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작가 필립 로스를 만날 수 있는 전설적인 데뷔작!
★ 전미도서상 수상
★ 휴턴 미플린 문학협회상 수상
★ 미국 문학예술협회 기금 수상
★ 다로프상 수상
“빼어나다! 놀랍다! 강렬하고 생생하다!” _뉴요커
우리 시대의 관찰자,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 필립 로스,
스물다섯 살의 그가 완성한 이 시대 가장 ‘완벽한 데뷔작’!
미국 문학계를 지탱하는 묵직한 버팀목 필립 로스의 작품은 맹렬하고 웅대한 이야기와 예리한 현실 의식이 반영된 강렬한 문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대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소설 속에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점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문제작’을 발표하며 크고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는 것 또한 그의 작품세계를 논하는 데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펜/포크너 상, 펜/나보코프 상, 펜/솔 벨로 상,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골드 메달,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등 화려한 수상 경력까지 자랑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장의 면모다.
그런 그의 신인 시절은 어땠을까? 그동안 그를 사랑하는 한국의 독자들이 품어왔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이십대의 필립 로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첫번째 소설은 어떤 세계를 보여주었을까? 필립 로스의 데뷔작 『굿바이, 콜럼버스』가 그 질문에 답한다.
“필립 로스가 계속 단편소설만 썼다 해도 그는 여전히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소설집인 『굿바이, 콜럼버스』는 그만큼 훌륭하다.” _래리 다크(편집자)
1959년에 발표된『굿바이, 콜럼버스』는 이듬해인 1960년 스물여섯 살이던 필립 로스에게 전미도서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휴턴 미플린 문학협회상, 미국 문학예술협회 기금, 전미유대인도서협회에서 수여하는 다로프상을 수상했으며, 수록 단편 중 하나인 「엡스타인」은 <파리 리뷰>에서 수여하는 아가 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표제작인 중편 「굿바이, 콜럼버스」와 「유대인의 개종」을 비롯한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은 유대인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후에 그의 중·후기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유대계 미국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유대주의와 유대계 미국인들에 대한 풍자적인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굿바이, 콜럼버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태도나 플롯은 대체로 보다 풋풋하고 정겹다. 활력이 넘치며 작품 전반을 흐르는 위트 또한 한층 경쾌하고 소소하다. 그러면서도 신인답지 않게 능수능란하다. 노련한 강약 조절과 완벽한 구성, 주변인물에게까지 섬세하게 손길이 미친 인물 묘사는 훗날 미국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설 대가의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굿바이, 콜럼버스』 속 인물과 에피소드가 훗날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들에서 어떻게 되살아나고 발전되었는지 가늠해보는 재미도 크다. 예컨대, 「굿바이, 콜럼버스」의 농구선수 론 파팀킨은『미국의 목가』의 청년 ‘스위드’를 연상케 하고, 「엡스타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딸 실라에게서 “자본가”라는 비난을 듣는 루 엡스타인은 중년의 ‘스위드’를 연상시키는 식이다. 화자의 웅변조 독백을 길게 잇는 스토리텔링 스타일을 발전시켜온 필립 로스의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경쾌한 문장을 만나는 경험 역시 새롭다. 필립 로스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청년 작가 필립 로스의 새로운 면모에 놀랄 것이고, 이 책으로 그를 처음 접하게 될 독자라면 삶의 아이러니를 이토록 유머러스하고 세련되게 그려낸 작품이 1959년에 발표되었다는 데 놀랄 것이다.
희극과 비극을 함께 품은 삶의 아이러니
그런 삶을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트 있는 초상!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전후 시대를 살아가는 2, 3세대 유대계 미국인들이다. 2차대전이 가져다준 풍요는 미국에 사는 유대인 사이에서도 경제 수준에 따른 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부유한 유대인은 교외로 거처를 옮겨 목가적인 삶을 추구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복잡한 도시에 남았다. 전자는 미국사회의 또다른 비주류인 흑인들을 부렸지만, 후자는 연민을 느꼈다. 가족 안에서는 엄격한 유대인의 전통이나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로 갈등이 생겨났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지식인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된 자녀들은 부모의 간섭에 진저리를 냈다. 미국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열망에, 유대계 미국인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요인인 유대교 신앙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약해져갔고 이는 유대인 공동체 내부의 갈등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공동체 속 개인으로서의 유대인에게 정체성 혼란을 야기했다. 그들은 자신이 유대인이 맞는지, 유대교 신앙이 그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지,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옳은지 혹은 가치가 있는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들이 느끼는 주된 감정은 현실 유지 혹은 미국사회 정착과 동화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들은 희극과 비극, 만족과 불안이 교차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품은 채, 물살에 몸을 맡기고 표류하듯 휘청휘청 앞으로 나아갔고, 필립 로스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굿바이, 콜럼버스』에서 이를 완벽히 재현했다.
그렇다고 해서 『굿바이, 콜럼버스』가 유대인들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반유대적이라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기 좋아한다.) 필립 로스의 작품들이 가장 미국적이고 또한 가장 세계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인간 삶의 보편적인 고민들을 예리하게 성찰하기 때문인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굿바이, 콜럼버스」에서는 사랑도 무력하게 만드는 계층의 벽과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유대인의 개종」에서는 삶을 황폐하게 하는 종교의 위선과 그 강력한 위선의 힘에 도전하는 용기에 대한 문제를, 「신앙의 수호자」에서는 기회주의적이고 교활한 개인을 통해,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한 개인을 벌할 자격이 과연 또다른 개인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사유한다.
발표한 지 올해로 55년이 된 『굿바이, 콜럼버스』가 여전히, 또 멀리 한국에 있는 독자인 우리에게 허락하는 풍요로운 읽기 경험은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진정으로 읽을 준비가 된 독자들이라면 그 마음을 사로잡고 마는 필립 로스의 저력에 대한 방증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역할에 대한 필립 로스의 아래와 같은 언급은 큰 여운을 남긴다.
“만약 제 소설이 조금이라도 우리 문화를 바꿨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분명, 어느 정도 스캔들은 되었을 테지만, 스캔들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그게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고, 스캔들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제 소설이 이 세상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꾸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역시 ‘그렇지 않다’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작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 소설을 읽는 이들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들이 본래 속했던 세상, 모두가 그들을 변화시키고 설득하고 유혹하고 조종하려는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는 가장 훌륭한 독자인 그들은 세상의 그 모든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고,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픽션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에 길들여지고 규정되었을 의식으로부터 놓여날 것입니다.” _필립 로스, <파리 리뷰> 인터뷰 중에서.
「굿바이, 콜럼버스」
“네 머릿속에 타히티의 꿈을 담고 다니는 건 의미가 없어. 비행기 삯을 낼 여유가 없다면.”
뉴어크에서 숙부네 가족과 함께 사는 닐은 어느 여름, 수영장에서 브렌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닐과 달리 브렌다는 부유한 집안에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재원.