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 지복덕 할매의 겨우살이
고향은 지금, 디스 한 갑으로 일주일을 산다
이 땅에서 군대에 간다는 것은
봄날, 세상 귀퉁이를 가다
피어라 들꽃, 불어라 봄바람
가난한 사람들의 첫 기착지, 가리봉
떠나간 혹은 떠나온, 경북 봉화 화전민 마을
못다 핀 꽃 두 송이 미선이, 효순이
낙원동이 낙원인가, 인사동에서 묻다
바람 맞은 무주, 무풍 사람들
안동 하회마을에는 사람이 있다
가을 끝, 강원도 국도변을 헤매다
그는 공고를 나왔다
작가 후기
뭉근히 배어나는 모정의 작가 공선옥이 이번엔 길위에 섰다. 아이 셋을 둔 어미인 그가 나이 40이 되어 집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기행산문집'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책에서 그녀가 스쳐가고 기록한 것은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라 '기맥힌' 우리네 세상살이 모습이다. 그녀의 여정은 도붓장수 지복덕 할머니를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새끼가 여섯 마리였제'라고 이야기하는 할매는 평생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푸른 논밭을 배경으로 무거운 등짐을 맨 할머니는 고단한 삶의 무게로 휘청이면서도 꿋꿋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공선옥은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떠올린다. 부박하지만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따뜻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공선옥의 언어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낸 노익상, 박여선씨의 사진이 잘 어우러진다. 월간 '말'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