쓴 이 책은 단순히 주요 작전이나 전투만을 다룬 책이 아니라 6·25전쟁 전반을 거시적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역사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인 리지웨이 장군은 전쟁 발발부터 정전에 이르기까지 치열했던 전투 과정은 물론이고, 한반도 문제 불개입 정책을 고수하며 애치슨 선언으로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미국이 한국에서 사전경고도 없이 전쟁이 벌어지자 전쟁에 개입하게 된 이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공할 원자폭탄과 든든한 유엔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마지노선에 안주하며 군사력 감축을 단행함으로써 전쟁 대비 태세가 전혀 되어 있는 않았던 미국의 국내 상황, 전쟁 초기 신생국가였던 대한민국에 대한 미군의 인식, 6·25전쟁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게 된 제한전 개념, 맥아더 장군의 해임으로 촉발된 민군관계에 대한 대논쟁, 지난한 정전협상 과정, 그리고 정전협상이 2년여간 계속되면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계속된 잔혹한 고지전 양상, 골치 아픈 전쟁포로 문제, 6·25전쟁을 통해 얻은 교훈 등을 이 책에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6·25전쟁 전반을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한국전쟁은 앞으로 모든 전쟁이 틀림없이 제한전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제한전은 곧 상호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제한전’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게 되었다.” 리지웨이 장군은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미국이 한국에서 어떠한 노력을 했고, 그 노력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은 앞으로 모든 전쟁이 틀림없이 제한전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제한전을 수행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면전을 피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현재 다수의 국가가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제한전은 곧 상호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 한국전쟁 이후 우방국이나 잠재 적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들은 모두 이러한 현실 의식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언급하면서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제한전’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제한전은 단순히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은 소규모 전쟁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제한전이란 국가이익과 현재 군사적 능력을 고려하여 목표를 분명하게 제한하는 전쟁이다”라고 규정하고, “‘승리’를 넘어서는 지리적·정치적·군사적 목표가 분명하게 기술되지 않은 끝이 없는 전쟁은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무한히 확대될 수 있으며 한 번의 성공은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계속해서 또 다른 성공을 요구한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은 멋진 사나이다운 주장으로 들릴 수 있고,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외침은 우리의 피를 용솟음치게 만드는 메시아의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전면전의 최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승리를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채 우리의 문명이 수천 년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승리’나 ‘무조건 항복’을 위한 전면전이나 무제한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앞으로 모든 전쟁이 국가이익과 현재 군사적 능력을 고려하여 목표를 분명하게 제한하는 제한전이 되리라는 것을 가르쳐준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물적·인적 자원을 총동원한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가공할 핵무기의 위력을 절감한 미국은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어 핵무기를 사용하게 되는 지구적인 재앙을 피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이 ‘완전한 승리’나 ‘무조건 항복’을 위한 전면전이 아니라 미국에게 생소한 제한전 양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쟁은 더 이상 군사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치·군사·외교·경제 정책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달성해야 할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군사 지도자는 군사적 수단으로 얼마나 많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 수단들을 가장 잘 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군사적 판단을 제공해야 한다. 최상의 결과는 정치 지도자와 군사 지도자의 긴밀한 협조에서 나온다.” 리지웨이 장군은 전쟁이 더 이상 군사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정치·군사·외교·경제 정책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시행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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